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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근수 목사님 생신잔치

홍근수 목사님의 생일은 8월 15일이다.
지난 8월 16일 주일 예배 후에 목사님의 72번째 생일잔치가 있었다.
시를 낭송하고 축가를 부르고, 케이크를 자르고, 목사님께서 인사 말씀을 하셨다.

 

목사님은 87년 1월에 향린교회에 오셔서 2003년 5월까지 계셨다.
정년 전에 일찍 은퇴하시고 다른 교회에 출석을 하시다가, 올해 들어 건강히 상당히 좋지 않아 권유로 다시 향린으로 나오시게 되었다.

 

향린을 떠나고부터 건강이 안 좋기 시작하여 길거리 집회도 간간히 나가시다가, 아예 그 마저도 참여하시지 못하게 되고, 대체적으로 집에 계시게 되었다.
당신께서 만드시고, 심혈을 기울려 활동하시던 평통사도 처음에는 출근을 하시다가 그 마저도 활동을 거의 못하면서 지금까지 지내오고 계시다.

 

 

목사님은 국가보안법으로 감옥도 가게 되고, 이런저런 일을 많이 겪으시고, 사회활동에 적극적으로 참여를 하시면서 거리의 투사 목사가 되었다.
교회에서 이를 좋지 않게 여기는 분들도 있기는 하였지만, 더 많은 교인들이 그의 활동에 찬동을 하였기에 가능했다고 본다.

그러면서도 목사님이 떠나실 때에는 모든 교인들이 아쉬워했다.
 

 

막상 교회를 떠날려고 하니 교회 사택에서 지내다가  살아갈 집도 준비되지 못하는 형편이어서 교인들이 후원회를 만들어 아파트를 마련해 드리고, 그 후로 지금까지 생활을 보살펴 드리고 있다.

몇 년 전부터는 건강이 안 좋아 돌아가면서 댁에 가서 음식이며 살림을 보살펴 드리고 있다. 최근에는 몸의 거동이 불편하여 댁에 가셔서 같이 시간을 보내면서 목욕도 시켜 드리고, 외출도 함께 하는 등 활동보조의 역할들을 나누어서 하고 있다.

 

목사님의 일흔세 번째 생신 축하의 시간을 가지면서 눈물을 참으면서 이런저런 생각을 하게 됨은 비록 나뿐이 아니었을 것이다. 겉으로는 박수를 치고, 축하의 노래를 불렀지만, 가슴 속에서는 안쓰러움이 가득하다.
 
16년이 넘게 교회생활과 교인들을 여러 형태로 대하게 되었을 거고, 어느 정도 다른 생각을 하는 분들도 있었을 터인데, 목사님께 안 좋은 평을 하는 말을 들어본 적이 없다. 무엇 연유일까? 하는 의문이 들면서 곰곰이 생각을 해 보니, 가장 큰 강점이 ‘순수’하신 분이었다. 라는 생각과 함께 어느 누구에게도 편애를 하시지 않으셨다고 한다. 사회운동에서도 많은 부분에 고루 참여를 하신 것 같다. 진보네트워크에도.

 

그만큼 많은 일을 하셨기에 그러하겠지만, 교회를 떠난지 여러 해가 되는
이 시간까지 수백 명의 교인들 앞에서 축하와 칭송을 받는 모습을 보면서
약간은 부러운 마음도 든다.

 

그러면서 교차되는 점은 인간의 구원과 사회의 구원을 위해서 너무나 열심히 사셨던 분이 노년에 이렇게 건강이 좋지 않은 점이 너무 안쓰럽다. 혼자서는 거동도 힘들고, 거리에서 쩌렁쩌렁하게 사지후를 토하시던 목소리는 간데없고, 말씀 하시는 것도 자유스럽지 못한 모습을 볼 때 너무 안타깝다.

 

‘자유인으로 사십시오.’

 

목사님께서는 예배 마지막에 늘 하신 말씀이다.
그 말씀에 큰 힘을 받는다는 분들이 상당히 많았다.
이제, 목사님께서 자유의 몸으로 돌아오시기를 기도합니다.


* 목사님의 소식이 더 궁금하신 분이 아래 주소를 클릭하며 사진과 글들을 읽을 수
있습니다.

 

 

 

http://www.hyanglin.org/bbs/143021#6

 

http://www.hyanglin.org/bbs/album01/143127

http://www.hyanglin.org/bbs/album01/143123

http://www.hyanglin.org/bbs/14302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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