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향린 47호를 읽고

이번에 발간한 향린 47호를 읽어 보았다. 향린지를 만든 손길에 고마운 마음을 전하면서 읽은 느낌들을 편안한 마음으로 적어본다.

 

앞표지에는 화려한 사진이 자리하고 있다. 뒤표지에는 800여명에 달하는 교인들의 이름자가 십자가 속에 나열되어 있는데, 그 속에서 내가 알고 있는 이름은 절반에도 훨씬 못 미치는 것 같다. 안쪽에는 파란색깔을 많이 사용했다.

 

‘여는 글’로 한 목사님께서 할머니 이야기를 하면서, ‘하느님을 들먹이기 전에’ 라고 제목을 선택했다. 그렇다. 눈에 보이지 않고 제대로 알지 못하는 하느님을 되 뇌이기 전에, 인간을 바로 알고 사람들에 대한 관심을 가지는 자세부터 필요하겠다는 생각이 든다.

 

‘미디어선교’에 대한 대담을 읽으면서 예배와 행사 때 음향과 방송, 그리고 인터넷 홈페이지를 위해서 많은 고생을 한다는 것을 알았다. 지금은 미디어의 시대이라고 보기에 미디어를 통한 선교의 중요성을 인식해서 대담을 했다고 본다. 향린의 미디어 선교는 향린 내에서 뿐만 아니고, 더 많은 사람들과 사회 속에서 열려 있는 가운데 소통하면 좋겠다. 그러면서 하느님의 선교를 담당해야할 부분이 많이 있다고 본다. 그러기 위해서는 미디어 일꾼들이 필요한데, 일손이 딸려 안타까워하고 있다. 그에 대한 재능이 있는 교인들이 함께 하여 미디어 선교의 꽃을 피워 주었으면 하는 바람이다.

 

‘할 말 있습니다.’ 수백 명의 교인들이 모이다 보니, 그 속에서 다양한 생각과 의견을 가지게 됨은 물론이고, 형편과 처지도 다양할 수밖에 없겠다. 이런 지면을 통해서 자신들의 이야기를 속에만 간직하면서 애 태우지 말고, 이렇게 표현하면서 서로 간에 이해의 폭을 좁혀 나갈 수 있다고 보고, 좋은 시도라고 본다. 오늘의 사회를 설명하면서, 청년들에게 눌려져 있는 무거운 멍에에 대해 이해를 구하고 있다. 이런 현상이 이 사회 저 멀리에 있는 문제라고 생각했는데, 우리 향린의 청년들도 그 속에 있다고 생각하게 되니 가까이 다가온다. 그러면서 어려운 이야기를 솔직하게 표현한 용기에 찬사를 보낸다. 그런 마음들이 교회와 사회 곳곳에서 함께하여 합하여 선을 이루는 계기가 되기를 바라는 마음이다.

 

‘교우 이야기’에서 여러 교인들이 각각 향린을 찾아온 동기와, 그 후 교회 활동들을 소개해 주었다. 이를 통하여 미처 알지 못했던 교우들의 이야기를 들을 수 있어서 좋았고, 또한 모두들 글재주도 있고, 재미있게 표현해 주어서 친근감을 느낀다. 대체적으로 출석한지 오래지 않으면서 재빠르게 교회생활에 적응을 해 나가는 것 같아 보기에 좋다. 향린을 찾은 교우들이 향린에서 정착하여 오랫동안 향린과 함께 이 땅에 하느님나라를 일구는 일꾼으로 꿋꿋했으면 좋겠다.

 

‘책을 찾아서’ 조 목사님의 ‘양심을 습격한 사람들’을 읽고 이근복 목사님께서 평을 해 주셨다. 이 목사님은 설교를 하고 아쉬움으로 남는 경우가 많았는데, 조 목사님의 설교는 향린교우들에게 크게 은혜가 된다고 하니 부럽다고 하면서 시작한다. 요즘 여러 교회에서 설교를 듣고 있는데, 치밀하지 못하고 연구와 고뇌가 미흡해서 아쉬움이 많다고 한다. 그러나 조 목사님의 설교는 인문학과 사회현실을 반영하면서 성서를 기초로 하여 예언자적 설교를 한다고 한다. 이는 향린의 정체성에 부합하고, 교우들도 설교를 잘 받아들인다는 느낌을 받았다고 한다. 그러면서도 조 목사님의 설교가 사회진단이 성서해석 보다 비중이 더 크게 보일 때가 있다고 한다. 지적에 동감한다. 이어서 설교자는 설교를 통해서 멍석을 깔아주고, 신앙인으로서 살아가는 길을 안내하는 일이라고 본다고 한다. 설교는 하느님과 자신을 발견하는 동시에 하느님의 은총을 깨닫고 위로를 받아, 하느님나라 운동에 주체로 살아갈 수 있도록 영적인 힘을 제공하면 좋겠다고 한다. 이 목사님께서 80년대 노동자들의 교회인 성문밖 교회를 섬길 때 노동운동을 하고 시대를 고민하는 지식인일지라도, 신앙적으로 충족이 안 되면 교회를 떠나는 쓰라린 경험이 있다고 한다. 오늘 향린에서도 그런 일이 없는지 모르겠다. 그리고 그때 치열하게 살아가는 노동자들에게 한 설교에 대해 지금은 후회를 하게 된다고 고백한다.

 

‘평화나눔 소모임’ 이야기가 있다. 가부장적인 성의 인식으로부터 바뀌어 나아가는 오늘에 이 글을 통하여 여성과 인권에 대한 생각을 다시 해보게 만든다. 어떤 사회학자는 앞으로는 민주/반민주의 구도가 아니고, 다수자/소수자와의 전선으로 이동했다고 하는 말을 소개해 주었다. 우리 주변에는 성적으로 소수자, 경제적으로 소수자, 권력으로부터 소수자, 인종, 인권 등으로 따돌림 당하는 소수자가 너무 많다. 앞으로는 ‘진보’의 관심과 초점도 이런 소수자들에게 관심을 가지는 것으로 이동해야 된다는 생각을 하게 된다.

 

‘향린의 길을 찾아서’는 지난 봄 전교인 수련회 때 발표하고 토론한 내용을 옮긴 내용이다. 발제 글에서는 오늘의 향린과 ‘성미산’ ‘아름다운마을’ 공동체의 조직을 비교 분석해 놓았다. 그러면서 앞으로 향린공동체를 어떻게 건설할 것인가? 라는 물음을 던진다. 이에 창립자이셨던 장노님은 공동체를 추진하더라도 이 세상에서 고통 받는 민중과 역사의 부름에 응답하는 공동체가 되었으면 한다. 고 하셨다.  청년의 목소리는 이전 글에 대한 새로운 해석이 돋보인다. 창립당시와 지금은 사회가 많이 변화해 있다. 두 공동체와 향린의 조직을 단순 비교하는 것은 무리가 있다. 오늘의 사회는 많이 변화해 있다. 공동체도 도식적으로 바라보지 말았으면 한다. 공동체는 정답이 정해져 있지 않고, 스스로 결단하는 자들이 이루어 내야 할 일이다. 라고 한다. 뒤이어 공동체와 분가선교를 동시에 논의해 볼 수 있겠다. 라는 글이 뒤 따른다. 논의의 가치가 가능한 일이라고 본다. 그러나 이는 단순히 상상으로만 되는 것이 아니고, 열정이 넘치는 교인들이 공동체에 대한 고민과 함께 실천력이 함께할 때 가능하다고 본다. 이렇게 되면 분가선교와 공동체가 동시에 제자리 매김을 하는 기회가 될 수 있다고 본다. 토론에서는 공동체에 대한 토론보다 향린의 선교정책 방향으로 초점이 옮겨간듯하다. 이는 공동체에 대한 이해의 부족, 나아가 공동체의 대한 절실함의 부족으로 보인다. 수련회 주제로 ‘공동체’가 그를듯하고, 시의적적하다고 보았기에 그런 주제를 선택하지 않았을까 한다. 그러나 향린에서 공동체에 대한 이해는 아직 부족한 점이 많다고 보며, 이번을 기화로 앞으로 공동체의 필요성을 일깨우는 계기가 되기를 바라는 마음이다. 공동체는 현재의 체제와 구조의 한계성을 인식하고, 나오는 대안사회를 추구하는 노력의 일환으로 본다. 그러면 지금의 삶의 방식을 뛰어넘고, 이를 바꾸어 나가는 노력이 함께 있어야 가능할 것이라고 보인다.

 

새로운 미디어 선교가 중요하다고 말하면서, 구시대적인 종이에 찍힌 활자매체를 선호하는 희귀종족을 위해 향린지를 만들어준 손길에 감사한 마음을 다시 전한다. 지난해부터 ‘소통’이라는 말이 한국 사회에서 소용돌이치게 되었다. 이번 향린지도 향린에서 소통의 큰 역할을 하리라 믿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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