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이드바 영역으로 건너뛰기

오리의 우왕좌왕, 좌충우돌 쎄컨드 신분쯩 만들기


 

드디어 쎄컨드 신분증(운전면허증, 2종 보통)을 손에 넣었다. 너무 감개가 무량해 울뻔 했다. 집에서 셀프 타이머 맞춰놓고 기념사진 한 장 찰칵! 그래, 이 기분이야!!!

 

내가 원래부터 주민증이 없었던 건 아니고 90년대 후반, 지금의 주민증인 플라스틱 주민카드 반대운동이 한창일 때 나도 그 대열에 동참했더랬다. 깸용, 최교 등 친구 몇 녀석과 굴복해서 주민증 만드는 사람 있으면 나머지 사람에게 맛난거 사주기 내기까지 걸었다. (이후 아마 깸용이 보험을 탄다고 했나 머라고 했나 암튼 주민증을 만든 것으로 알고 있는데 아직까정 맛난거 못얻어먹었다.)

 

하지만 지문날인거부자의 길은 쉽지만은 않았다. 하루가 멀다하고 동네 통반장이 돌아가며 집에 찾아와가지고선 '아가씨, 우리 동네에서 아가씨만 주민등록증 안했어요. 빨리 가서 하세요. 사람 귀찮게 하지 말고...' 한다. 나만 괴롭히면 괜찮은데 엄마, 아빠한테까지 귀찮게 구니 내 듣기로 이런 전방위적 괴롭힘에 굴복해 주민증 만든 사람 여럿 있다 들었다.

 

하지만 나, 본래부터 고분고분 누구 말 듣는 것과 거리가 먼 승질드러운 오리다. 결국 굴하지 않고 주민증 안만드는데 성공, 그 이후 모든 관공서, 은행, 각 구치소, 교도소 면회 등은 여권으로 대체하였다. 막 주민증이 바뀌고는 은행업무 볼 때 여권들이대면 곧잘 은행직원이랑 이게 되네 안되네 하면서 실갱이가 붙곤 했었는데 것두 시간이 지나니 다 통용되더라.

 

그래서 별루 어려운 줄 모르고 살았다. 하지만 나의 첫 위기는 작년 봄 돌아왔다. 바로바로 여권만료일이 된 것이었던 것이었다. 뜨~쉬!

 



종료일을 얼마 안남기고 비장한 각오로 종로구청엘 찾아갔다. 그런데 이게 웬 하늘의 계시란 말인가. 공무원노조 조끼를 턱 하니 입고 계신 분이 여권과에 선녀처럼 서 계신 것이 아닌가. 초록은 동색이라고 일단 그 분께 접근하였다. 자초지종을 다 말씀드리고 다른 신분증 없이 구 여권으로 여권연장을 해달라 졸랐다. (사실 공무원노조 조끼를 입고 계시긴 했지만 다른 여권과 직원과 별반 다를 바를 느끼진 못했다. -_-;;) 거의 손이 발이 되게 빌다시피 해서 여권기간 연장에 성공. 그 직원분 왈. 이번엔 기간 연장이라 어떻게 됐는지 모르겠지만 5년 후에 새로 여권을 발급받을 때는 분명 안 될 것이니 주민증을 만들라 하신다. 쳇, 5년 후의 일을 알게 머야. 그 동안 데모 열씨미 해야지...

 

그리고 1년 후 난 유럽으로 무대뽀 자전거 여행길에 올랐다. 그리고 돌아오기 얼마 전 파리의 몽마르뜨 언덕에서 가방을 도난당했고 물론 나의 하나밖에 없는 여권도 함께 잃어버렸다. 파리에서 한국으로 들어오기 위해 파리 영사관에 갔는데 영사관 직원 말 서울로 전화해서 주민증을 팩스로 보내라 한다. 주민증이 없다고 하니까 그럼 다른 신분증 카피본이라도 보내란다. 어떻게 내 신분을 확인할 수 있냐고 하면서... 정말 미치고 팔짝 뛸 노릇이었다. 하지만 아부와 비굴로 점철된 내 인생... 또 거의 울다시피 해서 단수여권(사실 여권처럼 생겨서 이렇게 말하지만 엄밀히 말하면 여권이 아니라 임시여행증이다.)을 발급받는데 성공했다. 하마터면 국제미아 될뻔한 긴박한 순간이 아닐 수 없었다. 늘 먼가를 흘리고 다니는 칠칠맞은 성격땜에 쎄컨드 신분증이 하나쯤 있어야겠다 생각했었는데 이번에 절실히 그 필요성을 절감했다.

 

수많은 우여곡절 끝에 여차저차 한국에 돌아왔다. 하지만 내 악몽은 여기서 끝이 아니었다. 한국에 돌아와서 바로 여권을 신청하러 갔다. 10월 21일까지 유효한 단수여권(아니 임시여행증, 하지만 여권과 직원이 아닌 이상 이게 여권인지 임시여행증인지 구분 못한다.)을 가지고 있었기 때문에 구청가서 또 비굴하게 울고 빌어야지 생각하고 갔는데... 웬걸~! 이번엔 녹녹치가 않다. 울고 짜고 사정해도 소용없단다. 아예 이제 옆에 없는 걸로 생각하는지 무시하기까지 한다.

 

구청에서 나오면서 레이한테 전화를 걸었다. 여차저차하다고... 어찌함 좋겠냐고... 레이가 진보넷 은희씨랑 통화하고 전화를 줬다. 나같은 지문날인거부자들땜에 골치가 아파서 얼마 전부터 규정이 강화됐다고... 반드시 다른 신분증이 하나 더 있어야 하고 것두 딴 건 안되고 주민증이나 운전면허증만 된다고 한다. 나뿐만 아니라 최근에 다른 지문날인거부자들도 여권만들기 시도를 해봤는데 모두 실패했다면서 만약 내가 성공한다면 최초의 케이스가 되는 거라고... 그래서 레이가 제안한 방법은 두 가지다. 하나는 다른 허술한(?) 구청에 다시 가서 빌어보든가 아님 속성으로 원동기나 운전면허를 따는 것!

 

나는 일단 전자의 길을 걸어보기로 했다. 여기 저기 수소문한 끝에 강돌이 추천해준 구로구청! 아니나 다를까. 종로구청엔 내 앞에 200명이 줄 서 있었는데 구로구청엔 가니 바로 할 수 있었다. 게다가 나한테 배정된 직원이 딱 봐도 알바거나 신참처럼 어리버리해보이는 분이었다. 올커니 이번엔 비굴모드가 아니라 쎈모드로 가야지.

 

오리 : (단수여권을 책상에다 탕하고 내려놓으며) 저는 지문날인거부자구요 절때 주민증 만들 수 없으니까 걍 이걸루 새여권 만들어주세요.

직원 : (당황한 기색을 역력히 보이며) 네? 아... 저... (하더니 갑자기 뒤로 사라진다, 오리 이 때 회심의 미소!!!)

직원 : 이 분하고 얘기해 보시겠어요? (뒤로 가서 높은 분은 델꼬 나온 것이었다. OTL)

높은분 : 무슨 일이시죠?

오리 : (일단 당당한 목소리로) 아 네 저는...

높은분 : (말을 가로막으며) 네, 제가 선생님의 신념에 대해서는 잘 알고 있습니다.

오리 : @.@

높은분 : 하지만 우리 입장에서는 해드릴 수가 없습니다.

오리 : @.@

높은분 : 지금 외교부에서 홍채인식 여권을 추진 중인데 선생님의 신념으로 봤을 때 차라리 지문을 찍는게 낳지 않을까요?

오리 : @.@ (듣고 보니 맞는 소리 같아서) 네

 

이 얘기를 들은 울 엄마 은평구청에도 여권과가 생겼으니 가보라 한다. (안갔는데 안가길 잘 했다. 왜 그런지는 뒤에 나옴)

 

더 이상 선택의 여지가 없었다. 걍 눈 딱감고 주민증을 만드느냐 원동기든 운전이든 면허증을 만드느냐. 한 3일 정도 고민한 거 같다. 여러 가지 이유상 걍 주민증을 만드는 걸로 맘이 기울어가고 있던 와중이었다. 레이한테 이번 한 번만 눈감아 주겠다는 약조까지 받아냈다. 그/런/데/... 날맹 왈 (천진한 표정으로) '오리 어떻게... 면허증 만들어야겠다.... 그렇다고 지문날인을 할 수는 없잖아...' OTL

 

그래서 면허증을 따기로 맘을 바꿨다. 원동기는 값도 싸고 금방 딸 수 있을 거 같은데 다들 이왕 딸 거 운전면허증을 따라고 한다. 원동기 면허로는 할 게 없다는 거다. 정용욱 왈 '알아? 나중에 늙어서 마을버스 운전이라도 하게 될지?' 그래 이왕 딸 거 운전면허를 따자. 인터넷을 검색해보고 젤루 싼 곳, 온수역에 있는 운전전문학원에 영은이랑 같이 등록을 했다. 울 집에서 1시간 반 걸리는 거리다. 흑

오리 : 나 이래놓고 돈은 돈대로 날리고 면허는 면허대로 못따서 결국 지문찍게되믄 어카지?

영은 : 콱 뒈져버려!!!

 

운전학원 등록을 하고 아랫집에 정재훈이 놀러왔다. 파리에서부터 시작된 내 어드벤처와 불운을 다 듣고 결국 원동기 면허는 싸고 빨리 딸 수 있지만 쓸모가 없어서 걍 운전면허 따기로 했다고 하니 정재훈 왈 '어우 오리 이 바보! 원동기면허가 얼마나 쓸 데가 많은데... 짱깨도 있지 피자배달도 있지... 어우 이 바보!' OTL

 

하지만 지문괴담은 날 계속 따라다녔다. 운전학원에 첨 간 날, 데스크에 있는 어떤 막생긴 남자가 지문 안찍으면 곤란하다고 돈 돌려줄테니 돌아가란다. 누굴 놀리나? 그러다 옆에 있는 상냥한 언니의 도움을 받아 겨우 다닐 수 있게 되었다. 아침 8시 20분까지 새벽밥을 지어먹고 다니며 하루 3시간씩 운전을 하는데 정말 죽을 맛이었다.

 

어찌어찌 셤에 붙고(셤보던 날 떨려 죽는줄 알았다. 이게 글쎄 얼마만에 보는 셤이야?) 얼마전 당당하게 다시 여권을 신청하러 갔다. 엄마의 충고대로 은평구청에 갔는데... 글쎄... 여권과가 없단다 은평구청엔. OTL 그래서 다시 종로구청엘 갔다. 근데 또 종로구청에서 태클을 건다. 행자부 전산망에 내가 안뜨기 땜에 안된다고... 그래서...

 

또 빌었다. 결국 해줄테니 찾으러 올 때는 주민증 해가지고 와야지 안해오면 못 찾아간다는 소릴 듣고 돌아섰다. 11월 2일이다. 그 날도 또 빌러 가야 한다. 옆에 있던 레이랑 아침이 '빌지 말고 당당하게 법조항 보여달라고 그랫!!!' 한다. 이번에 갈 땐 꼭 그래야겠다. '법조항에 나와 있나요? 보여주세욧!'

 

암튼 짜잔~! 이렇게 내 손에 쎄컨드 신분증이 들어왔다. 쎄컨드를 가지고 있으니 미술관 옆 동물원 춘희의 표현을 빌자면 정말 1년치 식량을 쌓아놓은 것처럼 든든하다. 용욱 왈 '이제 운전하고 싶어 죽겠지?' 아침 왈 '면허를 따면 다들 운전하고 싶어한다던데 어때?' 우리집에 차가 없어서 그런지 아직은 잘 모르겠다. 지금부터라도 좀 더 내 자전거를 사랑해줘야겠다.

 

ㅋㅋㅋ 자꾸 웃음이 난다. ㅋㅋㅋ

 

 



진보블로그 공감 버튼트위터로 리트윗하기페이스북에 공유하기딜리셔스에 북마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