버스를 내려 막차 시간을 확인한 다음 택시를 타고 경북대로 향했다. 10여년 만에 다시 찾은 대구는 나에게 전혀 낯설지 않았다. 택시를 타고서야 고속버스 터미널이 동대구역 바로 맞은편이라는 걸 알았다. 차창 뒤로 멀어져가는 "동대구역" 간판을 물끄러미 쳐다보면서 처음 대구를 찾았을 때 생각이 났다. 나는 통일호를 타고 동대구역에 내려 경북대로 가는 버스를 타곤 했던 기억을 떠 올렸다. 경북대 북문으로 오라는 요청을 받긴 했지만 북문이 어느 쪽인지 알 수 없었다. 택시는 경북대 외곽을 한 바퀴 돌아가는 느낌이었다. 도착한 북문은 새로 만든 교문이었다. 거창하게 가로세로 걸쳐있는 교문의 강철 장식은 화려했지만 딱딱한 느낌이 들었다.
약속 장소를 찾기 위해 학교를 빙 돌았지만 도무지 어느 건물인지 찾을 수가 없었다. 그런데도 전혀 낯설지 않은 풍경들이 눈에 들어왔다. 저기 저 큰 길과 저 건물들, 새로 지은 건물들 아래 삐죽하게 널어서 있는 벤치와 계단. 나는 약간 쓸쓸한 기분이 들었다. 인간의 몸이 기억의 집합체라는 말은 전혀 새로운 말이 아닌데도 나는 지난 기억들을 떠올리며 내 몸의 일부에 남아있는 이곳의 흔적들을 발견하고 놀라고 있는 자신을 깨달았다. 나는 약간은 묘하고 애매한 어쩔 수 없는 감정을 느꼈다. 어느 정도는 당황스러운 감정들.
그런데, 아무리 생각해도 그 사람 이름을 떠올릴 수 없었다. 도무지 기억이 나지 않았다. 머리가 백지처럼 아주 텅비어버린 것이다. 이럴 수가 있을까. 얼굴과 약간의 제스처, 주고받았던 대화들은 스틸 사진처럼 선명하게 남아있는데도, 이름은 전혀 기억나지 않았다. 나는 이런 생각이 들었다. 나는 나의 사랑에 어떤 진정성을 부여할 수 있을까. 내가 정말 사랑을 했던 것일까. 나에게 사랑이라는 건 도대체 무엇이었을까. 나는 사랑도, 사랑하는 것도 그렇고 사랑하는 사람에게도 그렇게 충실하지 못한 것은 아니었을까. 후덥지근하고 짜증스런 열기에 얼굴이 화끈거렸다.





경향신문은 정부수립 60주년을 맞아 ‘국가를 묻는다’는 특집을 연재 중이다. 현대사 60년의 주인공으로 농사꾼, 노동자와 함께 식모와 여공(여성노동자)을 꼽았다. 여러 가지를 떠올리게 한다. 식모와 여공, 지금은 사라졌지만 한 시대를 적신 물기 어린 호칭이었다. 시골에는 농사 외에 마땅히 벌어먹을 일터가 없었다. 정부의 도시와 기업 위주의 정책은 젊은이들을 농촌에서 몰아냈다. 젊음을 부릴 공간을 찾아 서울로 서울로 올라갔다. 기차역은 눈물 마를 새가 없었다. 떠나면서, 보내면서 울었다. 기적소리만 들어도 슬펐다. 아는 사람이 없으면 친구의 편지 한 장 달랑 들고 서울로 올라갔다. 연고가 없는 ‘무작정 상경’이 사회문제가 됐다. 경찰이 역 앞에서 대책 없이 두리번거리는 소녀, 소년들을 찾아내 다시 고향으로 돌려보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