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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가와 혁명] 제5장 국가사멸의 경제적 형태 중

 맑스의 이론 전체는 발전이론을 -- 가장 지속적이고 완전하고 사려깊고 명쾌한 형태로 -- 근대 자본주의에 적용하는 것이다. 따라서 맑스는 이 이론을 곧 닥쳐올 자본주의의 붕괴와 다가오는 미래 공산주의의 발전, 양자에 동시에 적용시켜야 할 난관에 봉착했었다.

 그러면 어떠한 사실을 기초로 하여 다가올 미래 공산주의로의 발전이라는 문제를 다룰 수 있겠는가?

 그것은 바로 자본주의에 그 근원을 두고 있고, 자본주의로부터 역사적으로 발전해 왔으며, 자본주의가 낳았던 사회적 힘의 작용의 결과라는 사실에 기초하고 있는 것이다. 맑스의 저작 속에서는 그가 하나의 유토피아를 만들려고 했다든가, 아니면 알 수도 없는 것에 대해 단순히 추측에 몰두한다든가 하는 식의 흔젹을 전혀 찾아볼 수가 없다. 맑스는 공산주의에 관한 문제를 자연과학도가 새로운 생물학적 변화의 발전을 다루는 것과 동일한 방식으로, 즉 생물학적 변화가 어디에서 어떠한 방식으로 연유했으며 그것은 어떠한 상황 속에서 어떠한 방향으로 변화하고 있는가를 알게 되는 것과 마찬가지의 방식으로 공산주의에 관한 문제를 다루었다.

[국가와 혁명] 제5장 국가사멸의 경제적 형태 p106


 먼저 맑스는 국가와 사회간의 관계에 관한 문제를 야기시켰던 [고타강령]의 혼란을 떨쳐버렸다.

....'현대의 사회'는 자본주의 사회이며, 그것은 모든 문명국가에 존재하고, 봉건제적인 복잡함으로부터 다소 자유로워졌으며, 각 국가의 툭수한 역사적 발전에 따라서 다소 상이한 유형을 지니게 되었고, 다소 발전되었다. 반면에 '현대의 국가'는 한 국가의 영역 안에서 변화한다. 독일 프러시아 제국에서의 그것과 스위스에서의 그것은 차이가 있고, 영국에서의 그것과도 차이가 있다. 따라서 '현대의 국가'란 하나의 허구이다.

 하지만 서로 다른 문명국들 중의 서로 다른 국가들이 아주 잡다하게 상이한 형태를 지님에도 불구하고, 그 모든 국가들은 근대 부르주아 사회에 기초하고 있다는 사실과, 단지 자본주의적으로 발전했다는(다소간의 차이가 있겠지만) 사실을 공유하고 있다. 따라서 그것들은 공통으로 지니는 어떤 본질적인 특성을 또한 갖고 있다. 이러한 의미에서 현재 지니고 있는 뿌리인 부르주아 사회가 사라져버릴 미래와 비교해서 '현대의 국가'란 말을 사용한다는 것을 불가능하다.

 그러면 '미래의 공산주의 사회에서 국가는 어떠한 변화를 경험하게 될 것인가?'하는 의문이 생긴다. 다시 말해서 그 사회에서는 현재의 국가의 기능들과 유사한 어떠한 사회적 기능이 잔존하게 될 것인가하는 의문이다. 이 의문에 대해서는 단지 과학적으로만 답변할 수 있을 뿐이며, 그 누구도 국가라는 말과 인민이란 말을 수천번 조합하더라도 이 문제의 해답에 조금도 다가설 수 없다. [맑스-엥겔스 선집], 제2권, 모스크바, 1962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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