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이드바 영역으로 건너뛰기

정말 반성!

 

 

 

 

 여기 온지도 벌써 3주가 넘어간다. 태국말이 좀 늘어서 다들 삼 주 치고는 (사실 2주 반이라고 거짓말했다. ^^;;;) 잘하네라는 이야기를 듣기도 했지만, 겨우 "무슨 일 하십니까?" 정도 주워 삼길 수 있는 정도이다. 아, 태국말 잘하고 싶다! ㅠㅠ

 

 요즘 정말 반성하는 건, 내가 에이즈라는 병에 대해서 정말 잘 모른다는 사실을 최근에야 깨달았기 때문이다. 연구실에서 혼자 에이즈 관련 논문을 읽을 때는 '아, 이 분야는 내가 전문가지'라는 지금 생각하면 씨알도 안 먹히는 이야기를 대 놓고 하기도 하고, 나누리 회의에서는 잘 모르는 게 있어도 아는 척 고개를 끄덕 끄덕 하고는 했었다. 근데, 알고보니, 정말! 나는 아는 게 별로 없었다.

 

 이를테면, HIV 감염인들이 ARV 약을 시간맞춰 먹는 게 엄청나게 중요하다는 사실을 나는 태국에 와서야, 매우 최근에야 알았다. 아, 나는 정말 몰랐다. 뭐, 그 약이라는 게 시간 맞춰 먹을 수도 있고 안 먹을 수도 있는 거 아닌가, 그냥 약 먹는 게 많아서 힘이 들겠지, 남들이 무슨 약이라고 물으면 곤란하겠지 정도만 생각하고 있었는데, 알고보니 이 약 꼭 시간 맞춰 먹어야 한다.

 

 근데, 더 생각해보니 나는 한국에서 한번도 에이즈 관련 집회고 회의에서 누군가 약을 먹는 것을 본 적이 없다. 약에 대해서 이야기하는 것도 별로 들어본 적이 없다. (사실, 이건 내가 집회에 잘 안가서, 그래서 그런 걸 수도 있다. 아유, 다른 활동가들은 다 알고 있었는데, 나만 몰랐던거면... 젠장.... 조낸 챙피한거다...ㅠㅠ)  근데 가만히 이야기를 들어보니 각 약마다 부작용이 각기 다르고, 또 섞어 먹으면 안되는 약의 조합도 다양하다고 한다. (에이즈 치료제는 보통 세 가지를 섞어서 복용하는데, 이때 함께 먹어서는 안되는 약들이 있다고 한다. 의사들이 종종 이 사실을 모르고 잘못 처방하는 경우가 있어서, 태국에서는 치료제 관련 교육에서 이 부분에 관한 정보를 여러번 숙지시킨다) 근데, 난 사실 칵테일 요법이라는 말만 알았다. 약이야 뭐, 의사가 알아서 주겠지 하고 있었던거다.

 

 도대체 우리 활동가들은, 행사 때 오시던 그 분들은 언제, 어디서 약을 먹었던 걸까?

 

 여기와서 보니, 사람들이 약을 먹는 모습을 쉽게 볼 수 있다. 집회에서도 약을 먹고, 회의하다가도 약을 먹는다. 집회하러 갈 때 진행 스태프들은 약 가방을 챙겨가는데, 혹시나 회원들 중 약을 두고 오거나 잊은 사람이 있을까봐 꼭 가지고 간다고 한다. 나는 이런 일이 중요할 거라는 사실을 진짜, 생각도 못하고 있었다. 에이즈는 고혈압이나 당뇨병과 같은 만성 질환이야라고 말로만 알았지 그게 의미하는 게 뭔지, 매일 시간맞춰 약 먹어야 하는 게 어떤 건지 나는 사실 생각해보지도, 상상해보지도 않았다. 그냥 그런거보다 머리로만, 말로만 알고 있었던 거다.

 

 에이즈 감염인들과 함께 하는 운동, 나도 거들고 있는 줄 알았는데, 나는 암것도 모르고 그냥 왔다갔다만 한거였다. 혹시나 이야기하다 말실수나 하지 않을까 눈치만 봤지 도대체 모르고 있었다. 어려움이 뭔지, 무엇이 중요한 일인지 말이다. 누군가 어떤게 사는지 상상해 볼 여지도 없이, 자기 사는 모습 보여줄 틈 없이 해왔다면, 그건 내가 그닥 도움되는 존재가 아니라는 이야기다. 사람이 건강하고 편안하게 지낼 수 있는 시간들, 눈치 보지 않구 숨기지 않아도 되는 때, 아마도 여기에서부터 더 큰 변화들이 시작할텐데, 이런거 이제껏 눈 꾹 감고 알려고도 안했다.  

 

 그리고 몰랐다는 건 순 핑계에 거짓부렁이다. 의약품 접근권 목소리만 높였지 알고보니 나 역시 약 못먹게 방해하는 그 누군가 중의 하나였다. 치료제 가격 올리는 제약 회사만큼이나 이미 있는 약 먹지 못하게 하는 그 순간들, 몰래 먹거나 그냥 약 안 먹고 건너 뛰게 하는 그 상황들  역시 큰 장애물이었다는 거 이제야 알았으니 말이다.  

 

 이제는 약 먹는 시간이 중요한 줄 알지만, 그래도 서울에 돌아가면 어떻게 사람들이 숨어서 약 먹지 않는 때를 만들 수 있을지 아직은 잘 모르겠다. 도대체 답을 모르겠지만. 그치만, 우선은 오늘은 반성한다. 엄마 말대로 헛똑똑이 짓 안하게, 입으로 말고 생활로 알게, 그럴 수 있게 말이다.

  

 

 

진보블로그 공감 버튼트위터로 리트윗하기페이스북에 공유하기딜리셔스에 북마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