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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성이 자기방어를 시작할 때 세상은 달라진다!” 여성주의 자기방어훈련 후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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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규리

 

 

7월 22일, 23일 이틀 동안 여성주의 자기방어훈련에 참여했다. 기간이 짧은 만큼 이 훈련은 ‘훈련’이기보다는 일종의 맛보기, 내가 나를 지킬 수 있고 지켜야 한다는 감각을 깨우는 시간이었다. 이틀에 걸쳐 마음과 몸의 감각을 깨우면서 느꼈던 점들을 글로 정리하고자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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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성주의 자기방어라는 개념을 처음 안 것은 2015년 초였다. 다니는 대학의 여성주의 단위에서 세미나를 하면서 이 개념을 처음 알게 되었다. 남성중심적 사회에서 문화적·제도적으로 용인되는 여성에 대한 폭력은 특정한 각본에 기초하고 있다. 각본의 내용은 다음과 같다: 포식자(predator) 남성-먹이(game) 여성 구도, 물리적 위력이나 친밀함이라는 감정적 권력을 활용해서 여성을 포박하는 남성, 명백하게 공격당하는 상황임에도 불구하고 몸이 뻣뻣하게 굳어버리는 여성, 피해를 당하더라도 수치심과 모멸감 때문에 침묵하는 여성, 피해사실이 알려졌을 때 피해자를 탓하는 문화··· 만약 여성이 이 각본의 내용을 미리 간파하고 있다면? 남성 포식자가 공격할 때, 여성이 직접 이 각본을 깨뜨리는 행동을 함으로써 상황을 뒤집을 수 있다면? 그때 세상은 엄청나게 달라질 것이다. 남성중심사회에서 취약한 먹잇감으로서 여성의 사회적 위치를 분명하게 인식하고 공격당하는 상황을 반전시킬 수 있는 전략을 짜는 것, 더 나아가 자매들이 서로를 지킬 수 있는 연결망을 만들어가는 것이 여성주의 자기방어의 핵심이다.

 

이 개념을 배운 것만으로 나에게 일어난 변화는 크게 두 가지가 있었다. 하나는 내가 이전에 당했던 폭력의 경험을 새롭게 해석할 힘을 얻은 것이었다. 남성에게 통제당하거나 서로를 구속하는 폭력적인 연애를 종종 했었다. 나는 그 때 내가 제대로 대처하지 못했다는 점을 꽤나 부끄럽게 생각하고 있었고, 그런 일을 당한 내가 한심하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내가 겪은 경험들이 이성애 관계에서 보편적으로 발생하는 ‘사랑’의 단면이라는 점을 알게 되면서 나는 나에게 조금 더 너그러워질 수 있었다. 날 때부터 페미니스트인 사람은 없는 것처럼, 내가 그런 폭력들을 ‘사랑해서’라고 생각한 것도 손목 잡고 끌고 가는 것을 로맨틱하게 재현하는 사회에서는 충분히 그럴 수 있는 일이었던 것이다.

 

또 하나는 다음에 이런 일이 생겼을 때 무력하게 당하고 있지만은 않겠다는 결심이었다. 강한 힘으로 가해자를 때려눕히는 식의 거창한 것이 아니더라도, 순간적인 대담함과 재치로 위기를 모면한 여성들의 사례를 읽으면서 나도 할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스스로를 비난하지 않는 법, 피해를 피해로 인지하는 동시에 ‘피해자로서 나’에 갇히지 않는 법을 텍스트로 읽으면서 너무너무 통쾌하고 짜릿했다.

 

그리고 2017년 7월, 페미니스트 액션그룹 <페미몬스터즈>가 낸 여성주의 자기방어훈련 공지를 발견했다. 이탈리아 교환학생으로 출국하기까지 두 달이 채 남지 않은 시점, 신청을 망설일 이유가 없었다. 캣콜링이 일상적인 마초들의 나라 이탈리아에서 나의 존엄성을 지키기 위해, 나는 조금이라도 전보다 강한 사람으로 나가고 싶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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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사진 / 페미몬스터즈

이틀 간 진행된 훈련은 첫날 마음훈련, 둘째날 몸훈련으로 구성되었다. 마음훈련 때는 두 시간 동안 강사님의 강의를 들었다. 여성을 성적 대상 혹은 어머니로만 규정하고 동등한 인간으로 인정하지 않는 사회에서 여성들이 마주하는 폭력은 직접적 접촉을 수반하지 않는 것부터 물리적 폭력까지 다양하다. 남성들은 여성들에게 자기 나체를 드러내는 것만으로 공포심을 줄 수 있다(‘바바리맨’이 대표적인데, 이런 식의 성기 노출을 지칭하는 flashing이라는 단어가 있을 정도다). 비열한 포식자들은 가까이 다가오거나 가볍게 밀치는 등의, 폭력이라고 하기에는 애매한 수위의 공격들로 여성들을 굴복시키려 한다. 우리는 흔히 폭력을 강한 물리력을 동반한 공격으로 생각하기 때문에 이런 ‘수위가 낮은’ 공격을 당할 때 그것을 폭력으로 인식하지 못하는 경향이 있다. 내가 느낀 불쾌감과 모욕감, 공포는 분명한데 폭력으로 말하기엔 애매하다는 이 혼란스러운 감정이 즉각적인 대응을 하지 못하게 한다. 마음훈련은 이 ‘사소한’ 폭력들을 공간침해, 접촉, 비접촉 공격 등으로 범주화해서 폭력으로 개념화하는 시간이었다.

 

그 외에도 공격당했을 때 나의 신체반응을 객관화하고 패닉 상태에서 빠져나오는 방법을 함께 의논하고, 남성들의 근본없는 욕설에 당황하지 않는 법(여성을 향한 욕설은 결국 모두 ‘걸레’로 수렴되기 때문에 하-나-도 당황할 이유가 없다, 남성사회에서 여성을 모욕하는 최후의 어휘는 결국 ‘걸레’다!), 가해자들이 예상하고 움직이는 각본을 깨버릴 시나리오 쓰기를 연습하는 등 꽉-꽉 채운 두 시간이었다. 나의 자기방어 실패 사례와 성공 사례, 내가 유난히 대처하기 힘든 상황에 대해서 짧은 글을 쓰고 익명 제출하는 것으로 마음훈련이 끝났다.

 

다음날 몸훈련 시간에는 모두들 손톱도 깎고 편한 옷을 입고 모였다. 우리는 둥그렇게 앉아서 전날 제출한 사례들을 함께 이야기했다. 익명으로 제출하긴 했지만 나중에는 하나 둘씩 손을 들고 ‘그거는 제 사례인데요..’라고 말하는 사람들이 나왔고 나도 그 중 하나였다. 어제 처음 만난 사람들이었지만 말하기 창피하다는 느낌은 전혀 들지 않았다. 공동의 생존을 도모하는 동지들이라는 느낌이 들었기 때문이었을까? 특히 마지막에 대처하기 힘든 상황들을 털어놓고 어떻게 대응하면 좋을지 공동으로 시나리오를 짜는 활동이 특히 유익했다. 택시비를 계산하고 내리려는 순간 기사가 거스름돈을 건네며 내 허벅지를 쓸었다면? 전철에 웬 중년의 한국 남성이 다리를 쩍 벌리고 내 맞은편에 앉아 내 몸을 위아래로 훑는다면? 붐비는 술집에서 어떤 남자가 내 옆을 스쳐 지나가는 척하며 내 가슴을 만지고 간다면? 나는 그 자리에 모인 여성들의 순발력에 놀랐다. 상호부조와 집단지성은 엄청난 것이다.

 

몸훈련 시간에는 주먹을 제대로 쥐는 법부터 잡힌 손목을 푸는 법, 심지어는 나를 잡았던 그 손목을 제압하는 법, 날아오는 손을 쳐내는 법 등등을 배웠다. 서로 몸을 부딪히고 싸우며 사회화되는 남성들과 다르게 여성들은 신체 능력을 억누르는 방식으로 사회화된다. 우리는 짝지어 손바닥 싸움을 하고 손아귀 힘을 겨루면서 너무나도 낯선 방식으로 친해졌다. 나는 그 모든 상황이 정말 낯설었다. 그 날 씨름을 처음 해봤다.

 

버티는 방법을 배우기 위해서 밀치고, 피하는 방법을 배우기 위해서 때리면서 나는 폭력이 정말로 권력관계의 문제라는 점을 실감했다. 선생님은 “저를 때려 보세요! 그러면 제가 피할게요!” 하시면서 내 앞에 섰다. 네? 선생님을 때리라고요? 아니 어떻게 때려요? 선생님이 당연히 나의 공격쯤은 가뿐히 피할 수 있는 사람이라는 점을 알면서도 우리는 계속 머뭇거렸다. 혹시나 다치게 할까봐. 누군가에게 가해를 저지른다는 것은 ‘그래도 되기 때문이다.’ 이 사람이 다치는 일쯤은 걱정하지 않는 권력, 내가 때리면 이 사람이 다치리라는 것을 알면서도 때릴 수 있는 권력, 내 공격을 이 사람이 피할 수 없으리라고 확신하는 그 권력이 가해자를 만든다. 이때만큼 권력관계의 산물로서 폭력을 실감한 적이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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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사진 / 페미몬스터즈

날짜로는 이틀, 총 교육 시간으로는 5시간에 불과한 짧은 강연이었지만 많은 것을 느꼈다. 첫째로는 ‘할 수 있다’는 마음이 들었다. 예전에는 이런 상황이 나에게 위험하다고 인식하는 정도였다. 상황이 이러이러하게 흘러가면 나는 공격당할 것 같다/이 사람은 지금 나를 만만하게 보고 있다는 것을 감지할 수 있는 것은 자기방어 감각이 아주 죽어버리지는 않았다는 뜻이다. 그렇지만 예전에는 이제 어떻게 해야 이 상황을 뒤집을 수 있을지 생각하면 당황해서 아무런 생각이 들지 않았다. 결국에는 눈 뜨고 당한 뒤에 이럴 줄 알았어/똥 밟았다 식으로 잊어버리고 넘기는 상황이 많았다. 무시하고 잊어버리는 것 역시 나름의 저항이지만, 나는 다른 형태의 저항을 할 수 있다, 다른 형태로 움직이는 법을 체화하면 된다는 건강한 자신감을 얻을 수 있었다. 내 마음의 근육이 한층 단단해졌다.

 

그 다음으로는 자매애를 넘치게 느꼈다. 내 몸을 다르게 쓰는 법뿐만 아니라 폭력에 노출된 자매에게 어떤 도움을 줄 수 있을지를 배우고 함께 고민하면서 우리가 연결되었다는 감각을 느꼈다. 이런 자매애는 지금의 메갈리안 물결에서 많은 여성들이 흠뻑 빠져있는 감정이기도 하다. 그날 배운 자매들을 도울 수 있는 방법을 공유하겠다. 번화가를 걷다보면 여자친구에게 윽박지르거나 그녀의 손목을 끌고 가려는 남자친구들을 너무나 쉽게 만날 수 있다. 약간의 거리를 유지할 수 있을 정도로 다가가서 그 여성의 눈을 마주보라. 그리고 내가 이 상황을 모두 보고 있으며 당신을 돕겠다는 의사를 눈빛으로 전달하라. 핸드폰 카메라로 (남성에게 들키지 않게) 상황을 녹화해도 좋다. 경찰이 개입했을 때 당신이 찍은 영상이 객관적인 증거로 중요하게 활용될 수 있기 때문이다. 상황이 너무 급박하게 돌아간다면 눈 딱 감고 다가가 “지금 뭐 하는 짓입니까!” 짧고 굵게 소리치는 것만으로도 그 상황을 중단시킬 수 있다.

 

마지막으로는 몸-마음 이분법에 대해서 생각했다. 우리는 흔히 정신과 신체를 분리시켜 마음이 몸을 지배하는 것처럼 생각한다. 페미니스트라면 남성의 어떤 공격이든 적극적으로 쳐낼 수 있다는 환상이 대표적이다. 우리는 이 환상에 갇혀 나는 페미니즘을 공부했고 내 행동이 정당하고 그 공격이 부당하다는 걸 아는데 왜 그때 ‘쫄았을까’, 스스로를 미워한다. 그러나 내 몸은 나의 의지대로 통제할 수 있는 ‘나의 것’이 아니다. 내 몸은 나 자체다. 몸과 정신은 상호작용하고, 몸을 다르게 쓰기 위해서는 다른 움직임의 경험을 내 몸으로 쌓아야 한다. 나는 교환학생 기간이 끝나고 귀국하는 대로 무술 도장에 등록하겠다고 마음먹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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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사진 / 페미몬스터즈

페미니스트로 산다는 것은 무엇일까. 나에게 이 삶은 상처받으며 알아가는 삶이다. 어떤 의미인지 몰라서 둔감하게 지나갔던 일들에서 새롭게 아픔을 느끼고, 그 아픈 일들이 너무 많이 일어난다는 점을 깨닫고 새삼스럽게 놀라기도 한다. 너무나 많이 일어나는 일들이기 때문에 이미 많은 사람들이 고민했고 나름의 답을 꺼내두었다. 이 답들을 찾아갈 때 상처받은 몸에 새살이 돋는다. 너무 고통스러워서 명치끝이 쑤시다가, 몇 장의 글을 읽는 것만으로 통증이 가신다. ‘입이 트이는 페미니즘’이라는 부제로 더 잘 알려진 <우리에겐 언어가 필요하다>의 편집자 후기에는 “페미니즘은 몸에 좋습니다”라는 문장이 등장한다. 정말로, “페미니즘은 몸에 좋습니다.” 여성주의 자기방어훈련을 통해서 내 몸은 한층 더 좋아졌다. 이 글을 읽으시는 여러분들도 꼭 한번 배워 보세요. 반드시, 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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