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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년 12월 26일

<밀양 송전탑 반대투쟁 10주년 기념 문화제 이브>
우리는 10주년 기념문화제 하루 전날
부산에 왔다.
치과진료도 하고
(부산엔 우리가족 치아 담당 의사가 있음)
산타가 준 숙박권도 쓰려고.

우리는 산타가 추천한대로
부산 국제시장을 찾았느나
국제시장이 어딘지 모른 채 헤매다
그냥 지하도에서 옷을 사고 돌아왔다.

처음 부산에 도착해서 지하철을 탔는데
어떤 사람이 "부산은 어디나 사람이 많아"
라고 하는 말을 들었는데
정말 그 말이 예언인양
사람이 어디나 많았다.
산타는 앞으로 좀더 정보력을 강화할 필요가 있음.

하루 종일 진짜 고생 많이 했음.
부산엔 정말 사람이 너무너무너무 많았.....
어디나 어디서나 사람들은 줄을 서 있었음.

'부산여행' 관련 블로그 글을 보고서
부산역에 내려 자갈치 시장역으로 가려는데
친절하신 부산 시민 분이
남포 역에서 내려서
걸어가라고 해서
(지금은 가봐야 자갈치시장은 문을 닫았다고 조언해주심)
그분 말씀대로 남포역에서 내려 
완전 진짜 열라 많이 걸었는데
식당이든 노점이든 화장실이든 지하철 매표소든
사람들이 너무너무 많아서
모두 지쳐서 숙소에 돌아왔다.

그래서 이 숙소가 있다는 게
너무 고마웠다.
산타의 국제시장 언급은
고도의 전략인 듯.
너무 피곤하고 지쳐서
산타의 숙소가 너무너무 고마웠음.

사진은 전철 표 맞춰보는 어린이들.
전철표를 사진처럼 맞춰보면 
문장이 완성된다고 함.
남포역엔 사람이 어찌나 많은지
지하철 개표구에서
카드를 가진 사람과
표를 가진 사람들을 분리해서 나오게 했다.
애들은 아슬아슬해하며
처음 써보는 지하철 표를 구멍에 집어넣고 나왔다.

이런 표는 내가 하은이 나이 때 써보던 거다.
나는 중2때 버스도 별로 없던 해남에서
서울이라는 대도시에 전학을 와서
세상이 바뀌는 경험을 했었다.
그 당시 내가 서울와서 썼던 전철표를(1984년)
유하은 뿐 아니라
유한별 유은별도 써볼 기회를 가짐.
<응답하라 1988> 분위기.
계란빵 땅콩빵 번데기 먹으면서
1988 분위기를 함께 즐겼음.

밀양송전탑반대투쟁 10주년 기념문화제를
진정 기념하며!

 

먹은 것

12월 25일:저녁으로 냉채족발, 소주/숙소로 돌아와 치즈, 와인

12월 26일:점심으로 중국음식, 저녁으로 순대국, 숙소 앞에서 족발과 소주

 

26일 일어나니 허리가 끊어질 듯 아팠다. 사고 후 처음으로 술을 많이 마셨다.

여행 중이라 와인을 병에 담아갈 수는 없으니

한 번 딴 와인은 어쩔 수 없이 다 마셔야겠다,라고 생각한 게 문제였던 듯.

아침에 일어나니 허리가 끊어질 듯 아플 뿐 아니라 속이 쓰렸고 입냄새가 났다.

사고 후 한의원에 다니면서 내가 가장 환영했던 몸의 변화가 입냄새였는데.

그동안 쌓아온 게 다 날아가버린건가 하는 생각에 걱정이 되었다.

서울로 돌아왔지만 즉시 한의원에 가지 못한 건

월요일 10시 까지 KBS에 가야했고 그리고 저녁 6시에 멘토링 마지막 모임이 있었다.

아침 일찍 서울갔다 다시 강화의 병원, 그리고 서울에 가는 방법도 생각해보았지만

그렇게 길에서 시간을 보내는 동안 몸의 에너지가 많이 쓰일 것같다는 생각에

남는 시간은 도서관에서 책을 보며 보냈다.

화요일 일찍 병원엘 갔다.

원점으로의 퇴행은 없으니 걱정말라는 말씀에 안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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