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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집] <건강한 사회를 의심하는 집담회> 생생 기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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함께 이야기 나눈 날  6월 15일 (수) 오후 7시

 

이야기 나눈 곳 / 서울 마포구 동교동 까페 어슬렁 정거장 

 

사회 / 목련 (웹진 <글로컬포인트> 기획편집팀)
이야기손님 /

권미란 (에이즈환자 건강권 보장과 국립요양병원 마련 대책위원회)
박사라 (홈리스행동) 
윤경 (전국장애인차별철폐연대)
심희선 (보건의료노동조합 고려 수 요양병원 지부장)
그리고 함께 한 참석자들 

 

정리 나영 (웹진 <글로컬포인트> 기획편집팀)

* pdf 파일 다운받기  [2. 기획 - 집담회.pdf (367.78 KB) 다운받기]

 

지구지역행동네트워크(NGA)는 작년 7월부터 노동, 여성, 생태/환경, 장애, 이주, LGBT/퀴어, 청소년 운동 등 다양한 운동 영역의 주체들이 연대하고 만나며 새로운 전망을 만들어낼  수 있는 구체적 쟁점들을 고민해보기 위해 <노동, 생산/재생산의 전환을 위한 연속 간담회>를 진행하고 있다. 이야기를 진행해나갈수록 매 간담회에서 확인되는 것은, 우리에게는 단지 연대가 아니라, 지금까지 우리가 어떤 ‘도달해야 할 가치’ 또는 한 번도 제대로 의심해보지 않았던 현재의 가치 체계와 위계에 대해 완전히 뒤집어보고 새로운 가치 체계로 전복하기 위한 시도가 필요하다는 사실이었다. 
특히, 지난 해 10월 진행되었던 3차 간담회에서는 <좋은 몸, 나쁜 몸, 이상한 몸>이라는 주제로 생산성과 효율성 중심의 노동구조에서 어떤 위계와 배제가 조직적․인식적으로 이뤄지는지 살펴보고 우리 사회의 ‘정상성’의 기준에 따른 몸의 위계화에 대해 이야기를 나누었고, 이 자리에서 좀 더 중요한 문제의식을 발견하게 되었다. 그래서 우리는 이번 웹진 3호의 특집을 ‘건강’으로 잡고 ‘건강’ 가치와 기준이 어떻게 다양한 방식으로 현재의 위계들을 가로지르는지 좀 더 고민해 보기로 했다. 
무엇보다, 현장의 목소리가 중요했다. ‘건강’의 기준과 가치, 효율성에 따라 건강한 몸과 그렇지 않은 몸을 가르고, 누군가에게는 건강할 권리조차 빼앗으며, 누군가에게는 ‘건강한 사회’를 해친다며 범죄자 취급, 세금낭비자, 안보&국방에 위협이 되는 ‘위협요소’로 취급하는 사회에서 누가, 어떤 현실을 경험하고 있는가. 우리는 어떤 지점들을 함께 경험하고, 목도하고 있는지, 무엇을 함께할 수 있을지 이야기를 나누어 보았다. 


질병, 장애, 빈곤, 연령, 성별, 노동 등 다양한 교차점에서 경험하는 ‘건강’의 문제들

 

건강은 서로의 안부를 묻는 가장 기본적인 전제이다. 또한 그런 만큼 한 사회의 평등이나 사회정의 수준을 보여주는 척도이기도 하다. 하지만 과연 ‘건강한 상태’라는 것은 무엇을 의미하는 것일까. 사회와 국가는 끊임없이 개인들의 건강에 개입하고, 기술과 자본은 점점 더 적극적으로 건강을 시장의 영역으로 더 넓게 확장해가고 있다. 건강하지 않은 사람, 건강할 자원이 없는 사람, 그럴 자격이 없다고 여겨지는 사람들은 방치되고, 밀려나고, 쫓겨난다. 집담회에 모인 이야기손님들과 참석자들은 이런 각각의 경험들을 풀어놓는 것에서부터 이야기를 시작했다. 

 

심희선 보건의료노동조합 고려 수 요양병원 지부장
병원에서 물리치료사로 일하고 있다. 이 병원은 230 병상 정도의 재활 전문 요양병원인데, 20대를 거의 다 보냈다. 여기서 주로 하는 일은 뇌손상 환자, 척수 손상 환자들. 뇌졸중, 중풍 등 뇌혈관 질환, 파킨슨병 등. 뇌에 질환이 생겨서 신체장애를 가지게 된 분들, 사고로 척수를 다쳐서 하반신 마비 등을 지니게 된 분들 등의 물리치료를 하는 일이다. 
치료사들은 70여명 정도이고 물리치료사와 작업치료사가 있는데, 물리치료사는 신체적인 역할, 작업 치료사는 심리치료와 식사 보조 등의 역할을 한다. 
우리는 환자들과 보통 1:1로 치료를 하는데 8시간에 열 세 분 정도 치료를 한다. 
신체를 사용할 수 없는 부분을 도와드리는데 여성 직원들은 환자가 남성이든 여성이든, 덩치가 크든 작든 제대로 다루지 못하면 모두 노동자 개인의 기술로 평가된다. 환자를 옮기다가 디스크, 관절, 손목 인대 등 근골격계 질환을 가지게 되는 경우가 많다. 디스크가 터진 후 다음 날까지 일을 하다가 바로 다다음 날 그만둔 직원도 있다. 매년 디스크, 손목이 나가는 직원들이 생기는데 누구도 산재 신청을 하지 않고, 산재의 존재 자체도 모르는 상황이다. 
게다가 산재 신청을 하고 나서 강등을 당하기도 한다. 산재 신청을 하지 말라고 계속 권유하고, 그래도 할 경우 “지켜줄 수 없다”, “왜 스스로 병신이 되려고 하냐”, “왜 산재 기록을 스스로 남기려고 하냐”는 등의 말을 한다. 결국 당사자는 강등된 이후 기계 치료 업무를 보고 있다.
2015년에 노조 설립을 하고 처음에는 아프지 않고, 건강하게만 일하고 싶다고 생각했다. 3년짜리 소모품이나 건전지처럼 갈아 끼워지는 상황이 너무 많다. 5년차 이상을 본 적이 없다. 
우리의 삶의 질이 환자에게도 전해질 것이다. 5년차 미만에게 재활의 프로가 되고 꽃을 피우라는 요구를 한다. 10년 이상의 치료사는 오히려 뽑지 않고, 환자들은 치료받을 권리를 빼앗기는 상황이 계속되고 있다. 

 

박사라 홈리스행동
노숙인들은 병원에 가면 엄청난 차별이 기다리고 있다. 노숙인 의료급여를 받아서 병원에 가면 ‘노숙인 1종’이라고 찍혀있고 면전에서 “노숙인이래”라는 등의 말을 한다. 굉장히 수치심을 느끼기 때문에 차라리 병원 안가겠다고 하시는 분들도 많다. 
응급실도 굉장히 외진 곳에 배치되어 있다. 예전에 모 시립병원에 병문안을 간 적이 있는데 노숙인 병동이 따로 있고, 넓은 공간에 병상만 열 개 넘는 침대가 놓여있었다. 
서울역에서 상담 활동을 하는데 치아가 가장 취약하다. 이미 너무 마모가 되어서 틀니조차 못하고 아무것도 못 먹고 돌아가시는 경우도 있다. 해를 거듭하면서 하나씩, 두 개씩 빠지거나 아예 맨 입으로 돌아다니는 경우가 많고, 틀니도 잃어버리고... 
무료급식도 식단 자체가 건강하지 못해서, 이걸 드시는 분들이 아무 힘도 쓸 수 없는 상황이다. 그런 상황에서 노가다, 폐지 수집, 거리 노숙 등을 해야 하기 때문에 건강을 챙기기는 더 힘들다. 당뇨, 관절, 혈압 관리 등이 심각. 신경통, 관절 문제 류마티스 등에 걸리는 경우가 많다. 주거와 일자리도 중요하지만 본인의 견강을 스스로 챙길 수 없는 문제가 너무 심각하다. (이 얘기를 하다가 박사라 씨는 목이 메여 잠시 이야기를 멈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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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미란 에이즈환자 건강권 보장과 국립요양병원 마련 대책위원회
HIV/AIDS 감염인 인권운동은 10여년 정도 되었는데 90년대 후반부터 감염인들의 자조 모임이나 온라인 모임이 생기기 시작해서 대사회적 목소리를 내기 시작한 것은 2000년 중반 무렵부터였다. 원래 <나누리+>라는 HIV/AIDS 감염인 단체가 있는데 이 단체에서는 사실 우리가 건강, 의료 운동을 하는 곳인지, 환우회 같은 것인지 아무튼 이런 정체성이 그리 강하지는 않았다. 질병의 경중에 따라 약을 먹는 행위, 정기적으로 검진을 받으러 가는 행위가 있을 때만 감염인이거나 환자라는 상태를 인지하는 사람들도 있고, 에이즈가 좀 진행이 됐을 때는 중증 환자도 있기 때문에 단체의 정체성에 환자, 건강권 얘기가 크지 않았을 수도 있다. 하지만 한국의 상황 상 의료, 보건 영역에서 문제가 많아서 운동을 하지 않을 수가 없었다.
회복될 수 없는 손상을 입은 경우 장애등급을 받는 경우도 있는데 최근에 장애인차별금지법 제정 활동을 하셨던 분들의 조언을 들으면서 감염인들이 이 법의 도움을 받을 수 있는지 고민하고 있는 상태이다. 

 

윤경 전국장애인차별철폐연대
장애인들은 4년 째 광화문 지하역사에서 장애등급제, 부양의무제 폐지를 요구하며 농성 중이다. 장애인과 가난한 사람들은 많이 닿아 있고 닮아 있기도 하다. 
신체 장애인은 아무튼 일단 병원에 접근하는 것 자체가 거의 어렵다. 장애인 건강권에 관한 법이 있는데, 장애인 지정병원이나 주치의 제도에 관한 사항도 거의 “~해야 한다”가 아니라 “~할 수 있다”로 되어 있어서 재정자립도가 되어 있지 않은 지역에서는 지정병원을 굳이 하지 않는다. 이런 지점에서는 노숙인, 감염인들과 함께 얘기할 부분이 많기도 하다. 
장애여성들의 경우 임신을 하면 갈 수 있는 병원이 손에 꼽을 정도이다. 장애인의 특성을 잘 고려해서 검진할 수 있는 병원들이 워낙 없다. 산부인과는 다양한 이유로도 갈 수 있고, 그래야 하는데 거의 시스템이 없어서 그나마 이용이 가능한 병원이 있으면 그 병원만 가야 한다. 
정신장애인의 경우 장애인 복지법에 신체장애와 정신장애가 분류되어 있고 정신장애는 자폐, 발달, 정신 장애로 구분된다. 지적 장애, 발달장애의 경우에도 갈 수 있는 치과가 별로 없다. 발달장애인들은 소리나 빛 등 주변 환경에 매우 민감할 수 있는데 치과 치료의 경우 제대로 치료할 수 있는 공간이 별로 없다. 
게다가 장애인들은 타의에 의해서 의료적 처치를 받게 되는 상황이 많다. 임신중절의 경우에서도 자녀가 장애가 있다고 판단되면 가족에 의해 강제로 임신중절이 되거나, 여성이 지적장애가 있을 경우 본인이 좋아서 했다고 이야기하고 사랑해서 성관계를 했다고 해도 당사자의 지적장애를 근거로 가족에 의해 강제로 임신중절이 되는 경우도 굉장히 많다. 
장애인들에게 많은 사람들이 ‘불편하신 분들’이 이런 걸 하다니.. 하면서 ‘불편하신 분들’이라고 하면 장애인들이 화를 많이 내는데, 실제로 장애인은 건강하지 않다. 하반신 마비가 있는 경우 여름에는 거의 지옥이다. 하반신 마비에 순환기 장애까지 있으면 느낌이 오지 않아서 모르기 때문에 욕창이 생기는 경우도 많다. 이런 상황은 그냥 있는 그대로 ‘건강하지 않은’ 상황인 것이다.  
이럴 수밖에 없는 조건에 놓여 있는 사람은 사실 굉장히 많지 않나. 홈리스, 감염인 뿐 아니라 여성, 노인 등 건강하지 않은 사람은 많다. 그럼에도 건강하게 살 수 있게 만들어주는 사회가 필요한 거지, 그 건강하지 않음의 입증 책임을 개인에게 전가하는 것이 문제 아닌가. 

 

낙인과 배제, 차별이 당연시되는 공간들

 

권미란
HIV/AIDS 감염인들은 주로 행정기관과 병원과의 접촉면에서 발생하는 배제와 차별 등의 문제에 대응해 왔는데, 병원에서는 진료거부, 표식을 다는 등의 일이 늘상 있어왔다. 하지만 활동을 하면서 그 행태가 조금 바뀌게 되었다. 의료법에 환자 정보 누설 금지 조항이 있지만 그럼에도 별도의 표식을 한다든지, 환자복을 바로 폐기물로 버리는 등의 문제가 있었는데 지금은 많이 잦아든 편이다. 하지만 여전히 문제는 많다. HIV 바이러스는 면역력을 떨어뜨리고, 나이가 들면서 여러 가지 질병이 들 수 있는데 따라서 감염내과 만이 아니라 여러 진료과를 다녀야 한다. 그런데 다른 진료과에서는 거의 100% 배제를 당하게 된다. 지금은 감염인들이 많이 표출하시는 것이 중이염, 스케일링, 혈액 투석 등에서의 진료 거부 문제이다. 
최근에는 요양병원 대책위를 결성해서 활동하고 있다. 감염인들이 요양병원에 가야 하는 상황은 나이가 들어서가 아니라, 대체로 병에 대한 낙인과 공포가 심하다 보니까 검사를 못 받고 자기도 모르는 상태에서 병이 진행되면서 기회질환이 와서 이미 회복될 수 없는 상황이 된 경우이다. 혼자 거동하거나 밥을 먹을 수 없는 상태에서 요양병원에 가게 되고, 그래서 우리도 요양병원 문제는 고민을 못하고 있었는데, 정부가 지정위탁해서 운영해 온 요양병원에서 인권침해 문제가 발생하면서 지정위탁 계약을 끊게 되었다. 그러면 다른 요양병원이 필요한데 다른 요양병원들은 거부하고 있는 상황이다. 이렇게 선명하게 배제를 당하다 보니까 너무 비참한 심정이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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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사라
정말 열악한 상태에 계신 분들임에도 불구하고 서울역만 해도 홈리스에 대해 매우 비인간적으로 대우한다. 노숙을 하게 된 계기는 다양하다. 사회적으로 실직할 수밖에 없는 구조들이 있는데 기본적으로 이 분들을 대하는 태도 자체가 더럽고 불편하니까 치워버리는 방식이다. 서울역 강제 퇴거 조치 때도 역에서 다 쫓겨나서 거리로 나와야 하는 상황이 있었고, 박원순 시장으로 바뀐 이후에는 강력하게 서울역에 얘기한 게 아니라 죽지 않을 정도의 ‘희망온돌’ 사업으로 컨테이너 박스를 세워 잠을 잘 수 있는 공간만 마련해줬다. 그것도 비 홈리스들에게 거부감이 없도록 밖에 그림을 그림으로써 안에 사는 사람들의 모멸감을 그림으로 지워버리는 방식으로.
서울역에서는 홈리스를 쫓아내는 명목으로 테러 위협을 내세웠다. 홈리스 사는 공간마다 불심검문을 했다. ‘노숙자 풍’. 검은 모자, 검은 옷에 가방 같은 노숙인 복장만으로 표적이 되고 불심검문의 대상이 된다. 시민들과 철도 여행객들에게는 의도된 설문지를 돌려서 불편한 점들을 쓰게 하고, 홈리스에 대한 혐오를 시민 의견으로 정당화한다. 심지어 특수 경비 용역도 채용한다. 강제퇴거 초반에는 다리를 못 써서 발을 끌면서 가는 사람을 계속 뒤에서 쫓아가면서 퇴거시킨 경우도 있었다. 
이게 노골적으로 진행이 되면서 밖으로도 확산되었는데, 바자회 물품 판매 보관대 사이에도 못 들어가게 하고, 서울역 아래에서도 아침에 물청소를 하면서 치워버리고, 의자, tv, 팔걸이도 다 뽑아버렸다. 계단에도 앉지 못하게 했었다. 기둥에 요철을 박아서 못 앉게 하고. 지하도에서는 지하철 보안관들이 노숙인들에게 왜 있냐고 묻고, 누구 기다린다고 하면 나가서 기다리라고 한다. 휠체어 장애인 등 홈리스 장애인들이 굉장히 많은데 충전을 해야 하는 전동휠체어를 지하철에서 충전하고 있으면 빨리 나가라고 계속 쫓아내고 나갈 때까지 쫓아낸다. 
서울시에서는 민원이 많다고 집중 상담을 한다면서 시설 갈 사람은 시설, 병원, 주거지원 등 상담하면서 노숙인이 지켜야 할 매뉴얼, 시민에게 불편함을 주지 않아야 한다고 강조한다. 그리고 하루 두 번씩 두 시간 동안 물청소 한다고 못 들어가게 하기도 한다. 
점점 홈리스가 발 디딜 틈을 남기지 않으려고 하는 시도들이 만연해 있고, 당연하게 느껴지는 상황이다.

 

윤경
정신장애인들의 경우 최근 강남역 사건에서 보듯이 정신장애인을 다 가두겠다는 방식의 대처를 한다. 정신보건법이 따로 있어서 정신장애인은 장애인복지법의 적용을 받지 않는다. 정신장애에 대한 혐오가 바탕이 된 것이다. 원래 가족이 동의만 하면 강제입원을 할 수 있다. 그래서 성소수자의 경우도 부모가 이 사람을 정신질환이라고 생각하면 강제입원을 시킬 수 있다. 원래 법 개정 이전에는 6개월 동안 강제입원을 시킬 수가 있었다. 결국 약에 취해서 오랜 시간 동안 병원에 있다가 없던 병도 생기는 경우들이 많았다. 최근에 법을 개정하면서 강제입원 개월 수를 줄이고, 두 명 이상 의사의 동의가 있도록 했다. 그런데 가족 관계에서 강제 입원의 사례가 너무 많으니까 이를 줄이고 제한하기 위해서 행정입원 절차를 넣었는데 강신명이 이 조항을 악용해서 이번 강남 여성살해 사건 이후 행정입원을 시키겠다는 조처를 내놓은 것이다. 여성에 대한 혐오를 가리기 위해서 정신장애인에 대한 혐오를 부추기는 상황이고 이게 먹히는 상황을 보면서 정신장애인에 대해서 한국 사회가 정말 심한 혐오의 대상으로 두고 있다고 생각했다.

 

패널들이 한 차례 이야기를 나눈 이후 참가자들도 자신의 경험과 고민을 나누었다. 성노동자이자 성소수자로서 살아가면서 정신질환으로 병원에 입원한 경험도 있는 한 참가자의 이야기는 현재의 보건의료 시스템과 정부 정책이 장애나 질환을 가진 당사자들의 건강과 권리를 고려하기 보다는 이윤과 제도적 편의에 맞추어져 있어 오히려 당사자들의 건강을 침해하고 있다는 윤경의 이야기와 자연스럽게 연결되었다.   

 

참가자 1
나는 성노동자 권리 운동을 하고 있는데 성노동자의 권리는 HIV/AIDS, 장애, 빈곤 등에도 다 연결되는 이슈이다. 저도 오늘 들으면서 굉장히 화도 나고... 의료 지식, 건강에 대한 지식 이런 것들이 이것을 제공받는 사람들을 누구로 상정하고 있는가를 볼 때, 성노동자, 장애인, 감염인, 홈리스 등에 대해서는 당연히 배제시키고 있다.  
의대 졸업하신 분들의 얘기를 들어도 수업 중에 성노동은 물론이고 요즘은 성소수자 얘기를 잠깐 듣는 정도 수준이라고 한다. 의료인들도 이런 사람들의 다양한 상황들에 대해서는 제대로 배우지도 않고, 배울 필요도 못 느끼고 그저 모르는 것이다. 
저의 경우 정신질환으로 5년 정도 치료를 받고 있는데 병원에서 얘기를 하고 상담을 받으면 늙은 의사들이 남자랑 자는 거 병이다 내가 고쳐줄 수 있다고 이야기한다.
폐쇄병동에 들어갔던 경험도 있는데 세브란스 같은 경우는 돈을 많이 내고 들어가면 자유롭다고도 하지만 철창과 유리벽이 있고, 문은 철문으로 막혀 있는 상태에서 아침, 점심, 저녁으로 약을 먹고, 먹고 나면 무기력하게 있을 수밖에 없다. 기간이 어쩌구 해도 병원 옮기면 그만이고. 의료진 말을 안들으면 약의 양이 확 늘어나면서 거의 바닥을 기어다니면서 침을 흘리는 상황까지 간다. 환자끼리 다툼이 일어나도 여기서는 바로 묶어놓고 주사를 놓는다. 거기에서는 이런 상황이 너무 당연하고 저항할 수 없다. 소위 어른이 어린아이를 대할 때 하는 말투로 환자를 계속 대하고. 
건강은 누구에게나 필요하지만 건강해지기를 원하는 무언가가 정작 필요한 사람들에게는 제대로 주어지지 않고 있다. 그 서비스는 누구에게 맞춰져 있는 것인가. 

 

윤경
정신보건법 개정할 때, 정신과 의사들이 굉장히 반대를 했는데 표면적으로는 여러 가지 있겠지만 사실은 자본과 연관이 되어 있다. 한국은 환자만 갖다 놓으면 국가에서 돈은 다 나오니까, 약 다 때려 넣으면 돈 많이 받는 거고, 옛날 흑백영화에 나올 법한 병원도 많고 폐쇄병동은 외부 사람의 접근도 어렵기 때문에 무슨 일이 벌어지고 있는 지 알 수 없다. 요양 병원도 마찬가지지지만 다 병원 돈 불려주는 일이고 그 조건에 맞추어져 있다.

 

참가자 1
원래도 문제는 있었지만 병원에 들어가면서 처음으로 발작이 시작되었다. 친하게 지내던 형의 경우 방에 가둬놓으니까 더 날카로워지고 잠시 싸움이 일어났는데 중년 남성 관리사들이 바로 붙들고 묶고, 강제로 주사를 놓는 장면을 보면서 처음으로 쇼크가 왔다. 
공익을 가기 위해 아픈 걸 입증해야 하는데 3년 동안 일곱 번을 진단서를 떼고 매번 병무청에 가야 했다. 그 기간 동안 나는 점점 더 아프고, 심각해지고, 병명이 더 늘어나는 상황에서 어떻게든 입증하지 않으면 내가 죽겠다 싶은 상황에서 이런 종류의 비참함을 평생 해야 하는 건가 하는 생각도 들었다. 

 

윤경
입원하고 나서 오히려 발작을 하게 되는 상황. 발달장애나 지적장애를 가지고 있는 경우에도 문제행동이 발달장애인을 지원하는 내용의 굉장히 중요한 영역인데, 이것 때문에 어쩔 수 없이 굉장히 통제적인 지원을 할 수밖에 없다. 스웨덴에서 발달장애인을 지원하는 사람이나 영국에서 공부한 사람의 얘기도 유사했는데 그 나라는 이만큼 과도한 문제행동을 하는 발달장애인의 비율이 매우 적다고 한다. 그런데 한국은 왜 그럴까. 한국 사회가 문제행동을 안할 수 없는 사회가 아니기 때문이다. 너무 빠르고, 시끄럽고, 가족들은 통제를 중심으로 고치려고 한다. 사회는 발달장애인을 전혀 고려하지 않고. 사실 발달장애인에게 문제행동은 자신의 의사를 표현하는 행동일 수 있는데 이걸 이해하지 않고 그냥 약을 먹이거나 벌을 주거나 상을 주는 식으로 행동을 수정하려는 식으로 접근하기 때문에 근본적인 접근을 할 수 없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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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보다 행정과 자본의 편의를 위한 제도

_삶을 유지할 최소한의 조건을 위해 아픔과 무능력을 입증해야 하는 사람들

 

윤경
현재 장애등급제의 경우 1급부터 6급까지로 등급이 나누어져 있는데 우리는 지금 광화문 지하역사에서 농성을 하면서 이 등급제 폐지를 요구하고 있다. 장애등급제는 필요한 사람에게 필요한 서비스를 주는 제도라기보다는 국가가 효율적으로 사람들을 관리하고, 정부의 입장에서 예산을 유동적으로 사용하기 위해 만들어진 제도이다. 장애와 관련해서 새로운 제도가 생길 때 등급제를 이용한다. 장애연금이 생긴다면 예산을 안 늘리고, 1, 2급을 줄이는 식이다. 새로운 제도가 생기면 등급 심사를 새로 해서 대상에서 떨어지는 사람이 우수수 발생한다. 
장애의 기준에 대한 허상이 있다. 이 기준을 만들고 판정하는 사람들이 매우 객관적이고 과학적일 것이라는 허상이 커서 비장애인이나 장애인들 역시 장애등급제를 넘어서는 복지 제도를 상상하기 어려워했는데 4년간 농성하면서 상상할 수 있게 되었다. 장애등급제는 일본이랑 한국 밖에 없고, 장애인의 입장으로 고려한다면 등급을 나눌 필요 없이 당사자가 필요한 서비스에 따라 그에 맞춰 필요한 것들을 제공하면 되는 것이다. 
장애등급제와 함께 부양의무제 폐지도 요구하고 있는데, 부양의무제는 말하자면, 가난한 사람이 있으면 국가가 기초생활보장법에 근거해서 지원을 해줘야 하는데 가족이 있으면 이들에게 부양을 전가하는 것이다. 부양해야 할 가족이 한 사람만 있을 리도 없고, 숫자가 주는 거짓말이기도 한데, 서울에서 9천만 원짜리 전셋집이 있다고 모두를 부양할 수 있는 것이 아님에도, 아무튼 소득이 있으면 부양해야 한다. 그래서 전셋집 보증금을 다시 받아서 월세로 갔다가 계속 돈을 까먹어서 돈이 없게 되면 1인당 최저생계비 50만원을 겨우 받을 수 있는 상황이 발생한다. 
장애등급제에 따라 자신에게 필요한 것을 요구하기 위해서는 스스로 엄청 장애를 강조해야 한다. 아무 것도 혼자서 할 수 없다고, 말도 잘하면 안 되고 온 몸으로 무능력한 사람임을 강조하고 의사를 설득시켜야 등급을 높게 받아 그나마 필요한 서비스를 제공받을 수 있다. 부양의무제도 얼마나 가난하고 근로할 능력이 없는지, 얼마나 가족과 연락을 안 하고 있는지 등을 다양한 방법으로 증명해내지 않으면 안 된다. 그래서 장애인과 가난한 사람들이 같이 농성을 하고 있다. 

 

장애인 지원제도와 관련해서 생애주기별로 보면 장애아동의 경우 만 5세 이전에는 장애 판정을 해주지 않는다. 영구적으로 손상되었다는 것이 증명되지 않아서 장애 등급을 내주지 않기 때문이다. 그 때까지는 어머님들이 다양한 재활치료를 시도한다. 언어치료, 청능치료, 심리행동 치료 등 다섯 개의 재활 치료를 정말 열심히 하신다. 그런데 문제는 물리작업은 의료영역으로 들어가는데 언어치료, 청능치료, 심리행동 치료는 의료로 들어가지 않는다는 것이다. 언어치료는 장애인 복지 제공 인력으로 들어갔지만 매우 오랜 시간 동안 국가 차원에서 관리나 지원 정책도, 계획도 없는 상태로 방치되고 있는 변명의 영역으로 남아있다. 그렇다고 물리치료 영역이 제대로 되고 있는 것도 아니다. 바우처 서비스를 통해서 한 달에 20시간 등을 주는데, 이 바우처로는 물리치료를 받을 수가 없다. 바우처 서비스에서 의료치료 영역은 제외되기 때문이다. 의사들이 엄청 반대를 해서 할 수가 없다.

 

성인이 되면 남성과 여성이 다른데, 장애 여성은 임신, 출산 영역과 관련된 의료적 지원이 많이 얘기된다. 많이 비어있는 영역이다. 장애 여성은 검진할 수 있는 산부인과가 거의 없다. 장애인차별금지법 때문에 대놓고 거부하지는 못하지만 시스템이 되어 있지 않다는 이유로 거부한다. 실제로 적합한 침상이 별로 없다. 장애여성들은 임신을 하면 갈 수 있는 병원이 손에 꼽을 정도이다. 장애인의 특성을 잘 고려해서 검진할 수 있는 병원들이 워낙 없다. 산부인과는 다양한 이유로도 갈 수 있고, 그래야 하는데 거의 시스템이 없어서 그나마 이용이 가능한 병원이 있으면 그 병원만 가야 한다. 

 

노인의 경우, 장애에 노인까지 되면 자의적으로 무언가를 할 수 있는 것이 거의 없어서 거의 다 시설로 간다. 활동보조 서비스의 경우 만 65세가 넘으면 활동보조가 아닌 노인장기요양 제도로 받아야 하고, 그렇게 되면 절대 300시간 이상을 받을 수가 없다. 노인이 되면 필요한 서비스를 더 해줘야 하는데 오히려 시간이 더 줄어들고, 동네에서 살 수가 없다. 결국 가족들이 책임져야 하거나 거주시설로 몰아낸다. 산 깊숙한 곳에 있는 요양병원들은 사실상 시설이라고 보면 된다.

 

박사라
노숙인들의 경우 쪽방에 사시던 분 중에는 진료를 받으러 갔는데 거부를 당한 분들도 있고. 게다가 한 달에 20일 정도만 보호가 되고, 필요하면 10일 정도 연장할 수 있기 때문에 병원 진료를 지속적으로 받으려면 계속 신청을 해야 한다. 그래서 노숙인 1종 의료급여 신청을 해서 입원을 했는데, 병원에 있는 동안 본인이 신청을 할 수가 없어서 열흘 정도 지원이 끊기는 바람에 치료에 공백이 생겼던 경우도 있다.
그나마 돈 있는 지자체는 지원이 잘 되는데 다른 지역에는 없거나, 기준 자체도 부실한 경우가 많다. 지정된 병원이 없는 지역에서는 병원마다 뺑뺑이를 돌아야 해서 사망하는 경우도 많다. 결국 이런 의료지원 체계의 공백이 사망까지 이르게 하는 것이다.

 

행정과 자본의 편의를 위해 애초에 권리가 아닌 ‘자격’에 초점이 맞추어져 있는 시스템, 사회적 자원과 기반이 부족한 이들에게 공적 돌봄 보다는 가족을 중심으로 돌봄 책임을 전가하고 있는 시스템은 ‘복지’라는 명분조차 무색하게 만든다. 하물며 이주노동자에게는 이러한 상황들이 더욱 열악한 조건으로 주어질 수밖에 없다. 패널들의 이야기를 들으며 연신 고개를 끄덕이던 한 참가자는 이주노동자인 자신의 파트너의 경험으로 이주노동자들의 상황을 증언했다.   

 

참가자 2
이주노동자 건강에 대한 얘기도 하고 싶은데 지금 동거하고 있는 파트너가 이주 노동자다. 직장에서 의무적으로 건강보험을 가입해야 하는데 그걸 하지 않아서 지금 산재를 겪었는데도 병원에 못 가는 상황이다. 무료진료소는 제한적인 진료과목만 본다. 게다가 방문 가능한 진료 시간대가 달라서 약국에서 임시방편만 가능하다. 내국인들은 지역 보험료를 낮게 내는데 이들은 9만 8천원의 지역보험료를 내야하고, 일부는 심지어 아예 대상에도 포함되지 못한다. 
이주노동자는 주로 공장, 생산직, 육체노동에 종사하다 보면 산재를 겪는 경우가 많은데 아예 의료접근권이 상실되는 상황이다. 이주민은 헌법상 보장된, 내국인과 동등한 지위로 보지 않게 해석하기 때문에 어떻게 보면 이주민들의 상황도 어떻게 할 수 있는 해결책이 전혀 없는 상황이다. 임금 체불도 심각하지만, 출입국과의 문제 때문에 무언가를 제기하면 추방될 수도 있다는 사실이 이런 상황을 더욱 악화시킨다. 
미등록 이주노동자들의 경우 사업주가 4대 보험 가입도 안 하고, 직장 건강보험에서도 당연히 배제되는데 이런 문제도 많거니와, 지역건강보험료도 훨씬 높은 상황에서 소득을 전혀 고려하지 않고 일률적으로 책정하는 등 문제가 너무나 많다. 
비자가 있어도, 저의 파트너의 경우 난민 신청을 했는데 임시적으로 지원 비자가 발급되어 있는데, 난민 신청을 하면 6개월 동안 일을 못한다. 그런데 이것도 출입국 관리사무소에서 허가를 받은 후에나 가능하다. 하지만 이런 정보나 고지를 제대로 알지 못하는 상황에서 허가를 받지 않고 일을 하면 일종의 불법노동 같은 상황이 되어버린다.
무료 진료소도 한국인 도움 없이는 어렵고, 외국인 진료소도 잘 모르고, 의료에 대한 접근도 정보망에서 뒤처지거나 한국 단체의 도움이 없으면 굉장히 열악하고 배제되는 상황이다. 

 

권미란
우리도 이주민들이 연락을 해올 때가 제일 어려운데 이미 감염이 되어서 들어오거나, 한국에서 감염되는 경우도 있다. 그런데 비자 종류별로 굉장히 정책과 처우가 다르다. 미등록 이주민의 경우 의료 지원을 받을 수 있는 공식적인 게 없기 때문에 조합형식으로 하는 데가 있다. 미등록이 아닌 경우 건강보험료를 내면 혜택을 받을 수 있다고 되어 있지만 보험료까지 급여에서 떼이기가 어려워서 보험 없이 살아가는 경우도 많다. 이것도 처지, 비자, 지위마다 다 적용되는 제도가 다르다. 
감염인의 경우 과거에 입국금지, 강제출국이었는데 지금은 입국거부는 좀 남아있고 강제출국을 당하지는 않지만 건강보험이 없거나, 그나마 비자 때문에 치료를 받을 수 없는 상황이다. 비싼 치료비를 감당할 수 없는 상황이 많다. 

 

참가자 2
비자 종류에 따라 원천 봉쇄를 시키는 취지가 뭔지 도대체 이해가 안 된다. 

 


권미란
교수로 들어온 사람과 영어강사로 들어온 사람도 처우가 매우 다르다. 일관성도 없고 완전히 제각각이다. 

 

참가자 3
지금 말씀하신 사례가 앞뒤가 모순되는 상황들과 연결되는 것 같은데, 장애인이 노인이 되었을 때 제도 자체가 바뀌는 상황 같은 것 말이다. 부양의무와도 관련이 되어 있는 것 같다. 가족들에게 다시 책임을 맡기는.

 

윤경
노인 장기요양 제도가 가지고 있는 허점이 매우 많은데 65세 이전까지는 장애인이고 그 이후는 노인이라는 것. 그 기준은 그저 돈 문제뿐이다. 활동보조 등급은 계속 2년에 한 번씩 재심사를 받으면서 갱신할 수 있는데 노인이 되면 그런 도움이 필요한 시간이 더 늘어나니까, 시간을 줄이고 돈을 줄이기 위해서 지원받을 수 있는 제도를 바꾸게 만드는 것이다. 2, 3년 정도의 유예기간을 두지만 큰 의미가 없다.  

 

누군가에게는 폭력과 배제가 당연시되는 사회

_‘건강한 삶’을 위해 필요한 것은 병원만이 아니다

 

참가자 3
지역건강보험에서 배제하는 것도 지역에 거주하지 않는 사람으로 배제하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서울역에서의 퇴거도 그렇고, 언제 어떻게 쫓겨나야할지 모르고 언제 들려나갈지 모른다는 불안이 주는 정신 건강적 위협도 크다는 생각이 들었다. 
어떤 공간과 시간에 대한 재량이 없고 자유가 없을 때 내가 어떤 통제에 철저하게 종속될 수밖에 없다는 무력감. 그런 상태에 계속 있게 될 때 정신적으로 미치는 영향이 크다. 
물리치료사들도 성희롱이 너무 빈발해서 모든 대인직업들이 그렇겠지만, 이런 식으로 내 몸이 어떤 장소에서 안전하게 침범 받지 않고 안전하게 보장을 받으며, 이동하고, 관계를 맺는 것이 끊어지지 않을 수 있어야 한다. 그런데 이것이 끊어질 때 이런 자유를 박탈당하는 것이 당연해진다.
추행, 질병, 폭력에 늘 가까운 사람들이 있다. 여성이 밤길을 다닐 때 안전하고 편한 마음으로 다닐 수 없기 때문에 그 장소들로부터 추방을 당하는 것이고, 내 몸과 목숨까지 소거당할 수 있는 상황들이 발생하는 것처럼.  
건강이라는 것이 아프고 아프지 않은 문제 차원이 아니라 이런 자유와 목숨까지 위협당할 수 있는 현실과 연결되어 있다고 생각한다. 어떤 트라우마가 있을 때, 이 관계망이 끊어지고 고립되게 만드는데 이런 고립이 주는 사회적 불건강 상태를 중요하게 보아야 하지 않을까.  
건강이라는 말을 들을 때 속이 뒤틀릴 정도로 매우 기만적인 셋팅 위에서 허울 좋게 쓰이고 있는 상황이 있고, 이 말이 매우 왜곡되었다고 생각한다. 이 말을 어떻게 회복할 수 있을까. 

 

권미란
굉장히 중요한 말인 것 같다. UN AIDS, 장애인 운동과 함께하면서 고민을 얻게 되는 상황이 있었는데 감염인들은 일단 갈 곳이 없는 게 기본적인 조건이 된다. 노들야학 근처에 공간을 얻으면서 교류할 기회가 있는데, 감염인들에게서 “장애인은 가족이라도 있잖아” 라는 말이 튀어나오기도 한다. 일단 갈 곳이 없기 때문에 기본적으로 터져 나왔던 요구가 우리도 정신과 폐쇄병동에, 요양병원에, 꽃동네 가게 해 주세요라는 요구였다. 사회적으로 관계를 맺으며 살아갈 수 있는 방법을 요구할 겨를조차 없다. 유엔에이즈에서도 요양병원 얘기를 왜 하려고 하냐고 한다. 
정말 갈 데가 없으니까 꽃동네라도 가야되나 하던 무렵에 장애인 단체에서 탈 시설 얘기를 하는 것을 들으면서 사람답게, 건강하게 산다는 것이 어딘가 가서 치료받는 것만이 아니라 이 관계망 속에서 살아가야 한다는 것으로 고민해보게 되었다. 

 

박사라
메르스 사태가 터졌을 때, 다른 사람들에게는 사람 많은 곳에 가지 말라, 모이지 말라는 등의 얘기를 했는데 그 때 노숙인들을 대하는 태도에서 노숙인들은 죽어도 된다는 암묵적인 분위기를 많이 느꼈다. 국립의료원에 머물던 사람들이 갈 데가 없는 사람들이 다 그냥 거리로 쏟아져 나와야 했다. 병원에서 감염이 되었을 수도 있는데 어떠한 조치나 지원도 없이 거리로 나올 수밖에 없었다. 나오고 나서는 70-100여 명씩 같이 자고, 같이 식사를 하는데 아무런 보호 대책도 없고, 관리도, 치료도 없었다. 당장 급한 마스크조차도 지원되지 않았다. 만약에 이렇게 해서 메르스가 더 퍼졌으면 노숙자들부터 감금했을 것이다. 
홈리스 당사자에게 가장 필요한 것은 주거와 일자리. 건강한 노숙인을 보는 기준은 일할 의지가 있는지 여부이다. 노숙인 일자리가 굉장히 열악한데 담배꽁초 줍기, 시설 청소 같은 것들이다. 다양한 직업군에서 일했던 사람들이 담배꽁초 주워서 어떻게 자립을 할 수 있겠는지 현실적으로 불가능한 상황에서 그 일을 하라고 하고, 이걸 참여하는 사람들을 건강하다고 간주한다. 그 기준에 맞춰줘야 사회의 구성원으로 건강하게 살 수 있고, 건강한 사회에 기여한다는 요구이다. 그런 기준들을 약자들에게 가장 강하게 들이댄다. 
2014년에 거리 현장활동을 하면서 홈리스들에게 “이번 겨울에 춥겠어요” 하면 “아니야 나 병원 가서 3개월 있을거”야 하면서 “근데 어떤 사람이 병원 갔다 왔는데 애가 병신됐어”하는 이야기를 들었다. 
브로커들이 일자리를 준다고 하거나, 술이나 담배를 준다고 데려가서 보호사에 의해서 폭행을 당하거나, 감금을 당하고, 병원만 전전하게 하는 일들이 굉장히 많다. 브로커들이 술을 먹여서 데려간 후에 알콜 중독으로 감금시켜 버린다. 그럼에도 그나마 그런 식으로라도 병원에 가면 잠은 잘 수 있고 밥은 먹을 수 있다고 생각하게 되는 조건들이 존재하는 것이다.
노숙인 지원 체계 내에서 진료 지정 병원에서는 요양병원이 전혀 없다. 점진적으로 이런 지정병원이 아예 없어져야 한다고 생각하지만 지금 당장으로서는 요양병원들이 변태 성업을 하는 걸 막으려면 요양벙원을 지정병원으로 해서 진료할 수 있는 환경을 만들 필요가 있다. 불법요양, 명의도용, 경찰의 불심검문, 폭행, 쓰레기 취급 등의 상황이 너무 많다. 건강 자체가 불가능한....

 

‘건강’의 허상, ‘건강’의 기준, ‘건강의 자격’을 넘어

 

윤경
결국 근로 능력이 시작인 듯하다. 장애인을 분류하기 시작한 건 세계대전 이후이다. 워낙 많은 사람들이 전쟁으로 다치면서 일을 할 수 있는 사람과 아닌 사람을 분류하기 위해 분류를 시작한 것이다. 그 기준에서 딸려 나온 사람들인 부랑인, 불구자, 아동을 착취하는 노동이 계속 있었는데 이 사람들은 조금이라도 뭘 할 수 있는 사람들이지만 저임금의 착취, 학대가 가능한 사람인 셈이다.
우리가 건강하지 않다고 이야기 되어지는 것, 내가 건강하지 않다는 것이 어떤 기준으로 얘기되는 것인가. 무엇이 건강하지 않다는 것인가... 라는 생각을 할 때 이 말 자체가 우리 입장에서 사용되는 것이 아니라는 생각이 들고 기분이 나빠지는 경험을 한다. 
8시간 근로를 왜 해야 하나. 건강한 사람은 하루 8시간을 열심히 일할 수 있는 사람이다. 장애인은 8시간 일할 수 있는 사람이 많지 않다. 덜 일할 수 있으면 자기가 일할 수 있는 만큼 일하고 쉴 수 있는 시간에 쉴 수 있으면 건강하지 않은 조건 때문에 포기하지 않아도 될텐데....

 


심희선
8시간에 맞춰진 몸이 되어야 거기서 필요한 사람, 쓸모 있는 사람이 된다. 8시간에 몸을 맞추는 것이 얼마나 힘든 일인지. 
의료는 절대적으로 보장해야 하는 것이다. 더 이상 민영화가 진행되면 안 되고 막야야 한다는 생각을 많이 하게 된다. 오늘 얘기를 들으면서 그나마 병원에 있는 분들은 혜택을 받고 보호받고 있는 사람들이라는 생각을 했다. 우리는 늘 장애를 가진 환자분들과 같이 하기 때문에 그 분들이 병원에 갔을 때는 그나마 보호받을 때이구나, 그 분들이 집에 가셨을 때의 상황을 생각해 볼 수 있는 시간이었다. 
처음에 일했던 병원이 정신병동과 연관되어 있는 재활병동이었는데 의사들이 약을 쓰는 것을 자기는 예술을 한다고 표현한다. 약에 대해 가장 많은 지식이 있고, 비싼 약을 섞어서 얼마나 많은 비용을 만들어낼 것인가 이런 예술 말이다. 정신과 약이 가장 비싸기 때문에 같은 효능이라도 비싼 약을 썼을 때 보호자들의 제지가 없기 때문에 가능한 일이다. 나라에서 관리를 하면 그렇지는 않을 수 있다. 
아무튼 빈곤, 장애. 이주, 연령 등 관련해서도 의료 민영화에 대한 생각을 많이 하게 되었다. 이미 실비보험이 없으면 불안할 수밖에 없을 정도로 민영화가 많이 된 상황이기도 하지만 말이다. 

 

사용자 삽입 이미지

 

윤경
희선 님께 궁금한 것이 있는데, 치료사의 대부분이 여성이라고 하는데 일부러 그렇게 뽑는 것인지.

 

심희선
여기서는 연애를 하면 가장 싼 인력이 나간다고 생각해서 처음엔 연애도 못하게 했다가 한 5년차 되면 연애를 종용한다. 남성들은 임금이 워낙 작으니까 알아서 나가는 구조다. 임신 순번제도 있고. 퇴사 순번제도 있다. 
두 명이 같이 임신하면 퇴사나 임신중절을 종용하는 경우도. 결혼하고 일하는 경우는 거의 없다. 보통은 다 그만두게 된다. 병원은 아이를 키울 수 있는 조건을 만들어주겠다는 등 많은 약속들을 할 수 있지만 알아서 그만두게 되기 때문에 오히려 많은 약속을 할 수 있는 것이다.
굉장히 군대 같은 시스템이다. 수간호사가 모든 시간표를 짜기 때문에. 간호사는 이런 조건 때문에 수간호사가 움직이지 않으면 노조를 할 수가 없다. 임신순번제에서도 밀릴 수도 있고... 

 

권미란
마지노선이 어디일까 생각했다. 사회적으로 좀 동의될 수 있는 상식은 누구나 건강할 권리가 있다는 것인데, 그 ‘누구나’에서 배제되는 수많은 집단들이 있는 거고 그에 대해 더 많은 얘기를 할 필요가 있겠다. 지금 건강보험을 당연하게 생각하고 있지만 이 원리는 사회연대의 원리고 누구나 다 평등하게 치료받을 수 있어야 한다는 내용이 있는 건데 에이즈 감염인에 대한 태도는 그 책임을 개인에게 덮어씌우는 것이다. 에이즈는 그냥 죄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게 조금만 확장되면 누구에게나 해당될 수 있는 이야기이다. 에이즈 치료제인 푸제온 투쟁이 있을 때, 에이즈까지 해야 하나는 얘기가 자연스럽게 나오는 상황이고, 요양병원 얘기할 때도 요양병원들이 국가에서 책임지라고 하는데 그 함의는 무엇인가가 중요하다. 겉으로는 국가가 책임지라고 하지만 속내는 자신들이 책임지지 않겠다는 것이기 때문이다. 이 누구나가 얼마나 많은 사람들인지 얘기를 많이 해야겠다. 

 

박사라
건강이 자꾸 돈으로 귀결되는 듯하다. 아까 얘기했던 소득을 가질 수 없는 사람들이 건강에서 배제되는 것. 가난하고, 집이 없고, 사회적 관계에서 단절되어 있기 때문에 자꾸 배제되는 문제들이 건강할 권리조차 가질 수 없게 만든다. 

 

윤경
같이 할 수 있는 게 많은 것 같다. 전문 요양원도 같이 그 때 못했던 게 많이 아쉬웠다. 같이 할 수 있는 걸 많이 만들어야 하겠다. 의료 공공성에 대해서도 같이 싸워야 하고. 
병원에서 일하는 노동자가 뼈골이 으스러지도록 일을 하는데 어떻게 안전한 병원이 되겠나. 
단일 사안으로 국가에 제기할 때는 한계가 있다. 더 많이 같이할 수 있는 궁리를 열심히 해보자. 

 

집담회를 마치자, 패널과 참가자들은 모두 긴장이 가득 담긴 깊은 숨을 내뱉었다. 하지만 한 차례 모두의 이야기가 돌아가고 난 후 분위기는 시작할 때와 사뭇 달라져 있었다. 집담회를 하는 동안 생각보다 훨씬 구체적으로, 그리고 다양한 지점에서 서로에게 연결된 이야기를 확인하고, 함께할 이유와 확신을 얻게 되었기 때문이다. 사실 처음 집담회를 기획할 때는 물론 집담회를 시작하기 전까지도, 이토록 많은 이야기들이 연결될 수 있으리라고는 생각하지 못했다. 집담회가 끝나갈 무렵, 윤경은 “오히려 건강하지 않은 사람이 너무 많아서, 건강한 사람이라고 생각할 수 있는 사람은 누군인가 싶다.”고 질문했다. 

 

당신이 만약, 질병이나 장애를 지닌 사람 혹은 이주민이라면, 다른 성적지향이나 성별정체성을 지닌 사람, 특정한 형태의 가족구성으로 살고 있지 않은 사람, 거리에서 생활하는 사람, 또는 성노동을 하고 있는 사람이라면 당신에게는 언제든 다른 이들을 ‘전염’시키거나 ‘오염’시킬 수 있다는 낙인이 따라다닐 것이다. 심지어 그 사실을 이유로 범죄자로 전제될 수도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당신이 스스로의 삶을 유지하기 위한 조건들을 유지하고자 한다면 당신은 끊임없이 스스로의 ‘자격’을 입증해야 한다. 하지만 그 ‘자격’조차 평등하지 않다. 누군가에게 그것은 스스로 움직이거나 이동할 수 있는 능력, 일정한 시간 동안 필요한 만큼의 효율성을 충족시키며 일할 수 있는 능력, 이성애 ‘정상가족’을 구성할 수 있는 능력, 거주국에 충분히 기여하고 흡수될 능력, 안정적인 주거나 소득을 유지할 능력으로 요구되지만, 애초에 이를 획득할 신체적, 사회적 자원이 부족한 이들에게 요구되는 것은 오히려 ‘할 수 없음의 증명’이다.


그리고 그 사이에서 어떤 식으로든 완벽하게 자신의 자격을 입증할 수 있는 이들은 생각보다 그리 많지 않다. 
만약 여성이나 청소년이나 노인이라면, 자격을 입증할 판은 이미 심각하게 기울어져 있다. 
노동자들에게 건강이란 그 자격을 얻기 위해 오히려 포기해야 할 것이 되어버린다. 
누군가의 노동은 자격을 인정받기에 충분한 가치로 여겨지지 않거나 아예 배제되어 버린다. 
한편 ‘건강한 사람’의 자격과 기준은 점점 높아지고 있다. 과학, 의료기술은 보다 많은 사람들을 건강하게 만들어주는 것 같지만 알고 보면 그만큼 건강의 기준을 높임으로써 한편으로 더 많은 이들을 ‘건강하지 않은’ 상태로 만들고 있다. 인간보다 이윤을 우선으로 고려하는 사회 시스템은 이를 더욱 심화시킬 것이다. 

 

그러므로 우리는, ‘건강한 사회’를 끊임없이 의심하자. 그리고, 그 자격을 위해 분투하는 대신, ‘건강’의 기준과 위계, 배제의 틈새를 찾아 연결하고 함께하자. 역설적이게도, 그래야 우리는 비로소 진정한 ‘건강한 사회’에 도달할 수 있을 것이다.  G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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