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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이지 않아도 우리는] 밀양 미니팜협동조합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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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수민

밀양 미니팜협동조합 이사장

* pdf 파일 다운받기  [6. 보이지않아도- 밀양.pdf (5.20 MB) 다운받기]


611 행정대집행 이후 밀양은


밀양의 단장면, 산외면, 상동면, 부북면, 청도면을 관통하는 765kV 송전탑 공사를 막기 위해 공사현장 곳곳에서 경찰과 한전과 싸우던 주민들이 직접 만들고 마지막까지 지켰던 101번, 115번, 127번, 129번 4개의 농성장이 무자비하게 뜯겨 나간 지 2년이 지났습니다. 지난 6월 11일에는 2년 전 이른 봄에 밀양의 산과 들을 지켜달라며 산신제를 지냈던 도곡저수지에서 행정대집행 2년을 기억하는 문화제가 열렸고 많은 시민들이 밀양 곳곳의 길을 걸어와 함께 그 날을 기억하고 지난 일들을 돌아보는 시간을 가졌습니다. 
문화제에서 상영된 영상 속 할매는 ‘우리가 이렇게 살아서 버티며 싸우고 있습니더. 연대자님들 고맙습니더. 정말로 고맙습니더. 밀양을 잊지 말아주이소. 우리는 포기하지 않을 깁니더.’ 라고 담담하게 이야기 하고 있었습니다. 

 

밀양의 싸움은 끝나지 않았습니다. 누구도 끝내지 않았습니다. 여기 사람이 살고 있고, 살아갈 것이고, 우려했던 모든 피해가 현실이 될 상황에서 진짜 싸움은 이제부터가 시작입니다. 예전처럼 산과 들에서 먹고 자고, 제복을 입은 사람들과 몸싸움을 하다 사지를 들려 끌려나갈 일은 없겠지만, 한 동네에서 한때 동지였으나 이젠 서로 인사도 안하는 사람들과 마을보상금 사용 문제로 동네 일로 부딪히면서 끝없는 싸움을 해야 하고, 잊을만 하면 법과 돈으로 반대주민을 괴롭히는 공권력과 한전과도 싸워야 하며, 여러가지 외부 활동과 반대 운동에도 모종을 심고 감을 따다가 달려나가야 하는 것입니다. 탑은 다 들어섰고 이제 반대하는 사람들도 몇 남지 않았는데 아직 저러고 있냐며 조롱하고 멸시하는, 이제는 대다수가 되어 버린 합의 주민들의 시선도 견뎌야 하지요.

 

밀양에서 살고 있다보니 밀양을 위해서 뭘 하면 좋을지를 물어 오시는 분들이 계십니다. 하실 수 있는 일을 하면 된다고 말씀드립니다. 직접 아는 주민분들이 있다면 가끔 전화 걸어 안부를 물어주셔도 좋고, 시간이 되실 때 찾아와 손잡아 주시고 할매 할배의 일을 잠시라도 도와주실 수 있다면 10년을 넘는 그 긴 싸움에서 결국 지고 말았고 힘만 들었던 것이 아니라 그래도 할매 할배들에게는 좋은 ‘사람들’이 남았음을 잊지 않고 앞으로 닥쳐오는 진짜 싸움을 할 기운을 얻으시겠지요. 그리고 또 하나 미니팜을 통해 여러분의 마음을 주민들께 전달하실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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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니팜협동조합 밀양의친구들


‘미니팜협동조합 밀양의친구들’은 송전탑 경과지 주민으로 구성된 108 가구의 생산자 조합원들 곁에서 농산물을 팔아드리는 것으로 밀양의 주민들과 함께 하고 있습니다. 할매 할배들이 직접 깎아 말린 감말랭이, 홍시가 되는 감, 각종 잡곡, 이른 봄부터 산과 들에서 뜯은 나물로 담근 장아찌를 사서 시민들께 택배 보내는 일을 하는 것으로, 밀양 농산물을 사고 싶어 하는 사람들이 있고 밀양이 잊히지 않았다는 것을 할매 할배들께 알려드리고 밀양에서 사람들이 ‘살아서 버티며 싸우고 있다’는 것을 시민들께 알려드리려 하고 있습니다. 

 

미니팜은 대전에서 대청호환경농민연대의 농민들과 함께 기획한 2014년 사회적기업가육성사업의 창업팀이었습니다. 대표를 맡아 심사과정을 끝내고 밀양의 2013년 10월 공사 시작에 뭐라도 도우러 잠시 다니러 왔으나 예상과는 다르게 공사는 중단되지 않았고 충돌하는 현장이 늘어나면서 아프고 다치는 할매 할배들이 늘어나 그 다음해 2월까지 오도 가도 못하는 상황이 되었습니다. 마침내 창업팀의 일을 하러 돌아갈 것인지를 결정할 시기가 되었을 때, 밀양에서 어떤 작은 일이 일어나도 이제는 모두 아는 사람, 아는 마을의 일일텐데 그 소식을 들으면서 사업이 될까, 견딜 수 있을까를 생각하게 되었고, 창업팀에 상의를 드렸더니 밀양으로 가지고 가서 하라는 의견을 주셨습니다. 얼마간의 사업비 지원을 약속받은 상황이었음에도 밀양의 상황을 이해하고 흔쾌히 사업 자체를 밀양으로 옮겨올 수 있도록 양보해 주신 겁니다. 그래서 미니팜협동조합은 대표인 이사장의 사업일수도 밀양만의 사업일수도 없는 많은 사람들의 마음이 들어 있는 사업입니다. 

 

신념을 가지고 친환경 농사를 짓고 있지만 규모가 작고 상품성도 떨어져 제 값에 농산물을 팔지 못하는 농민들, 평생 농사를 짓고 땅을 지키고 살았지만 자식들과 젊은 사람들은 다 떠나고 건강도 좋지 않아 힘겹게 농사 지으시는 할매 할배들의 농산물을 빨리, 직접, 좋은 가격에 팔아서 농민의 피땀 어린 농업의 이익이 중간상인이나 마트가 아니라 생산자와 소비자에게 돌아가게 하는 사업을 하는 것이 미니팜이라는 사업의 목적이었습니다. 
사업을 밀양으로 옮겨 할매 할배들을 모시고 611 행정대집행 후 한 달이 지나지 않은 7월 7일에 미니팜협동조합 창립총회를 열었습니다. 농사를 짓는 사람과 장소는 계획과 달라졌지만 사업의 목표와 이유는 어느 농촌에나 똑같이 적용되는 일이었고, 송전탑 경과지 주민들과 밀양을 기억하는 사람들을 연결하는 연결고리가 되기 위해 미니팜은 그렇게 시작되었습니다. 평생을 땅을 지키며 농사지었고 여생을 밀양에서 보내고 싶어 밀양으로 왔으나 이미 남아도는 전기를 더 만들기 위한 공사 때문에 일상을 잃어버린 주민들. 골고루 조금씩이라도 지켜보는 사람들의 마음을 할매 할배들께 전할 수 있다면, 그 방법이 밀양에서 직접 키우고 만든 것들을 알리고 전달하는 것이라면 협동조합의 활동 자체로 밀양을 지키고 송전탑 반대 운동을 지속하게 하는 일이 될 수 있다고 생각했습니다. 

 

이제 3년째인 미니팜협동조합은 직원 없이 이사장 혼자 꾸려 나가고 있고 매출의 규모도 적은 편입니다. 잘 되고 있는지 잘 될 수 있을지 걱정도 많이 듣고 있습니다. 밀양으로 쏟아지던 관심은 점점 사라질테고 도시 사람들이 밥을 해먹지 않아 쌀을 비롯한 모든 농산물이 수요가 줄어들고 있고, 먹기 편한 수입 과일만 사먹어서 감이나 사과 등 우리 과일의 가격도 점점 폭락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또한 손주들 주려고 만들었다 조금씩 내어 주시는 밤말랭이에는 할매 눈에는 보이지 않던 밤벌레가 붙어 있어 골라내고 포장하느라 애를 먹기도 하고 배송 과정에서 깨진 감 때문에 모두가 속상하기도 합니다. 

 

그러나 미니팜의 목적은 농산물을 많이 잘 팔아 부자가 되는 것이 아닙니다. 미니팜의 사업만으로 108가구인 송전탑 반대주민들의 농산물을 전부 판매할 수도 없습니다. 반시를 예로 들면 미니팜에서 1년에 1,000상자 정도 택배로 판매하는데 50가구 정도의 반시 생산자가 있어 한 가구당 20상자 정도 밖에 수매하지 못하고, 5,000 상자 정도 감을 내시는 생산자도 있기 때문입니다. 
송전탑은 다 들어서 그 탑을 이고 지고 살아야 하는 주민들께 밀양이 잊혀지지 않았으며 그 긴 싸움이 아무 의미 없는 그냥 지고 끝난 싸움이 아니었다는 것을 사람들이 알아주고 계속 응원하고 있다는 것을 할매 할배들께 알려드리는 것이 미니팜의 목적이고 미니팜이 밀양에 있는 이유입니다. 주민들께 감을, 쌀을 사러 가는 미니팜은 반가운 소식이고, 연대해 준 시민들의 얼굴입니다. 

 

앞서 말한 농산물 수요가 줄어드는 현상 이외에도 지금 농촌은 어느 곳 할 것 없이 공장이나 골프장이 들어서는 등 환경이 파괴되고, 애써 생산한 농산물의 가격이 몹쓸 유통구조 때문에 폭락하기도 하고, 예전에 없던 해충이나 농작물의 병으로 일년 농사를 망치기도 합니다. 
관심이 필요합니다. 농촌을 살리고 도시도 살기 위해 우리 농산물을 구해서 먹는 것, 마트 보다는 직거래, 지역의 시장을 이용하는 것이 필요합니다. 농촌이 살지 못하면 도시도 살 수 없기 때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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젠더 점핑과 밀양 할매


밀양의 송전탑 싸움은 전례가 없는 특이한 일입니다. 그 많은 초고압 송전탑이 이 땅을 뒤덮는 동안 누구도 이렇게 끝까지 반대하고 이유를 묻고 지치지 않고 부당함을 이야기 하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많은 사람들이 밀양 송전탑 싸움을 연구하고 나름의 분석을 내놓았습니다. 


그 중에서 ‘젠더 점핑 gender jumping’ 이라는 단어로 처음에는 앞에 나서지 않았으나 끝까지 싸움을 지키고 지금도 굳건히 버티는 힘이 된 할매들을 설명한 논문1*이 있습니다. 초기부터 주도적으로 반대운동을 이끌어 왔던 남성들이 국가의 압도적 물리력, 경제적 유혹 등에 의해 물러난 2012년 이후, 소위 '밀양 할매'로 불리는 여성들이 운동의 중심적 주체로 등장했다는 것입니다. 또한 이 이후의 밀양 투쟁은 다음 세대의 생명을 보존하고 양심적 판단에 입각한 모성적 활동으로 평가할 수 있으며 밀양 여성들은 친밀성의 관계 맺기를 통해 연대자들을 밀양지역으로 결집시켰고, 상호보살핌의 관계를 통해 투쟁의 공간을 공감과 공존의 공간으로, 새로운 삶과 생명을 탄생시키는 살림의 공간으로 만들어나갔다고 설명하고 있습니다.

 
끝이 없는 싸움은 계속할수록 더 힘들고, 얼마간의 개별보상금이라도 받지 않으면 더 손해이지만, 옳지 않은 일이므로 타협하지 않고 끝까지 농성장을 지키며 나물을 무치고 찌개를 끓여 밀양을 찾아온 손님들의 밥을 챙기고 손을 잡았던 할매들. 지금도 집 앞에 버티고선 송전탑을 에펠탑이라 부르며 하하하 웃고, 밀양 때문에 바뀐 것이 분명한 신울진-신경기 765kV 송전선로 최종 포기 선언 소식에 ‘짜식들~ 그런 일 있으면 우리한테 먼저 보고를 해야지’ 하며 ‘그래도 다행이다, 보람이 있다’ 하시는 할매들. 물론 자기집의 문틀도 가져와 농성장을 고치고, 오신 손님이 너무 반가워 밭의 채소들을 다 뽑아주라 하시는 할배들도 계십니다. 그래서 결국 지금까지 밀양을 버티게 한 힘은 할매들로 대표되는 서로를 돌보는 마음과 정성, 그리고 그 따뜻한 밥에서 온 것 같습니다. 


밀양으로의 연대, 밀양의 연대

 

이 싸움의 끝은 무엇인지 언제가 될지 알 수 없습니다. 지금 당장 송전탑이 뽑혀도 절대 쉽게 회복될 수 없는 주민들 간의 갈등도 결국 그 용서나 화해가 송전탑 반대 운동을 지속해 온 주민들의 몫이 되겠지요. 누구에게도 수월하지 않은 세월이지만 굳건히 버티고 있는 밀양의 할매 할배들이 잊혀지지 않도록, 평생 노력한 삶과 그 터전이 헛되게 부서지지 않도록, 농촌과 농민의 삶에 조금의 위안이라도 되도록 미니팜은 주민들의 곁에 있겠습니다. 뭘 팔아 볼까 뭐가 맛있을까 고민하며 여러분께 소식 알리겠습니다. 투쟁하는 곳, 투쟁을 돕는 분들께 떫지만 곧 달콤해지는 감 상자들을 선물 보내면서, 정성 담긴 장아찌와 반찬들을 맛보시라 전하면서 연대하겠습니다.  

 

밀양에 와서 각 마을의 할매들 댁에서 할매들과 함께 생활하고 그분들의 인생과 송전탑 싸움을 바라보고 그 기억을 나누던 지구지역행동네트워크 캠프 참가자 분들의 눈을 기억합니다. 멀리 남미에서, 인도에서 투쟁하는 여성들이 보내온 밀양엽서에 적힌 응원과 격려의 글, 그 감동도 잊지 않고 있습니다. 어떤 ‘주의’도 어떤 어려운 단어도 사람의 눈과 마음을 이기지 못한다고 생각합니다. 그 눈과 그 마음을 보내주셔서 감사합니다. 저도 밀양의 주민들도 잊지 않고 계속 함께 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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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니팜협동조합(http://cafe.daum.net/my765kvout) 이사장 장수민
협동조합 창업을 준비하다 잠시 도우러 와서 만난 밀양 할매들에 빠져서 이제는 밀양에서 살고 있습니다. 앞으로도 밀양에서 계속 잘 먹고 잘 살고 싶습니다. 
010-5544-5109 suminchid@gmail.com

* 김영, 밀양765kV 송전탑 건설 반대 운동에 대한 젠더 분석 - 젠더 점핑의 과정과 원인을 중심으로, 한국여성학 제31권 2호, 2015.6, 1-53 (53 pag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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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김영, 밀양765kV 송전탑 건설 반대 운동에 대한 젠더 분석 - 젠더 점핑의 과정과 원인을 중심으로, 한국여성학 제31권 2호, 2015.6, 1-53 (53 pages).텍스트로 돌아가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