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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이지 않아도 우리는] 성노동자 네트워크 ‘ 손 ’ 을 준비하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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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균

성노동자네트워크 ‘손’

* pdf 파일 다운받기  [6. 보이지않아도 - 손.pdf (134.12 KB) 다운받기]


올해 3월 31일 헌법재판소에서 성매매특별법 위헌 제청이 있었다. 6:2:1로 성매매특별법 합헌 판결이 나왔고, 어차피 예상했던 결과라고 담담하려 해도 막막한 기분이 드는 건 어쩔 수 없었다. 마침 목요일이어서 페미니즘 학교 강의를 수강하기 위해 NGA 사무실로 향했고, 그 날 마주치는 모든 사람들에게 성매매특별법 합헌 판결에 대해 이야기했던 것 같다.

 

상반기 동안 페미니즘 학교에서 가부장체제, 섹슈얼리티, 자본축적론과 같은 주제에 대해 강의를 들으면서 추상적으로 접근하던 처음과 달리, 네트워크 중심의 성노동자 운동을 생각하게 됐고, 이 생각을 페미니즘 학교 실천자율과정을 준비하면서 구체화하게 됐다. 성노동자에 대한 법적 처벌, 함정수사와 같은 직접적으로 가해지는 차별뿐만 아니라 4대 보험과 같은 제도적 안전망의 바깥에 내몰리는 상황, 법적 처벌을 피하기 위해 노동 과정에서 문제가 발생해도 법적인 대응을 피하게 되는 환경, 업종에 따라 다르지만 전반적으로 근무시간대가 늦은 경우가 많아 의료서비스를 비롯해서 낮 시간대에 주로 이뤄지는 서비스를 받기 어려운 조건 등으로 성노동자를 위한 사회적 안전망이 제대로 형성되지 못하고 있는 상황에서 관계망이 다양한 방식으로 중첩되는 형태로 최소한의 안전망을 만들 수 있지 않을까하는 기대가 있었고, 성노동 운동을 위한 네트워크를 만드는 것을 하반기 목표로 삼았다.

 

이후 몇 달 간 SNS를 통해 성노동자라는 정체성을 걸고 이야기를 시작하는 사람들이 늘어나기 시작했다. 정리되지 않아도 치밀어오르는 선명한 분노와 절망감을 계속 마주하게 됐고 함께 모여 무엇이든 해야겠다고 생각했다. 다양한 네트워크가 가능하겠지만 유독 당사자 네트워크에 대해 고민했던 건 딱 잘라 말할 수는 없겠지만 분명 직접 일을 해본 당사자와 그렇지 않은 비당사자들 간에 직관적인 이해도의 차이가 존재한다는 점을 느꼈었기 때문이다. 당사자들끼리 모여서 이야기를 나눌 때, 굳이복잡하고 어려운 말을 늘어놓지 않아도 유사한 상황을 경험해봤기 때문에 이뤄지는 공감의 힘을 알고 있었고, 더 이상 ‘우리’의 권리를 위한 운동이 타인의 선의에 기대어 이뤄지는 상황을 방임하고 싶지 않았다. 성매매특별법 합헌 판결과 함께 온라인상에서도 매춘혐오 발언들의 수위가 높아지고 있었다. 6월 초 트위터 공개 계정을 통해 성노동자 네트워크를 만들고자 한다는 이야기를 하면서 함께할 당사자들이 모이게 됐다.

 

7월 7일 네트워크 멤버들과 이태원에서 첫 만남이 있었고 우리는 급속도로 친해졌다. 멤버 중 일부는 공동 페미니즘 학교를 함께 수강했고, 모두 함께 네트워크 글을 준비하면서 더 많은 이야기를 나눌 수 있었다. 제각기 다른 상황에서 다른 방식으로 일을 하고 있지만 진상 구매자를 욕하고, 일을 하며 겪었던 각종 경험과 서로의 생각을 나누면서 빠르게 공감대가 형성됐다.

 

네트워크를 준비하는 과정에서 가장 중요하다고 생각했던 것은 네트워크에 참여하는 서로가 원하는 것을 파악하고, 네트워크에 참가하는 것이 단순한 봉사가 아니라 각자에게 필요한 것을 얻을 수 있는 기회가 되게 만드는 것이었다. 물론 그것이 쉬운 일은 아니지만 우리는 지치거나 혹은 회의감을 느끼지 않고 즐겁게 오랫동안 활동할 수 있기를 바랐다.

 

단속을 받은 멤버는 법률상담을 연결받았고 법률상담을 통해 어려움을 어느 정도 해소할 수 있었다. 다 같이 글쓰기를 하기 위해 내부적으로 글쓰기 교육을 진행했다. 배우고 싶은 것이 있으면 배울 수 있는 기회를 만들어보거나 혹은 그것을 네트워크의 향후 계획에 추가했다. 여럿이서 오프라인에서 만날 때는 네트워크 일 얘기보다는 서로 대화를 나누고 즐거운 시간을 보내는데 집중했다.

 

각각의 멤버에게 특출나게 뛰어난 능력이 있다거나 혹은 그 많은 것들을 진행할 여력이 있는 것은 아니다. 멤버의 몇 다리를 걸친 현직 편집자 지인분은 선뜻 우리 네트워크 글의 교정/교열을 봐주겠다고 했고, 기존에 성노동 운동을 했던 활동가 친구들도 우리에게 많은 도움을 주었다. 우리 네트워크의 글을 영어로 번역해주거나, 법률 상담을 해준 분도 있었고, 의료지원에 대한 제안도 농담인 듯, 진담인 듯 받았다. 지금 글을 쓰고 있는 이런 지면에 우리 네트워크에 대한 글을 실을 기회가 생기는 등 많은 분들이 우리에게 손을 내밀었다.

 

이 과정들을 거치면서 내부적으로는 법률, 의료 지원에 대한 부분을 확보하고 범위를 넓히는 것을 고려하게 됐고, 외부적으로는 페이스북, 티스리, 이글루스, 텀블러 등 다양한 플랫폼을 통해 8월 19일부터 매주 글을 하나씩 공개해서 올해가 끝나기까지 총 20개의 글을 공유할 계획을 세웠다. 대부분의 글은 우리가 직접 쓰는 글이고 일부는 외부 기고로 이루어질 것이다. 그리고 섭외까지는 우선 마친 상태다.

 

일이 잘 풀린다면 올 하반기 중으로 성노동 운동을 위한 비당사자들을 포함한 연대체를 출범할 것이다. 연대체를 구상하면서 가장 중요하게 생각하고 있는 것은 연대체에 소속된 각각의 관계와 역할이 분명해야한다는 것이다. 예컨대 연대체가 성노동자 네트워크 손, 의료 지원을 하는 단위, 출판과 관련해서 일을 함께 진행할 수 있는 단위로 구성된다면, 우선 성노동자 네트워크 손이 당사자 그룹으로서 성노동자의 건강권을 이야기하고 필요한 바를 공론화할 수 있을 것이다. 그리고 의료 지원을 하는 단위는 공론화하는 과정에 함께 참여하고, 공론화된 내용을 바탕으로 건강권을 보장하기 위해 현실적인 제약 속에서 의료 가이드북 제작에 참여할 수도 있을 것이다. 또 그 내용을 토대로 출판과 관련한 일을 담당할 수 있는 단위가 책을 출판하거나 전체를 온라인 후원 플랫폼인 텀블벅이나 소셜펀치 등을 통해 성노동자 네트워크 손의 다른 글들을 엮은 출판물을 만들어 함께 키트를 만드는 식이다.

 

연대체가 단순히 여러 단위의 결합과 같은 형태가 아니라, 자신의 운동에 성노동 운동과 긴밀하게 연결될 수 있는 부분이 존재하고, 또 그런 방향을 지향하는 이들이 함께하는 형태가 되기를 바란다. 동시에 개인 당사자, 활동가와 연구자, 당사자 단체와 활동 단체, 이론가 집단 등 다양한 주체가 함께하며, 당사자 단체와 당사자 활동가가 이론가 집단과 함께 성노동 운동에 필요한 연구를 같이 진행하거나, 특정한 이슈로 운동을 진행할 때 연대체에 결합된 단위들이 본래 자신들이 해오던 활동, 혹은 작업을 어떻게 성노동과 특정한 이슈에 대한 고민을 담아내는 방향으로 가져갈 지 고민하는 식으로 보다 상황에 따른 유연하면서도 구체적인 운동을 해나가길 바란다.

 

지난 7월 공동 페미니즘 학교에서 멤버 나나, 도균, 석영이 만났던 중국 활동가들과도 쭉 좋은 관계를 유지하고 미리 적금을 들어 내년 초에는 해외연대를 가볼 계획도 어렴풋이 세우고 있다. 업종에 따라 굉장히 다르지만 보통 다른 직종의 사람들과는 생활하는 시간대가 다른 성노동자들의 상황에 맞게, 페미니즘 학교와 같은 프로그램을 성노동자를 위한 방식과 내용으로 진행할 수 있다면 좋겠지만 당연히 이런 계획들은 쉽게 이루어지지는 않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그럼에도 우리는 성노동자 네트워크 손이 페미니즘과 함께 가기를, 혹은 페미니즘에서 출발하기를 바란다. 우리의 이야기가 마치 성노동자 네트워크 손이 모든 성노동자를 대변할 수 있다는 식으로 전개되거나 혹은 이론적인 방향으로만 흘러가지 않기를 바란다. 무엇보다 각각의 멤버가 언제나 같은 이야기만 하게되지 않기를 바란다.

 

꼭 활동의 형태가 아니더라도 재정적인 부분에 대한 기초적인 연습을 함께 하자는 제안도 있었다. 구글 드라이브 등을 이용해서 가계부를 만들어 들어가는 돈과 나가는 돈을 확인하는 간단한 수준에서부터, 경제 활동을 하는데 있어 필요한 다양한 지식을 함께 공부하고 나누자는 내용이었다. 이와 같은 활동을 통해 유동성이 높은 현금으로 불규칙하게 큰 수입이 생기는데서 발생하는 문제들을 조금씩이라도 우리의 힘으로 해결해나가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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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4년 성매매특별법이 발효되고, 2005년 당사자 그룹인 전국성노동자연대 한여연(줄여서 전성노련)과 성노동자 법외노조인 민성노련이 출범했다. 후로 10년이 넘는 시간이 지났고 2009년에는 성노동자 지원을 위한 그룹인 성노동자 권리모임 지지가 만들어지기도 했다. 하지만 민성노련은 활동이 중단됐고, 성노동자 권리모임 지지도 올해는 이렇다 할 외부활동이 없었다. 이따금 SNS에서 성노동 이슈를 둘러싼 논쟁이 일어나거나 성노동을 주제로 한 비정기적인 행사들이 있기는 하지만, 성노동 운동이 침체된 상황이라는 말에 많은 이들이 동의하리라고 생각한다.

 

성노동 운동을 하면서 “진짜 당사자들의 이야기를 들어보고 싶다.”는 말을 종종 듣게 된다. 아마 그 말을 뱉는 사람이 정말 하고 싶은 말은 “진짜 (내가 듣고 싶은 말을 해주는) 당사자들의 이야기를 들어보고 싶다.”에 가깝다고 느낄 때가 있다. 지금 우리 네트워크의 멤버는 총 네 명이다. 하지만 네 명 모두 다른 업종이나 혹은 다른 방식으로 일을 하고, 누군가는 성노동만을 하고, 누군가는 다른 일을 하면서 부업으로 성노동을 한다. 누군가는 정기적으로 출근하지 않고, 돈이 급하게 필요할 때 구매자를 구해서 성노동을 한다. 누군가는 생활비를 벌기 위해, 누군가는 학업을 위해, 누군가는 개인 작업을 위한 돈을 마련하기 위해 성노동을 한다. 성별도, 정체성도, 고향도, 나중에 하고 싶은 일도, 성노동에 대한 생각과 입장도 모두 다르다. 이 중 누가 진짜 성노동자인가?

 

우리는 ‘진짜 당사자들’로서 우리의 이야기를 하기 위해 운동을 시작했다. 분명 성노동자들이 주체가 되어서 운동을 한다는 건 쉽지 않다. 더군다나 그 운동을 성노동자가 아닌 사람들과 함께 하는 건 굉장히 어려운 일이다. 당장 우리 멤버가 모두 모이려면 금요일 저녁이나 토요일 저녁 등은 거의 불가능하다. 우리는 기본적으로 남들이 놀고 있을 때, 노는 사람들과 일을 하기 때문이다. 평일이라고 해서 상황이 많이 다르진 않다. 물론 업종에 따라, 일주일에 일하는 횟수에 따라 달라지는 부분이긴 하지만 당장 우리가 다른 단위와 함께 사업을 진행한다고 생각하면, 모두가 참석할 수 있는 회의를 한 번 잡는 것도 결코 쉬운 일이 아니다.

 

그럼에도 보이지 않아도 우리는 당신들과 함께 살고 있다. 버스와 지하철을 타고, 마트 계산대에서 순서를 기다리고, 여행을 다니고, 연애를 하기도 한다. 비록 어디에서도 우리의 목소리를 드러내기 어렵지만 우리에게 필요한 것과 우리가 원하는 것으로부터 출발해 운동을 준비하고 있다.

 

우리에게 의료 서비스가 필요하지만, 건강권을 보장받기 어렵기 때문에 성노동자의 건강권 운동을 하고 싶다. 성노동이 불법이기에 경찰을 부르지도 못하고 위협받았던 경험을 토대로 우리의 법적 권리를 주장하고 싶다. 네트워크가 생긴 지 1달도 되지 않아 함정수사로 단속을 당한 멤버를 보며 무력감을 느꼈기에, 멤버에게 날아온 통지서에 조건만남으로 일하느라 스스로를 광고한 것에 대해 알선 혐의가 나온 것을 보고 너무나 분노했기에 그에 맞서 싸우려고 한다.

 

추상적으로 가상의 어떤 성노동자를 가정하고 이뤄지는 운동이 아니라, 지금 당장 운동과 생계를 함께 유지하며 일상을 살아가는 우리의 삶에서 출발하는 운동을 하는 것이 목표다.

 

당장 계획 중인 것들을 나열하자면 우리의 생각을 글로 정리해 나누고, 우리에 대한 다른 사람들의 생각을 글로 받아 나누고, 그에 대해 다시 글로 화답하고, 함께 페미니즘을 공부하고, 단속에 대응하기 위한 가이드를 만들고, 성노동자를 위한 형태의 의료 지식을 정리해서 나누고, 국적, 일하는 국가, 업종, 지역 등 다른 상황에 있는 보다 다양한 성노동자들과 함께하고, 당사자들의 힘만으로 해결할 수 없는 보다 거대한 문제에 맞서 함께할 연대체를 우리가 중심이 되어 만들고 싶다.

 

사실 네트워크 손의 대부분의 멤버들은 운동이 처음이다. 그래서 글 하나를 완성해도, 우리의 목소리에 누군가 귀를 기울여도 그 자체로 성취감을 느끼기도 한다. 살면서 처음으로 일어나는 일이기 때문이다. 혹 당신에게 성노동자의 이야기가 처음이라면 우리 중 대부분에게도 이런 이야기를 하는 것이 처음이라는 것을 알려주고 싶다.

 

우리가 이런 이야기를 꺼낼 수 있고 우리의 경험을 말할 수 있는 것은, 분명 우리보다 앞서 목소리를 냈던 많은 성노동자들과 활동가, 이론가, 그리고 그들의 목소리에 귀를 기울여준 사람들 덕분일 것이다. 우리 또한 언젠가 누군가에게 그런 존재가 되기를 바란다. 그리고 이런 반복이 언젠가는 세상을 조금씩 바꿔놓을 것이라고 믿는다. 보이지 않아도 우리는 이렇듯 매일 투쟁하고 있다.  G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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