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어른같은 아이를 싫어한다. 나는 아이를 좋아하는 편인데, 아마 내가 살아있는 동안 자식을 가질 수 없을 거라는 생각 때문일지도 모르지만 나는 남여를 불문하고 예쁘고 귀여운 아이를 좋아한다.(하긴 예쁘고 귀엽지 않은 아이가 어디 있겠는가? 그래서 나는 예쁘고 귀엽지 않은 아이를 싫어한다.) 대중 목욕탕에 아이를 데리고 온 사람들을 보면 부러워서 어떨 때는 눈물이 나려고 할 정도다. 그래도 나는 어른 같은 애들은 싫어한다. 간혹 영화를 보다 분명 어린 애인데 말이나 행동이 성인 같은 아이를 보면 구역질이 나기도 한다. 심하면 보지 않고 중간에 나오거나 모니터로 볼 경우 그냥 끈다.

[여적]어른 그늘 속의 아이들

  김철웅 논설실장

롤링 스톤스가 부른 ‘눈물은 흐르는데(As Tears Go By)’에서 ‘나’는 어느 저녁 아이들이 노는 것을 지켜본다. “아이들은 웃고 있지만 날 위해 웃는 건 아니었다. 아이들이 노래 부르는 걸 듣고 싶었지만, 들리는 건 땅에 떨어지는 빗소리뿐. 아이들은 내가 예전에 자주 했던 놀이를 하고 있었고, 지켜보는 내 눈에선 눈물이 흐른다….” 듣는 사람마다 해석이 다르겠지만, 그 눈물엔 아마도 돌아갈 수 없는 어린 시절에 대한 그리움과 회한이 뒤섞여 있었을 거다. 그렇다, 어린 시절은 어른에게 그리움이며 회한이다. 워즈워스가 시 ‘무지개’에서 “하늘에 걸린 무지개를 바라보면 내 마음은 마냥 뛰누나”라며 “아이는 어른의 아버지”라고 결론 내린 건 순수에 대한 무한한 동경의 표현이었다.

한 시골학교에서 성탄절 연극 공연이 있었다. 선생님은 머리가 조금 모자라는 빌리에게도 역할 하나를 맡기기로 했다. 그래서 요셉이 “빈 방 있습니까” 물을 때 “없어요”라고 딱 한마디만 하면 되는 여관 주인역을 맡겼다. 막이 올라 만삭의 마리아를 데리고 온 요셉이 방이 있냐고 묻자 빌리는 뜻밖에도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마을 사람들과 선생님까지 나서 작은 목소리로 “없어요”라고 대답하라고 재촉했다. 그래도 한참 서 있던 빌리가 마침내 따뜻한 목소리로 꺼낸 말은 “내 방 쓰세요”였다.

가수나 시인이 아니더라도 우리는 아이들이 아무것도 안 그려진 백지이며 빚는 대로 빚어지는 찰흙 같은 존재임을 안다. 아이는 수정처럼 맑은 거울도, 일그러진 거울도 될 수 있다. 그건 거의 전적으로 어른 하기에 달렸다.

무상급식이 전학년으로 확대된 엊그제 서울 초등학교에서 여러 정경들이 펼쳐졌다고 한다. 새로 무상급식을 받게 된 5·6학년 아이들은 대부분 즐거운 얼굴로 식사를 했다. 그런데 분위기에 약간씩 온도차가 있었나 보다. 가령 강남의 한 어린이는 “무상급식을 하면 세금이 필요 없는 데까지 들어가는 거라 안 좋은 것 같다”는 반응을 보였다. 다른 아이는 “이것 때문에 다른 쪽 예산이 깎였다고 하더라”고 했다. 이 학교 교사는 “애들에게 무상급식 토론을 시켜봤는데, 어른들 하는 말을 그대로 따라 하는 것 같아 중단시켰다”고 말했다. 무상급식에 대한 아이들의 태도마저 그 무슨 ‘사회경제적’ 여건에 따라 달라진다는 분석을 해보지만 이 또한 살풍경일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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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1/11/03 19:52 2011/11/03 19: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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