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이드바 영역으로 건너뛰기

게시물에서 찾기분류 전체보기

152개의 게시물을 찾았습니다.

  1. 2008/01/12
    사람이 떡으로만 살 것이 아니요
    살고자하는 마음
  2. 2007/08/21
    모든 의를 이루는 것이 합당하니라
    살고자하는 마음

목숨을 위하여 무엇을 먹을까

한 아비가 일주일 동안 낯선 곳으로 여행을 다녀오게 된 자식들에게 이러한 말을 해주었다. “여행가서 낯선 사람이 주는 음료수를 마시거나 쓸데없는 곳에 들르거나 물건들 잔뜩 사오지 말고 할 일을 마치면 곧장 집으로 돌아오너라.” 그 아비는 이렇게 말하고는 여행에 꼭 필요한 만큼의 돈과 단 한 벌의 옷을 입혀서 돕는 종들을 함께 딸려 보냈다. 세 자녀들은 드디어 여행지에 도착해 이것저것을 구경하다 첫째는 아비의 말을 기억하고 아비가 챙겨준 일용할 양식을 먹고 마시며 함께 간 종의 도움을 받아서 자기가 해야 할 일에 열심을 냈다. 그러므로 첫째는 자기가 이루어야 할 일을 다 마친 후에 아비를 위한 작은 선물 하나를 준비해 곧장 집으로 돌아갔다. 그러나 둘째는 그 낯선 여행지를 보더니 이곳은 너무 좋다면서 여행지에서 살고 싶어했다. 또한 어떤 남자가 준 음료수를 받아 마신 후 자기의 소중한 몸을 그에게 맡기고 신기하다며 음란한 곳을 돌아다녔다. 또한 아비가 준 일용할 양식에 만족하지 못하고 그 여행지에서 돈 벌고 집 사고 새로운 물건들을 하나씩 둘씩 모으며 더 큰 것으로 바꾸는 기쁨을 누렸으나 점점 더 허무함에 빠져들었다. 둘째는 그렇게 자기의 옷을 위해 마음과 몸을 다했으니 나중에는 그 여행지에 쓸모 없는 것들을 잔뜩 쌓아놓을 수 있었다. 그러나 어리석고 헛된 욕심을 이루느라 정신이 팔려서 정작 자기가 여행지에서 이루어야 할 일은 시작도 못했고 마음은 허무로 가득 찼다. 게다가 자신이 돌아갈 고향과 자기의 아비까지 마음에서 잊어버렸으니 둘째를 돕기 위해 함께 갔던 종은 아비의 뜻을 위해 아무런 일도 할 수 없었다. 그러므로 둘째는 고향으로 돌아가지 못했으며 그로 인해 사랑하는 아버지와 형제자매들의 얼굴을 다시는 볼 수 없었다. 반면 셋째는 그 낯선 곳에서 자기가 해야 할 일을 시작은 했으나 둘째처럼 자기의 옷에 모든 정성을 다 쏟았으니 시작한 일을 마치지 못했다.

 

이와 같이 낯선 곳에 여행을 갔을 때 그곳에다 곡식을 쌓아두는 사람은 없다. 만일 낯선 사람이 건네준 음료수를 마시고 그것에 취하면 자신이 소중히 여기는 것들을 악한 자들에게 다 빼앗긴다. 음란한 세상을 보고 처음에는 놀랍고 신기하지만 그 음료수의 힘을 얻어 점점 더 음란을 담대하게 즐기게 된다. 또한 낯선 여행지에 잠시 일을 보러 갔다 이삿짐과 같은 많은 짐들을 모아 고향으로 돌아오는 어리석은 사람들이 몇이나 있으리요? 그러므로 여행을 떠난 사람은 낯선 곳에 가서 오로지 자신이 해야 할 일만 마치고 돌이켜 고향으로 속히 돌아오는 것이 지혜요 당연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 낯선 곳을 자기의 고향이라고 생각하며 곡식을 쌓아두거나 많은 짐들을 구하고자 애쓴다면 그는 헛된 것에 소중한 시간을 빼앗겼으니 자기가 여행을 떠난 목적을 이루지는 못한다. 그리고 그 목적을 이루지 못하면 자신의 고향으로 돌아오지 못하며 그리하여 자기부모와 형제자매를 다시는 만나지 못하게 된다. 그러므로 아버지께서는 모든 사람들에게 영혼을 주시고 한 번은 죽어야 할 육을 입히시어 이 세상에 보내셨으니 사람들이 공평하게 받은 오직 한 번뿐인 인생을 사는 동안 사람과 같은 옷을 입고 이 땅에 오셨던 우리의 유일한 구주이신 하나님의 아들 예수그리스도를 보며 깨닫기 원하시는 것이 있으시니 그것은 바로 이것이다. 이 땅은 오로지 나그네길이요 사람은 순례자임을 기억하길 바라신다.

 

아버지께서는 또한 참으로 그 영혼들을 나그네로서 이 세상에 보내실 때에 아버지께서 하늘에 쌓아놓으신 그 거룩한 육체를 믿고 영광의 자유를 소망하며 그 낯선 곳에서 오직 거룩을 이루고 돌아오길 원하신다. 하지만 아버지의 뜻을 이루려면 그가 육의 생명이 있는 동안에 육신의 삶에 필요한 기본적인 것들이 있어야 하니 먹을 것과 마실 것과 누울 곳과 더불어 목숨이 붙어있어야 한다. 하지만 욕심을 부리며 원수의 말을 듣고 원수를 따라 어두운 세상으로 들어가지 않도록 아버지께서는 그들이 돌아올 때까지 오직 필요한 만큼만을 육과 영에 일용할 양식으로 늘 제공하신다.

 

그러나 거듭난 자라도 이것을 믿지 못하는 자는 태어나서 죽을 때까지 이방인처럼 세상에 들어가 헌 옷만을 위해 살다 돌아가고 심지어 믿는 자라도 원수에게 자신의 마음을 내어주고 원수의 말을 듣는 자들은 먹을 것을 걱정하며 자신만 죽는 것이 아니요 가족의 목숨도 자신이 끊기도 한다. 그리하여 말씀은 원수를 짐승이라 칭하는 것이니 사람이 양심과 이성이 있을지라도 원수의 말을 들으면 짐승보다 못한 삶을 살게 되는 것이다. 또한 자신이 순례자임을 깨닫지 못하는 자는 마지막에 사망으로 들어갈 이 헛된 세상으로 들어가 썩어질 것을 모으는데 마음과 몸을 다할 수밖에 없으니 그는 인생의 목적을 모르기 때문이다. 그러니 십자가의 첫사랑을 잃고 썩어질 것과 헛된 곳에 마음을 빼앗긴 자들에게 어찌 아버지께서 사람이 사는 이유를 알려주시리요? 알려주셔도 오히려 스스로 거부한다.

 

한편 양심이라는 말을 사용해도 창조자와 영원한 생명을 구하지 않는 자들이 있으니 그것은 선한 양심이 아니다. 이런 자들은 살고자하는 마음이 없으니 예를 들어 시장에 가 이거 얼마냐고 묻지만 자신에게 안 맞으면 쉽게 뒤돌아 설 정도로 아버지께서 주시는 영생을 가볍게 여긴다. 그러므로 아무리 과학을 파도 철학을 파도 종교를 파도 사람이 사는 이유를 깨닫지 못한다. 게다가 양심을 말하며 오히려 독주를 마시는 자들은 교만이 하늘을 찌르니 인자의 살과 피를 거부하고 인간의 가르침과 수행으로 거룩을 이루고자 노력한다. 그러므로 그들은 우주가 우주를 낳았으며 자연이 하나님이라 주장하되 그들이 부르며 섬기는 아버지는 생명의 근원되신 아버지가 아니요 셋째하늘에서 독주를 빚고 쫓겨난 원수요 그들이 믿는 아들은 원수와 함께 타락하고 쫓겨난 종들이요 그들이 말하는 성령은 그리스도께 받은 심판에 불만을 품고 무저갱에서 올라와 사람들에게 생각을 주며 비 진리와 세상으로 이끄는 흑암의 세력이다. 그리하여 그들은 아무리 아버지 예수님 성령님을 말하며 사람은 영과 혼과 육으로 된 존재라는 것을 알아도 거룩을 이루지 못하되 오히려 자신의 마음에서 떠오르는 생각을 따르며 원수와 함께 영원한 형벌의 사망으로 들어간다.

 

그러나 거듭난 후 선한 양심을 품고 자기의 생각에서 돌이켜 그리스도를 따르는 자는 아버지께서 입혀주시는 그 거룩하고 영광스러운 새 옷을 믿고 소망한다. 그러므로 그는 이 세상은 잠시 걷는 나그네길이요 자신이 순례자로서 목적을 가지고 이곳에 와 먹고 마시며 숨쉬고 있음을 알고 있다. 그리고 그 목적을 이루도록 썩어질 육체에 있어야 할 것들을 하늘에 계신 아버지께서 오직 필요한 만큼만 늘 제공해주시는 것도 믿는다. 그리하여 자신의 몸을 소중히 여기며 의를 따르는 자는 한 평생 헌 옷만을 위해 살다 떠나는 동물 같은 삶을 살지 아니하니 오히려 일만 악의 뿌리와 그 뿌리에서 맺은 썩어질 열매들을 버려 두고 자신과 같은 곳을 바라보는 거룩하고 정결한 지체들과 한 몸을 이루어 오늘도 모퉁이 돌 위에서 순례자의 그 목적을 함께 이루어가고 있다.

 

*순례자: 이 세상이라는 낯선 여행지에 육신을 입고 온 영혼이 하늘의 아버지께서 주신 인생의 목적인 거룩을 이룬 후 다시금 아버지께서 기다리시는 시간과 공간의 한계가 없는 그 거룩하고 영원한 셋째하늘로 돌아갈 자

 

“그러므로 내가 너희에게 이르노니 목숨을 위하여 무엇을 먹을까 무엇을 마실까 몸을 위하여 무엇을 입을까 염려하지 말라 목숨이 음식보다 중하지 아니하며 몸이 의복보다 중하지 아니하냐 공중의 새를 보라 심지도 않고 거두지도 않고 창고에 모아 들이지도 아니하되 너희 천부께서 기르시나니 너희는 이것들보다 귀하지 아니하냐 너희 중에 누가 염려함으로 그 키를 한 자나 더할 수 있느냐”

 

생명의 근원되신 아버지와 그의 아들이시오 창조자이신 그리스도를 아는 자는 이 말씀을 안다면 이를 지키면 은혜와 유익이 있을 것이요, 아버지와 아들을 모르는 자는 말씀에 자신의 생명이 있으니 이 은혜를 입는 것이 유익하다.

한 사람이 두 주인을 섬기지 못할 것이니

이 세상에서 가장 악한 자가 사람들이 가장 사랑하는 것을 이용해 많은 자들을 죽이고 싶었다. 그러므로 왼쪽에다 넓은 도로를 내고 크고 작은 금과 의자를 이곳 저곳에 무질서하게 뿌려놓았다. 반대로 이 세상에서 가장 선한 자가 모든 사람들에게 공평한 생명을 주고 싶었다. 그러므로 오른쪽에다 나무로 좁은 길을 만들고 그 길을 따라 하얀 종이 다섯 장을 순서대로 펼쳐놓았다. 그런 후 두 갈래의 갈림길입구에 이렇게 써놓았다. “금과 의자는 육에 기쁨을 주겠으나 허무함을 이기지 못하며 저 넓은 길의 끝에서는 썩어져 없어질 것이되 하얀 종이들은 마음에 늘 기쁨과 만족과 평화를 주며 영원히 썩지 않겠노라. 또한 저 넓은 길의 끝에는 사망이 있으나 이 좁은 길의 끝에는 편히 쉴 수 있는 낙원이 있도다. 그러므로 자기가 주인으로 섬기는 것이 왼쪽에 있으면 반드시 왼쪽 길을 오른쪽에 있으면 반드시 오른쪽 길을 걷겠노라.” 이제 이 땅에 태어난 모든 사람들이 다 그 두 갈래의 길로 모여들었으니 첫째 사람은 그곳에 오자마자 코앞에 있는 금과 의자들 가운데 가장 좋아 보이는 것을 들고 그 푯말을 힐끗 보았다. 하지만 그의 마음은 생명보다는 생명 없는 것들이 커지는 것에 있으니 왼쪽 길을 열심히 걷되 더 큰 금과 더 높은 의자를 얻으려는 간절함과 또한 그것을 얻을 때마다 느끼는 기쁨으로 인해 첫 번째 하얀 종이를 펴보고도 자신이 지나온 길을 돌아보지 않고 오히려 종이를 구겨버렸다. 또한 그는 자신이 걷고 있는 그 넓은 길의 끝에 죽음이 있다는 당연한 사실을 무시했고 자신이 왜 사는지도 몰랐다. 계속해 둘째 사람도 그곳에 와서 금과 의자부터 집어 들었으나 종이를 펴보고는 잠시 기뻤다. 하지만 그는 교만한 자이니 푯말을 대충 읽고 오히려 푯말을 이용해 다른 자들을 비난하고 정죄하되 그의 원함은 첫째 사람과 동일했다. 그러므로 그는 금과 의자를 붙들고 그 위에 종이를 얹은 후 왼쪽 길을 열심히 걸으면서 자신과 다른 사람들에게 이렇게 거짓말했다. “나는 믿는 자이니 내 몸과 혀로 범죄해도 결코 정죄함이 없고 나는 이미 마지막 종이를 받았으며 육의 기쁨이 마음의 기쁨이요 사망이 낙원이니라.” 한편 셋째 사람도 그곳에 와서 곧바로 금과 의자를 취했으나 하얀 종이를 얻은 후 기뻐했다. 또한 그 푯말을 읽은 후 금과 의자를 내려놓고 좁은 길을 만든 사람을 주인으로 영접했다. 하지만 잠시 후 마음이 변했으니 오른발은 오른쪽 길에 왼발은 왼쪽 길에 두었다. 그러므로 발걸음을 뗄 때마다 두발이 점점 벌려지더니 가랑이가 찢어지려고 했다. 그래서 그는 한 손으로 종이를 잡고 두 손으로 금과 의자를 들고 위태롭게 왼쪽 길을 걸으며 언젠가 비가 내려 창수가 나고 바람이 불지는 않을까 염려했다. 그러므로 잠시 얻었던 기쁨과 만족과 평화를 곧 빼앗겼으며 자신이 왜 사는지도 몰랐다. 하지만 그는 자신의 손에 있는 그 종이 한 장을 보고 자신은 지금 오른쪽 길을 걷고 있으며 또한 마지막 종이도 얻었다고 착각했다. 네 번째 사람도 그곳에 오자마자 당연히 눈앞에 보이는 금과 의자를 먼저 취했으나 하얀 종이를 얻은 후 나무로 길을 낸 사람을 주인으로 영접했다. 또한 그 푯말을 보고 이것이 그러한가 하여 날마다 천천히 살펴보며 낙원으로 들어가고 싶었으나 안 보이니 믿지 못했다. 하지만 좁은 길을 낸 주인이 그의 간절한 마음을 보고 믿음을 선물해주니 그는 자신이 취했던 금과 의자를 배설물처럼 버리고 첫 번째 종이를 붙들고 주인이 원하는 길을 걸었다. 그러므로 그는 그 길에서 나머지 종이 네 장도 순서대로 다 얻었다. 그리하여 자신의 마음이 원하던 것을 얻은 그는 사람이 왜 사는지를 깨달았으며 또한 힘들어도 기쁘고 즐겁게 그 길을 걸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오른쪽 길은 찾는 이가 적되 왼쪽 길에는 수많은 사람들이 몰려들었다.

 

이와 같이 아버지께서는 사람의 육체를 지으실 때 두 손을 공평하게 주시므로 누구든지 그 두 손으로 자기의 마음이 가있는 그 무거운 것을 오직 하나만 들 수 있도록 해두셨다. 마찬가지로 공평하게 두 발을 주시어 그 길이 넓든 어둡든 편하든 좁든 누구든지 자기의 마음 깊은 곳에 있는 그 한 길만을 걸을 수 있게 하셨다. 그리하여 마지막에는 자신이 원하던 영원한 사망을 거두든 영원히 슬피 울며 이를 가는 어두운 곳으로 들어가든 육신은 멸하고 영혼만 구원을 얻든 그 거룩하고 영광스러운 육체를 얻든 한 마음과 한 인격을 가진 한 영혼이 오직 한 가지만 영원히 가질 수 있게 되는 것이다.

 

결국 사람은 누구든지 자기에게 생명을 주는 진리를 붙들든 아니면 마지막에 썩어질 물질과 이 세상의 헛된 영광을 붙들든 둘 중에 오직 하나만을 자신의 주인으로 섬길 수 있다. 또한 누구든지 거듭남부터 영원한 셋째하늘의 새예루살렘성전까지 나있는 그 십자가의 길을 그 길의 주인과 함께 걷든 마지막에 사망으로 들어갈 이 세상의 길들을 공중권세를 잡은 자와 함께 걷든 역시 자신이 원하는 오직 한 길만을 택해 걸을 수 있다. 사람은 마음도 하나요 몸도 하나요 인격도 하나이기 때문이다.

 

구체적으로 그리스도께서는 영이 거듭난 후에 자기의 생각에서 돌이켜 오직 의를 따르는 자들에게는 진리를 하나씩 깨우쳐주시며 또한 천년왕국과 그 천국의 끝에 올라갈 영원한 본향의 비밀도 알려주신다. 그러므로 사람이 왜 숨을 쉬며 사는지 또한 자신은 어제 왜 거기 있었고 오늘은 왜 여기 있으며 내일은 왜 거기에 있을 것인지에 대한 답을 인간의 역사에서 수많은 자들이 알고자 했어도 결코 얻지 못하되 오직 십자가의 길을 걷는 자들만이 진리로 그 깨달음을 얻는다. 그리하여 생명의 말씀을 믿고 하늘의 푯대를 소망하는 자들이 사망의 땅과 흑암에 앉아있던 곳에서 일어나 이미 세상에서 나온 자들과 함께 거룩하고 신령한 그리스도의 지체로서 거룩에 애쓰며 영광의 자유로 향하고 있는 것이다.

 

그런데 마음의 허무함을 기쁨과 만족과 평화로 바꾸어주는 진리는 오직 본향에 계신 아버지께서 내려주시며 절망과 욕심과 두려움은 땅속에 있는 원수가 올려준다. 그러므로 살고자하는 마음을 가지고 진리를 붙들고 자기의 주인과 함께 그 좁은 길을 걷는 자는 마음에서 기쁨과 만족과 평화를 빼앗는 물질과 자신의 생명을 빼앗는 이 세상을 미워할 것이요 반대로 거듭난 자라도 그것이 없는 자는 아버지의 영원한 나라의 믿음과 소망이 없기에 다시금 불의와 죄악이 가득한 이 세상으로 들어가 오직 썩어질 것과 헛된 것을 취하며 선악을 쌓게 되니 그들의 영혼은 절망과 욕심과 두려움에 감싸이고 마음은 허무하다. 그러므로 며칠 동안 여행을 떠난 자가 볼일을 마치고 곧장 집으로 돌아옴이 마땅하되 악한 자들이 진을 치고 있는 여행지에서 돈을 벌며 살림을 늘이는 자들은 어리석은 영혼들이다.

 

“한 사람이 두 주인을 섬기지 못할 것이니 혹 이를 미워하며 저를 사랑하거나 혹 이를 중히 여기며 저를 경히 여김이라 너희가 하나님과 재물을 겸하여 섬기지 못하느니라”

 

생명의 근원되신 아버지와 그의 아들이시오 창조자이신 그리스도를 아는 자는 이 말씀을 안다면 이를 지키면 은혜와 유익이 있을 것이요, 아버지와 아들을 모르는 자는 말씀에 자신의 생명이 있으니 이 은혜를 입는 것이 유익하다.

네 눈이 성하면 온 몸이 밝을 것이요

어떤 세 여자가 믿음이 부족하니 눈으로 읽은 말씀을 믿지 못했다. 언젠가는 반드시 생명의 열매를 맺기에 썩지 아니하는 씨이며 마음 안에 있는 그 강한 죄를 몰아내기에 거룩한 능력이며 이 어두운 세상에서 밝고 빛난 셋째하늘의 예루살렘성전까지 인도하는 그 십자가 길을 가는 자의 발 앞에 등인 그 빛 된 말씀을 보고도 순종치 못했던 것이다. 게다가 다른 자들도 자기들처럼 믿음 없이 말하며 행하는 것을 늘 눈으로 보고 귀로 들었다. 그러므로 그들은 순종치 못하는 자신을 당연하게 여기고 있었다. 예를 들어 그들이 말씀을 펴서 보니 여자는 거룩한 자들이 함께 모였을 때 입을 열지 말고 집에 가서 남자에게 종용이 배우라고 되어있었다. 그러나 그들은 거룩한 몸에 있을 때 이런 저런 말을 했고 마음으로는 다른 자를 비판했고 심지어 앞에서 남자들을 말씀으로 가르치기까지 했다. 그러니 집에 있을 때는 입을 닫고 남자에게 말씀을 배우는 것이 아니요 오히려 자기가 머리가 되어 남자를 이끌므로 빛을 따르지 않았다. 영이 거듭난 후 아버지와 아들께로 소망을 두는 거룩한 여자는 오직 자기 남편에게 순종함으로 자기를 거룩하게 단장하여 구원에 이른다는 말씀을 믿지 못했기 때문이다. 그러던 어느 날 아버지께서는 믿음 없는 그 영혼들에게 큰 구원을 얻을 수 있는 기회를 베푸셨다. 즉 거룩한 자들이 모였을 때 입을 벌리지 않고 집에서 종용이 남편에게 배우는 한 여자를 보이셨으니 그들은 자신의 눈으로 살아있는 믿음을 직접 확인했다. 이때 첫째 여자는 남편에게 순종하여 자기를 거룩하게 단장하는 해산함으로 구원을 얻는다는 말씀을 이전엔 믿지 못했으나 이제는 믿어졌다. 그러므로 자신에게 믿음이 없었음을 깨닫고 돌이켜 말씀에 순종한 그 여자도 결국 큰 구원을 이루었다. 즉 믿음 있는 자가 비추는 빛을 보고 그 빛으로 나아가 자신도 믿음을 얻어 그 빛을 얻을 수 있었던 것은 그 여자의 눈이 성했기 때문이었다. 한편 둘째 여자는 말씀에 순종하고 있는 그 거룩한 여자를 자신의 두 눈으로 직접보고도 말씀을 믿지 못했다. 그러므로 말씀이 찔러주고 거룩하신 영께서 책망하셔도 남편에게 불순종하는 자신을 돌이키지 못했으니 아버지께로 믿음도 또한 빛도 얻지 못하여 결국 큰 은혜도 얻지 못했다. 즉 눈으로 보고도 말씀에 불순종하므로 큰 구원을 등한히 여긴 것은 그 여자의 눈이 어두웠기 때문이다. 반면 셋째 여자는 자신의 입과 몸으로 늘 범죄하되 회개한 적이 없으며 오히려 자신은 믿는 자이니 믿는 자에게는 결코 정죄함이 없다고 당당히 말했다. 또한 거듭남이 무엇인지 어떻게 물과 성령으로 거듭나는지 몰랐으나 자신은 믿는 자이니 거듭났으며 빛에 거한다고 생각했다. 즉 그 여자에겐 거룩한 믿음을 보기 원하는 눈이 아예 처음부터 없었던 것이다.

 

이와 같이 아버지께서는 말씀을 믿고는 싶어도 믿음이 부족한 영혼에게는 아들의 거룩한 육체에 있는 창자국을 실제로 보여주신다. 또한 부활을 믿고 말씀과 그리스도의 계명에 순종하고 있는 자들의 그 거룩한 빛도 보여주신다. 이때 사람의 육체가운데는 귀가 들을 수 있듯 오직 눈이 볼 수 있으니 눈이 성한 자는 자신의 두 개나 되는 눈을 통해 빛에 거하는 영혼들을 보게 된다. 그리고 자신도 그리스도의 생명을 얻고자 그 빛으로 향하여 한걸음씩 나아가게 된다. 그리하여 자신의 눈을 통해 온몸이 빛에 거하므로 영이 거듭난 그가 이제는 혼도 거룩해질 수 있는 것이다.

 

그러나 마음에 있는 눈이 어두운 자는 빛을 보지 못하며 빛이 어디에 있는지 알지도 못하고 그곳으로 갈 수도 없다. 하지만 거룩하신 영께서 빛을 보이시지 아니하며 빛이 있는 곳을 알려주시지 아니하며 그의 발걸음을 그곳으로 인도하시지 아니함은 보혜사로서 돕는 일을 게을리하심이 아니요 그 사람의 마음이 원치 아니하기 때문이다. 즉 그는 마음속에 그 죄를 붙들고 있으며 그의 마음은 이 어두운 세상에 있으니 행여 그 빛을 본다 하여도 자기 스스로 그 빛을 거부한다. 그러므로 눈이 어두운 자는 영이 거듭난 후에 자신이 거하던 그 자리에 그대로 머물러 있기에 혼의 거룩에 이르지 못하여 그 거룩한 육체의 생명 영광의 자유에도 이르지 못하게 되는 것이다.

 

그런데 이렇게 자신의 몸에 있는 그 눈이 성하냐 어두우냐에 따라 한 영혼의 생명이 좌우되는 것은 십자가 후로 교회시대마다 또한 마지막 때의 큰 환난에서도 동일하다. 그러므로 아버지께서는 큰 환난이 다가오는 이 마지막 때의 모든 영혼들에게도 아버지께서 택하신 일곱 교회들이 비추는 그 빛을 공평하게 보여주시고 들려주신다. 아버지의 뜻에 마음 없는 행위와 의문의 율법에 열심인 자들의 거룩한 모양이 아니요 오직 그리스도의 계명을 가지고 세상 끝날까지 말씀에 순종하고 있는 자들의 그 거룩한 능력의 모습을 보여주시는 것이다.

 

그러나 많은 자들이 보고도 믿지 못하니 온몸이 빛으로 나오지 못하고 그냥 빛을 비추지 못하는 자들과 함께 거하며 육의 사망이나 슬피 울며 어두운 곳으로 들어간다. 또한 오히려 거짓된 자들과 끝까지 함께 거하며 영원한 형벌의 장소로 들어가는 자들도 적지 않다. 하지만 전자가 빛으로 나오지 못함은 눈이 없어서가 아니요 오직 그들의 눈이 어둡기 때문이되 첫사랑을 잃고 영혼의 눈이 어두워진 것은 살고자하는 마음을 가지지 않기 때문이다. 마찬가지로 후자가 영혼의 사망으로 들어가는 것도 눈이 없어서가 아니요 자칭 믿는 자들과 함께 모여서 말하며 행하되 살고자하는 마음을 가진 적이 없었으니 아예 처음부터 거듭남조차 없었기 때문이다. 그리하여 전자든 후자든 모든 영혼들이 그리스도의 심판대에서 무슨 핑계가 있으리요?

 

“눈은 몸의 등불이니 그러므로 네 눈이 성하면 온 몸이 밝을 것이요 눈이 나쁘면 온 몸이 어두울 것이니 그러므로 네게 있는 빛이 어두우면 그 어두움이 얼마나 하겠느뇨”

 

생명의 근원되신 아버지와 그의 아들이시오 창조자이신 그리스도를 아는 자는 이 말씀을 안다면 이를 지키면 은혜와 유익이 있을 것이요, 아버지와 아들을 모르는 자는 말씀에 자신의 생명이 있으니 이 은혜를 입는 것이 유익하다.

네 보물 있는 그 곳에는 네 마음도 있느니라

돈을 넣으면 때로는 돈이 더 많이 나오기도 하지만 때로는 돈만 먹고 돈이 하나도 나오지 않기도 하는 기계들이 있었다. 그리고 입이 매우 큰 사람이 그 기계들이 있는 건물의 제일 앞에 서서 돈을 넣으면 돈이 나오고 문제도 해결된다고 외쳐댔다. 그러므로 그곳에는 수많은 사람들이 모여서 돈을 넣고 있었다. 그런데 어떤 자가 돈에 마음이 있으니 그 사람들의 사이에 앉아서 간절한 마음을 가지고 돈을 넣기 시작했다. 그랬더니 정말 돈이 많이 나올 때도 있었고 돈만 먹고 돈이 나오지 않을 때도 있었다. 그러므로 시간이 지나도 돈이 늘어나거나 줄어들지 않고 거의 그대로였다. 그래서 그가 의심을 품자 사람들 앞에 서서 돈을 넣으라고 외치던 자가 와서 그에게 와 이런 말을 해주었다. “돈이 더 많이 나오리라는 믿음을 가지고 돈을 넣어야 합니다. 또한 돈을 더 많이 넣으면 돈이 더 많이 나오고 문제도 해결될 것입니다.” 입 큰 자의 말을 듣자 그는 큰맘을 먹고 믿음을 가지고 자기에게 있는 돈을 아낌없이 많이 넣었다. 그랬더니 정말로 돈이 많이 나왔고 문제도 해결됐다. 그러므로 그는 결국 도박의 중독에서 벗어나지 못하되 자신은 믿음이 좋다고 생각했다. 반면 은혜를 받은 자들이 은혜를 내려준 자에게 감사한 마음을 가지고 모이는 집이 있었다. 그 집에는 사람들이 모일 때마다 자기의 마음과 몸과 정성과 뜻을 다해 찬양하며 다른 사람들에게도 은혜를 내려달라고 기도하고 있었다. 그러므로 경건의 능력이 있는 그곳에는 오직 두세 사람이 모여있었고 그곳에도 속이 깊은 통이 있었다. 그런데 은혜를 내려준 자가 어떤 가난한 두 사람에게 그 집에 있는 자들의 거룩한 모습을 보여주었다. 그러므로 그들도 그곳을 찾아가 한 명은 그 깊은 통에 십 원을 넣고 다른 한 명은 하나도 넣지 못함은 그들에겐 오직 일용할 양식밖에 없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들에게 은혜를 내린 자는 그들이 마음을 드리러 나온 것을 알았기에 그들이 바친 것을 참으로 귀하게 받으며 그들이 자기의 모든 것을 바친 것이라고 인정해주었다.

 

이와 같이 아버지께로 헌금을 하든 말을 하든 행위를 하든 그 무엇을 하든 우선 마음이 가장 중요하다. 그러므로 아버지께서는 그의 마음이 썩어질 육의 욕심과 헛된 세상의 영광에 있는지 아니면 아버지께서 베푸신 십자가의 은혜를 붙들고 있는지를 보신다. 그리하여 그가 어떠한 재물과 말과 행위를 드릴지라도 마음이 없는 것들은 다 헛된 것이요 마음이 아버지의 뜻에 있는 자의 재물은 아무리 조그만 것일지라도 그것이 아버지의 눈에는 귀한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이 마지막 때에 많은 자들이 영이 거듭나고도 원수에게 첫사랑을 도적질 당하였으니 혼의 거룩에 이르려는 마음이 없으며 영원한 셋째하늘에 대한 소망도 다 빼앗겼다. 오히려 마음에 그 죄의 뿌리를 그대로 두고 불의하고 죄악된 이 세상에서 돈을 더 벌며 높은 곳으로 올라가기 원하며 그저 자신과 자손의 육신이 건강하기 바라며 자신과 자식들이 사망으로 들어가는 이 세상에서 잘되기를 바라며 의문의 율법을 열심히 행하며 거르지 않고 돈 통에 돈을 넣고 있다. 그리고는 아버지께로 마음 없는 그 희생의 똥을 향기롭게 받으시라고 하는 것이다.

 

사람들은 이렇게 재물을 드릴 때마다 아버지를 속이려 하되 아버지께서는 사람의 마음을 창조하셨으니 외모를 보시지 아니하시고 오직 사람의 마음이 깨끗한지 더러운지를 늘 살펴보신다. 그러므로 아버지께서는 사람의 마음을 아시니 거룩과 아버지의 영원한 나라에 마음이 없는 자들과 속이는 자들의 그것들은 오로지 형식일 뿐이요 아버지께는 아무런 가치가 없는 가인의 제사일 뿐이다. 그리하여 그것은 아버지의 뜻을 위한 것이 아니요 오직 그들의 욕심과 계획을 이루는 불법적인 것에 사용되는 것이다.

 

반면 살고자하는 마음 갈급한 마음을 가진 자는 그들의 마음이 오직 보화에 있다. 하지만 보화는 사람의 노력으로 찾을 수 있는 것이 아니요 오로지 셋째하늘에 계신 아버지께서 사람의 마음을 보시고 허락하시는 것이다. 그러므로 사람의 힘으로는 아무리 보화를 찾아도 못 찾고 찾았어도 안 보이고 안 들리되 거룩하신 영께서 아버지의 뜻과 때에 따라 그를 숨겨진 보화로 이끄시고 또한 그의 마음에 있는 눈과 귀를 열어주시어 찾은 보화를 보고 듣게 하신다. 그리하여 그가 자신의 생각에서 돌이키고 세상에서 나와 마음을 다해 진리를 따라가 결국에는 그 십자가 길의 끝에서 자신이 받은 은혜를 산 제사로 올려드리므로 그 거룩한 육체를 입고 영광의 자유에 이르게 되는 것이다.

 

이처럼 살고자하는 갈급한 마음을 가지고 오직 은혜만을 붙들고 있는 자들은 그들의 마음에서 이미 육과 세상을 버렸다. 또한 그리스도께서 십자가에서 구약의 십일조를 온전히 이루신 것을 믿고 자신도 이미 모든 것을 드린 후 일용할 것을 받아 사용하고 있으니 재물을 드리는 것이 아니요 오직 자신의 마음을 드리며 아버지의 뜻만을 이루고자 애쓰고 있다. 그리고 이런 마음을 가진 깨끗한 한 영혼이 또 다른 깨끗한 한 영혼과 연합하여 함께 하니 그들은 비록 적은 무리일지라도 아버지께서는 그들에게 보화를 주시며 그 십자가 길의 고난을 지나 영광까지 인도해주신다. 그러므로 그리스도께서는 그들을 형제라 부르시기를 부끄러워 아니하시고 오히려 자신이 아버지께로 받은 천년왕국과 본향의 모든 영광과 권세를 그들과 나누심은 그들이 자기를 부인하고 자신을 따르며 자신의 한 몸 안에서 오직 아버지의 뜻을 이루고자 마음과 몸을 다했기 때문이다. 그리하여 그 마음과 몸의 가치는 가히 이르지 못하여 아버지의 눈에는 그 생명이 보석같이 귀하고 귀하다.

 

“너희를 위하여 보물을 땅에 쌓아 두지 말라 거기는 좀과 동록이 해하며 도적이 구멍을 뚫고 도적질하느니라 오직 너희를 위하여 보물을 하늘에 쌓아 두라 거기는 좀이나 동록이 해하지 못하며 도적이 구멍을 뚫지도 못하고 도적질도 못하느니라 네 보물 있는 그 곳에는 네 마음도 있느니라”

 

생명의 근원되신 아버지와 그의 아들이시오 창조자이신 그리스도를 아는 자는 이 말씀을 안다면 이를 지키면 은혜와 유익이 있을 것이요, 아버지와 아들을 모르는 자는 말씀에 자신의 생명이 있으니 이 은혜를 입는 것이 유익하다.

저희는 자기 상을 이미 받았느니라

어떤 사람이 자기를 내려놓고 보물지도를 올려보며 길을 걷고 있었으니 배고프면 밥을 먹되 밥이 없어 배고파도 별다른 걱정 없이 그 길을 계속 걸었다. 그러다 두 갈래의 길이 나왔고 지도에는 오른쪽 길로 가라고 되어있었다. 그러므로 그는 오른쪽 길을 따라 걸으며 마음이 기쁘고 편안했다. 곧 자신이 소중히 여기는 그 보물을 얻을 수 있었기 때문이요 옳은 길로 가고 있다는 확신 때문이었다. 그러다 또다시 두 갈래의 길이 나와서 보물지도를 보니 어느 쪽으로 가라는 표시가 없었다. 그러므로 그는 며칠 동안 밥도 먹지 않고 지도만 들여다보며 어떤 길이 맞는지 고민하고 있었다. 그러다 다시 밥을 먹을 때쯤 되니 독수리 한 마리가 입에다 하얀 종이를 물고 날아와 그에게 떨어뜨려주었다. 그는 무엇인가 하여 그 종이를 펴보니 거기에 오른쪽 길이라고 되어있었다. 그러므로 그는 오른쪽으로 가며 마음이 참으로 기쁘고 편안했다. 그런데 잠시 후 또다시 두 갈래 길이 나왔으나 이번에는 오른쪽 길로 가도 보물을 얻을 수 있고 왼쪽 길로 가도 얻을 수 있으나 둘 중에 더 좋은 길이 있다고 되어있었다. 그러나 어떤 길이 더 좋은 길인지는 나와 있지 않았다. 이에 그는 자신의 욕심이 아니요 오직 보물지도의 주인을 위하여 더 좋은 길을 걷고 싶었으나 지도에 나와있지 않았으니 길을 택하지 못하고 멈추어 서있었다. 그리고 이번에도 며칠 동안 밥도 안 먹고 지도만 들여다보며 어떤 길이 더 나은 길인지 고민했다. 그러자 이번에도 독수리가 입에다 하얀 종이를 물고 날아와 그에게 떨어뜨려주었고 그 안에는 오른쪽이 더 나은 길이라고 되어있었다. 그리하여 그는 더 나은 길을 가며 마음이 더 기쁘고 더 편안했다.

 

이처럼 자기의 생각에서 돌이켜 그리스도의 의로우심을 마음으로 믿고 의를 따르는 자는 육의 필요와 욕심을 내려놓았기에 육적인 판단이 필요치 않음은 썩어질 육은 일용할 것으로 족하다고 이미 영으로 주어졌기 때문이다. 반면 영적인 상황은 보이지 아니하기에 옳은 판단과 또한 더 좋은 판단이 필요하되 그 거룩의 길에서 자신이 어떤 영으로 어떻게 판단을 내려야 할지 또한 어느 길로 가야 자신의 혼과 몸이 더 거룩한 성전이 될지 모른다. 그러므로 거룩에 이르고자 십자가의 길을 걷는 자는 그 길에서 자신의 육적인 판단이 아닌 오직 영적인 판단을 하지 못할 때가 있다.

 

그런데 아버지께서는 바로 이러한 경우에 즉 영적인 상황이 보이지 않는 경우에 금식을 할 수 있도록 해두셨다. 그리고 말씀을 의지해 아버지의 뜻에 맞는 목적으로 금식을 하는 자에게 응답을 주시니 그는 자기 영혼의 거룩한 유익을 위해 올바른 판단과 또한 더 좋은 판단을 내릴 수 있게 된다. 그리하여 그가 아버지의 뜻을 이루는 그 길을 계속 갈 수 있는 것이요 아버지께서는 죽기까지 순종코자 그 십자가의 길을 걷는 자에게 거룩의 믿음과 거룩한 육체의 소망에 더불어 평안함도 그 마음속에 주시는 것이다.

 

아버지께서는 또한 그 길을 가는 한 영혼이 깨끗함을 얻기 원할 때도 금식을 할 수 있도록 해두셨다. 그러므로 영의 거듭남을 얻은 자가 이제는 혼의 거듭남에 이르기 위해 그 길을 걸을 때 자신이 말씀에 따라 애써도 육의 연약함과 죄로 인하여 순종치 못하는 것이 반드시 있으니 바로 그때도 금식을 할 수 있다. 그리하여 금식이라는 것은 오직 거듭난 사람의 영만이 아니요 혼과 몸도 성전을 삼고 거하시기를 원하시는 아버지의 그 뜻을 이루고자 행하는 것이다.

 

이때 사람의 중심을 보시는 아버지께서는 그 영혼이 자기자신이 원하는 뜻과 계획을 이루려 하지 아니하고 오직 거룩을 이루고자 금식하며 구하는 마음을 아시며 보신다. 그러므로 아버지께서는 스스로의 힘과 노력으로는 이기지 못하는 죄로 인하여 애통하는 그 영혼을 불쌍히 여기시어 그가 거룩에 이르도록 친히 도와주시니 결국 흉악한 죄로 묶였던 그의 결박이 풀려지므로 그의 영혼이 맑아지는 유쾌한 날이 곧 다가온다.

 

하지만 사람은 연약한 육으로 인하여 하루에 세끼를 먹어야 하니 아버지께서 원하시는 금식의 이 두 가지 경우 외에는 금식을 안 하는 것이 좋다. 그러므로 오직 자신과 다른 영혼의 유익과 거룩을 위하여 금식하는 자에게는 아버지께로부터 마음의 평안함과 영혼의 깨끗함이 이 땅에서도 주어진다. 그리하여 아버지께서 기다리시는 셋째하늘의 본향에서는 마음의 깨끗함과 평안함이 그 거룩한 육체 안에서 기쁨과 함께 충만해져 영원토록 비밀의 영광을 누리게 되는 것이다.

 

그러나 믿는 자들과 함께 모이되 거듭남이 없는 자들과 거듭나고도 살고자하는 마음을 버린 자들은 어리석어 오늘도 자기의 뜻과 계획을 아버지의 것으로 바꾼 후 자기의 마음에서 우러난 그것을 이루어간다. 그러다 그것이 잘 안되거나 막히면 금식을 한다. 심지어 육의 필요와 욕심이나 이 세상의 좋은 것을 얻기 원할 때도 한다. 그리하여 원수는 그가 밥까지 굶어가며 간절히 원하는 그것을 채워주니 그는 이 세상에서 자기의 뜻과 계획을 이루어가며 육과 세상을 얻되 육은 결국 썩어질 것이요 불의하고 죄악된 이 세상은 마지막에 사망으로 들어간다.

 

또한 원수가 땅속의 무저갱에서 올려주는 상급은 오직 욕심으로 인한 것이니 그것은 얻을수록 사람의 마음에서 기쁨과 평안을 빼앗는다. 그러므로 십자가의 첫사랑을 잃고 의문의 율법과 행위에 빠진 자는 열심히 자기의 뜻과 계획을 이루고도 그리하여 육과 세상의 상을 이미 얻어도 마음에는 평화를 얻지 못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육은 기쁘다. 그리하여 거룩을 포기하고 육을 좇는 어리석은 자들이 그 썩어질 기쁨을 원할 때마다 밥을 굶게 되는 것이다.

 

“금식할 때에 너희는 외식하는 자들과 같이 슬픈 기색을 내지 말라 저희는 금식하는 것을 사람에게 보이려고 얼굴을 흉하게 하느니라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저희는 자기 상을 이미 받았느니라 너는 금식할 때에 머리에 기름을 바르고 얼굴을 씻으라 이는 금식하는 자로 사람에게 보이지 않고 오직 은밀한 중에 계신 네 아버지께 보이게 하려 함이라 은밀한 중에 보시는 네 아버지께서 갚으시리라”

 

생명의 근원되신 아버지와 그의 아들이시오 창조자이신 그리스도를 아는 자는 이 말씀을 안다면 이를 지키면 은혜와 유익이 있을 것이요, 아버지와 아들을 모르는 자는 말씀에 자신의 생명이 있으니 이 은혜를 입는 것이 유익하다.

너희가 사람의 과실을 용서하면

어떤 의로운 왕이 자기의 백성들에게 이 세상에서 가장 큰 은혜를 베푼 후 의롭고 정직하게 재판을 하고 있었다. 그러므로 모든 사람들이 비록 사형에 해당하는 죄가 있어도 그 자비로운 재판관으로 인해 죽음을 면했다. 그러던 어느 날 사형을 면제받은 세 명이 다른 사람들을 용서해야 할 일이 생겼다. 즉 다른 사람들이 사형을 면제받은 그 세 명에게 죄를 범했던 것이다. 하지만 동일한 자비를 받고 죽음을 면했음에도 그 세 명의 마음은 각기 달랐다. 그러므로 첫 번째 사람은 다른 사람들을 늘 용서하다 마지막에는 자신을 죽이는 자도 용서했으니 다른 사람들도 그를 늘 용서해주었다. 그러나 두 번째 사람은 상대방의 죄를 용서치 않고 오히려 자기의 욕심과 교만과 옳음을 위해 다른 사람들을 해쳤다. 또한 자기의 죄와 실수는 숨기되 상대방의 죄와 실수는 늘 더 크게 드러냈다. 그러므로 다른 사람들도 그를 늘 용서해주지 않고 똑같이 했다. 반면 세 번째 사람은 아예 그 재판관의 자비를 처음부터 원치 않고 늘 두 번째 사람처럼 행했다. 또한 자기를 위해 늘 다른 사람들을 죽음으로 보냈으니 다른 사람들도 기회가 되면 늘 그를 죽이고자 했다. 그러다 결국 그 세 사람은 똑같이 그 재판관의 앞에 서게 되었다. 그러므로 그들에게 공평하게 자비를 베풀었던 재판관은 첫 번째 사람의 모든 허물과 마음의 죄까지 다 용서해주었다. 그러나 두 번째 사람의 허물과 죄는 용서해주지 않고 빛이 전혀 없는 어두운 감옥에 보내주었다. 반면 처음부터 자비를 원치 않은 세 번째 사람은 자신의 마음속 죄의 뿌리를 통해 생각과 몸과 혀로 허물을 맺은 만큼 영원한 형벌의 사망으로 들어가라고 심판했다.

 

이와 같이 거듭난 후 살고자하는 마음을 가지고 자기의 생각에서 돌이켜 그리스도를 따르며 아버지의 뜻에 애쓰는 영혼들은 좁고 협착한 그 생명의 길을 걸으며 모든 자들을 용서하다 마지막에 많은 사람들의 앞에서 자신을 놀리고 때리는 자들도 용서한다. 또한 그 길에서 마지막 죽음의 전에 자신을 찔러 피 흘려 죽이는 자들까지 다 용서한다. 그러므로 불의하고 죄악된 이 세상을 따르지 아니하고 또한 자기의 생각과 의도 따르지 아니하고 오직 그리스도를 따르며 인자의 살과 피를 의지해 혼의 거룩을 이루고자 십자가의 길을 걷는 자들은 그 길에서 용서치 못할 자가 없다.

 

아버지께서는 육에서 나와 그리스도의 심판대에서 선 영혼들 가운데 이런 영혼에게는 완전한 용서를 베풀어주신다. 그러므로 허물만이 아니요 마음속 죄의 사함까지 받은 그는 그리스도와 같은 그 거룩한 육체를 입고 아버지의 거룩한 자녀와 창조자의 형제자매가 되거나 혹은 그리스도의 정결한 지체가 된다. 그리하여 영광의 자유에 이른 그가 온전케 된 의로운 셋째하늘의 백성들을 영원토록 다스리는 왕과 제사장으로 세움을 받는 것이다.

 

그러나 영이 거듭남을 얻은 후 썩어질 육의 욕심과 세상의 헛된 영광에 마음을 빼앗기므로 십자가를 통해 받은 첫사랑을 잃은 자들과 나는 거듭난 자이니 나의 마음과 생각에 죄가 있어도 죄가 없다고 거짓말하며 자신을 속인 자들과 완전한 속죄를 이루신 십자가의 거룩한 피에서 의문의 율법과 사람의 규례로 돌아선 자들은 자신의 생각과 의와 세상을 따르느라 그리스도를 따르지 못한다. 그러므로 그들은 십자가의 자비를 받았음에도 불구하고 다른 자들의 조그만 잘못과 죄를 용서치 못하고 오히려 즉시즉시 마음과 생각으로 혹은 행위와 말로 그대로 갚아준다. 그리하여 그들은 용서할 자가 없으며 다른 사람들도 그들을 용서하지 아니한다.

 

그런데 이렇게 자비를 얻고도 자비를 베풀지 않은 자들은 온전케 되는 과정으로 들어가 거룩을 이루면 셋째하늘의 의로운 백성이 되는 은혜가 있으나 한 말씀에라도 순종치 않은 자는 아버지께서도 그리스도께서도 심판대에서 그를 용서치 않으신다. 또한 자신이 먼저 용서치 않은 자들은 자신이 범한 잘못과 죄에 대해 자신도 다른 자들에게 용서를 받지 못한다. 그리하여 사람에게도 아버지께도 용서받지 못한 자들이 빛이 없는 그 어두운 곳에 갇히게 되는 것은 그들은 육에 있을 때 말씀의 빛과 의롭고 거룩한 셋째하늘의 빛을 스스로 거부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들은 자신이 말씀에 끝까지 불순종하며 어두운 세상을 따랐기에 어두운 곳에 있음을 깨닫지 못하고 거기서 영원히 슬피 울며 이를 가는 이유는 이 땅에서 주여 주여 기도하며 평생 주님을 섬긴 내가 왜 여기에 있는가라는 불평과 원망의 마음을 감싸고 있기 때문이다. 또한 그들은 자신이 왜 그곳에 있는지 영원히 깨닫지도 인정치도 못함은 육에 있을 때 말씀을 휴지처럼 버린 그들에게는 아버지께서 더 이상 진주를 주시지 아니하시기 때문이다.

 

반면 살고자하는 마음을 휴지처럼 버리고 그리스도의 보혈을 거부한 자는 오늘도 자기를 위하여 자기가 앉은 자리와 가진 힘을 이용해 다른 자들을 고통과 사망으로 보내기에 빠르다. 그러므로 그리스도께서는 자기를 위해 자기와 다른 자들의 피를 흘린 그에게 사망의 심판을 그대로 내리신다. 그런데 이런 자들은 자신의 마음과 인격을 선악의 죄를 창조한 원수에게 넘겼으니 그 유황불 못에서조차 돌이키지 못하고 오히려 자기의 죄를 다른 자들에게 떠넘기며 해치고자 한다. 하지만 아버지께서는 그들에게 너와 다른 자들에게 범죄치 말라고 더 이상은 말씀하시지 아니하시고 이제는 그들의 몸을 묶어두시니 그들은 뜨거운 고통뿐만 아니라 몸과 혀도 영원히 움직이지 못한다.

 

“너희가 사람의 과실을 용서하면 너희 천부께서도 너희 과실을 용서하시려니와 너희가 사람의 과실을 용서하지 아니하면 너희 아버지께서도 너희 과실을 용서하지 아니하시리라”

 

생명의 근원되신 아버지와 그의 아들이시오 창조자이신 그리스도를 아는 자는 이 말씀을 안다면 이를 지키면 은혜와 유익이 있을 것이요, 아버지와 아들을 모르는 자는 말씀에 자신의 생명이 있으니 이 은혜를 입는 것이 유익하다.

너희 아버지께서 아시느니라

아버지께서는 죽기까지 피 흘리기까지 죄와 싸우므로 자신의 뜻에 이른 거룩한 자들에게는 그리스도와 같은 거룩한 육체를 주시어 거룩한 자녀로 삼으신다는 약속을 거듭난 모든 영혼들에게 공평하게 말씀으로 주셨으니 그것을 언약이라고 한다. 그러므로 거듭난 자는 누구나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권리를 약속 받은 것이니 약속을 지키는 자는 영광에 이르되 지키지 못하는 자는 권세를 잃는다. 그러나 사람은 육신의 연약함과 사단의 깊은 것으로 인하여 인간의 생각과 노력과 행위로는 거룩을 이룰 수 없다. 하지만 거듭난 후 그리스도의 의를 마음으로 믿고 자기의 생각에서 돌이켜 의를 따르며 순종하는 자에게는 아버지께서 자신의 능력과 지혜이신 그리스도를 통해 친히 이루어주시니 거룩의 약속을 지킨 그에게 아버지께서도 그 영광스런 소망의 약속을 지키신다.

 

이와 같이 모든 언약은 늘 아버지의 입에서 나오되 약속이라는 것은 약속을 맺은 두 사람의 관계에서 자신도 지키고 상대방도 지켜야만 이루어진다. 즉 말씀의 씨를 통해 거듭난 자는 영원한 유황불 못의 형벌에서 아버지의 나라로 옮겨졌다는 확신으로 인해 기쁨과 감격과 눈물과 모든 무거운 짐을 내려놓는 평안을 얻은 후 다른 자들에게도 십자가를 통한 거듭남을 전하되 그보다 먼저 자신의 모든 것을 다 드려서 아니 목숨까지 바쳐 아버지와 아들을 섬기겠노라 서원한다. 그러므로 사람은 먼저 아버지께로 그 약속을 받아야 함이요 두 번째로 그 약속을 소망으로 바라보며 말씀에 믿음을 가지고 죽기까지 순종하면 아버지께서도 자신의 입술로 약속하신 것을 그대로 혹은 더 풍성하게 이루어주시니 약속된 권세는 오로지 말씀에 순종하는 언약의 자녀들이 얻는 것이다.

 

그런데 사람이 아버지께로 그 약속을 얻기 위해 오히려 자신이 먼저 아버지와 약속을 맺는 경우도 있다. 그리고 이때도 역시 자신이 아버지와 맺은 약속을 지키면 아버지께서도 그의 약속을 이루어주신다. 하지만 엄마가 이미 시간에 맞추어 밥을 차리고 있는데 뒤에서 아이가 ‘엄마 밥 차려 주세요. 엄마가 밥 차려 줄 것을 믿어요.’라는 요구에 의해 엄마가 밥을 차려주는 것이 아니요 때가 되었음을 알기에 아이의 요구와 상관없이 상을 차려주는 것이되 어리석은 자는 끝까지 자기의 요구와 믿음으로 응답을 받았다며 자신이 이방인임을 간증하고 돌아다닌다. 그러므로 거듭난 후 의를 따르고 있는 자가 아버지께로 맺는 약속은 썩어질 육의 욕심과 필요를 채우거나 헛된 세상의 영광을 얻기 위한 것이 아니요 오직 애타하며 불쌍한 마음을 가지고 맺는 가족과 친척과 친지와 친구들에 대한 구원의 약속을 뜻하는 것이다.

 

예를 들어 사람은 다음과 같은 순서로 아버지와 그 약속을 맺는다. 그리고 자신이 약속 맺은 대로 순종할 때 원수도 자신에게 손을 벌리고 머리를 숙이는 자에게 썩어질 육의 욕심과 세상의 헛된 영광을 이루어주듯 아버지께서도 은혜를 받은 영혼이 간절히 원하는 것이 무엇인지를 잘 아시니 약속을 지킨 그에게 그 구원의 약속을 허락하신다.

 

어떤 믿는 여자의 남편에게 거듭남이 없다. 이때 그 여자에게는 살고자하는 마음을 가지고 말씀에 순종하는 것이 첫 번째이다. 그러므로 그 여자는 먼저 자기남자의 말에 자신의 마음과 정성을 다해 순종해야 한다. 그 후에야 그 여자는 다른 말씀에도 순종하며 아버지를 섬기되 이제는 아버지께로 이렇게 약속을 한다.

 

“아버지께서 주시는 구원이 이 세상의 그 어떤 것보다도 귀한 줄 아옵나이다. 그러므로 저도 또한 저의 남자도 이 세상의 모든 것을 다 잃게 하여 주옵소서. 그리하면 그때에도 제가 감사하겠고 또한 제가 감사하겠사오니 아버지께서 저의 남자에게 그 구원의 약속을 이루어주시옵소서”

 

그런데 이 세상의 그 무엇보다 구원을 소중히 여기는 사람이 이런 기도를 할 때 육과 세상의 권세를 잡고 있는 원수도 즉시 일하기 시작한다. 즉 사람들이 자신과 함께 유황불 못으로 들어가기 원하는 원수는 아버지와 약속을 맺은 그 사람뿐만 아니라 구원 얻을 자의 모든 것을 다 줄이고 조른다. 그러나 아버지께서는 그 여자가 자기가 한 약속대로 그런 상황에서도 믿음을 가지고 마음을 다해 그의 입에서 감사의 말이 나올 때에 그의 약속인 남자의 구원도 이루어주신다.

 

그러나 이방인과 거듭난 후 행위로 돌아선 자와 자기의 의를 따르는 자와 세상의 영광에 첫사랑을 빼앗긴 자의 하나님은 더 이상 아버지와 아들이 아니요 율법과 자신과 돈과 세상이 그들의 신이다. 결국 그들은 사람이 애타하며 간절히 원하는 것은 거듭남과 거룩과 영광의 자유가 아니요 썩어질 육과 자기의 교만을 위한 세상의 헛된 영광임을 아버지께서 알고 계신다고 생각한다. 그러므로 거짓된 자들은 아버지의 뜻은 내어버리고 자신의 소원을 이루고자 자신의 의와 교만을 드러내고자 사람에게 긍휼을 얻고자 어제도 외식하는 기도를 했고 오늘 새벽에도 했고 다가오는 밤중에도 할 것이다.

 

그들은 또한 자기에게 있는 것에 감사치 아니하고 무엇인가를 두고 맹세하며 이방인처럼 영생과 썩어질 것을 바꾸고 늘 그것을 구한다. 그러므로 원수도 그들의 마음이 무엇을 원하는지 알고 자기가 가진 것으로 자기가 할 일을 하는 것이다. 그리하여 찔림을 받고도 돌이키지 않는 자들과 깨닫지 못하는 자들은 반복적으로 그런 기도를 하며 패망으로 들어간다.  결국 마지막 때에 그리스도께서 이 세상에 다시 들어오시는 밤중에도 이 세상에 처음 들어오셨을 때처럼 이미 세상에 빠진 유대인들이 자신의 마음을 돌이키지 못했던 것처럼 오직 자기의 한 발은 세상에 다른 한 발은 주님께 담그고 있는 이방인들 중에 오직 주님께 돌이키는 자에게 생명의 기회가 있을 것이다.

 

“또 기도할 때에 이방인과 같이 중언 부언하지 말라 저희는 말을 많이 하여야 들으실 줄 생각하느니라 그러므로 저희를 본받지 말라 구하기 전에 너희에게 있어야 할 것을 하나님 너희 아버지께서 아시느니라”

 

생명의 근원되신 아버지와 그의 아들이시오 창조자이신 그리스도를 아는 자는 이 말씀을 안다면 이를 지키면 은혜와 유익이 있을 것이요, 아버지와 아들을 모르는 자는 말씀에 자신의 생명이 있으니 이 은혜를 입는 것이 유익하다.

외식하는 자와 같이 되지 말라

그리스도께서는 십자가에서 살을 찢고 물과 피를 흘려주시고 유대인의 제자들만이 아니요 이제는 이방인도 자신의 생각에서 돌이켜 의를 따르며 물세례(침례)후 거룩하신 영께로 이끌려 자신이 분부한 계명을 지키므로 새 언약의 생명을 얻도록 삼일 후에 그 거룩한 몸을 여자들과 제자들에게 순서대로 보이시므로 믿음과 소망을 주셨다. 또한 자신의 몸에 거하는 거룩하고 정결한 영혼들과 세상 끝날 까지 항상 함께 있을 것이요 마지막 때에 생명과 사망의 심판을 위해 다시 오겠노라는 약속을 지키시고자 낙원이 있는 둘째하늘로 구름을 타고 올라가 어린양의 혼인잔치를 준비하시며 또한 아버지의 뜻에 이르고자 십자가의 길을 걷는 자들을 위해 간구만 하심이 아니요 심판대에 앉아 한 영혼 한 영혼을 심판도 하고 계신다.

 

그런데 그리스도께서는 십자가 이후에 육의 썩을 장막을 벗고 올라오는 유대인과 이방인의 모든 영혼들에게 생명과 사망의 심판을 내리시되 그 심판대에서 어떤 자에게는 긍휼이 있는 심판을 어떤 자에게는 긍휼 없이 그냥 그대로 심판을 내리신다. 그러므로 그 심판은 불공평한 것처럼 보이지만 그것은 그리스도께서 불공평하시기 때문이 아니요 그 영혼이 이 땅에 있을 때 다른 사람에게 긍휼을 베푼 것에 따라 말씀으로 약속하신 대로 긍휼이 있는 심판과 긍휼 없는 심판을 내리시는 것이니 오히려 약속을 지키며 말씀을 이루는 의롭고 공평한 심판이다.

 

예를 들어 기도로써 긍휼한 심판의 상급을 얻는 길은 오로지 다른 사람의 영혼을 불쌍히 여기는 기도여야 하니 자신의 옆에 있는 사람의 깨끗함과 거룩함과 구원함을 위해 구한다. 그러나 아버지와 아들과 거룩하신 영께서는 다음과 같은 세 가지 기도는 그저 외식으로 보시니 누구든지 외식하는 기도를 하는 자들은 아무리 오래 평생을 할지라도 긍휼한 심판을 얻지 못한다.

 

첫째 ‘내가 당신을 위하여 기도하고 있습니다.’ ‘기도하겠습니다.’ 이렇게 말을 하는 자는 그가 이미 이 땅의 사람에게로부터 긍휼을 얻은 자이다. 그러므로 그 자는 시장에 나가 두 손을 들고 기도하는 자와 일반이다.

 

둘째 다른 사람의 영혼을 불쌍히 여기는 기도가 아닌 썩어질 육과 세상의 소원을 구하는 것이니 그것은 아버지도 아들도 듣지 아니하시니 그가 구하는 것을 누가 듣겠는가? 그러므로 썩어질 것과 사망으로 들어가는 헛된 영광을 위해 구하는 기도는 그리스도께로 긍휼을 얻지 못한다. 그리하여 육의 부요와 세상의 권세를 가진 원수로부터 그들의 소원이 이루어지니 그들이 섬기는 신은 영원한 생명을 주시는 아버지가 아니요 돈과 세상이 하나님이니 원수도 이미 그들이 자신을 사랑하는 것이 아니요 자기가 가진 부요와 영광을 원하고 있다는 것을 알면서도 베푸는 것은 그 뿌리를 통해 자신과 같이 육의 욕심과 교만을 품고 있는 자들을 사망으로 이끌고자 함이다.

 

셋째 때로는 사람들이 많은 자들 앞에서 큰 소리로 눈물을 흘리며 기도하는 모습을 보인다. 여러 가지 이유들이 있다. 그러나 자신의 안에 거하는 선악의 죄와 다른 영혼들을 묶어 사망으로 이끄는 그 죄의 결박을 풀어달라는 강청이 아닌 다른 어떤 목적을 가지고 그렇게 기도할 때에는 이미 그가 이 땅에서 가인의 의로움을 나타낸 것이니 아버지와 아들께서도 그 기도를 듣지 아니하신다.

 

그렇다면 그리스도의 심판대에서 긍휼의 심판을 얻는 그 기도는 누가 언제 어떻게 할 수 있는가? 한 가지 비유를 통해 깨달음을 얻을 수 있다.

 

어떤 사람이 자기의 옆에 있는 사람이 먹을 게 없어서 죽어가는 모습을 보고도 가만히 있었다. 자신도 먹을 게 없어 죽어가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러다 그는 누군가에게 몸에 좋은 많은 양식을 값없이 얻었다. 그러므로 그는 그것을 먹고 생명을 얻은 후에는 가만히 있지 아니하고 곧 자기의 가까이에서 배가 고파 죽어가는 그 사람을 불쌍히 여겨 자신이 얻은 것을 그와 나누었다. 그러므로 그들은 둘 다 생명을 얻게 되었다.

 

이와 같이 아버지께서는 택하시고 미리 정하시고 부르신 한 영혼에게 긍휼을 베푸시니 그리스도께서도 살고자하는 마음을 가지고 자기의 십자가를 지고 의를 따르는 그 영혼에게 은혜를 입히신다. 그러면 긍휼과 은혜를 입은 그 영혼은 은혜를 전할 자로서 자기가 먼저 다른 영혼들에게 그 영광의 소망과 은혜를 전하므로 긍휼을 베풀어야 함이 마땅하지 않겠는가? 그리하면 그리스도께서도 심판대에서 그에게 약속대로 긍휼을 베푸실 것이다.

 

이로 보건대 거듭난 자는 거듭남을 전하듯 다른 영혼에게 기도로 긍휼을 베풀거나 큰 구원을 전하고 있는 자는 이미 아버지와 아들과 거룩하신 영께로 큰 은혜와 긍휼을 받은 자이되 그것을 베풀고 있지 못하는 자는 받지 못했기에 베풀지 못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하지만 베풀지 못하는 자도 자기의 생각에서 돌이키고 의를 따를 때 그리스도께서는 영광의 자유의 복음을 주실 것이니 긍휼을 베풀게 되는 날이 온다. 마찬가지로 썩어질 것과 헛된 것을 은혜로 베푸는 자도 그가 이미 공중권세를 가진 자에게 고개를 조아리고 두 손을 넓게 펴서 받았기 때문에 베풀 수 있는 것이다.

 

“또 너희가 기도할 때에 외식하는 자와 같이 되지 말라 저희는 사람에게 보이려고 회당과 큰 거리 어귀에 서서 기도하기를 좋아하느니라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저희는 자기 상을 이미 받았느니라 너는 기도할 때에 네 골방에 들어가 문을 닫고 은밀한 중에 계신 네 아버지께 기도하라 은밀한 중에 보시는 네 아버지께서 갚으시리라”

 

생명의 근원되신 아버지와 그의 아들이시오 창조자이신 그리스도를 아는 자는 이 말씀을 안다면 이를 지키면 은혜와 유익이 있을 것이요, 아버지와 아들을 모르는 자는 말씀에 자신의 생명이 있으니 이 은혜를 입는 것이 유익하다.

네 구제함이 은밀하게 하라

어떤 아비가 자기가 낳은 아들이 자기자신의 유익을 구하기보다 순수한 마음을 가지고 다른 사람들을 마음을 다해 도와주는 의롭고 선한 사람이 되길 원했다. 그러므로 그는 자기 아이가 뱃속에 있을 때부터 또한 말을 알아듣지 못하는 아기 때도 귀에 대고 이러한 말들을 들려주며 가르쳤다. “손과 발이 있어 일하고는 싶으나 일을 찾지 못해 잠시 헐벗고 배고픈 사람이 있으면 돕되 땀을 흘릴 수 있는 일을 주어라. 또한 아직 일하지 못할 나이인데 부모가 없어 헐벗고 배고픈 고아들도 도와주어라. 세상으로 인해 남편을 잃고 혼자 어린 자녀들을 데리고 어렵게 생활하는 과부도 도와주어라.” 그 아비는 자기의 아들이 무엇이 선하고 무엇이 악한 것인지 스스로 구별할 수 있는 나이가 될 때까지 이렇게 가난한 사람들을 진심으로 불쌍히 여기며 은밀히 돕도록 가르쳐주면서 바로 이것이 영원한 본향에 계신 아버지를 섬길 수 있는 첫번째 길이라고 알렸다. 그러므로 아이는 나중에 커서도 어릴 때부터 가르침을 받은 대로 누가 말하지 않아도 그 길을 은밀하게 걸었다.

 

이와 같이 유대인들은 어릴 때에 이미 유대인이든 이방인이든 모든 사람의 영혼을 불쌍히 여기도록 가르침을 받는다. 그러므로 난지 팔일 만에 할례를 받은 유대인들가운데 살고자하는 마음을 가지고 율법과 계명과 법도와 율례에 순종하는 자들은 자신이 가르침을 받은 그 첫번째 법도대로 자신의 영혼을 불쌍히 여기듯 다른 영혼을 불쌍히 여기며 그들도 아버지의 뜻에 이르도록 셋째하늘에 계신 아버지께로 강청하며 자신이 가지고 있는 진주도 나누어준다. 뿐만 아니라 육이 부족한 자들도 거룩의 일을 이루어가도록 구약의 온전한 십일조 계명대로 나누어 육도 돕는다.

 

그런데 어린아이가 무엇을 할 줄 모르기에 그를 가르쳐 그 일을 행하게 하는 것은 옳은 것이요 가르침 받은 대로 행하는 아이도 옳지만 그 아이가 만일 나이가 들어 성인이 되어서도 똑같은 것을 누군가가 가르쳐주며 하라고 하기에 하는 것은 옳지 못한 것이다. 하지만 대부분의 유대인들은 성인이 되어서도 누가 하라고 할 때까지 기다린 후 아버지께서 원하시는 그 일을 했으니 어려서부터 배운 그들은 참된 어리석음을 취하는 자들이었다. 그러므로 그들이 마음을 다하지 못함은 처음부터 자신의 주인을 알았던 개였음에도 불구하고 나중에 그들의 마음이 아버지를 섬기는 법도에서 멀어져 썩어질 육의 욕심과 이 더러운 세상의 영광에 빼앗겼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러한 자들보다 더 어리석은 유대인도 있었으니 그들은 공개적으로 이 사람은 누구에게 무엇을 했고 저 사람은 누구를 위해 희생했다고 밝힌다. 그리고 그것을 행한 자도 자기의 마음이 그것을 원하니 많은 사람들 앞에서 그 선하고 의롭고 거룩한 행위에 대한 칭찬을 받아들인다. 그리하여 처음에는 주인을 몰랐던 돼지였으나 중간에 거듭남의 은혜를 입고 더러운 곳에서 나온 이방인의 믿는 자들 가운데도 이런 자들이 넘쳐나고 있음은 자신이 나온 곳으로 다시 들어가 뒹굴며 자신을 더럽히고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다른 영혼들을 위하여 행하기 전 행할 때 행한 후 그의 양심이 이 땅에서 혹은 사람에게서 무엇을 원한다면 아버지께서 예비하신 그 하늘의 영원한 상급은 얻지 못하니 그의 수고가 다 헛된 것임을 깨닫고 돌이킬 때 유익이 있다. 그러므로 순수한 마음을 가지고 누군가를 돕기 원하거든 그것이 영적인 것이든 육적인 것이든 이름 없이 또한 빛도 없이 행하는 것이 옳다.

 

그리스도께서는 자신의 생각과 성전에 거하는 독사의 자식들과 더러운 세상에서 나와 의를 따르는 제자들에게 이렇게 첫번째 법도를 순수하게 행하므로 아버지를 섬기는 자들에게 있을 상급을 미리 알리셨으니 아버지께서는 의와 거룩을 행하는 자들의 그 마음을 늘 보시고 늘 그에 맞는 새로운 상을 셋째하늘에 준비해두신다. 즉 아버지께서는 그때에 이미 그것을 정하셨으니 거룩한 자들은 거룩한 육체를 통해 영광의 자유에 이른 것 외에도 영원한 셋째하늘과 둘째하늘의 천년왕국에서 그 상들을 얻는다. 그러므로 그리스도의 심판대에서 누군가 그런 상을 받는 것을 보면 그가 이 땅에서 어떠한 마음을 품고 의와 거룩을 행했는가를 모든 자들이 알게 된다.

 

“사람에게 보이려고 그들 앞에서 너희 의를 행치 않도록 주의하라 그렇지 아니하면 하늘에 계신 너희 아버지께 상을 얻지 못하느니라 그러므로 구제할 때에 외식하는 자가 사람에게 영광을 얻으려고 회당과 거리에서 하는 것같이 너희 앞에 나팔을 불지 말라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저희는 자기 상을 이미 받았느니라 너는 구제할 때에 오른손의 하는 것을 왼손이 모르게 하여 네 구제함이 은밀하게 하라 은밀한 중에 보시는 너의 아버지가 갚으시리라”

 

생명의 근원되신 아버지와 그의 아들이시오 창조자이신 그리스도를 아는 자는 이 말씀을 안다면 이를 지키면 은혜와 유익이 있을 것이요, 아버지와 아들을 모르는 자는 말씀에 자신의 생명이 있으니 이 은혜를 입는 것이 유익하다.

너희 아버지의 온전하심과 같이 너희도 온전하라

영원 전부터 영원까지 홀로 한 분 신이시며 모든 살아있는 생명의 근원되신 아버지께서는 태초에 창조와 구원과 생명과 사망의 심판과 천년왕국 후 이 세상을 멸망하시는 그 모든 계획을 의롭고 공평하고 정직하게 세우셨다. 그리고 그것을 위하여 말씀도 의롭고 공평하고 정직하게 내시며 중간에 그것을 바꾸시지 않으시고 오직 한번 말씀하신 대로만 모든 일을 그와 같이 끝까지 이루어가신다. 그리하여 사람들은 아버지를 보고 선하시고 의로우시고 거룩하시고 완전하시다고 말한다.

 

그런데 이러한 성품을 가지신 아버지께서는 아들의 십자가피로 거듭날 때 자신의 거룩하신 영을 받아 그 거룩한 육체의 생명에 이르는 약속을 얻은 사람들에게도 자신과 같은 온전함에 이르기를 원하신다. 그 이유는 온전한 그들을 자신의 거룩한 자녀들로 삼으시어 아들과 함께 아버지의 의로우시고 거룩하신 나라를 영원토록 공의와 사랑으로 온전하게 다스리도록 하시기 위해서이다.

 

그러므로 아버지께서는 만물을 창조하시기 전에 태초에 말씀을 낳으시고 오늘날 내가 너를 낳았노라고 선포하셨으니 모든 창조물보다 먼저 나신 아버지의 아들이신 그리스도께서는 영원 전부터 아버지의 품에서 함께 계셨다. 또한 그리스도께서는 셋째하늘과 둘째하늘과 이 첫째하늘과 그 안에 모든 보이는 것들과 보이지 않는 것들과 보좌들과 주관들과 정사들과 권세들을 자신을 위하여 창조하시되 오직 아버지께서 태초에 세우신 그 계획에 따라 창조하셨고 약속에 따라 이 첫째하늘로 첫 번째로 들어오시어 십자가에서 아버지의 그 뜻을 다 이루셨다.

 

이처럼 그리스도께서는 영원 전부터 아버지와 함께 계셨으며 아버지의 품에서 말씀으로 태어나셨으며 아버지의 말씀과 계획에 순종하셨으니 아버지의 그 선하시고 의로우시고 거룩하시고 완전하신 성품을 잘 알고 계신다. 또한 아버지께서 둘째하늘의 낙원과 함께 맏아들인 자신을 새로운 약속에 따라 이 세상에 두 번째로 들어오게 하실 때 자신으로 말미암아 아버지의 아들들이 되게 하신 자녀들은 이 땅에 이루어지는 천국에서 천년 동안 왕들과 제사장들로서 자신과 함께 다스려야 한다. 또한 천국이 끝나고 이 세상을 멸망하시며 셋째하늘로 올라갔을 때에도 역시 그와 같이 영원토록 다스리는 권세의 약속이 오직 아버지의 뜻을 이룬 자들에게 주어져있다.

 

즉 독사의 자식들을 따르지 않고 육을 내려놓고 세상에서 나와 자신을 따르고 있는 제자들에게 영원한 본향에서 기다리시는 아버지를 보고 온전하신 분이라고 알려주신 이유는 자신과 함께 왕과 제사장으로 다스릴 자들은 그 무엇보다 의와 거룩에 이르므로 온전함에 이르러야 함을 잘 아셨기 때문이다. 그리하여 피를 통해 거듭난 후 오직 의를 따르므로 의와 거룩에 이르러 아버지의 자녀가 된다는 그 약속을 얻은 자들 가운데 이것을 깨달은 자들은 2천년 전의 제자들만이 아니요 교회시대에도 또한 이 마지막 때에도 사람의 유전과 규례를 따르지 않고 썩어질 것을 내려놓고 소망 없는 곳에서 나와 오직 의를 따르며 그 무엇보다 아버지의 온전하심을 닮고자 애쓰고 있다.

 

아버지께는 여러 가지의 온전하신 성품들이 있으시다. 하지만 살고자하는 마음을 가지고 자기의 생각에서 회개하고 돌이켜 그리스도를 따르고 있는 제자들이 아버지의 성품을 닮기 원한다면 세 가지만 마음에 잘 간직하고 지켜도 그 여러 가지 온전하심 중에 기본적인 온전함을 이룰 수 있다.

 

첫째 첫 마음이 중요하니 그 마음을 지켜야 함이다. 아버지께서도 태초에 가지셨던 그 마음을 지금도 까지도 지키시고 계시며 또한 영원토록 그 마음을 지키신다. 그러므로 사람도 자신이 처음에 품었던 그 선하고 의로운 마음을 어떠한 환경가운데서도 바꾸지 아니하고 끝까지 지킴이 옳다.

 

그렇다면 사람이 인생을 살며 처음 품었던 자신에게 가장 중요하고 선하고 의로운 마음이 무엇이리요? 썩어질 돈도 헛된 영광도 세상의 즐거움도 아니요 오히려 그것들로 인하여 범했던 죄들을 아들의 피를 믿고 회개하므로 얻은 중생이니 그 첫사랑의 은혜를 잊지 않아야 함이다. 그리하여 아버지와 아들께서는 첫사랑을 마음 깊은 곳에 소중히 간직하고 있는 영혼에게는 이 마지막 때에도 생명의 기회를 베푸신다. 또한 끝까지 사랑과 은혜를 베푸시는 성품으로 인하여 첫사랑을 썩어질 것과 헛된 곳에 빼앗긴 영혼들에 대해서는 마지막 환난이 오기 전에 다 돌이키길 원하신다.

 

둘째 아버지께서는 자신이 한번 하신 말씀을 반드시 지키시고 실행하신다. 이와 같이 사람도 자신이 입으로 낸 말들은 남들에게 그것을 요구하기 전에 자신이 먼저 지켜야 함이요 자신이 먼저 실행해야 함이다.

 

셋째 말에는 한 인격체의 의로움이 나타나니 아버지께서는 오직 진리만을 말씀하신다. 그러므로 사람도 자기의 입으로 오직 진리의 말만을 내야 한다. 그러나 만일 자기의 뜻과 욕심과 교만을 이루고자 말씀과 진리에 거짓된 말을 섞거나 바꾼다거나 그 선악의 행위에서 돌이키지 않는다면 그러면서 자신을 의롭게 여긴다면 어찌 그의 마음에 온전해지려는 원함이 있다 할 수 있으리요?

 

아버지와 아들의 은혜를 받은 자들은 자신의 의와 생각을 따르지 아니하고 오직 그리스도만이 의로우심을 마음으로 믿고 의를 따르겠노라 마음으로 결단하는 순간에 그가 비록 의로운 말과 행위가 없을지라도 아버지께서 그를 의롭게 보시는 것은 의를 믿고 따르는 그에게 그리스도의 의를 덧입혀 주시기 때문이요 또한 그가 의를 따르며 우선적으로 이 세 가지를 지키면 참으로 아버지의 그 온전하심을 닮아가는 거룩한 영혼이 될 수 있으니 결국에는 비밀의 영광에도 이를 수 있다.

 

“그러므로 하늘에 계신 너희 아버지의 온전하심과 같이 너희도 온전하라”

 

생명의 근원되신 아버지와 그의 아들이시오 창조자이신 그리스도를 아는 자는 이 말씀을 안다면 이를 지키면 은혜와 유익이 있을 것이요, 아버지와 아들을 모르는 자는 말씀에 자신의 생명이 있으니 이 은혜를 입는 것이 유익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