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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2009/07/28
    너희를 사랑하는 자를 사랑하면 무슨 상이 있으리요
    살고자하는 마음
  2. 2009/07/12
    그 해를 악인과 선인에게 비취게 하시며
    살고자하는 마음
  3. 2009/07/01
    너희 원수를 사랑하며
    살고자하는 마음

너희를 사랑하는 자를 사랑하면 무슨 상이 있으리요

우리 민족이 지금은 남과 북의 두 갈래로 갈라져있으나 바벨에서 흩어져 오른쪽으로 옮겨오던 자들 가운데 백두산을 넘어 이 작은 땅으로 들어오기 전에 그 위의 넓은 땅에 있을 때 한 부모의 밑에서 형제로 나온 자들이었으니 원래는 남과 북이 한 피를 받은 한민족으로서 하나였다. 그러므로 남쪽과 북쪽에 거하는 사람들이 지금은 비록 서로 나뉘어 있어도 처음에는 한 피를 받은 형제였음을 알기에 동포요 동족이라고 말한다.

 

그러나 위에 있는 강한 두 이방민족과 오른쪽에 바다건너 멀리 있는 가장강한 그 여자의 나라로 인하여 하나되지 못하고 오히려 한 피를 나누어 받은 동족을 서로가 찔러 죽이는 일이 얼마 전에 있었다. 그리고 그 일은 참으로 서로에게 깊은 원통함과 괘씸함으로 남아있으니 같은 피요 동족이라도 지금까지 서로를 괴뢰라 부르며 하나의 나라를 이루지 못하고 있다. 그러므로 힘이 약한 형제들은 서로 하나가 되어야 강한 자에게 이용을 당하지 않게 됨을 짧지 않은 역사를 통해 수없이 경험했어도 참으로 어리석게도 북은 북을 남은 동을 의지하며 내일의 환난으로 들어가고 있다.

 

그런데 유대인과 세리의 일을 하던 유대인의 관계가 바로 이와 같았다. 그러므로 유대인에게 아픔을 준 로마는 이방민족이었다. 하지만 세리는 유대인에게 이방인이 아니었으나 그렇다고 유대인들이 그들을 같은 민족으로 여기지도 않았다. 하지만 그 강한 이방민족과 함께 한 유대인의 세리들은 오히려 약한 자기민족을 구하고자 올바른 선택을 했다는 의로움을 가지고 있었다. 그러므로 당시에 자기의 나라를 버리고 강한 민족에 붙은 세리들은 참으로 많은 허물들이 있었다.

 

하지만 당시에 허물들로 감싸여 있는 것은 유대의 종교지도자들도 마찬가지였다. 그러므로 그들은 자기의 생각에서 돌이켜 의를 따르지 않고 있으니 의를 버렸고 제사 때마다 자신에게 떨어지는 10분의 1과 사람들 앞에 서서 가르치며 얻는 영광을 사랑하되 마음과 정성과 뜻과 목숨을 바쳐 아버지와 다른 영혼들을 사랑하지 아니하므로 인을 버렸고 순한 짐승의 피로 제사를 드린 후 거룩에 애쓰므로 거룩에 이른다고 가르쳤으나 믿지는 않았으니 중요한 신도 버렸다.

 

그러므로 거룩한 제사의 음식을 먹고 마신 후 거룩에 애쓰지 않고 그저 개처럼 육만 취하되 주인의 뜻은 버린 그 성전지도자들과 유대백성들도 세리와 이방인들과 똑같이 허물이 많았다. 그러나 그들은 자신의 생각과 몸과 입술에 거룩의 능력은 나타나지 않아도 십일조를 바치며 마음 없는 제사를 드리며 특히 사람의 유전과 규례를 따르므로 자신에게 거룩의 모양이 나타나는 것을 보며 세리와 이방인보다 늘 자신이 더 의롭고 거룩하다고 생각했다.

 

반면 그리스도의 제자들도 동일한 유대인이지만 살고자하는 마음을 가지고 자기의 생각에서 회개하고 돌이켜 의를 따르고 있고 또한 십일조만이 아니요 자신의 마음과 정성과 뜻과 심지어 자신의 목숨까지 바쳐 아버지와 다른 영혼들을 사랑하는 길을 걷고 있고 또한 그리스도께 배우는 새 계명과 법도를 행하며 거룩에 애쓰고 있다. 그러므로 그리스도께서는 의와 인과 신이 있는 제자들이 그것을 버린 다른 유대인과 세리와 이방인을 어떠한 눈으로 보고 있는지를 잘 아셨다.

 

그런데 신령한 모세의 율법과 제사의 의미도 모르고 유대전통에서 그저 인간의 유전과 규례를 지키고 있는 유대인이라 할지라도 자기의 위치를 지키지 아니하는 것은 아니었다. 그러므로 마음은 썩어질 육의 욕심과 세상의 헛된 영광에 있었으나 그들도 성전에서 할 일은 했으며 사람이 해야 할 도리는 했다. 그리고 이것은 세리나 이방인과 또한 교회시대에 전통에 거하며 다른 짐을 지기 원치 않는 자들도 마찬가지였다. 또한 마지막 때에도 아버지의 뜻과 십자가의 비밀을 깨닫지 못하면서 심지어 자신의 마음을 썩어질 것과 헛된 곳에 두고 인간의 유전과 규례를 따라 아버지의 앞으로 나가 예배를 드리고 있는 이방인들도 동일하게 할 일과 할 도리는 하고 있다.

 

그러므로 그리스도께서는 이렇게 두 가지 상황을 보시며 다음과 같은 말씀을 주시므로 자기의 욕심과 영광을 이루고자 열심인 유대인들과 세리들과 이방인들을 향하여서는 그 행위들을 지적하셨으며 동시에 의와 인과 신을 버리지 않고 오히려 지키고 있기에 교만한 마음을 품을 수 있는 제자들에게는 다른 영혼들을 더욱더 불쌍히 여겨 그들을 위해서도 거룩에 애쓰길 원하셨다.

 

“아버지께로 택하심을 받은 너희들도 유대종교지도자들과 세리와 이방인처럼 너희의 위치를 지키며 해야 하는 일과 도리가 있도다. 그것은 바로 아버지의 뜻을 이루어가되 동시에 그 거룩한 육체를 입고 영광의 자유에 이르러 기쁨과 즐거움을 누리며 왕과 제사장의 권세를 가지고 아버지의 나라를 영원히 다스리게 되는 그 복된 소식을 다른 모든 자들에게도 전하는 것이니라.”

 

“너희가 너희를 사랑하는 자를 사랑하면 무슨 상이 있으리요 세리도 이같이 아니하느냐 또 너희가 너희 형제에게만 문안하면 남보다 더하는 것이 무엇이냐 이방인들도 이같이 아니하느냐”

 

생명의 근원되신 아버지와 그의 아들이시오 창조자이신 그리스도를 아는 자는 이 말씀을 안다면 이를 지키면 은혜와 유익이 있을 것이요, 아버지와 아들을 모르는 자는 말씀에 자신의 생명이 있으니 이 은혜를 입는 것이 유익하다.

그 해를 악인과 선인에게 비취게 하시며

한 번 말을 한 후에는 변함없이 그 말대로 모든 것을 의롭고 공평하고 정직하게 이루어가는 왕이 있었다. 그러나 그 왕은 겸손하기에 사람들의 앞에 나서서 자신이 직접 다스리기보다 비록 외모가 좋지 않아도 누구든지 착하고 의롭다면 그 사람을 왕으로 세워 그를 통해 자기의 온 나라를 다스리게 하고 싶었다. 그러므로 왕은 자신의 그런 뜻과 계획을 이루고자 백성들을 다스릴 수 있는 의로움과 선함이 어떤 것인지를 보여주고 싶었다. 그리하여 자기의 의로운 아들을 백성들에게 보내주었고 그 아들은 자기 아비의 말에 순종하며 오직 백성들의 유익을 위해 목숨까지 내어 놓고 일했다. 이에 왕은 자기의 아들이 자기의 뜻과 계획을 이룬 것을 보고 기뻐하며 이미 세워놓은 계획대로 의로움과 선함을 이룬 아들에게 왕이 입는 옷을 입히고 이제는 왕으로서 다스리도록 권위를 주었다. 반면 어떤 악한 자가 자기도 왕이 되고 싶었다. 하지만 백성들을 다스리며 자기의 욕심과 교만을 취하고 싶었다. 그러므로 그가 어떤 말과 행위를 할지라도 그것은 자기의 이익과 영광만을 위한 것이었다. 또한 온갖 거짓말을 하며 사람들을 이용했고 많은 백성들의 땀과 피도 흘렸다. 이것을 보자 왕은 자기의 아들에게 명을 내려 그 악한 자를 심판하라고 했고 아들은 감정대로 하지 않고 악한 자가 품은 마음과 그 마음에서 나왔던 생각과 행위와 말을 의롭고 정직하게 심판해서 그를 영원히 감옥에 가두었다. 그런데 그 나라의 모든 백성들은 이렇게 선한 자와 악한 자가 각각 다르게 심판 받은 모습을 지켜보며 한 가지 깨달음을 얻었다. 즉 자신의 선과 악, 의와 불의, 거룩과 죄, 겸손과 교만을 보며 자신이 나중에 받을 상급과 또한 어디로 들어갈지를 깨달았던 것이다. 이제 깨달음을 얻은 백성들에게 하늘에서는 밝은 태양빛이 공평하게 비추었으며 때에 따라 필요한 비도 내려주었다. 그러므로 자신을 의롭게 하길 원하는 자들은 하늘에서 내리는 은혜를 받아 선을 행하며 의로운 열매를 맺었다. 이에 왕은 그들을 자기의 아들과 딸로 삼아 자기아들처럼 높은 곳에 앉혀주었다. 그러나 어떤 자들은 감옥에 갇힌 그 악한 자를 보고도 자신의 마음을 돌이키지 못했으니 그들은 공평한 태양빛과 비를 얻으면서도 자기의 욕심과 영광을 위해 불의와 죄를 행했다. 그러므로 왕은 그들도 악한 자와 영원히 함께 거하도록 가두었다.
 
이와 같이 아버지께서는 사람들이 아들을 따르며 선을 행하므로 그 생명의 상급을 얻기 원하셨다. 그리고 그것을 위하여 그리스도께서도 여러 가지 말씀을 하실 때마다 사람들에게 악한 자와 선한 자를 밝혀주려고 하셨다. 그러나 그리스도께서 택하신 제자들 외에는 그것을 깨닫는 자가 없었다. 그러므로 대부분의 사람들은 항상 모든 의미와 원인을 다 그리스도께만 둔다.
 
그러나 아버지와 아들과 거룩하신 영께서는 사람들이 말씀을 보며 깨닫기 원하시는 것이 있으시다. 즉 아버지께서는 모든 것을 아들인 그리스도에게만 맞추신 것이 아니시니 오히려 그 십자가를 보며 그리스도는 선한 자요 그를 못박은 원수가 비록 눈에 보이지 않을지라도 악한 자임을 그들의 삶 가운데서 깨닫기 원하신다. 만일 자신이 꽁꽁 묶여있는 이 세상이 불의하고 죄악되게 돌아가는 것과 또한 자신의 마음 안에 거하는 죄를 가만히 보면 더 쉽게 깨달음을 얻을 수 있다.
 
그런데 사람은 무엇을 깨달았으면 자신의 생명을 위하여 옳은 길을 걷는 것이 지혜로운 것이다. 그리고 아버지께서는 살고자하는 마음을 가진 자와 의롭게 되길 원하는 자에게는 끝까지 은혜를 내리시어 그들이 간절히 원하던 대로 의롭고 거룩한 열매를 맺도록 인도하신다. 그리하여 자신의 생각에서 돌이켜 그리스도만이 의롭다는 것을 마음으로 믿고 그리스도를 따르며 의와 거룩의 열매를 맺은 자들이 그리스도와 같은 그 거룩한 육체를 상급으로 받아 영광의 자유에 이르고 또한 영원한 본향인 셋째하늘로 들어가 빛을 비추며 공의와 사랑으로 백성들을 다스리게 되는 것이다.
 
한편 자신이 맺고 있는 열매를 보며 또한 심판 받고 쫓겨난 원수를 보며 자신이 어디로 들어가야 할지를 깨닫는 것은 악인도 마찬가지이다. 그러므로 원수는 셋째하늘에서 욕심과 교만을 품고 죄를 창조하고도 돌이키지 못하고 오히려 거짓말하며 계속 죄를 퍼뜨렸으니 아버지께서는 그를 이 어두운 첫째하늘로 쫓아내시고 마지막에는 유황불 못의 중심으로 넣으신다. 그러나 악인들은 원수가 쫓겨난 것을 보고도 심지어 자기가 들어가야 할 하늘에 떠있는 그 태양을 날마다 보면서도 원수처럼 마음과 생각과 행위와 입술로 맺는 악의 열매를 끊어내지 못함은 자신의 욕심과 교만과 의를 포기하지 못하기 때문이다. 그리하여 끝까지 말씀에 불순종하며 불법을 행한 자들이 마지막에는 날마다 보았던 그 유황불 못으로 들어가 영원히 원수와 함께 거하게 되는 것이다.
 
“이같이 한즉 하늘에 계신 너희 아버지의 아들이 되리니 이는 하나님이 그 해를 악인과 선인에게 비취게 하시며 비를 의로운 자와 불의한 자에게 내리우심이니라”
 
생명의 근원되신 아버지와 그의 아들이시오 창조자이신 그리스도를 아는 자는 이 말씀을 안다면 이를 지키면 은혜와 유익이 있을 것이요, 아버지와 아들을 모르는 자는 말씀에 자신의 생명이 있으니 이 은혜를 입는 것이 유익하다.

너희 원수를 사랑하며

거짓말을 입에 달고 사는 자가 어찌 거짓말하는 자의 말을 참되게 여기지 아니하리요? 음행을 사랑하는 자가 어찌 창녀를 탐하지 않으리요? 세상의 영광을 얻고자 땀 흘리는 자가 불의하고 죄악된 이 세상이 참 아름답도다 말함은 당연하다. 일만 악의 뿌리를 마음중심에 간직한 자가 썩어질 육을 사랑하지 않음이 이상하다. 오직 자신의 욕심과 영광을 구하는 말과 행위를 하는 자들이 원수를 사랑하며 따르기 마련이니 자기를 의롭게 여기며 자기의 생각을 따라 사는 자가 어찌 그리스도를 따르리요? 그러나 선한 자들은 악한 자들과 동거할 수 없을뿐더러 그들이 사랑하는 것들을 미워하게 되어있다. 그러므로 이 말씀은 원수와 혹은 그를 따르는 악한 자들을 사랑하라는 말씀이 아니요 원수의 지배를 당하여 사망으로 들어가고 있는 그 영혼들을 불쌍히 여겨 간구함으로 긍휼을 베풀라는 의미다.
 
우리 민족은 동쪽의 바다건너 가까이 거하는 이웃나라에게 지배를 받았던 때가 있었다. 그때에 우리민족은 자기의 배를 채우며 좋은 자리를 얻고자 압제와 사망으로 동포를 넘기는 매국노들도 있었고 대중은 그때도 자신에게 편안한 길을 택하여 걸었으되 일부의 사람들은 그 이웃의 지배에서 벗어나고자 목숨을 바쳤다. 그러므로 우리의 동족을 죽이며 우리에게 필요한 것들을 가져가는 그들을 원수로 여겨 이곳 저곳에서 총과 칼을 든 사람들이 있었다.
 
그런데 그런 일들은 지금도 일어나고 있으니 가장 강한 나라가 끝없는 욕심을 품고 먼 바다를 건너 그 약한 나라들로 들어가 지배한다. 이때 지배를 당하는 나라의 백성들은 자기민족의 사람들이 죽어가는 것과 또한 그 강한 이웃이 땅의 기름진 것들을 가져가는 것을 지켜본다. 그러므로 그들은 그 이웃을 원수로 여기며 오늘도 그들의 지배에서 벗어나고자 싸우지만 원수는 이 세상을 태초부터 이미 힘의 논리로 세워놓았으니 힘이 약한 그들은 오히려 더 많은 수가 죽어가고 있다.
 
이와 같이 당시 유대인들도 이 세상에서 가장 강한 이웃민족으로부터 지배를 받고 있었다. 그러나 아버지께서 그것을 허용하신 이유가 있으시니 그것은 지배하는 이웃과 지배당하는 이웃이 둘 다 악하기 때문이기도 하겠으나 아버지께서는 오히려 그 상황에서 살고자하는 마음을 가진 의인 한 명을 찾으시고자 하심이다.
 
그러므로 아버지께서는 지배당하는 그 민족의 수많은 사람들 가운데 오직 의인 한 명을 찾으신다. 그러면 아버지의 눈에 보인 그 당대의 의인은 자기를 지배하는 이웃민족을 원수로 여겨 미워하기보다는 아버지께로 늘 감사를 드리며 그 민족을 오히려 불쌍히 여긴다. 그 이유는 그 이웃민족을 붙들고 있는 자는 원수지만 그 악한 자들은 영원한 심판에 이른다는 것을 잘 알고 있기 때문이다.
 
또한 그 의인은 지배하는 이웃에게 자기의 민족이 늘 당하는 것을 보고 아버지께 늘 부르짖어 그 이웃민족을 무너뜨려달라고 구하기보다는 그 원수의 손을 그 민족에게서 떼어 달라고 간구한다. 그러면서 그 민족을 붙들고 있는 원수는 늘 미워하되 자신의 민족을 지배하고 있는 이웃민족의 그 영혼들은 늘 불쌍히 여기는 것이다.
 
이때 아버지께서는 지배를 당하는 민족에 거하는 한 명의 의인이 이렇게 말씀에 순종해 간구하는 것을 들으시고 그 이웃을 붙들고 있는 그 원수의 손을 결국에는 떼어주신다. 그리하여 지배당하는 그 민족에 의인이 오직 한 명이라도 있으면 그의 민족은 끊어지지 않을 것이요 단 한 명이 없기에 지배당하는 이웃이든 지배하는 이웃이든 그 두 민족은 마지막에 결국 끊어지게 되는 것이다.
 
이로 보건대 환난과 전쟁가운데서 사망으로 들어가는 영혼들이 ‘아버지께서는 어찌 나를 불의한 자들과 함께 심판하시는가?’라고 항변할 수 있겠는가? 즉 한민족에 임박한 환난 앞에서 우리 민족의 위에 있는 강한 두 민족과 오른쪽에 있는 가장 강한 민족을 붙들고 있는 원수의 손을 떼어달라고 구하는 자가 과연 남과 북의 믿는 자들 가운데 얼마나 있으리요? 그러므로 자기민족을 위해 무엇인가를 하기 원하는 영혼은 자기 자신 하나라도 그리스도께서 명하신 이 말씀과 같이 그 외로운 의로운 길을 걸을 때 자신과 가족과 주변에 있는 영혼들에게 생명의 유익이 있다.
 
“또 네 이웃을 사랑하고 네 원수를 미워하라 하였다는 것을 너희가 들었으나 나는 너희에게 이르노니 너희 원수를 사랑하며 너희를 핍박하는 자를 위하여 기도하라”
 
생명의 근원되신 아버지와 그의 아들이시오 창조자이신 그리스도를 아는 자는 이 말씀을 안다면 이를 지키면 은혜와 유익이 있을 것이요, 아버지와 아들을 모르는 자는 말씀에 자신의 생명이 있으니 이 은혜를 입는 것이 유익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