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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56개의 게시물을 찾았습니다.

  1. 2008/05/15
    내가 너희로 사람을 낚는 어부가 되게 하리라
    살고자하는 마음
  2. 2008/05/06
    회개하라 천국이 가까왔느니라 하시더라
    살고자하는 마음
  3. 2008/03/26
    주 너의 하나님께 경배하고 다만 그를 섬기라
    살고자하는 마음
  4. 2008/03/11
    주 너의 하나님을 시험치 말라
    살고자하는 마음
  5. 2008/01/12
    사람이 떡으로만 살 것이 아니요
    살고자하는 마음
  6. 2007/08/21
    모든 의를 이루는 것이 합당하니라
    살고자하는 마음

네 오른눈이 너로 실족케 하거든 빼어 내버리라

어떤 자가 자신과 가족이 누워 잘 수 있는 땅과 먹고 살만한 돈을 가지고 있었으나 더 많이 가지려는 욕심을 품고 온갖 편법과 불법을 다 저질렀다. 자신이 필요이상의 땅과 돈을 취할수록 고통에 처하는 사람들이 늘어난다는 사실을 알면서도 이것저것 늘어나는 것들을 보며 기쁘고 행복했기 때문이었다. 그러다 결국 위법이 드러나 그 나라의 재판관에게 갔다. 하지만 재판관은 그가 무죄라며 풀어주자 백성들은 그것이 어떻게 죄가 아니냐고 물었다. 이에 재판관은 이 사람은 큰 공장을 지어 많은 백성들에게 일자리를 주었고 사회적으로 유익한 일들도 했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그 말을 듣자 배부른 자들은 그 심판이 옳게 여겨졌으나 가난한 자들은 그 부자가 큰 공장을 세우며 유익한 일을 한 것은 결국 자기를 위한 것이었음을 깨달았다. 이번에는 좋은 자리에 앉아있는 자가 더 높은 곳에 올라가고 싶은 권력욕으로 온갖 편법과 불법을 저지르다 역시 재판관에게 불려갔다. 그러나 재판관은 이 사람은 백성과 나라를 다스리는 중요한 일을 하고 있으니 풀어준다고 했다. 그러자 권력에 취한 사람들은 높은 자리에 앉은 자는 범죄 후 감옥에 들어가지 않아도 괜찮다고 생각했으나 배고프고 목마른 자들은 그것이 잘못된 판결이라는 마음의 판단이 섰다. 마지막으로 TV를 통해 백성들에게 얼굴과 이름이 알려진 어떤 자도 명예를 더 얻고자 온갖 편법과 불법을 다 저질렀다. 그러나 재판관은 이 사람이 감옥에 갇히면 누가 사람들에게 재미있는 걸 보여주겠느냐며 풀어주었다. 그러면서 어떤 죄가 있어도 감옥에 보내지 말고 모든 사람들을 사랑하고 이해하며 하나되어 잘살자고 말했으나 사회의 도움을 받지 못한 가난한 자가 가게에서 라면 24개와 워셔액 1개를 훔치자 징역 10개월의 심판을 내린 후 자신은 의롭고 정직한 재판관이라며 어깨에 힘을 주었다. 그러므로 그 나라의 온 백성들은 돈과 높은 자리와 명예를 얻고자 점점 더 어떤 말과 어떤 일도 다하기 시작했다. 또한 다른 사람들과 자신의 모든 불법을 경제발전과 사랑이라는 이름으로 다 덮었으니 그 나라는 완전히 콩가루가 되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백성들은 배고프거나 목말라하지 않고 오히려 자신도 그것을 얻고 싶었기에 그 나라에서 나오지 않았다. 하지만 과부와 고아와 목에 깁스를 한 사람은 난민이 되어 바다를 헤매고 다녔으되 목이 곧은 자는 자신이 왕이 되기 위함이요 과부와 고아는 사랑과 정의의 나라를 찾고자 함이었다.
 
이 비유에서 나라는 그리스도의 신령한 신부인 교회를 의미하니 백성은 거듭난 후 그리스도의 몸에 거하는 자들을 돈 많은 자는 외모와 능력이 좋은 교인을 높은 곳에 앉은 자는 말씀을 가르치며 전하는 목자를 인기 있는 자는 은사와 열심을 가진 자를 재판관은 교회를 다스리는 자를 의미한다. 그러므로 감옥은 불의하고 죄악된 세상을 의미하되 이 세상은 마지막에 영원한 사망으로 들어간다. 그리하여 살고자하는 마음을 가지고 아버지의 뜻과 거룩하고 영원한 셋째하늘을 소망하는 자들은 원수가 공중권세를 잡고 이끌어가는 이 세상을 소망이 없는 헛된 곳이라고 부른다.
 
그런데 그리스도께서는 이 말씀을 썩어질 육의 욕심을 내려놓고 이 세상에서 나와 구별되어 자신의 거룩한 한 몸을 이룰 자들에게 허락하셨다. 즉 그리스도께서는 앞으로 십자가 후의 일곱 교회시대에 아버지의 뜻을 이루기 위해 여러 지체들이 한 교회를 이루며 그 모든 교회들이 자신의 한 몸을 이루는 것을 상징하여 실족케 하는 지체를 빼어 내버리라는 이 명령을 전하신 것이다.
 
그러므로 교회라는 것은 그들의 머리 되신 그리스도를 따르며 주님의 말씀에 순종하는 거룩하고 정결한자들의 모임이니 이 말씀에 따라 여러 지체들이 모여 한 교회를 이룰 때 어느 한 지체가 범죄하면 그 범죄한 혼을 잘라내는 것이 옳다. 그래야 다른 지체들에게 그 죄가 전해지지 아니하며 그리하여 의와 거룩을 유지한 다른 영혼들이 아버지의 거룩하고 영원한 본향에 들어가 영광의 자유에 이르는 것이 옳기 때문이다.
 
결국 거룩한 공동체에서는 그가 어떠한 능력과 열심을 갖추었다 할지라도 그가 말씀을 전하며 다스리는 목사와 장로라 할지라도 범죄한 후 세 번의 기회를 얻었으나 회개하고 돌이키지 아니하면 손을 자르는 것이 옳다. 즉 그의 손을 놓아주어 그가 원하는 육의 욕심을 마음껏 취하며 불의와 죄악을 마음껏 행하도록 다시금 세상으로 들어가게 해주는 것이 인격적으로 옳은 결정이다. 반면 그가 아무리 하찮고 가진 것과 배운 것이 없고 아무런 능력이 없어도 살고자하는 마음을 가지고 말씀에 순종하는 자라면 그 연약한 자와 함께 하는 것이 더욱더 거룩한 한 몸에 유익을 끼친다.
 
이처럼 십자가 이후로 이 땅에서 일곱 교회시대에 그리스도와 함께 하는 거룩하고 정결한 교회는 한 사람의 행하는 일과 능력과 위치를 보지 아니하고 오직 그 공동체의 모든 것을 보고 판단하는 것이 모든 지체들의 그 영원한 생명과 아버지의 기쁘신 뜻을 위하여 옳은 것이다.
 
그리하여 영원한 셋째하늘에 계신 아버지와 낙원이 있는 둘째하늘의 심판대에 앉아계신 아들과 이 첫째하늘에서 그리스도의 피와 생명이 있는 곳에 충만하게 임하여 계신 거룩하신 영께서 불법을 돌이키지 않으려는 자들을 어찌 세상에서 건져내시리요? 내가복음을 주장하는 목이 곧은 자들을 어찌 한 몸으로 이끄시리요? 고자하는 마음으로 세상에서 길을 잃고 영적인 아버지와 영적인 남편을 찾아 헤매는 고아와 과부를 어찌 참된 진리가 있는 곳으로 이끄시지 아니하시리요?
 
“만일 네 오른눈이 너로 실족케 하거든 빼어 내버리라 네 백체 중 하나가 없어지고 온 몸이 지옥에 던지우지 않는 것이 유익하며 또한 만일 네 오른손이 너로 실족케 하거든 찍어 내버리라 네 백체 중 하나가 없어지고 온 몸이 지옥에 던지우지 않는 것이 유익하니라”
 
생명의 근원되신 아버지와 그의 아들이시오 창조자이신 그리스도를 아는 자는 이 말씀을 안다면 이를 지키면 은혜와 유익이 있을 것이요, 아버지와 아들을 모르는 자는 말씀에 자신의 생명이 있으니 이 은혜를 입는 것이 유익하다.

마음에 이미 간음하였느니라

사람의 눈에 아름답게 보이는 먹음직한 사과를 풍성히 맺는 한 그루의 사과나무가 있었다. 그런데 어떤 사람이 자기가 원하는 일을 열심히 하다 가만히 지켜보니 그 나무에 열린 사과를 따먹은 한 사람이 처음엔 맛있다며 기쁘게 먹었으나 잠시 후 악한 병에 걸려 몸과 입이 더러워지고 또한 뱃속도 더러워져 시름시름 앓다 죽는 것이었다. 그리고 그렇게 두 사람 세 사람이 차례대로 죽었다. 이에 그것을 지켜보던 사람은 그 나무에 열리는 열매들이 독 사과임을 알았다. 그러므로 그는 그 나무에 열린 아름답고 먹음직스럽게 보이는 독 사과들을 모두다 따버렸다. 그러나 잠시 후 또다시 독 사과들이 풍성히 맺혔으니 자기 일을 열심히 하던 사람의 수고는 헛된 것이 되어 버렸다. 잠시 후 자기의 힘으로 나무를 잘 기르려고 노력하던 사람이 동일한 깨달음을 얻고 그 나무의 모든 가지들을 다 잘라버렸다. 하지만 다음해에 새로운 가지들이 나왔으니 그곳에 또다시 독 사과들이 풍성히 달렸다. 그러므로 그의 힘든 수고도 헛된 것이 되어버렸다. 마지막으로 세 번째 사람은 하늘에서 좋은 땅에 은혜가 내리면 나무가 잘 자란다는 믿음을 가지고 있는 자였으니 역시 동일한 깨달음을 얻은 후 그 나무주위에 힘겹게 땅을 파서 아예 그 뿌리를 뽑아버린 후 포도나무를 심었다. 그러므로 그 나무는 죽고 다시는 독 사과가 열리지 않되 포도열매가 풍성히 열렸다.
 
이와 같이 사람의 모든 불의와 허물은 오직 마음에서부터 생기는 것이니 음욕이나 탐내는 것이나 미워하는 것이나 거짓말 하는 것이나 혈기를 부리는 모든 죄악들은 오직 그의 마음에서부터 나오는 것이다. 아버지께서는 자신의 뜻을 이루시고자 태초에 에덴동산에서 둘째사람을 지으셨을 때 아담의 마음에 오직 선함과 의로움만을 넣어주셨으나 반대로 아버지의 뜻을 거부하며 대항하다 회개치 않고 셋째하늘에서 쫓겨난 원수가 사람의 마음에 그 선악과의 뿌리를 심었기 때문이다.
 
사람은 이러하니 누구든지 자신의 마음에 있는 그 죄악의 나무의 뿌리를 뽑아내지 아니하면 그가 돌 하나도 돌 위에 남지 않게 될 건물을 찾아 들어가 아무리 예배를 많이 드려도 머리를 깎고 산사에 들어가 아무리 오랫동안 수행하며 도를 닦아도 아무리 책을 읽으면서 인격을 수양해도 깊은 산속에 파묻혀 홀로 살며 죽을 때까지 아무리 잊으려 해도 반드시 거기서 죄의 싹이 튼다. 그리고 그것이 싹이 틀 때는 자신의 마음과 생각과 몸과 입술로 사형에 해당하는 죄들을 범하는 것이니 그 영혼이 육신을 나왔을 때 아버지께서는 아들의 피로 회개치 아니한 자들을 심판하시어 유황불 못으로 보내시되 아들의 피로 거듭남은 있으나 자신의 마음속 죄의 뿌리를 그대로 품고 있던 자들은 온전케 되는 과정으로 들여보내시어 그들이 마음과 생각을 깨끗게 한 후에 받아주신다.
 
반면 거듭난 후 자기의 생각에서 돌이켜 의를 따르며 아버지의 뜻을 이룬 영혼에게는 그가 땅에 있는 장막 집이 무너졌을 때 그리스도를 통해 심판하신 후 그의 거룩에 맞게 그리스도와 같은 거룩한 육체를 입히시고 자신의 거룩한 자녀로 삼으신다. 또한 그 영원한 집에 들어가 영광의 자유에 이른 자들에게 자신의 영광과 권세를 나눠주시어 그들로 하여금 천년왕국과 또한 그 후에 올라갈 셋째하늘에서 의롭고 거룩한 모든 것들을 기쁘고 즐겁게 누리게 하시며 온전케 된 백성들을 빛으로 다스리며 셋째하늘을 영원토록 번성하게 하신다.
 
아버지께서는 이렇게 자신의 손으로 직접 지으신 영원한 집을 셋째하늘에 두셨으니 거듭난 후 그 푯대를 소망하는 자들은 자신의 마음과 믿음을 거룩에 두고 육신의 장막에 있을 동안에 아버지의 뜻에 이르고자 애쓰게 된다. 그러나 사람은 죄로 인하여 자기의 힘과 노력으로 아무리 애써도 의롭거나 거룩해질 수 없으니 오직 살고자하는 마음을 가지고 인자의 살과 피를 의지하며 말씀에 순종하는 자가 그 죄의 뿌리를 뽑아낼 수 있다. 그러므로 거룩에 이른 영혼은 이 땅에 있을 동안 마음과 생각과 몸과 입술로 거룩한 열매들을 풍성히 맺게 된다. 그리하여 아담이 범죄하기 전 아버지께서 주신 그 선하고 의로웠던 창조로 회복한 자는 즉 새로운 피조물이 된 성도(聖徒)는 비로서 아버지께로는 기쁨이요 다른 사람들에게도 비로소 선을 행할 수 있는 영혼이 된다.
 
바로 이 주님께로의 기쁨과 형제자매를 향한 선을 위해 아버지와 아들께서는 사람들이 자기의 마음에 있는 그 죄의 뿌리를 뽑아내므로 불의와 허물들을 모두 다 돌이키길 원하신다. 그러므로 그리스도께서는 사람들이 이것을 깨닫고 썩어질 육의 욕심을 내려놓고 사망으로 들어가고 있는 소망 없는 이 헛된 세상에서 돌이켜 나와 자신을 따르며 아버지의 뜻을 이루어가도록 마음에 이미 간음하였다는 이 말씀을 허락하시므로 거룩과 또한 거룩한 육체의 부활을 소망하게 하신 것이다.
 
“또 간음치 말라 하였다는 것을 너희가 들었으나 나는 너희에게 이르노니 여자를 보고 음욕을 품는 자마다 마음에 이미 간음하였느니라”
 
생명의 근원되신 아버지와 그의 아들이시오 창조자이신 그리스도를 아는 자는 이 말씀을 안다면 이를 지키면 은혜와 유익이 있을 것이요, 아버지와 아들을 모르는 자는 말씀에 자신의 생명이 있으니 이 은혜를 입는 것이 유익하다.

네가 호리라도 남김이 없이 다 갚기 전에는

아버지께서는 아담에게 생기를 불어넣어주셨으니 둘째사람은 인격체로서 살고자하는 마음을 가질 수 있다. 즉 사람은 자신의 인격적인 판단과 결정으로 살고자하는 마음을 가지면 아버지께서는 믿음을 내려주시니 누구나 아들의 피를 믿고 회개하므로 거듭날 수 있다. 그리고 거듭난 자는 이제 영의 구원을 받은 자이니 그는 자신이 마음과 생각과 말과 행위로 범한 죄들로 인하여 들어가게 될 그 영원한 유황불 못의 형벌과 사망의 심판에서 벗어나는 은혜를 받게 된다.
 
뿐만 아니라 이제는 자신의 마음속에서 그 선악과의 뿌리를 끊어낼 수 있는 그 거룩의 길을 걸을 수 있게 된 자가 바로 거듭난 자다. 아버지께서는 이렇게 거듭난 모든 영혼들에게 자신의 거룩한 자녀가 되는 권세를 약속하셨다. 그러므로 거듭난 후 자기의 십자가를 지고 그리스도를 따르며 혼의 구원에 이른 영혼은 그리스도와 같은 거룩한 육체를 얻는다. 그리하여 육의 구원을 이룬 자들에게는 하나님의 자녀가 된다는 그 약속이 이제는 더 이상 권세가 아니요 실제로 거룩한 자녀가 되었으니 언약을 성취한 그들은 큰 구원에 이른 자들이요 그리스도와는 한 형제자매들이며 그의 몸의 신령한 지체들이다.
 
하지만 영이 거듭난 모든 자들이 다 그 온전한 구원의 길을 걷는 것은 아니다. 거듭난 자는 누구나 그 권세의 약속을 믿고 구원의 길을 걸을 수 있으나 자신의 생각과 의를 돌이키며 혼의 구원을 이루어가는 그 십자가의 길을 두렵고 고난스럽게 여기기에 끝까지 외면하는 자들이 많다. 마치 세상의 모든 사람들이 다 영이 거듭나는 은혜를 공평하게 얻을 수 있으나 오히려 많은 자들이 살고자하는 마음을 가지고 자신이 범한 허물을 회개하고 돌이키는 것을 두렵고 고난스럽게 여기기에 그 은혜를 끝까지 거부하고 영원한 형벌의 사망으로 들어가는 것과 마찬가지이다.
 
그런데 이렇게 거룩한 육체를 입고 영화로운 부활에 이르는 심판은 오직 둘째하늘의 낙원에 계신 그리스도께서 아버지께서 정하신 말씀과 기준대로 내리신다. 그러므로 거듭남의 은혜가 있든 없든 그가 은혜로 거룩에 이르렀든 이르지 못했든 모든 사람에게는 육신의 죽음이 공평하게 한번씩 정해져 있다. 그리하여 죽음 후에는 누구나 다 그리스도의 그 의롭고 정직한 심판대에 서게 된다.
 
그때 그리스도의 심판대에서 거룩함이 드러난 영혼에게는 아버지께서 자신의 손으로 지으신 거룩하고 영광스런 육체를 그 거룩한 영혼에게 입혀주신다. 그러면 거룩한 육체를 얻은 영혼들은 아버지의 거룩한 자녀로서 그리스도의 거룩한 형제자매로서 그리스도의 신령한 몸으로서 아버지께서 예비하신 영광의 자유에 이르고 또한 셋째하늘의 모든 영광과 권세도 상속한다. 그리하여 아버지의 뜻을 이루고 구원에 이른 그들이 그리스도를 통한 생명나무의 열매로서 아버지의 거룩한 자녀가 되는 그 언약을 영원히 성취하게 되는 것이다.
 
한편 거듭남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썩어질 육의 욕심과 세상의 헛된 영광에 첫사랑을 빼앗긴 자와 살고자하는 마음을 버리고 십자가의 거룩한 속죄의 피에서 율법의 행위로 돌아선 자와 자신의 생각에서 돌이키지 못하고 끝까지 불의한 자신의 의를 따르는 자는 그리스도의 의를 마음으로 믿고 의를 따르지 못하니 거룩을 이루지 못한다. 아버지께서는 이렇게 의를 따르지 않은 자들에 대하여는 그들의 모든 것이 거룩할 때까지 받아주시지 못하신다. 그러므로 아버지께서는 그들이 온전케 되는 과정에서 거룩을 이룬 후에야 비로서 셋째하늘의 의로운 백성으로 그들을 받아주신다.
 
이러한 아버지의 의로우시고 공평하시고 정직하신 자녀와 그리스도의 몸과 백성으로의 구원의 계획으로 인하여 그리스도께서는 자신의 피로 거듭난 후 단 한번 주어진 육체의 기회 동안 거룩을 이루지 못한 영혼들에게 유황불 못의 영원한 형벌과 사망의 심판을 내리지 않으신다. 그들의 영이 그리스도의 피를 끝까지 붙들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그리스도께서는 피가 있는 영혼들에게는 온전케 되는 그 과정으로 들어가 너의 마음과 생각을 깨끗하게 하라는 심판을 내리신다.
 
하지만 온전하게 되는 과정의 심판은 그리스도전의 유대인에게 주어지는 것이 아니요 오직 은혜시대에 거하는 자들에게만 주어진다. 그러므로 거듭난 영혼들 중 그곳에서 말씀에 순종하므로 자신의 거룩을 다 이룬 자들에 대하여는 아버지께서 그들을 셋째하늘의 의로운 백성으로 받아주시니 이것은 아버지께서 오직 교회시대에만 베풀어놓으신 은혜이다. 그리하여 일곱교회시대의 거듭난 자들 가운데 이런 식으로 셋째하늘에서 아버지의 의로운 백성들이 되는 자들이 매우 많다.
 
마찬가지로 유대인의 경우에도 그리스도를 따르지 아니하고 의문의 율법과 선악의 죄를 따르므로 거룩하지 못하였을 때에는 아버지께서도 아들께서도 그를 용납하시지 못하시니 그가 자신의 죄값을 다 치르고 돌이킬 때까지 거기서 나오지 못하고 머물러 있게 된다. 십자가 후의 이방인들 가운데 거듭난 후 한 말씀에라도 순종치 않은 이방인들도 마찬가지다. 그러므로 주여 주여 라고 기도하며 나는 아버지와 아들께 택함 받은 자요 믿는 자라 하되 자신의 거룩하지 못한 것들을 남김없이 다 고쳐야 함에도 그것을 두렵고 고난스럽게 여기므로 자신을 끝까지 돌이키지 못한 자들이 그 어두운 곳에서 오직 슬피 울며 이를 가는 일 외에 다른 무슨 말과 행위를 하리요?
 
“너를 송사하는 자와 함께 길에 있을 때에 급히 사화하라 그 송사하는 자가 너를 재판관에게 내어 주고 재판관이 관예에게 내어 주어 옥에 가둘까 염려하라 진실로 네게 이르노니 네가 호리라도 남김이 없이 다 갚기 전에는 결단코 거기서 나오지 못하리라”
 
생명의 근원되신 아버지와 그의 아들이시오 창조자이신 그리스도를 아는 자는 이 말씀을 안다면 이를 지키면 은혜와 유익이 있을 것이요, 아버지와 아들을 모르는 자는 말씀에 자신의 생명이 있으니 이 은혜를 입는 것이 유익하다.

그 후에 와서 예물을 드리라

어떤 유대인이 자기의 마음 안에 옆에 있는 유대인형제에 대해 미움을 품고 있었다. 하지만 그는 그와 사화하지 않은 채 제물을 들고 제사를 드리러 뜰로 들어갔다. 셋째하늘의 성소에는 거룩한 자들만이 들어갈 수 있음을 알면서도 미움이라는 죄악된 마음을 그대로 품고 거룩한 자들과 함께 거하기 원했던 것이다. 이에 거룩하신 영께서는 그가 셋째하늘의 성소에 설 수 있도록 도와주시고자 그의 마음속에 이러한 말씀을 주셨다. “거룩한 자가 제물을 들고 가서 아버지께로 제사를 드리는 것이 아니오? 형제에 대한 미움을 품은 자를 어찌 거룩하다 하리요?” 그리고는 그가 미워하는 영혼도 생각나게 해주셨다. 그러나 그런 감동과 도움을 얻고도 그는 형제와 화해하지 않고 그냥 제사를 드렸다. 그러다 일년 후 그는 다시 제사를 드리러 나가게 되었으니 거룩하신 영께서는 그의 마음에 이번에는 ‘그가 형제에 대한 미움을 품고 아버지 앞에 나올 때 어찌 그의 제물과 제사를 아버지께서 받으시겠느뇨?’라고 하신 후 그에게 다시금 생각나게 해주셨다. 그러나 이번에도 그는 원한을 풀지 않고 그냥 제사를 드렸으니 감동과 도움이 무의미해졌다. 다시 일년이 지나 그때가 되자 거룩하신 영께서는 다시금 ‘말씀에 순종치 않는 자를 어찌 거룩하다고 하리요? 또한 그가 형제에 대한 미움을 품고 제물과 제사를 아무리 많이 드려도 아버지께서는 그것을 받으시지 않으시겠노라.’하시며 또다시 생각나게 해주셨으나 그는 세 번째 감동과 도움도 거부하고 자신의 마음을 돌이키지 않았다. 그런데 다음해가 되자 그의 마음에는 더 이상 아무런 감동도 말씀도 떠오르지 않았으며 미워하던 그 형제가 생각나도 아무렇지 않았다. 말씀의 책망과 찔림을 거부한 그에게 인격체이신 거룩하신 영께서 더 이상 감동과 도움을 주시지 않으셨기 때문이다. 그리하여 그는 그 미워하던 형제와 마주치지 않고자 슬슬 피해 다녔으며 때로는 그 죄악된 마음을 품고 아무렇지도 않은 듯 대화까지 했다. 하지만 이렇게 율법과 계명과 법도와 율례를 알고도 순종치 않은 유대인은 아버지께로 갈 수 없으니 그는 회개치 않고 돌이키지 않은 그 마음을 품고 또한 그 마음에서 나오는 여러 행위의 죄악들과 함께 영원한 형벌의 사망으로 내려갔다.
 
그런데 제사를 드리기 전에 먼저 형제와 화해하라는 그리스도의 이 말씀은 그리스도의 전의 유대인들에게만 주신 것이 아니요 그리스도의 십자가 이후에 아버지께로 드리는 모든 예배와 또한 제물들을 포함한 것이다. 그러므로 초대교회와 일곱교회시대와 또한 이 라오디게아시대의 끝에도 거룩한 자녀를 얻기 원하시는 아버지께로 예배를 드리러 나오기 전에 유대인만이 아니요 이방인도 하나 되지 못한 그 형제자매와 원한을 풀고 서로 화목을 이룬 후 참여하는 것이 마땅하다.
 
하지만 만일 거듭남의 은혜를 얻은 후 늘 예배에 참여하는 자의 마음에 이런 찔림과 책망과 말씀의 감동이 없는 것은 그가 거룩에 이르도록 도와주시는 거룩하신 영께서 그 도움을 멈추셨기 때문이요 그리스도께서도 이미 자신의 거룩하신 한 몸에서 그 더러움을 끊어내셨다. 그리하여 이런 사생자는 주일예배와 수요예배와 새벽기도를 아무리 드려도 여섯째 날에 거룩한 살과 피를 아무리 먹고 마셔도 거룩한 빛을 얻지 못한다. 오히려 말씀을 들을수록 성찬을 먹고 마실수록 썩어질 돈과 세상의 헛된 영광을 얻고자 어두운 세상으로 더 깊이 빠져들어가며 더욱더 죄를 쌓되 그들은 온전케 되는 과정으로 들어가는 자들과 달리 빛을 거부하고 어둠을 원했기에 자신이 원하던 대로 그 어두운 곳으로 들어가 영원히 슬피 울며 이를 갈게 되는 것이다.
 
반면 자신의 마음에 그런 감동이 있는 자는 살고자하는 마음을 포기하지 않은 그의 마음속 영 안에서 아직도 거룩하신 영께서 돕고 계시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가 형제자매와 원한을 풀고 화목한 후에 한 몸에 거하는 거룩한 자들과 또한 성도가 되고자 거룩에 애쓰는 자들과 동거하며 마음 안에 있는 그 선악까지 끊어내고자 애쓰는 자에게는 아버지께서도 크신 은혜를 베푸신다. 그러므로 거룩하신 영께서도 그런 참 아들을 더욱더 계속 도와주시며 그리스도께서도 자신의 거룩하고 정결한 한 몸에서 제하지 않으시고 오히려 형제자매로 대우하며 더욱더 가까이하신다. 그리하여 영이 거듭난 후 비밀의 영광을 소망하며 거룩에 마음과 믿음을 두고 말씀의 채찍과 징계에 순종한 자들이 혼의 거듭남을 이룬 후 거룩한 육체로 거듭나 아버지의 거룩한 자녀가 되는 것이다.
 
“그러므로 예물을 제단에 드리다가 거기서 네 형제에게 원망 들을 만한 일이 있는 줄 생각나거든 예물을 제단 앞에 두고 먼저 가서 형제와 화목하고 그 후에 와서 예물을 드리라”
 
생명의 근원되신 아버지와 그의 아들이시오 창조자이신 그리스도를 아는 자는 이 말씀을 안다면 이를 지키면 은혜와 유익이 있을 것이요, 아버지와 아들을 모르는 자는 말씀에 자신의 생명이 있으니 이 은혜를 입는 것이 유익하다.

형제에게 노하는 자마다 심판을 받게 되고

진리는 오로지 아버지의 입에서 나오는 아버지께 속한 말씀이요 순종하므로 아버지께 갈 수 있는 말씀이다. 그러므로 영생을 주시는 빛 되신 아버지께로 인도하지 아니하고 썩어질 육과 영원한 사망으로 들어가고 있는 이 어두운 세상으로 이끄는 말과 글은 전부다 어둠에 속한 언어다. 그것이 비록 유명한 자의 말이요 정치인의 약속이요 그럴듯한 시나 소설이나 영화의 내용이요 사실을 전한다는 뉴스요 유행가 가사요 심지어 목사의 설교라도 진리가 아닌 말과 글은 다 어둠이다.
 
아버지께서는 바로 그런 진리를 오직 아들에게 주셨으며 그리스도께서는 진리가운데 있는 율법과 계명과 법도와 율례를 셋째하늘과 둘째하늘과 이 첫째하늘을 창조하신 후 가장 먼저 아브라함에게 언약과 함께 주신 후 모세를 통하여는 모든 유대인에게 주셨다. 그러자 광야교회에 거하던 유대인가운데 셋째하늘로 올라가 아버지와 영원히 함께 거하길 원하는 자들은 그것을 받은 후 자신의 마음과 몸과 정성과 뜻을 다하여 지켰다. 또한 당연히 자식의 영혼도 사랑하는 마음이 있으니 자기후손들의 손목과 미간에 붙여 아침부터 저녁까지 그것을 가르쳐 지키게 했다.
 
그러나 육의 욕심과 교만과 세상의 영광을 좇아간 성전의 지도자들은 지키기 힘든 말씀을 바꾸었다. 그러므로 생명의 율법은 점점 의문의 율법으로 변해갔다. 예를 들어 생명의 율법에는 살인에 대하여 이렇게 되어 있었다. “마음으로 살인한 자는 거룩에 이르기 위하여 마음의 고통이 있을 것이요 실제로 피를 흘린 자에게는 아버지께서 아들을 통하여 공의롭게 심판하시리니 그가 피의 값을 치르겠노라.” 그러나 의문의 율법은 부담이 되는 ‘마음’을 빼버리고 누구든지 살인하면 심판을 받는다고만 가르쳤다. 그리하여 예로부터 유대인들은 늘 마음이 아닌 행위로만 지켜오고 있었다.
 
하지만 광야교회의 유대인들에게 신령한 율법을 주신 그리스도께서는 육신을 입고 이 땅에 오셨을 때 백성들의 영혼을 아버지께로 인도하는 일을 하는 그 목자들이 바꾼 의문의 율법을 본래에 주셨던 의미대로 올바르게 가르쳐주길 원하셨다. 그러므로 그리스도께서는 자신을 따르는 제자들과 70인과 군중이 십자가 이후의 신약교회 안에 있을 때 은혜가운데 거하도록 살인에 대한 계명을 다음과 같이 자세히 설명해 주셨다.
 
“한 형제지간에 미워하는 자와 시기하는 자와 분쟁을 일으키는 자는 아버지께서 그 영혼을 받아주시지 못하시니 그에게 참으로 안된 일이로다. 이는 그가 자기의 한 몸 된 형제를 미워하였으니 아무리 머리 되신 그리스도의 은혜를 얻고자 하여도 은혜를 얻지 못하리니 그가 사망에 이르는 것이니라. 그러므로 한 형제를 위하며 또한 한 형제를 사랑하는 것이 오직 그리스도의 은혜를 얻는 길이니라.”
 
그리스도께서는 자신이 전하신 이 아버지의 말씀대로 십자가 전에 있던 사람들과 그리스도의 후의 사람들을 심판대에서 다음과 같이 공의롭게 심판하셨으며 지금도 그렇게 심판하고 계신다.
 
우선 그리스도의 십자가 전에 있던 영혼들은 육에서 떠났을 때 심판 후 아버지께서 받으시지 못하시는 자는 곧바로 땅속에 있는 무저갱의 불로 들어갔다. 하지만 아버지께서 받으실 자들은 낙원이 있는 둘째하늘에 그들을 두시고 그리스도께서 이 첫째하늘에 내려와 십자가에서 죽음을 당하시고 거룩한 육체를 입은 후에 심판대에 앉아 그 영혼들을 심판하셨다. 그러므로 첫 열매이신 그리스도보다 먼저 부활한 자는 없다.
 
한편 십자가 이후의 영혼들은 육에서 나오면 둘째하늘로 올라가 그리스도께 곧바로 심판을 받되 아버지께서 받으시지 못하시는 자들 가운데는 땅속의 무저갱으로 들어가는 자도 있고 슬피 울며 이를 가는 곳으로 들어가는 자도 있고 둘째하늘의 온전케 되는 과정으로 들어가 거룩을 이룬 후 셋째하늘의 의로운 백성이 되는 자도 있다. 하지만 아무나 온전케 되는 그 과정으로 들어가 의인의 영이 되는 것이 아니요 반드시 거듭난 자로서 그리스도의 피를 붙들고 있어야 한다.
 
반면 살고자하는 마음을 가지고 그리스도를 따르며 그리스도께서 전하신 진리의 말씀에 마음과 몸과 정성과 뜻을 다해 순종하므로 아버지의 뜻을 이룬 영혼들은 썩어질 육의 장막에서 나온 후 그리스도의 심판대로 가서 심판을 받은 후 그리스도와 같은 거룩하고 영광스런 육체를 입고 부활한다. 그러므로 진리에 죽기까지 순종한 영혼들은 아버지의 거룩한 자녀의 생명에 이르게 된다.
 
이처럼 그리스도께서는 심판대에서 자신의 전에 있던 사람들을 공의롭게 심판하신 것처럼 교회시대의 사람들도 지금까지 공의롭게 심판하고 계신다. 하지만 아버지께서 아들을 다시 살리신 후 심판의 권위를 주신 것과 그리스도께서 맏아들이라 인정받으신 것은 육에 계실 때 죽기까지 말씀에 순종하셨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그리스도를 믿는 자들이 아들과 같은 그 영광스런 생명의 심판에 이르는 것도 이와 같으니 거룩한 육체를 입고 영광의 자유에 이르는 것은 오직 끝까지 순종한 자들에게 상급으로 주어지는 것이다.
 
“옛 사람에게 말한 바 살인치 말라 누구든지 살인하면 심판을 받게 되리라 하였다는 것을 너희가 들었으나 나는 너희에게 이르노니 형제에게 노하는 자마다 심판을 받게 되고 형제를 대하여 라가라 하는 자는 공회에 잡히게 되고 미련한 놈이라 하는 자는 지옥 불에 들어가게 되리라”
 
생명의 근원되신 아버지와 그의 아들이시오 창조자이신 그리스도를 아는 자는 이 말씀을 안다면 이를 지키면 은혜와 유익이 있을 것이요, 아버지와 아들을 모르는 자는 말씀에 자신의 생명이 있으니 이 은혜를 입는 것이 유익하다.

너희 의가 서기관과 바리새인보다 더 낫지 못하면

어떤 사람이 기쁨과 감격과 눈물과 마음의 무거운 짐을 내려놓는 평안을 두 사람에게 허락한 후 이런 말을 해주었다. “하루에 세 번 깨끗하게 손을 씻으면 거룩하게 될 것이니라. 하지만 그 행위를 하되 거룩해져서 아버지와 함께 거하겠노라는 마음이 있어야 하노라. 또한 거룩해질 것이라는 믿음을 가지고 자신의 마음과 몸과 정성과 뜻을 다해 씻어야 하겠노라.” 이 말을 듣자 첫 번째 사람은 아버지와 함께 거하고 싶은 마음을 품었다. 그러므로 믿음을 가지고 자기의 마음과 몸과 정성과 뜻을 다해 손을 씻으니 얼굴에서 땀이 흘렀다. 또한 그의 온 마음이 오직 하루에 세 번 손을 깨끗하게 씻는 그 시간과 장소에 다 가있었다. 그러다 그는 자기가 들은 말을 기쁨과 감격과 눈물과 마음의 무거운 짐을 내려놓는 평안을 얻은 사람들에게 전해줄 기회가 생겼다. 그러므로 그는 자신이 들은 말을 그대로 전하며 마음을 다해 손을 씻는 행함도 보여주었다. 그리하여 그 말을 전해들은 자들 가운데 아버지께 마음이 있는 자들도 그 말을 전해준 자와 함께 거룩의 능력이 나타나 마음의 소원을 이루었다. 반면 두 번째 사람도 하루에 세 번 자신의 손을 씻었으나 그의 마음에는 아버지가 없었으니 씻는데도 마음이 없었다. 그러므로 손을 씻는 행위는 보였지만 땀과 정성을 드리지 않았으되 오히려 자기가 원하는 일을 위해서는 마음과 몸과 정성과 뜻을 다해 땀 흘리다 때가 되자 하루에 세 번 형식적으로 손을 씻었다. 그러면서 나는 하루에 세 번 손을 씻고 있으니 거룩한 자라고 생각했다. 그러다 그 사람도 사람들에게 자기가 들었던 말을 전해줄 기회가 생겼으니 그는 그 말을 전하며 자신의 마음 없는 행위도 보여주었다. 그러자 그것을 보고 들은 자들 가운데 아버지께로 향한 마음과 믿음을 돈과 세상과 바꾼 자들은 그의 말과 행위가 옳다고 여기며 그 시간과 장소에 모여 자신이 원하는 것을 위해 온 마음과 몸과 정성과 뜻을 다하되 아버지의 뜻을 위해서는 그저 형식적으로 씻었다. 게다가 그렇게 거룩의 모양을 보이며 오히려 거룩을 위해 손을 씻는 자들을 보고는 미쳤다고 했다.
 
이처럼 그리스도께서 말씀하시는 바리새인과 서기관의 의라는 것은 우선은 아버지의 뜻을 이루기 위하여 말씀을 지키려는 그 마음이요 다음으로는 말씀을 지키려는 그 행위를 뜻한다. 하지만 바리새인과 서기관의 의라는 것은 말씀을 지키는 것이로되 그들이 만일 아버지의 말씀을 지키는 것이 힘들 때는 말씀을 바꾸어서 그 변화된 말씀을 지켰다. 즉 지키기 어렵거나 지키기 싫은 것들은 그 말들을 바꾸어 자신들이 지키고자 하는 것을 지켰으며 또한 지키기 쉽게 바꾸어서 지켰다. 그리하여 모세 이후로 그것이 계속적으로 전해 내려와 의문의 율법과 사람의 유전이 된 것이다.
 
결국 그들이 사람에게 거룩하고 영원한 생명을 주는 그 신령한 율법을 지키지 못했던 이유는 그들의 마음이 다른 곳에 있었기 때문이요 아버지께서도 육과 세상에 마음을 빼앗긴 자들에게는 말씀과 진리의 깨달음을 주시지 않으시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성전의 종교지도자들을 따르는 자들은 자기의 위에 있는 자들이 바꾼 그 잘못된 말씀만을 지키고 말하며 행하되 자신이 말하고도 그 말의 뜻을 몰랐고 성전에서 어떤 행위를 하되 왜 하는지를 모르고 행했다. 물론 그들도 말씀을 지키는 경우가 있었으나 잘못된 의도로 지켰으며 또한 자기에게 유익이 있을 때는 지켰다.
 
하지만 할례를 받거나 영이 거듭나 성전의 뜰로 들어간 사람은 이제 말씀에 순종하므로 혼의 구원에도 이르니 거룩에 이른 자가 거룩한 육체의 생명을 입고 그리스도와 함께 천년왕국과 또한 그 후에 올라가는 영원한 셋째하늘에서 왕과 제사장의 다스림에 참여하며 또한 영광의 자유에도 이른다. 그러므로 그리스도께서는 아버지를 믿는 유대인들과 이방인들이 성전의 뜰만 밟고 가만히 서있지 아니하고 이제는 아버지의 말씀을 마음과 정성을 다해 그대로 지키므로 거룩에 이르러 성소까지 들어가길 원하신다. 즉 서기관과 바리새인의 의보다 더 낫기를 원하신다.
 
또한 아버지께서도 아들께서도 살고자하는 마음을 가지고 말씀을 지키는 자에게는 늘 거룩하게 되는 능력의 복을 주시며 말씀에 숨겨진 비밀의 깨달음도 허락하신다. 그러므로 그들은 거룩하고 정결한 한 몸 안으로 모였을 때 자신이 왜 그런 행위를 하는지 깨닫고 움직이며 또한 자신이 무슨 말을 하는지 알고 말을 하게 된다. 그리하여 그들은 생명의 말씀을 통하여 이 땅의 모형에서 기쁨을 얻고 몸의 소망가운데 거하다 육의 장막을 벗은 후에는 손으로 짓지 아니한 몸을 얻어 실제로 왕과 제사장의 그 다스림과 영광으로 들어가는 것이다.
 
그러나 마음을 다해 지키지 아니하는 자는 거룩의 복과 말씀의 깨달음을 얻지 못하니 오히려 그 말씀들이 그에게 더욱더 부담이 된다. 그러므로 그들은 그리스도께서 십자가에서 이루므로 영원히 지켜야 할 신령한 율법과 그리스도께서 십자가에서 육체로 폐하신 그 의문의 율법을 구분하지 못하여 안타깝게도 육의 생명을 마칠 때까지 의문의 율법은 열심히 지키며 거룩의 모양만을 보이되 어리석게도 검은 머리 짐승처럼 은혜만을 구하며 생명의 율법은 버린다. 그리하여 그들은 아무리 말씀을 들어도 거룩의 능력이 나타나지 아니하니 육의 생명이 떠날 때까지 이 땅에서 고통과 허무가운데 거하다 나중에는 그리스도와의 다스림과 영광에도 참여하지 못하게 되는 것이다.
 
“내가 너희에게 이르노니 너희 의가 서기관과 바리새인보다 더 낫지 못하면 결단코 천국에 들어가지 못하리라”
 
생명의 근원되신 아버지와 그의 아들이시오 창조자이신 그리스도를 아는 자는 이 말씀을 안다면 이를 지키면 은혜와 유익이 있을 것이요, 아버지와 아들을 모르는 자는 말씀에 자신의 생명이 있으니 이 은혜를 입는 것이 유익하다.

누구든지 이를 행하며 가르치는 자는

어떤 사람이 많은 사람들의 앞에 우뚝 서는 것을 원했다. 또한 많은 사람들을 가르치고 싶었으며 사람들이 자기가 한 말대로 움직이는 것을 보면서 만족했다. 그러므로 그는 많은 사람들의 앞에 서서 이렇게 말했다. “여러분 아무리 돈이 많아도 하루에 세끼이상 먹지 못합니다. 큰 차도 굴러가고 작은 차도 굴러가 자신이 가야 할 곳에 데려다 줍니다. 넓은 집이든 좁은 집이든 부부와 자녀들이 등을 대고 잘 수 있으면 족한 것 아닙니까? 높은 곳에 평생 앉아있는 것도 아닙니다. 그리고 사람은 썩어질 육의 욕심을 품고 세상의 헛된 것을 얻고자 할 때 불의와 죄악을 범하게 됩니다. 게다가 육신은 점점 후패하고 이 세상은 그리스도께서 다시 오실 때 심판을 받아 멸망으로 들어갑니다. 그러나 사람의 손으로 짓지 아니한 거룩한 장막은 아픔과 슬픔과 후회는 없고 영광의 자유가 있으며 아버지께서 기다리시는 셋째하늘은 고통과 이별과 죽음이 없고 영원히 기쁘고 즐거운 곳입니다. 그런데 밝고 빛난 그 좋은 곳에는 거룩한 자라면 누구나 들어갈 수 있습니다. 그러므로 육과 세상에서 마음을 돌이켜 한 마음을 품고 아버지께서 영원한 본향에 쌓아두신 거룩한 육체의 생명에 소망을 두세요. 그리고 십자가에서 이미 아버지의 뜻이 다 이루어졌음을 믿고 자기의 생각에서 돌이켜 자기의 십자가를 지고 그리스도를 따르며 마음과 정성과 뜻과 목숨을 다해 말씀에 순종하며 거룩을 이루어가세요.” 그러나 안타깝게도 정작 이렇게 가르친 그의 마음 안에 썩어질 육의 욕심과 자기가 높아지려는 교만과 헛된 세상의 영광이 있었다. 그러므로 그는 여러 가지 할 일도 많고 사람의 썩어질 육을 도와야 한다면서 적지 않은 돈을 받고 양들의 중간 정도가 적당하다고 말하며 좋은 차를 타고 책이 많고 사람들이 많이 오니 큰 집에서 산다고 했다. 게다가 그는 앞에 서서 가르친 것 중 단 하나에라도 자기의 마음을 다해 순종하는 것이 없었다.
 
그러므로 이 마지막 때에 아버지의 말씀을 가르치고 있는 자가 살고자하는 마음을 포기하고 가르쳐야 할 것을 입술로만 가르치고 행위로는 가르치지 않고 있음은 자신의 마음에 육과 세상의 욕심이 있기 때문이요 정작 자신은 행치 아니하면서도 돌이키지 못하고 계속 가르치는 것은 자신이 바리새인이라는 증거다. 또한 많은 사람들이 그런 목자를 따르는 것은 그가 바리새인임을 몰라서가 아니요 이미 알고 있으나 그가 가지고 있는 육의 부요와 세상의 영광을 자신도 얻기 위함이다.
 
그런데 그리스도께서는 자신의 전에 있던 바리새인과 장로와 율법사와 랍비와 제사장과 대제사장이 바로 그와 마음을 품고 그와 같은 행위를 하며 영원한 사망으로 들어갔음을 알고 계셨다. 또한 당시에 큰 건물을 붙들고 있던 성전지도자들뿐만 아니라 자신의 십자가 후에 있을 일곱 교회시대의 목자들도 그 길을 뒤따라 걸을 것을 이미 아셨다. 하지만 그들이 영원한 사망이나 영원히 슬피 울며 이를 갊이나 영원한 부끄러움에 이르는 것을 원치 않으셨다. 그러므로 그리스도께서는 자신을 따르는 제자들이 그와 같은 길을 걷지 아니하도록 또한 교회시대의 목자들도 그 어리석은 길을 따라가지 않도록 가르치는 자에 대한 예언을 주셨으니 그 말씀의 의미는 이와 같다.
 
“누구든지 가르치기를 원한다면 말씀의 한 가지를 믿고 마음을 다해 순종하여라. 이렇게 행하며 가르치는 자는 아버지께서도 그를 가까이하시되 그렇지 아니하는 자는 아버지께서도 그를 멀리 두시니 그는 영원히 아버지의 얼굴을 뵙지 못하며 그의 음성도 듣지 못하리니 그것이 그에게는 이 땅에 사는 동안 늘 부끄러움이 되며 나중에 아버지의 나라에서는 영원한 부끄러움이 되겠노라.”
 
“그러므로 누구든지 이 계명 중에 지극히 작은 것 하나라도 버리고 또 그같이 사람을 가르치는 자는 천국에서 지극히 작다 일컬음을 받을 것이요 누구든지 이를 행하며 가르치는 자는 천국에서 크다 일컬음을 받으리라”
 
생명의 근원되신 아버지와 그의 아들이시오 창조자이신 그리스도를 아는 자는 이 말씀을 안다면 이를 지키면 은혜와 유익이 있을 것이요, 아버지와 아들을 모르는 자는 말씀에 자신의 생명이 있으니 이 은혜를 입는 것이 유익하다.

율법의 일점 일획이라도 반드시 없어지지 아니하고

유대인들은 옛 언약과 함께 사람을 거룩하게 하는 신령한 율법과 계명과 법도와 율례를 그리스도의 십자가보다 먼저 받았다. 하지만 사람은 육신이 연약하니 아무리 애쓰고 노력해도 그것을 다 지키지 못한다. 그런데 아버지께서 유대인들에게 내려주신 옛 언약은 반드시 율법을 완성하는 자에게 이루어지는 것이니 유대인이 만일 그것을 완성하지 못하면 그리스도께서 이 세상에 처음 들어오셨을 때 자녀 됨의 언약이 성취되지 못한다. 그리고 그렇게 되면 아버지께서는 거룩한 자녀를 얻으시지 못하시니 구약의 경륜은 이루어지지 않게 된다.
 
그러나 아버지께서는 생명을 주시기 원하시니 한번 세우신 뜻과 계획은 반드시 영원 전부터 영원까지 변함없이 오직 아들을 통하여 이루어가신다. 그러므로 십자가의 거룩한 피가 없었던 그리스도전의 할례 받은 유대인들은 자신의 온 마음과 힘과 정성과 뜻을 다해도 이루지 못한 것에 대해서는 둘째하늘에서 만나와 메추라기를 내려주셨던 그리스도께서 거룩에 자신의 마음과 믿음을 두고 애쓰는 영혼의 그 간절한 마음을 보시고 순한 짐승의 피와 속죄제물을 통해 도와주셨다.
 
결국 할례 받은 유대인들 중에 거룩에 이르고자 마음을 드린 자들은 거룩한 제물을 먹고 마시며 거룩에 애썼으니 자신이 지키지 못하던 율법과 계명을 하나씩 이룰 수 있었다. 그러다 마지막에는 죽기까지 순종하므로 더 이상 가인과 같은 인간의 의와 피가 아니요 아벨과 같이 그리스도의 피를 상징하는 그리스도의 피를 몸의 산 제사로 아버지께로 올려드리므로 그 거룩의 완성으로 나아갔다. 그러므로 그들이 바로 성전에 거하며 사람의 유전과 규례에 따라 의문의 율법을 지키므로 아버지와 원수가 된 독사의 자식들이 아니요 오히려 그들에게 죽임을 당한 구약의 선지자들이었다. 그리하여 그리스도께서 이 땅에 처음 오셔서 십자가에서 부활하셨을 때 무덤들이 열리며 구약의 거룩한 자들도 함께 부활하여 거룩한 성에 들어가므로 옛 언약을 성취했던 것이다.
 
한편 그리스도의 십자가 이후의 이방인들은 신령한 율법과 계명과 법도와 율례보다 십자가의 은혜를 먼저 받는다. 그리고 그리스도께서는 아버지께서 자신에게 주신 신령한 율법과 새 계명을 십자가에 담아 오직 살고자하는 마음을 가지고 자신을 따르는 자들에게 새 언약과 함께 주신다. 그러므로 거듭남의 은혜를 얻은 이방인들 중에 그 소중한 마음을 가지고 새 언약의 소망과 믿음을 가지고 아버지의 뜻에 이르기 원하는 자들은 자신의 십자가를 지고 그리스도를 따르며 자신이 그리스도께 받은 거룩하고 신령한 것들을 지키고자 애쓴다.
 
그러나 이방인도 할례 받은 유대인처럼 육신이 연약한 것은 마찬가지이니 거듭난 이방인도 그것들을 완전히 다 지키지는 못한다. 하지만 구약의 유대인들을 도우셨던 그리스도께서 신약의 이방인들도 도우시니 그가 아버지의 뜻을 이루어드리고자 하는 간절한 마음과 믿음을 보시고 이제는 더 이상 순한 짐승의 피가 아니요 십자가의 산 제사로 율법과 계명을 다 이루신 거룩한 생명이 있는 자신의 살과 피로 도와주신다.
 
그러므로 처음에는 아버지의 신령한 율법이요 나중에 그리스도를 의지하는 유대인과 달리 처음부터 마지막까지 오직 인자를 의지하며 자신의 마음과 힘을 다한 이방인도 스스로는 신령한 율법과 새 계명을 지킬 수 없었으나 이제는 인자의 살과 피를 힘입어 하나씩 이루며 나아가게 된다. 그리하여 십자가의 거룩한 산 제물을 의지해 거룩을 이루어가던 이방인도 유대인과 동일하게 죽기까지 순종하는 그 마지막의 완성으로 나아갈 수 있게 된다. 즉 이방인도 더 이상 인간의 의와 가인의 피가 아니요 그리스도의 살과 피를 드리므로 그리스도께서 이 땅에 다시 오실 때 새 언약을 성취하므로 그 영광의 자유에 이르게 되는 것이다.
 
이처럼 사람이 거룩에 이르는 것은 그리스도의 전에도 이와 같고 그리스도의 이후도 이와 같으니 유대인이든 이방인이든 모든 자들이 자신의 마음과 믿음을 오직 아버지의 뜻에 두고 율법을 지키고자 애쓰며 계명을 지키려고 힘을 다한다. 그러나 육신을 입은 사람이 지키지 못하는 것이 분명히 있으니 그것들에 대해서는 오로지 그리스도의 십자가를 힘입는 자만이 완성시킬 수가 있다.
 
이에 아버지께서는 아들인 그리스도를 의지해 그것을 완성한 자에게는 그의 의롭다 함과 거룩하다 함을 말씀하시며 또한 인정하신다. 그리고 그 칭함과 인정은 좌우로 흔들리는 사람에게서부터 나는 것이 아니요 오직 한 분 신이시며 모든 생명의 근원되신 절대 의로우시고 거룩하신 분께로 얻는 칭함과 인정이다. 그러므로 의롭고 거룩하다는 칭을 아버지께로 받은 자들은 이 땅에서도 오직 아버지의 참된 아들과 딸의 모습을 나타내게 된다. 그러나 그 칭함과 인정을 받지 못한 자들은 그 누구도 또한 인간의 어떠한 노력과 의로도 그 모습을 보이는 것이 불가능하다.
 
그런데 사람이 생명의 말씀에 순종하기 위해선 자기의 생각과 의에서 돌이키는 고통을 겪을 수밖에 없으니 생명이라는 것은 저절로 얻어지는 것이 아니요 싸우며 유지되고 이기고 얻는 것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거룩한 육체의 부활에 유대인과 이방인의 구별이 있을 수 없으니 고난에도 구별이 없다. 그러므로 자기의 생각에서 돌이켜 의를 따르는 자들은 아버지의 원수와 그가 공중권세를 잡고 불의와 죄악으로 이끌어가는 이 세상에게 고난도 함께 받는다. 그리하여 그것이 바로 구약의 유대인과 신약의 이방인가운데 그리스도를 믿고 따르며 하늘의 푯대를 소망하는 자들에게 동일하게 임하는 환난과 곤고와 핍박과 기근과 적신과 위험과 칼의 실제적 고난이다.
 
하지만 아버지께서는 모든 것이 합력하여 선을 이루게 하시니 죽기까지 순종한 유대인에게 옛 언약을 이루어주셨던 것처럼 그와 같은 이방인에게도 새 언약을 신실하게 이루어주신다. 또한 씨를 뿌리고 땀 흘린 후에는 열매를 얻고 고난 후에는 반드시 영광이 있다. 그러므로 누구든지 새 언약을 믿고 소망하며 자기의 생각에서 돌이키고 세상에서 나와 의를 따른 자들은 그리스도께서 이 세상에 두 번째로 들어오실 때 거룩한 육체를 입고 비밀의 경륜에 이르므로 그 영원한 약속을 성취한다. 그리하여 그리스도의 말씀처럼 이 첫째하늘과 땅이 유황불 못으로 변하는 그 천년왕국의 끝에 아버지께서 기다리시는 영원한 본향 셋째하늘로 올라가기 전에 율법의 일점 일획이라도 반드시 없어지지 아니하고 다 이루지게 되는 것이다.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천지가 없어지기 전에는 율법의 일점 일획이라도 반드시 없어지지 아니하고 다 이루리라”
 
생명의 근원되신 아버지와 그의 아들이시오 창조자이신 그리스도를 아는 자는 이 말씀을 안다면 이를 지키면 은혜와 유익이 있을 것이요, 아버지와 아들을 모르는 자는 말씀에 자신의 생명이 있으니 이 은혜를 입는 것이 유익하다.

내가 율법이나 선지자나 폐하러 온 줄로 생각지 말라

그리스도께서는 아브라함과 모세를 통해 모든 유대인들에게 율법과 계명과 법도와 율례를 주셨으니 그리스도 당시의 유대인들은 이미 오래 전부터 '율법을 지키고 또한 계명들을 지켜야 아버지께로 나갈 수 있도다.'라는 말을 늘 들어왔다. 아버지께서 내려주신 계명과 법도에 불순종한 자가 어찌 소멸하시는 빛이신 아버지의 앞으로 나아가 그 영광스런 얼굴 앞에 설 수 있으리요? 그러므로 유대인으로서 그것을 지켜야 함은 당연한 것이었으며 그들은 어려서부터 그렇게 알고 있었다.
 
결국 유대인들 가운데 이 땅에서의 삶을 마친 후 육을 떠났을 때 아버지의 얼굴과 영광 앞에 서기를 소원하는 영혼들은 그리스도의 전이나 당시나 그것을 지키려고 무던히 애를 썼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그들은 사람을 거룩하고 신령하게 하는 것들을 지키고자 애쓰되 늘 육적으로 또한 생각으로 지키려고 애썼으니 그런 애씀은 그리스도의 당시에도 또한 십자가 이후로 지금까지도 마찬가지다. 심지어 거듭남의 은혜를 얻은 이방인들 중에도 그렇게 지키고자 애쓰는 자들이 있다.
 
그러나 그리스도께서는 사람의 유전과 규례를 따르는 성전의 전통과 독사의 자식들에게서 벗어나 자신을 따르는 유대인의 제자들에게 이렇게 질문하셨다. “누가 율법을 완성시키리오? 누가 계명들을 다 지키리오?” 그 질문을 받자 제자들은 그것을 지켜야만 아버지의 얼굴과 영광 앞으로 나아갈 수 있음을 알고 있는 유대인으로서 그것을 온전히 지키고 있지 못하고 있는 자신의 현재 모습을 바라보며 걱정했다. 즉 자신이 생명의 근원되신 영광의 아버지께로 나갈 수 없다는 것을 깨닫고 자신이 지키지 못하고 있던 부분의 율법과 계명들을 보며 심히 근심했던 것이다.
 
그러나 그리스도께서는 자기의 생각에서 회개하고 돌이켜 자신을 따르고 있는 제자들에게 이번에는 이렇게 말씀하셨다. “그리스도가 그 율법을 완성시킬 것이요 그가 그 계명들을 다 지키겠노라."
 
이 말씀을 듣자 제자들은 살고자하는 마음과 아버지께로 나가고 싶은 마음이 충만했기에 깨달음을 얻고 비로소 자신의 마음에 믿음과 기쁨이 생겼다. 그 이유는 자신의 마음을 다해 율법과 계명을 지키되 자신의 부족한 것은 오직 그리스도께로 나아가 인자를 의지해 자신도 그것을 완성하므로 그 영광의 자유에 이를 수 있음을 깨달았기 때문이다. 즉 자신이 마음과 정성을 다하며 애써도 부족한 것은 오직 의를 따르며 인자께서 십자가에서 완성하신 후 내어준 그것을 의지하므로 자신도 율법을 완성해 아버지께로 나갈 수 있는 그 길이 열렸기에 믿음과 기쁨이 생겼던 것이다.
 
그러나 난지 팔일 만에 할례를 받아 세상과 구별된 유대인들과 거듭남의 은혜를 받아 사망으로 들어가는 이 불의하고 죄악된 세상에서 구원받은 이방인들 가운데 아버지께 택함 받은 은혜와 독생자의 십자가를 통해 주신 첫사랑을 썩어질 육의 욕심과 헛된 세상의 영광과 맞바꾼 자들은 살고자하는 마음도 버렸으니 참으로 어리석게도 그리스도께서 주신 이 말씀의 의미를 깨닫지 못하고 있다. 그리고 그들의 눈과 귀의 닫힘은 그리스도의 전에도 당시에도 또한 지금도 마찬가지다.
 
결국 그리스도의 다시 오심이 가까운 이 마지막 때에도 이방인의 거듭난 자들 가운데 '그리스도께서 십자가에서 다 완성하셨으니 나는 율법과 계명을 지키지 않아도 된다.'라고 하며 자신은 아버지의 그 율법과 계명을 떠나 오직 그리스도의 은혜만을 찾는 짐승보다 못한 자들을 이곳 저곳에서 볼 수 있다. 그런데 그들이 거룩하고 신령한 생명을 위해 영원히 지켜야 할 율법과 아무리 열심히 지켜도 의와 거룩을 이루지 못하는 오히려 아버지와 원수가 되는 의문의 율법의 구분하지 못하고 신령한 율법과 계명까지 버리게 되는 것은 썩어질 것과 헛된 것을 위해 영원한 은혜를 가치 없이 버린 개와 돼지들에게는 아버지께서도 진리를 깨달을 수 있는 마음의 눈과 귀를 열어주시지 않으시기 때문이다.
 
반면 어떤 자들은 자기의 생각에서 돌이키고 불의하고 죄악된 세상에서 나와 의를 따르지 아니하면서도 스스로의 힘으로 그것을 다 지키며 이루고자 애쓰고 있다. 하지만 그들은 누가 율법을 완성시키셨으며 누가 그 계명들을 다 지키셨는지 알아도 그리스도를 따르지 아니하며 인자의 살과 피를 의지하지 않고 있으니 그들의 애씀은 참으로 어리석고 교만한 가인의 애씀이 아닐 수 없다.
 
“내가 율법이나 선지자나 폐하러 온 줄로 생각지 말라 폐하러 온 것이 아니요 완전케 하려 함이로다”
 
생명의 근원되신 아버지와 그의 아들이시오 창조자이신 그리스도를 아는 자는 이 말씀을 안다면 이를 지키면 은혜와 유익이 있을 것이요, 아버지와 아들을 모르는 자는 말씀에 자신의 생명이 있으니 이 은혜를 입는 것이 유익하다.

너희는 세상의 빛이라

태양이 이 셋째 별의 위에 떠 있을 때에는 그 빛이 비취는 모든 지역을 밝게 밝힌다. 또한 그 지역을 따뜻하게 한다. 그러므로 자신의 밝음과 따뜻함 안에 거하는 만물들로 하여금 자기의 일을 하게하는 태양의 그 빛으로 인하여 만물이 자신의 생명을 계속적으로 유지하고 있다.
 
마찬가지로 사람은 어두운 밤에 켜놓은 촛불을 말속에다 숨겨 꺼지게 하지 아니하고 오히려 높은 곳에 둔다. 그러면 집안의 모든 사람들이 그 어둠가운데서도 밝은 빛을 보고 생활하게 한다. 또한 바깥에 어두운 곳에 있던 자들도 만일 그 빛을 보고 들어오면 그 사람도 역시 빛 가운데서 살 수 있게 된다. 그러다 밤이 지나고 새벽이 오며 다시금 새로운 아침이 밝아올 때 대부분의 사람들은 빛의 중요함과 고마움을 깊이 생각하지 않되 오직 어둠 속에서 빛이 생명과 같음을 깨달은 자들이 실제의 빛을 보며 기쁨과 감사가 충만해진다.
 
이처럼 사람이 복음의 비밀을 자신의 머리 위에 두면 그 하나님의 영광의 복음의 빛이 그의 생각과 마음과 말과 행실을 비추어준다. 마치 태양이 그 모든 지역을 밝히는 것과 같다. 또한 태양이 그 지역을 따뜻하게 하듯 진리는 사람을 씻어 거룩케 하는 것이다. 그러므로 진리를 자신의 머리 위에 두고 말씀에 순종한 자는 그의 마음과 생각과 행실과 말이 올바르게 된다.
 
더불어 사람이 그리스도께서 전하신 그 회개와 천년왕국의 복음을 자신의 머리 위에 두어야 하는 두 번째 이유는 자신만이 아니요 불의하고 죄악된 세상에 거하고 있는 가난하고 불쌍한 영혼들을 위한 위해서이다. 그렇게 해야 이 셋째 별의 어둠 속에 거하는 사람들 중에서 살고자하는 마음을 가진 영혼이 그 자의 머리 위에 있는 그 빛을 보고 와서 그 진리의 빛을 얻을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헛된 세상에 거하는 사람이 우선은 그 자의 거룩한 행실과 말을 보고 듣는다. 그리고 나서 그 영혼이 보는 것이 있으니 그것이 바로 그 자의 위에 떠있는 그 복음의 빛이다. 이때 어둠에 있는 자들 가운데 자신도 그 자와 같이 의롭고 거룩하게 되기를 원하는 자는 거룩한 빛을 비추고 있는 자에게로 와서 그 진리의 빛을 얻는다. 그리하여 사망으로 들어가고 있는 이 세상의 흑암에 앉아있던 자가 그 빛을 얻어 자신의 마음 안에 있는 그 선악의 죄와 싸우며 그의 마음과 생각과 행실과 말도 올바르게 되어져 가는 것이다.
 
예를 들어 거듭남의 은혜를 얻은 한 영혼이 말씀이 갈급하니 아침이 되기 전 한 밤중에 찾아와 거룩한 생명의 말씀을 달라고 간청한다. 그러나 거짓선지자들은 어두운 빛을 가지고 있으니 육의 복과 세상의 영광의 빛을 비추어준다. 자신조차 어둠가운데서 어둠을 들고 있으니 어찌 빛을 비출 수 있으리요? 한편 주님을 위해 목숨을 바치겠노라며 참된 마음으로 시작했으나 육과 세상으로 인하여 첫사랑을 잃고 중간에 바리새인과 같이 변한 목자들은 그 빛으로 자신을 비추지 않고 오히려 말씀을 이용해 자신의 생각과 의와 계획을 전하고 있다. 그러므로 그들의 머리 위에도 역시 빛이 없다. 그리하여 빛이 없는 목자들은 그를 믿음이 없다고 꾸짖은 후 실제의 해가 올라온 아침에 찾아오라며 그를 다시 돌려보내되 어리석은 빛을 보고 따라간 그 영혼은 사망에 이른다.
 
그러나 동일한 상황에서 참된 목자는 그의 영혼을 불쌍히 여기어 자기가 거하는 곳에 그를 영접한다. 그리고 그를 앉혀 놓고 자기의 머리 위에 떠있는 그 생명의 말씀과 진리를 주어 단 일초라도 그에게 자신의 마음에 쌓아놓았던 모든 선한 것들을 다 내어주듯이 준다. 그리하여 어둠가운데 있던 그로 하여금 새벽이 밝아오기 전에 어둠에서 돌이키고 나와 그리스도안에서 그 거룩하고 빛난 새 생명을 얻게 하는 것이다.
 
이와 같이 빛은 오로지 창조자께서 말씀하신 대로 자신의 머리 위에 있어야 함이요 그리하여 무엇보다 먼저 자신의 마음과 생각과 행위와 말을 옳게 해야 한다. 그런 후 자신이 그 말씀을 구약시대에든 초대교회시대에든 일곱 교회시대에든 교회시대의 끝에든 평화하고 안전하다 할 때에든 마지막 대환난이다 할 때에든 칼 앞에든 어느 때에든지 전할 마음을 가져야 한다. 그리하여 가난하고 불쌍한 영혼들을 옳은 데로 돌아오도록 자신을 비추며 따뜻하게 한 자들이 이 셋째 별에 천년왕국이 임했을 때 그리스도께로 빛을 얻어 하루 동안 밝은 빛을 비추고 다니고 또한 천국의 끝에 아버지께서 기다리시는 셋째하늘로 올라갔을 때 영광의 자유에 이르러 별과 같이 영원히 비취게 되는 것이다.
 
“너희는 세상의 빛이라 산 위에 있는 동네가 숨기우지 못할 것이요 사람이 등불을 켜서 말 아래 두지 아니하고 등경 위에 두나니 이러므로 집안 모든 사람에게 비취느니라”
 
생명의 근원되신 아버지와 그의 아들이시오 창조자이신 그리스도를 아는 자는 이 말씀을 안다면 이를 지키면 은혜와 유익이 있을 것이요, 아버지와 아들을 모르는 자는 말씀에 자신의 생명이 있으니 이 은혜를 입는 것이 유익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