쓰긴 썼는데,,,

2007/11/22 02:20

철폐연대로부터 원고를 써달라는 말을 아주 정신없을 때 들었다.

난 처음 듣는 이야기인데, 전화를 걸어온 사람은

"원래 동지가 쓰는 걸로 돼 있었어요~ 잊어먹고 말을 못했지만~"이라고 한다.

참 당황스러운 상황이지만, 일단 알았다고 전화는 끊었다.

마감이 임박했다는 사실을 알았을 때! 뭘 쓰랬더라? 더듬어보니,

"나에게 전태일은?"이라는 것 외에는 들은 기억도 없다.

정해준 마감을 며칠 넘기고, 더 이상 미루면 안될 것 같아서

코스콤비정규 동지들 동조단식 가기 전, '날림(?)'으로 써서 원고를 넘겼다.

원고도 날림으로 넘기고, 동조단식투쟁 출정식도 20분이나 지각했다.

구지 위로하자면, "시간이 더 있었다고 잘썼겠느냐"는 거~

 

아직 질라라비가 활자로 나오기 전이지만, 일단 여기 복사해둔다. 



내 옆에 있는 동지가 '전태일'입니다


나는 밝은 얼굴의 여성노동자와 어깨를 나란히 하고 걷는 게 참 좋다. 그녀와 함께 가고 있는 그 곳이 투쟁 현장이라면 그와 관련한 이야기를 해도 좋고, 관계없는 수다를 떨어도 좋고, 그녀가 말이 없는 사람이라면 그냥 걷기만 해도 좋다. 그녀가 내 팔짱을 끼고 앞서가면 끌려가듯 걸어가도 좋다.
나는 작업복 입은 남성노동자와 어깨를 나란히 하고 걷는 것도 참 좋다. 역시 그와 수다를 떨어도 좋고, 그냥 비실비실 웃기만 하며 걸어도 좋다. 그의 걸음걸이가 커서 성큼성큼 앞서 가더라도, 그가 입은 작업복 뒤의 반짝이는 안전띠를 보며 종종걸음으로 뒤따라가는 것도 좋다.

그들은 특별한 사람이 아니다. 늘 또는 가끔 내 바로 옆에 있는, 그냥 내 주위에 있는 사람들이다. 그들은 쉽게 분노하고, 쉽게 좌절하고, 때론 얄밉고, 때론 존경스럽고, 가끔 날 짜증나게 하거나 또는 가끔 나를 감동시키는 그런 사람들이다.
한번도 직접 만나보지 않은 사람일 수도 있고, 눈인사만 하고 지나치는 사람일 수도 있고, 함께 밤새워 술잔을 기울이며 이야기를 나눠본 사람일 수도 있다.
그들은 내 자랑스러운 ‘동지’들이다.

지난 11월10일 오전10시, 노동해방선봉대와 함께 건설노조 인천지부 전기원분과 동지들이 집회를 하는 경인지방노동청 앞에 갔다. 정해진열사 영정과 함께 천막이 쳐져있는데, 동지들 표정이 어두웠다. 열사의 장례조차 치르지 못한 채 이제껏 어렵사리 싸워왔는데, 새벽에 잠정합의를 했다는 것이다. “유해성을 구속하라”며 제 몸에 불을 붙인 동지의 뜻을 이루겠다고, 추운 날씨 아랑곳없이 버텼는데 이 무슨 소리란 말인가.
곧 터질듯이 입술을 깨물고 고개를 떨구는 그 동지들! 정해진열사 돌아가시던 날 한강성심병원 앞에서도 흐르지 않던 눈물이 내 눈에서도 흐른다. 슬퍼서가 아니다. 분해서 눈물이 흐른다.

정해진열사는 지난 10월27일, '유해성을 구속하라'며 몸에 불을 붙였다. 그렇지만 열사가 목숨을 내놓고 원했던 그 뜻은 이뤄지지지 않은 채 결국 11월14일 장례를 치렀다. 2003년, 노동자들을 옭아매는 손배 가압류를 철회하라며 김주익열사가 목을 맸지만, 지금 이 순간에도 찬 아스팔트바닥에서 투쟁하고 있는 동지들의 목을 바로 그 손배 가압류가 옥죄고 있다. 비정규직 철폐하라고 이용석열사가 몸에 불을 붙였지만, 지금도 수많은 비정규직 노동자들은 “비정규직 철폐하라”고 외치고 또 외쳐야 한다. 나에게는 정해진열사가, 이용석열사가, 김주익열사가, 그리고 많은 내 동지들이 전태일열사다.

지금으로부터 37년 전, 전태일은 몸에 불을 붙이고, 온 몸이 타들어가면서도 이렇게 외쳤다. "근로기준법을 준수하라" "우리는 기계가 아니다! 일요일은 쉬게 하라!" "노동자들을 혹사하지 말라" "내 죽음을 헛되이 하지 말라"
어느것 하나 해결된 것 없는 구호들. 전태일열사의 죽음을 헛되이하지 않으려고, 지금도 투쟁하고 있는 동지들이 있다. 가슴에 분노를 품은 그들이 바로 전태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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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7/11/22 02:20 2007/11/22 02:20
Posted by 흐린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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