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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년 11월 6일:아는 만큼

한의사선생님이 절대 집중하지 말래서

이 글을 올리고 싶은데도 못올리다가
아침에 광고 보고 마음 속 불씨가 살아와 이렇게 쓴다. 
글을 쓰지 않으면 혼자 버닝할테니.

퇴원 후 집에 돌아오는 차 안에서부터 아파
치료방법을 고민하던 중
엄마 집 근처 한의원엘 다니기로 했다.
'세밀한 진단과 치료로 후유증 예방' 이라는 문구가
나를 홀렸다.
한방치료로 효과를 본
반다, 종필감독님은 여러 번 전화를 해서 한방치료를 권했지만
사실 나는 침이 정말 무서움.
봉천동 살 때 너무너무 좋은 데라고 남편 손에 끌려갔다가
피 철철 나는 사혈침 맞은 후
한의원 근처에도 안갔고
교회에 한방치료 봉사가 있을 때는
얼른 집에 가거나 눈에 안 띄는 데 숨어있었다.
하지만 이번엔 어떻게든 회복하고 싶어서
그런 건 눈에 들어오지도 않았다.
사학도였다가 한의사가 된 효신의 예언대로
첫번째 병원의 정형외과 의사와 대화를 하고 나면
내가 지금 꾀병을 부리고 있는 건가
나마저도 나를 의심할만큼 죄의식같은 걸 느꼈으니까.
의사는 내 말을 듣지 않았다.
내가 무슨 말을 해도 그는 다 아는 듯했다.
내가 무슨 말을 해도 엑스레이에 나타난 뼈에는 이상이 없으므로
나는 아파서는 안됐고 아프다는 말을 해서도 안됐다.

퇴원 이틀 후, 엄마 집에서 지내면서 일산자생병원에 다니기로 함.
병원은 삐까번쩍했고 어려웠다.
전날 전화예약을 했고 보험사의 증명원까지 보내게 했는데도
처음부터 다시 시작.
아이패드를 주면서 다 내게 작성하라고 함.
다 작성하고 상담실에서 인터뷰 진행.
나는 이때까지 "한방은 이야기를 잘 들어준다"는
반다의 말을 믿고 내 몸의 통증에 대해서 자세히 설명했다.
상담원은 열심히 기록하는 것같았다.
그리고 특별히 지정의사는 없다고 하니
몇번 방 앞에 가서 기다리라 했다.
기다렸다. 기다리고 기다리고 또 기다렸다.
아마 30분 정도 기다린 듯.
기다리는 동안 어떤 아주머니가 간호사한테 항의를 하고 있었다.
좀 자세히 들어뒀으면 이글을 작성하는 데 도움이 될텐데.
그 아주머니는 10시 예약인데 11시 넘어 와서
계속 간호사를 붙들고 있는 거라
살짝 얄미운 생각이 들어서
그 아주머니가 간호사한테 항의를 한 후
나를 보고 웃었지만 나는 짧게 응대웃음 보낸 후 고개를 돌렸다.
들어볼걸.
하지만 대략은 알겠다.
왜냐하면 나중에 내가 어떤 일을 겪었으므로.
아주머니의 항의내용은 이런 거였다.
추나... 혜택을 못 받는... 왜 설명을 안해줘서....
(이 단어들을 잘 기억해두세요^^)

너무 시간이 길어지니 얼마나 더 기다려야하냐고 물었다.
처음온 환자라 진료와 침까지 다 하느라 시간이 많이 걸린다했다.
(이것도 기억해야 한다. 나도 처음 온 환자였다)
암튼 그런 시간을 거친 후 내 이름이 불리워졌다.
갔더니 의사가 내 사진들을 띄워놓고 어디가 아프냐고 물었다.
아까 그렇게 물어보더니, 아이패드에도 작성했고
상담사에게도 세밀하게 설명을 했는데
또 설명해야 하나... 라고 생각하며 다시
설명을 하는데 중간에 말을 탁 끊고, 픽~ 하는 웃음과 함께
"풍부하게 설명하시는 건 좋지만 치료의 효율성을 위해
어디가 제일 아픈지만 말씀하세요"
라고 해서 오늘은 목 오른쪽이 아픕니다.
그런데 어제는 목 왼쪽이 아팠습니다.

"단순근육통의 특징입니다."

나는 매일 옮겨다니는 고통에 대해서
설명하려 했지만 
의사는 제일 아픈 데가 어디냐에 대한
짧은 답변만을 원했던 것이다.
젠장, 그러려면 11시부터 아이패드에, 상담사에,
그 긴 문진은 왜 한 거냐?

암튼 그리고나서
물리치료을 매일 해야하는데 언제 하는지 물었더니
또 픽하는 웃음과 함께 "누가 그래요?"
해서 물리치료사가요. 그랬더니
아 잘 모르시나본데 법에 의해서 한의원에서는
주2회 치료밖에 못합니다.
물리치료는 그 병원에서 받으세요.

그리고 무슨 도구 위에 엎드리라고 하고 찰칵
누우라고 하고 찰칵, 
그러고 나더니
약침이 있다고 기다리라 했다.
맥을 짚고 뭐 그런 게 있을 줄 알았는데
그게 다였다.
그 의사가 나를 만진 건 
도구 위에 올라가 엎드려있을 때
목을 잠깐 주무른 게 다다.
어쨌거나 그 방을 나와 침맞는다고 옷 갈아입고 기다리는데
다른 환자 진료하는 소리가 들렸다.
뭐냐, 내 앞 환자는 초진이라 진료부터 침까지 
한번에 다 한다고 해서 아는 30분 넘게 기다렸는데
나는 초진인데도 왜 기다리게 하는 거지,
두 명의 환자를 본 후에 와서
자 약침입니다. 하나둘(찌르고) 하나둘(찌르고)
참 영혼없는 행위가 끝난 후
"물리치료는 정형외과에서 받고 다음 진료때 봅시다"
네~ 이렇게 땡.
다음 약속을 잡으려고 나와있는데 남편 손에는
이미 20개의 약봉지가 들려있었다.
와~~ 약이 이미 나와있는 거야? 
내가 누구인지도, 내 몸이 어떤지도
손 한 번 안잡아보고 다 아는 거야?
남편은 "한방도 과학화되었으니까"라고 하는데
이게 과학화일까 상업화일까 자본화일까 잠시 궁금.

한약가방안에 병원 팸플릿이 있는데
그 안에는 물리치료도 있는데
도대체 물리치료는 언제 받나 궁금해하다가
그리고 주말동안 과연 그 병원에 가기 위해
아이들과의 일상을 포기해야 하나 고민하는데
한의사 후배가 페북 글을 보고 연락을 해왔다.

후배는 내게 집 가까운 한의원엘 매일 다니는 게
최선이라고
입원 사흘 째 되던 날부터 여러 번 강조했지만
사실 그당시엔 입원 말고는 대안이 없었다.
추수때문에 집은 너무 바쁘고
하루 세끼 차려먹는 일도, 통원치료 하는 일도
나한텐 곤란했기에 어딘가에 가있는 게 차라리 나았다.

일산 자생한방병원 앞엔 엄마 집이 있으니
내가 엄마 집으로 거처를 옮겨 걸어다니면서 통원치료 하려했는데
"법으로 안된대. 법이 바뀌었나봐"
라고 했더니 후배가 말해주었다.
"매일 다녀도 돼.
그런데 수가가 낮은 일반침, 물리치료는 안하고
수가높은 약침, 추나같은 것만 하려고 하니까 그런 거야.
수가높은 것들이 주2회로 한정되어있거든"

나쁜 놈!
대기하던 중 간호사에게 항의하던 아주머니의 단어들이
이제사 짜맞춰진다.
아주머니는 그랬다.
"아니 혜택이 제한이 있었으면 그 얘기를 했어야지
이제 와서 이러면 나는 어떻게 해?"
간호사는 공단에 문의중이지만 우리가 할 수 있는것은 없다,라고
쌀쌀맞게 응대하더니
처음에 내가 상담했던 상담사에게 의논을 하는 등
뭔가 심상치않은 모습을 보였었는데
후배의 설명을 듣고 나니 진찰 전 봤던 그 풍경들이
조금은 짜맞춰졌다.
하여간 나에 대해서로만 국한시켜보면
일산자생한방병원에서는
나에 대해서
수가높은 치료만 하길 원했기에
법에 따라 돈되는 진료 두번만 하겠다고 선언한 거였다.
후배는 함소아나 자생같은 데에 가면
내상을 입을 거다라는 말도 했는데
나는 그날의 기억을 되살리며
그 의미도 파악했다.
같은 초진환자라도 돈 되는 환자는
진료부터 침까지 스트레이트로 진행되지만
돈안되는 교통사고 환자 따위는
진료 후 다른 돈되는 환자 진료를 기다린 후에
다 끝난 후에 겨우 침을 맞을 수 있는 거다.
다 파악했다 그렇게.
일산자생한방병원 접수대에는
디지털 액자가 수없이 많은 사진을 돌린다.
그 액자 속 사진에는
이영애, 고수 등을 포함한 유명인들이
자생한방병원 로고를 배경으로
가운을 입은 원장과 함께 서있다.

이 글을 전체공개로 올려놓을 것이다.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볼지 모르지만
나처럼 교통사고 후유증에 시달리면서
소통이 안되는 양의에 질려있으면서
한방은 최소한 피부접촉과 면대면 진료
그리고 소통이 가능할 것이라는 환상을 가진 사람들이
나처럼 광고에 혹해서 가지 않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쓴다.
어떤 사람 말처럼 양방이냐 한방이냐가 중요한 게 아니라
어떤 사람인가가 중요하다.
그리고 나는 지금 아주 좋은 한의원을 만나
아주 행복하게
그리고 평화로운 마음으로 진료를 받고 있다.

그런 병원이 있었는지도 몰랐던 병원.
하은 친구의 엄마에게 물어봐서 처음 가봤던 한의원.
조용조용 말씀하시는 선생님은
사고가 언제 났는지, 어디가 어떻게 아팠는지
이런 저런 질문들을 한 후에
목을 만져주셨다.
아파서 90도가 안되게 돌아가던 목이 270도까지 돌아갔다.
목을 돌리다가 "여기 270도 정도 넘으면 아파요"라고 하니
선생님이 누우라고 한 후에 배를 만져주셨다.
그래서 그 후로 나는 360도까지 목을 돌릴 수 있는 사람이 됨.
내가 이렇게 90도, 270도 이런 표현을 하면
한의사선생님은 빙그레 웃는데 그렇게 웃어주는 게 좋다.
깨끗한 커튼으로 둘러싸인
침대만큼의 공간 안에서
명상음악을 들으며 몸에 침을 꽂은 채 누워있노라면
옆 침대에서의 조용조용한 대화가 들린다.

어떤 할아버지,
식후 30분은 꼭 걸으라는 선생님 말씀에
"내가 우리 개가 있을 땐 같이 산책하느라 운동을 많이 했거든요."
(개가 어디 갔어요?)
"(잠시 침묵) 돌아다니는 거 좋아해서 잠깐 풀어주면 동네 한바퀴 돌고 왔거든. 근데 시추가 사람을 좋아하고 잘 따르거든요. 어느 날 나가서 안들어와요. 우리 개가 있을 땐 같이 산책하느라 내가 운동을 꼭 했는데..."

어떤 할머니,
선생님: 주말에 또 일하셨어요? 할머니 지금 일하면 또 그대로 돌아가요. 좀만 쉬어보세요
할머니: 서리 내리기 전에 콩은 다 따야하는데 어떻게 해?

나는 이런 관계를 바랬던 거였다.
그저께 처음으로 선생님께 긴 이야기를
털어놓았다.
그동안 운전한 다음날,
한 번 10분짜리 대본때문에 한 시간 정도 글을쓴 다음날,
선생님은 번번히 몸이 변한 걸 감지하고서
지금은 그럴 때가 아니니 뭐든 집중하지 말라고 하셨다.
지금 나는 뭐든 집중하지 않으려 노력하며
운동과 치료와 휴식과 간단한 집안일 정도로만
내 일상을 채우는 중이다.
그리고 그저께 처음으로 긴 질문을 했다.

문:선생님, 저는 몸을 쓰는 육체노동자인데
언제쯤 제 일을 시작할 수 있을까요?
답: 평소 몸의 순환이 원활하지 못했는데
사고로 꽉 막혔습니다.
소화기 기능도 안좋고.

문:저는 뭐든 잘 먹고 힘도 셌고 잘 지냈어요.
예전엔 정말 아무 것도 아닌 일들이
힘든 일이 되어버렸는데 언제쯤 정상화가 될까요?
답:그동안은 있던 체력으로 몸의 온 기운을 다 뽑아쓰며 산거니
이제는 태도를 바로하고 몸을 아껴야 합니다.
시간이 필요해요.

문:그럼 1년 2년 그렇게 일을 못해요?
답:그렇게 길게는 아니고 6개월 정도? 
매일 열심히 치료하면서 봅시다.

요즘 이 상태.

자생에서 그냥 나와있던 약을 받아왔다고 하니
안타까워 하며
약을 같이 쓰며 치료해야 하는데....
그래도 안좋을 건 없으니 일단 먹어야...
그리고 자생에서 받아온 약을 다 먹은 지난 주 금요일
선생님이 지어준 약을 먹고서 참 놀라운 건..... 하하
나는 화장실엘 자주 다녀서
새벽에 두 번은 꼭 잠이 깬다.
선생님 약을 먹고 일주일이 지난 지금
화장실 때문에 잠에서 깨보면 늘 새벽 5시.
나는 태어나서 처음으로 새벽 다섯시까지
깊은 잠을 자고 있다.

어릴 땐 늦게까지 오줌싸개였고
이불에 오줌을 안 싸게 되었을 땐
늘 꿈을 꾸다가도 맥락없이 화장실이 등장하던 상황을
이제는 더이상 겪지 않아도 된다.
반다와 종필감독님과 후배의 말을
좀 일찍 들을걸.
그래도 이제라도 어디야.
시골한의사, 아주 멋진 일이다.
아주 멋지고 신기한 시간을 보내고 있다.

사진은 날 혹하게 했던
죽일놈의 광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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