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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년 10월 19일:사람이 있었다

모래시계에서 박상원은 하숙집 딸 조민수에게 청혼하면서 조민수가 나름 연적인, 고위층 딸이자 신문기자인 이승연 이야기를 하니 “고위층들이 의사나 법조인을 사위로 맞이하는 데에는 다 이유가 있다.”라며 목숨과 재산을 지키는 데 필요하기 때문이라는(꼭 이 표현은 아니었지만) 멋진 대사를 읊은 적이 있다. 내가 지금 입원한 병원의 병원장은 잘 아는 사람이다. 편의상 의사친구라 하자. 몇 년 전 남편 무릎 수술 때에도 굳이 부천까지 왔던 이유는 그 분이 좋은 사람이기 때문이다. 몇 달 전, 동원감독님과 이 병원에서 건강검진을 받은 적이 있었는데 감독님은 “여기 동네를 좀 돌아보고 가야겠다”고 먼저 떠나셨다. 이 동네는 <상계동올림픽> 이후 공동체를 꿈꾸던 사람들이 머물렀던 마을이기 때문이다. 의사친구는 뜻한 바가 있어서 여기에 터를 잡았고 좋은 일도 많이 한다. 그래서 나는 이 병원에 입원했다.

사고 첫 날 강화병원 응급실에서 엑스레이를 찍은 후 다음 날 아침, 내가 침대에서 일어나지 못하자 남편이 이 곳에 나를 데려다주었다. 일이 바쁜 남편은 서울로 떠났고 나는 진료 후 2인실에 입원을 했다. 교통사고 입원은 5인실로만 제한되어있고 4인실부터는 본인부담금이 있다. 2인실은 본인부담금이 5만원이다. 예전에 남편 무릎 수술 때 1인실에 입원했었는데 보험혜택을 받았던 걸로 기억하는 나는 이번에도 보험혜택이 있는 줄 알았다.(이 말투에서 이미 예상했겠지만 보험혜택이 없다는 것을 나는 며칠 후에야 알게 된다)

어쨌든 2인실에 들어서서 침대에 눕는 순간 아주머니는 “나는 TV를 좋아해”라고 말씀하셨다. 우리 아들 며칠 동안 그 침대 써서 좋았는데,라는 말씀도 하셨고. 몹시 불쾌했다. 내 침대 쪽 가구에는 휴지며 약봉지며 담배, 라이터가 그대로 있었다. “이거 치워도 되나요?”라고 물으니 아주머니가 “우리 아들이 안치웠나보네”하며 살짝 미안한 듯하셨다. 암튼 난 기분도 별로 좋지 않고 몸도 안 좋은 상태였는데 아주머니는 계속 TV를 보셨다. 6층 간호사실에 내려가서 “TV를 너무 좋아하시는 분이라서 그런데 방을 바꿔줄 수 없냐?”고 물었더니 5인실 말고 남는 방은 없다고 했다. 나는 그날 두 개의 글을 보내야했기 때문에 침대에서 누워서, 엎드려서, 앉아서, 수시로 자세를 바꿔가며 필사적으로 글을 썼다. 아주머니께 양해를 구하고 칸막이 커튼을 쳤는데 불행히도 내 침대와 가까운 쪽에 TV가 있어서 커튼을 걷어야했다.

하루종일 몸부림을 치다시피 하며 노트북을 붙들고 있는 나를 아주머니는 안타까워하며 “아픈데 그렇게 일을 열심히 하냐?”고 하셨고 나는 갑자기 난 사고라 펑크를 낼 수는 없고 이것까지는 해야 한다고 말씀을 드렸다. 오후 4시쯤에 글을 다 보내고 겨우 누워서 눈을 감고 있는데 아주머니가 아들에게 “아줌마 자는데 밖에 나가있자”하며 소곤거리는 소리가 들렸다. 10월 12일 병실을 옮길 때까지 아주머니와 잘 지냈다. 아주머니는 우리 엄마처럼 일어나서 잠들 때까지 TV를 켜두는 분이었다. 처음엔 어떻게 견딜까 걱정되었지만 할 일을 다 끝내고나니 마음에 여유가 생겨서인지 괜찮았다. 좋게좋게 생각하자,라고 생각하니 정말 좋아졌다(내가 이렇게 긍정적인 인간이었다니!).

나는 늘 엄마랑 같이 잤다. 한 번도 내 방이 없었으니까. 꿈에 대해서 관심이 많던 20대 때에는 꿈의 내용이 TV에서 그대로 나와서 내가 꿈예언자가 아닐까 하는 생각도 했는데 나중에 그 비밀을 알았다. 엄마는 늘 애국가가 시작할 때 TV를 틀었으니 잠든 내 귀에도 뉴스는 들려서 나의 뇌는 그 뉴스를 재료삼아 꿈을 만들어냈던 것이다. TV소리를 자장가삼아 잠들고 TV소리를 알람삼아 일어나다 보니 결혼 전 엄마랑 같이 자던 시간이 떠올랐다. 이제사 떠올려보면 아주머니가 “많이 아픈가봐. 어제밤에 끙끙 앓더라”했던 말에 미안하다고 했어야했다.내가 TV소리에 잠을 설친 것처럼 아주머니는 내 앓는 소리에 잠을 설쳤을 것이다. 그땐 생각을 못했다. 아주머니가 나를 걱정해서 그런 줄로만 알아서 어떻게 아픈지 그런 것만 설명을 했었다(멍청이!). 아주머니는 매일 콜라텍을 다니는 분이었는데 콜라텍에서 넘어져서 무릎 연골이 부서져서 수술하고 치료중이었다. 다정한 아들이 아침 9시에 와서 밤 9시까지 옆에 있다가 갔다. 아주머니는 20년 애연가였는데 아들이 있을 때에는 아들과 함께 밖에 나가 담배를 피우고 왔지만 아들이 가고 나면 화장실에서 담배를 피우셨다. 담배냄새를 지우기 위해 방향제를 써서 화장실에선 늘 진한 원두커피향이 났다.

하루에 5만원씩 추가로 내야하는 2인실 사용료가 내 보험에서는 나오지 않는다는 것도 아주머니 덕분에 알았다. 실비보험이라는 게 있어서 병원비를 부담해준다는데 나는 암보험밖에 들지 않은 거다. 일요일에 그 사실을 알고 월요일에 5인실로 옮겼다. 그러니까 나는 누워서 20만원을 까먹은 거고(고구마가 일곱박스다) 늘 돈 생각은 않는 남편은 내가 힘들어할까봐 1인실에 입원시키려 했다가 1인실이 없어서(!!) 2인실을 선택한 것이었다. 1인실에 입원했으면 아홉박스의 고구마를 팔고도 남는 돈을 누워서 까먹었을텐데 천만다행이다.

10월 12일 월요일, 5인실은 텅 비어있고 구석 자리에 내 또래 여자분이 누워있었다. 병실 앞에는 이름과 성별과 연령이 적혀있으니 이제부터는 연령으로 사람들을 설명하겠다. 5인 병실에 혼자 입원해있던 37세여성은 급성신우염으로 입원했는데 이미 퇴원을 기다리는 중이었다. 와~ 이렇게 넓고 좋은 5인실을 두고 좁은 2인실에서 살았다니! 라는 생각을 하며 나는 신나게~~ 누워 있었다. 37세 여성도 TV를 좋아하는 건 마찬가지라서, 드라마전문채널이 하루종일 켜있었다. 월요일에 퇴원할 줄알았던 37세 여성이, 혈액 중 염증수치가 떨어지지 않아서 하루 더 있게 된 월요일 밤, 그녀와 그녀의 남편이 침대에 나란히 누워서 TV를 보는데 기분이 참 이상했다. 37세여성은 금요일부터 혼자 있었다고 하니 그분들은 그렇게 며칠을 지냈나보다. 갑자기 불청객이 된 기분이었다. 두 사람만의 오붓한 시간을 방해하는 것같고 그렇다고 나갈 수도 없고. 그리고 5인실 내 침대는 TV 뒷편이라 소리만 들리고 화면은 보이지 않는 자리였다. 9시가 넘어서 자고 싶은데 불이 너무 환해서 “불 좀 꺼도 될까요?”라고 물었더니 끄라고 해서 불을 끄고 잠을 잤다. 잠깐 잔 듯한데 깨보니 방에 아무도 없었다.아마 나를 배려해서 나간 듯했다. 그런데 그때부터 온갖 괴담이 생각나기 시작했다. 그리고 내가 누워있는 곳은 병원이었던 거다!! 잠을 못 이루고 있었는데 새벽쯤 부부가 다시 돌아와서 나도 잠들었다.(그날의 교훈:TV소리가 시끄러워도 사람이 낫다)

10월 13일 화요일, 37세 여성은 퇴원하고 20세 여성이 입원했다. 20세 여성은 출근길에 버스를 기다리다가 주차하려던 스타렉스한테 치여서 왔다 했다. 바퀴가 발을 밟고 지나가서 발에 붕대를 하고 있었다. 20세여성의 침대가 내 침대의 위쪽에 있어서 전화소리가 들렸는데 전화기 저편의 목소리는 그래서?, 얼마나 다쳤는데?, 언제 출근할 수 있어?,와 같은 질문들을 취조하듯 묻고 있었다. 20세여성의 엄마가 함께 머물다가 간 후 우리는 하루 종일 조용히 누워서 잠을 자거나 책을 읽거나 핸드폰 화면을 들여다보거나 했다. 저녁에 82세 여성이 입원했다. 원래 안좋았던 무릎을 새벽에 침대에서 내려오다 찧어서 결국 인공관절수술을 받게 되었다 한다. 82세 여성은 강아지 걱정을 많이 했다. 비글이라 ‘성질이 안좋아서’ 혼자 두면 화를 낸다고 흉보듯이 말을 했지만 걱정이 많은 듯했다. 비글 보글이가 걱정이 되어 잠깐 엄마 집에 다녀온 그 분의 딸은 보글이가 화가 나서 자기 집도 현관까지 끌어다놓고 휴지도 다 빼놓고 난리를 쳤다 한다. 82세 여성은 ‘에구 그렇지 그 놈의 자식이’ 하면서 속상해하셨다. 창가에서 찬바람이 불어온다 해서 자리를 바꿔드렸는데 반복해서 고맙다고, 고맙다고 하셨다. 그 분은 정해놓은 드라마 딱 한 개만 보신다고 하는데 내가 바꿔드린 침대의 위치가 TV를 볼 수 없는 자리라 그날 20세 여성, 44세 여성, 82세 여성은 평화롭고 한가하게 하루를 보냈다. 지금도 입원해있는 20세여성은 그날의 평화가 참 그립다고 말하곤 한다.

여기서 20세여성에 대해서 잠깐 언급하고 넘어가면, 간호조무사로 일하고있는 20세여성에게 사고 첫날 쌀쌀맞게 전화를 했던 사람은 간호부장으로, 꾀병 아니냐고 그러면서 오래 못나오면 다른 사람을 구하겠다는 얘기를 했다고 한다. 사람과 사람이 친해지는 가장 빠른 방법은 흉 같이 보기이다. 그래서 그 간호부장 흉을 보면서 우리는 친해졌다. 다른 사람을 구하겠다는 건 해고하겠다는 말인 것같아서 둘이서 핸드폰에다가 ‘출근 중에 교통사고를 당했습니다’,‘교통사고 중 해고’ 이런 것들을 막 쳐보던 중 우리는 놀라운 사실을 발견했다. 출근 중 교통사고를 당했다 하더라도 통근버스가 아닌 이상 업무상 재해는 아니라고 한다. 교통사고로 입원해서 출근을 못할 경우 월급은 없으며, 어떤 사례에서는 그렇게 사고로 입원했다가 출근했는데 하루만에 해고를 당했지만 그건 적법하다는 설명이 나와 있었다. 교복을 입고 문병오는 고3 남동생, 쌍둥이처럼 닮은 언니, 그리고 엄마 아빠, 늘 오셔서 조용히 앉아있거나 맛있는 것을 나눠먹으면서 정다운 얘기를 나누는 모습이 보기 좋은, 20세 여성이, 교통사고는 기본 2주 동안은 꾸준히 치료를 받아야하는 사실을 모르지 않는 의료인으로부터 ‘꾀병 아니냐’는 질타를 받고 있는 상황은, 옆에서 보기에 참 서글펐다. 15세여성을 딸로 키우고있는 내 입장에서는 남의 일같지 않아 보였다. 그리고....노동법이라는 게 이토록 비인간적이라는 사실이 놀라울 따름이었다. <청춘유예>의 안창규감독님한테 문의를 했더니 청년유니온의 전문가를 소개해주셨다. 하지만 내가 할 수 있는 일은 여기까지. 20세여성은 억울해했지만 전화를 걸지는 않았다. 아직까지도 전화는 안건 것같다. 한 번 물어본 후에 부담스러워할 것같아 더 이상 묻지는 않았다.

10월 14일 수요일 오전, 78세여성이 입원했다. 계단에서 넘어져서 발가락을 다쳤는데 다니던 병원에서 수술이 필요하다고 해서 입원했다 한다. 78세여성은 자신을 독거노인이라 소개했다. 휠체어가 없으면 움직이지 못하는데 병실에서도 옆을 지키는 이가 아무도 없었다. 82세여성은 세 명의 자식이 번갈아가며 찾아오고, 간병인까지 24시간을 지키는데 78세여성의 옆에는 아무도 없었다. 82세여성의 간병인 아주머니가 가끔 도와드리기는 했지만 간병인 아주머니의 입장에서도 눈치보이는 일이었다. 수요일 오후에 교회에서 병문안을 왔다. 찬송가를 부르고 안수기도를 하고(목사님은 한국어로 한 번 하고, 영어로 또 한 번 하셨다. 나중에 내 얘기를 들은 남편은 그게 아니라 아마 방언기도였을 거라고 하는데 내가 듣기로는 영어던데. 그러니까 한국어 기도문을 요약한 영어) 그리고 돌아가려고 하는데 82세 여성의 간병인 아주머니가 호소를 했다. 
“기도도 좋지만요 이 할머니를 좀 돌봐주실 사람이 필요해요. 저희가 도와드리기는 하지만 이제 수술에 들어가면 더 꼼짝 못하실텐데 교회에서 한 명씩 돌아가면서 와주시거나 교인들이 조금이라도 모금을 해서 간병인을 붙여드려야할 것같아요”
교인들은 그렇죠, 한 번 알아보겠습니다, 하고 돌아갔다. 
82세 여성은 그날 아침 인공관절수술을 해서 많이 아파했다. 한 시간에 한 번 꼴로 간호사들이 와서 불을 켰기 때문에 병실의 누구도 잠을 자지 못했다. 하지만 누구도 불평하지 않았다. 이때까지는 참 좋았던 것같다. 우리는 모두 서로를 배려했다. 78세여성도 늘 TV를 켜두는 분인 듯 보였지만 먼저 온 세 사람이 TV를 보지 않으니 정해진 시간에 드라마만 보고 곧 껐다. 78세 여성은 병실 사람들이 같이 돌봤다. 간병인 아주머니가 가장 많이 도왔는데 82세여성이 수술을 하러 간 사이에 아주머니가 솔직하게 말씀을 하셨다. “나는 하루에 7만 5천원을 받고 우리 할머니를 돌보는 사람이라 할머니를 돌보는 것이 많이 신경이 쓰인다. 우리 할머니가 불평을 하지는 않으시지만 나도 지켜야할 룰이 있지 않겠냐”고 하셨다. 
78세여성을 돕는 일은 어렵지 않았다. 물 떠다 드리기, 다 먹은 식판 갖다놓기, 화장실 갈 때 휠체어 밀어드리기 정도면 되었다.

10월 15일 목요일, 82세여성이 6층으로 옮겼다. 간호사들이 자주 왔다 갔다 해야 해서 간호사실이 가까운 6층으로 옮긴 것이다. 나는 그 분이 참 좋았다. 병실의 두 노년을 보며 나는 어떤 모습의 노년이 될까,라는 생각을 많이 했었다. 82세여성은 너무 길지 않게, 가끔 자기 이야기를 들려주셨다.

“유방암 때문에 수술을 하는데 남편이 나 돌보느라 자기가 암인지를 나중에 알았어. 위암이었대. 6개월만에 돌아갔어. 마지막에 세브란스에서 항암치료를 했는데 그걸 괜히 했어. 많이 아파했는데. 장례를 치르고 돌아왔는데 아들네 강아지가(보글이 말고 요크셔테리어) 이 방 저 방 돌아다니면서 할아버지를 찾아. 할아버지 세상 떠났어,라고 하니까 시무룩하니 앉아”
82세여성은 “자리도 바꿔줬는데” 하면서 자꾸 미안해하며 떠나갔다. 78세여성은 눈물을 글썽이며 서운해했다. 저사람이 나를 많이 도와줬는데 이제 어떡하냐고 걱정하셨고 82세여성도 걱정을 많이 하며 떠나가셨다.

82세여성이 떠나고 10대로 보이는 여성이 왔다가 큰 병원으로 옮겨야한다는 진단을 받고 떠나갔고 62세여성이 입원했다. 인도에 서있는데 오토바이가 와서 부딪쳐서 앞으로 넘어지면서 입술과 입속 피부가 찢어져서 꿰매었다고 한다. 82세여성이 떠난 후부터 병실 분위기는 미묘하게 바뀐다. 간병인 아주머니가 부드럽게 규칙을 잡는 사람이라 소등시간이며 TV시청시간을 조절했는데 78세여성은 이제 리모콘을 머리맡에 두고 24시간 TV시청 모드로 변한다. 물을 떠다 드리거나 화장실에 갈 때에도 이전에는 내가 자진해서 도와드리는 거였는데 이제는 거침없는 요구로 말투가 바뀌셨다. 나는 TV시청에 대한 태도가 바뀐 것만 감지한 상태에서 놀라워하고 있었는데 마침 그날 의사친구의 아내(그녀도 나의 친구이다. 공식직함은 행정원장)가 병실에 들렀다가 78세여성이 나한테 시키는 모습을 보고 나중에 그 얘기를 해주어서 알았다. 아, 그런가? 명령은 아니고 엄마가 나한테 심부름 시킬 때의 말투, 정도였지만 변하긴 변했다.

10월 16일 금요일, 아침에 행정원장 친구가 출근하면서 전화를 하기를 1인실로 옮기라고 했다. 추가부담금은 걱정하지 말고 입원해있는 동안 몸과 마음을 편히 쉬기를 바란다고 했다. 나는 괜찮다고 했다. 병실의 평화는 확실히 깨졌다. 78세여성의 핸드폰 소리는 참 컸다. 통화소리도 컸다. 귀가 어두워서 어쩔 수 없었다. TV소리, 귀청이 떨어질 것같은 핸드폰 소리보다 나를 괴롭게 했던 것은 트림소리였다. 나는 트림소리에 약하다. 남동생은 그걸 알아서 어렸을 때 싸우다가 트림소리로 승리하곤 했다. 소화가 안되는 할머니는 트림을 자주, 크게 했고, 소화되지 않은 음식물 냄새가 내가 누운 침대로까지 퍼졌다. 
62세여성의 딸은 돌이 안된 막내와 초등학교에 들어가지 않은 듯한 큰애, 그리고 그 사이에 두 아이가 더 있는 4남매의 엄마였다. 일산에서 왔다는 그 딸이 엄마가 걱정되어서 왔는데 애를 맡길 데는 당연히 없었을 것이다. 울고, 떼쓰고, 놀고, 장난치고.... 그 또래 아이들이 통제불가능하다는 건 그 시간을 거쳐온 내가 잘 아니, 우리가 밖으로 나가 있는 게 합리적이었다.

초췌해진 20세여성은 “제가 원래 잠을 잘 못자거든요” 하며 82세여성이 수술하던 날부터 잠을 못 잤다고 퀭한 눈으로 말했다. 엄마한테 병실 좀 옮겨달라고 부탁을 했지만 쉽지 않은 부탁이라는 걸 그녀도 알고 있었다. 엄마가 곤란해하며 그러셨다고 한다. “우리가 갈 데가 어디 있니....” 전날 그녀는 답답해서 병원 안 여기저기를 돌아다녔는데 결국 발이 아파서 돌아다니는 건 포기했다고 했다. 우리는 자주 그렇게 나와서 로비에 앉아 있었다. 지나가던 간호사가 몸은 괜찮냐고 물어서 “잠을 자는 게 힘들대요”라고 전했더니 “여럿이 함께 쓰는 병실이라 어쩔 수 없다”고 했다. 그렇게 앉아 있다가 허리가 아프면 가서 이불을 뒤집어쓴 채 누워있다가 또 밖에 나와 있다가 그렇게 보냈다.

우리 둘 다 퇴원하고 싶었지만 대안이 없었다. 한의사 후배는 “잠이 보약”이라고, 지금 시기 양질의 잠이 가장 필요하다고 말했다. 20세여성은 혼자 쓰는 자기 방을 간절히 그리워했다. 하지만 규칙적인 식사와 물리치료를 위해서 우리는 병원에 있어야했다. 20세여성은 걸으면 안되었고 내가 사는 집은 너무 외딴 곳이어서 통원치료를 하기 위해서는 남편이 일을 쉴 수밖에 없었으니까. 우리는 치료를 위해 어렵게 시간을 냈지만, 보호자들한테 직장을 쉬게 할 수는 없었다. 그래서 우리는 참아야했다.

10월 16일 토요일 밤, 드라마가 끝난 후 채널을 여기저기 돌리고 있는 78세여성에게 “TV꺼도 돼죠?”라고 물었다. 아마 평소의 나와는 다르다는 것을 78세여성은 느꼈을 것이다. 그녀가 겸연쩍은 웃음을 짓자 나는 얼른 TV를 껐다. 그날은 참 힘든 날이었다. 휴일을 맞아 62세여성의 딸과 그 아이들은 오랫동안 병실에 머물렀고 78세여성의 교회손님들도 왔다. 로비에 앉아서 고구마 주소록을 작성하다가 허리가 아프면 병실에 가서 잠깐 누웠다가 다시 로비에 나와 고구마주소록을 작성하다가 그렇게 보낸 탓에 너무나 피곤했다. 누운지 몇 분이 안되어서 45세여성이 새로운 환자로 왔다. 신호대기 중에 다른 차가 뒤에서 박았다고 한다. 다시 불이 켜지고 분주하게 사람들이 왔다갔다 했다. 10시쯤 되어 간호사가 “이제 소등시간이니 대화는 밖에서 해달라”고 했으나 변하는 것은 없었다. 한 무리의 사람들이 왔다 가면 또 새로운 무리의 사람들이 오고 그래서 20세여성과 나는 바깥에 앉아있었다. 11시쯤 되어 병실에 가니 불이 꺼져있었다. 45세여성의 곁에는 두 명의 여성이 앉아 있었다. 자리에 가서 누웠는데, 대화가 들렸다. 대화가 안들렸으면 나았을라나. “이제 갈게” 해서 가나보다 하면 또 얘기하고, “이제 갈게” 하고서 가나보다 하면 또 얘기하고. “이제 갈게”를 한 다섯 번 들은 후에 시계를 보니 11시 30분이었다. 참다 못한 나는 “저기요. 여기 다 환자들이거든요. 이제 좀 자면 안될까요?” 했더니 “사고 나고 첫날인데 너무 하는 거 아니냐?”고 했다. 지금 두 시간 째구요, 저희도 환자예요,라고 했더니 나가는 듯 했다. 82세 여성이 아파서 간호사가 들락거리는 거랑, 놀란 45세 여성을 위로하기 위해 그녀의 많은 친구들이 들락거리는 거랑은 인내심의 근거가 달랐다. 너무 피곤해서 깜박 잠이 들었는데 2시쯤에 남기로 한 한 사람인지 들어와서 보조침대를 꺼내는데 끽끽 거리는 소리에 깼다. 또 잠이 들락말락하는데 45세여성의 핸드폰 벨이 크게 울려 깨보니 5시 50분이었다. 결국 나는 행정원장친구한테 부탁해서 병실을 옮겼다. 토요일부터 내내 1인실이 비어있던 것도 그 부탁에 한 몫을 했다. 내가 견딜 수 없었던 것은 잠을 설친 그 밤의 소란이 아니다. 다음 날, 45세 여성의 친구들이 들락날락하면서 나를 째려봤다. 무리의 힘은 세다. 나도 뒤를 받친 사람이라 그 고통을 모르는 바는 아니다. 하지만 그 여성의 소란은 아파서 앓는 신음이 아니었다. 무슨 행사의 뒷풀이를 하고 끝내고 오다 사고가 난 거라는데 친구들의 숨결에서는 술냄새가 났고 밤이 깊어도 끝나지 않는 그 말소리는 대화라기보다는 주정같았다. 그리고 그렇게 잠을 못 이루게 소란을 피웠으면 다음 날이라도 사과를 하는 게 예의라고 생각한다. 사과는 없더라도 무리의 힘을 빌려 나를 손가락질하고 째려보지는 말았어야 했다. 어쨌든 나는 그래서 어제 오후부터 1인실에 있다.

6층의 82세여성을 보러 가니 옆침대 사람들이 너무 떠들어서 힘들다고 하소연을 하셨다. 옆 방 사람까지 몰려와서 음식을 나눠먹으며 떠들어서 간병인 아주머니가 여러 번 주의를 줬는데 별로 말이 안먹힌다고 한다. 하도 궁금해서 “서로 아는 사이예요?”하고 물으니 병원에서 친해진 사이라고 했다 한다. 어떤 상황인지 이해는 간다. 아마도 내가 처음 5인실에 갔을 때처럼 그녀들은 그녀들만이 지냈던 시간이 있을 것이다. 군대에는 안가봤지만 군대랑 비슷한 것같다. 그러니까 먼저 온 사람이 선임이고 먼저 온 사람이 기득권이 있는 것이다. 그리고 먼저 왔다 하더라도 만만하면 기운이 더 센 사람이 기득권을 갖는다.

20세여성, 나, 82세여성, 이렇게 셋이 있는 곳에 78세여성이 왔을 때, 처음 그녀는 “여기는 TV도 안보나?” 이렇게 들으라는 듯이 여러 번 운을 떼다가 세 번 네 번 그 말을 반복해도 우리가 움직이지 않으니 “TV 좀 봅시다”하고 TV를 튼 후에 드라마가 끝나면 TV를 껐다. 그렇게 2박 3일 동안 9시면 우리는 평화롭게 잠들거나 소음없이 각자 할 일을 하는 평화로운 시간을 보냈다. 20세여성도, 나도, 82세여성과 간병인 아주머니도 “그 때가 정말 좋았어”라고 말한다.1인실로 옮긴 얘기를 들은 간병인 아주머니는 “이 방 비면 이리로 옮겨” 하신다. 78세여성을 보러 가니 눈물을 뚝뚝 흘리신다. 미안하고 안쓰럽다. 하지만 내 침대에는 45세여성의 동료가 누워있다. 함께 사고를 당했다 한다. 78세여성은 “자네가 가고 나니 아무도 돕지 않아”라고, 수술을 해야 한다는데 딸은 울산에 살아서 보호자 동의서에 사인해줄 사람을 구해야한다고 또 운다. 베갯잇을 적시며 한없이 떨어지는 눈물을 휴지로 닦아드리고 쾌유를 빌며 돌아나왔다. 마음이 복잡하다.

예전에 복지에 대한 강의를 들었을 때 강사는 “지하철에서 구걸을 하는 사람에게 돈을 줄 것인가, 말 것인가”라고 물었다. 정답은 “주지 않는다”이다. 누군가 주게 되면 돈을 주지 않은 사람이 욕을 먹는다. 누군가의 구제는, 혹은 복지는, 시스템을 통해 해결해야지 개인의 선의에 기대면 안된다. 요즘 들어 부쩍 더 늘어가는 유네스코, 월드비전, 굿네이버스 등등의 광고를 볼 때마다 ‘국민이 고분고분해지니 나라가 싸가지가 없어지고’ 무능한, 몰인정한 국가를 대신해서 국민에게 선의를 강요하는 것같다.

하지만 나는 가끔 돈을 준다. 시스템을 바꾸기 위해 내가 별로 노력을 하고 있지 않고 내 동전 한 닢이 붕어빵이라도 사먹게 해준다고 믿고 싶으니까. 나는 78세여성에게 잘한 것일까? 모두가 환자인 병실에서 돕지 않는다고 누군가를 원망하는 것은 옳지 않다. 간병인을 못 구한 78세여성은 간호사들에게 도와달라고 말을 해야 한다. 아니 하도록 했어야 했다. 나는 그 기회를 주지 않았고 어느 순간 무고한 다른 환자들이 욕을 먹게 하고 말았다.

무엇보다 나는 물러날 곳이 있어서 그 방에서 탈출하고 말았다. 20세여성에게 머리감으러 오라고 했다. 5인실에 있는 동안 머리를 못 감았던 이유는, 엎드려서 머리를 감으면 온 몸이 쑤시기 때문에 머리를 뒤로 젖힌 채 머리를 감아야하는데 그러려면 옷을 다 벗은 채 감아야 했기 때문이다. 움직임이 자유롭지 못한 상태에서 시간을 너무 많이 쓰면 뒤엣 사람을 기다리게 할 것같아서 차마 못했다. 20세여성은 어제밤에 언니가 와서 도와줬다고 했다. 둘이서 로비에 가만히 앉아있던 때가 마음은 편했던 것같다. 어제 밤에는 근 2주만에 푹 잤다. 아침도 안 먹고 잤다. 로비에 앉아있느라 알게된 환자들이 눈을 동그랗게 뜨며 “1인실에 있어요?” 하는데 그냥 쑥스럽게 웃고 만다. 빨리 퇴원해야 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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