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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선

99년의 mbc가 배경이다.

나는 AD로서 굉장히 열심히, 그리고 바쁘게 일하고 있다.

중요한 해외촬영이 있어서 가야하는데

답답하게도 회사는 다른 팀의 AD에게 "간 김에" 우리 팀 촬영분량까지 찍게 한다.

나는 화가 났지만

어쩔 수 없으므로 최선을 다해서 다른 팀 AD에게 촬영내용을 알려준다.

알려주면서도 못 미덥다.

아, 내가 가야하는데. 뭣도 모르는 얘가 뭘 하겠나.

답답해하면서도 어떻게든 촬영본을 제대로 뽑아내려고 고민하고 있는데

LHK피디가 특유의 시니컬한 표정과 음성으로

"이런 일 한 두번 겪냐? 그렇게 애쓰지마라. 망치는 건 네가 아니지 않냐?

 저 멍청한 위엣놈들이지" 

하며 나를 안쓰러워 혹은 한심해 한다.

나는 그의 말에 다 수긍하면서도

'어쨌거나, 어떠한 상황에서라도, 나는 내가 만드는 프로그램의 완성도를 위해 뭐든 한다'

라는 생각을 하지만 입밖으로 내어 말하진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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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때 열심히 살았지.

99년 그  때 참 열심히 살았지.

미국촬영 가려고 방송국에서 여권을 만들어줬는데

나는 결국 가지 않았다.

그만 두겠다는 나를 담당피디가 잡았을 때

나는 그의 마음이 진심임을 알았다.

그는 방송국 내에서 무능함으로는 일순위에 꼽히는 감독이었고

그런데 그가 맡은 프로그램은 너무나 역사적인 프로그램이었으며!(이제는 말할 수 있다)

내가 곧잘 일을 잘 해내니 그는 놀고 먹을 수 있었을 것이다.

저녁마다 일찍 퇴근하면서

"너 밤새더라도 아침에 잠깐 나갔다와. 너 고생시킨다고 사람들이 나 욕해"

라는 말을 들을 때에도 프로그램 욕심에 참고 견뎠지만

결국 나는 작가군과 피디군의 알력을 못 참아내고 한 프로만 하고 그만 뒀다.

그 때 나를 데려왔던 이피디님이 "여긴 배울 게 많으니까 가지 마"라고 했을 때

"군대에 있어도 배울 건 있겠지만 나는 지금 군대에 있는 게 아니고

내 노력을, 내 젊음을, 더 가치있는 데 투자하고 싶어요"라고

잘난 척하며 박차고 나왔는데

지금 생각해보면 한 프로 더 하고 나올 걸 그랬나 싶다.

같이 갔던 JN은 W 고정 피디가 되더니 지금은 뉴스타파.

만약 내가 그 곳에 계속 있었더라면 JN처럼 되었겠지만

사실 하나도 부럽지않다.

신 신분제사회였던 그 곳에서의 시간을 박차고 나오면서

나는 내 인생에 하나의 다짐을 세웠다.

나는 늘 가장 최선의 것을 선택하며 살 것이다!

독립영화감독이라는 자리가 

제도권에 있는 피디들보다 느슨하거나 리버럴하거나 여유있기 때문이 아니라

조직이 주는 압박이 덜하기 때문이 아니라

가장 빛나는 자리이기 때문에 내가 이 곳에 있는 것이다!

라고 스스로에게도 누구에게든 언제든 말할 수 있기 위해서

나는 열심히 살았다.

 

꿈에서 깨어 밖으로 나와보니 새벽 5시.

꿈에서 깨면 늘 새벽 3시 5분, 3시 10분, 그랬는데

어제밤은 무려 5시. 

애들하고 원령공주를 본 덕분에 11시가 되서야 잠이 들어서인듯.

편안한 잠.

꿈은 별다른 느낌 없었고 그냥 그 때 그 시간을 떠올리며

여전히 이 자리가 나의 최선이 되도록 빨리 시간표를 짜야지,

라고 생각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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