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9 여름 여행 - 세상이 끝날 때까지 아직 10억초

잡기장

1부 첫걸음 - 여행을 떠나기까지의 이야기

 

결성

 

모처럼 한국에 찾아온 더위. 날만 더운게 아니라 사람 속이 이처럼 더운 건 실로 몇년만인지.

찜통속에서 문드러지고 있던 어느날 후배로부터 전화가 걸려왔다.

잘 지내냐 함 보자. 나보다 10배는 더 잘 벌지 않을까 싶은 후배와, 그보다는 못벌겠지만 그래도 나보다 수배는 잘 벌 친구와 사당동에서 만나기로 했다.

 

넌 여전하구나 와구와구 촵촵. 불닭을 씹는 내 모습이 예전에 채식한다던 내 모습과 잘 안겹쳐질만도 한데 또 더 훨 오래전의 내 모습이 떠오른다면 또 잘 겹쳐질것도 같다. 지난 시간의 공백을 메워가며 얘기를 나누다 여름 여행 얘기가 나오는 건 어쩌면 당연하겠다. 한 친구는 나랑 땅끝 자전거 여행을 같이 갔던 친구.

 

야 올해도 함 갈래? 좋지 함 가자. 2인 결의.

어 나도 가고 싶긴 한데.. 후달려서 ㄷㄷㄷ 1인 망설임.

꼭 멀리 가야 맛이냐. 사실 이 녀석이랑 땅끝 갈때도 우리 왜, 뭘하고 있는 거야라고 물으며 막 달리기만 했다. 천천히 가까운데 가며 자유롭게 놀다오면 좋잖아

그래 역시 그게 자전거 여행의 진미? 아니겠냐 그럼 가까운 양평 정도 가는 걸로 하고 맘 편하게 놀다오자. 그 그거 좋겠군. 1인 포섭. 3인 팀 결성. 

거사 날짜를 8월 초로 하기로 하고 기대를 안고 헤어졌다.

 

2년전 땅끝 여행 이후로는 1박2일보다 길게 어딜 다녀온 적이 없는 것 같다. 목적없는 여행으로는. 바쁘게 지내고 서둘러 움직이는게 몸에 배어 버리면 그걸 늦추는 건 쉽지 않다. "빈집"은 내게 하나의 여행처와 같았지만, 역시 시간은 지나고 익숙해진다.

 

 

우주의 항상성

 

전에 단체 상근으로 일할때, 맡은 일이 홈페이지 제작 지원과 서버 관리였다. 진보넷 주선랑에 비하면 퍽 널널하긴 해도 24시간 언제나, 365일 언제나 사건이 터지면 다른 것 제쳐 놓고 덤벼들어 해결될 때까지 매달려 있어야 하는 건 비슷하다. 꼭 안 그래도 되는데 명절이다 뭐다 하면 찾아오시는 손님때문에 골머리를 썩는다. 군대 얘기하는 것과 비슷한 필로 들리겠지만 정말 좀 오래 쉴만하면 일이 터지고, 어디 내려가고 있으면 전화와서 길을 돌린다. 그래도 난 뻐기며 대충 대충 해왔지만, 주선랑은 앞으로 육년만 더 그렇게 살다간 이 바닥 "관리의 달인"으로 뭐든 한편 찍어야 할 지도 모른다. (그러고 보니 다큐 감독님들 한번 생각해보세요)

 

그때야 어쩔 수 없다 해도, 단체를 그만두고 나서도 계속 비슷하게 살아야하는 건 좀 억울하잖아? 근데 뭐던 설렁설렁하다가 더 큰일을 만들어 매달리는 지각생은 그 후로도 크게 바뀌지 않았다. 나 정말 올해는 틈만 있으면 놀러다닐꺼야! 라는 새해 결심이 무색한 건 작년에 이어 올해도 마찬가지. 그래서 우울 답답 헤롱거리며 여름이 되었고, 드디어 참다 못한 지각생은 "세상이 끝나도 올 8월에는 여행을 가리라" 라고 마음 먹었다.

 

여행기대환상의 약빨로 계속되는 반복 답답한 나날을 보내다 드디어 7월 하순이 되었다. 지금껏 내 여행을 결정적으로 훼방놓을 요인은 아직 등장하지 않았다. 훗. 무슨 일이 있다한들 나를 막을쏘냐. 근데 이 녀석들은 여행 준비는 잘 하고 있나. 운동 좀 하고 있었어야 할텐데. 전화를 해봤다.

 

룰루~ 컬러링을 따라 흥얼거리니 한참 후에야 친구가 받는다.

여~~ 뭐하냐 슬슬 여행준비해야지

...

순간 흐르는 정적.

...

야.. 너 .. 어디?

... 야 미안하다.

뭐가? 응? 왜?

나 사무실 사람들하고 다 같이 휴가 맞춰서 어디 가기로 했는데

뭐 그러면 되지, 왜

나 ... 이미 와버렸다. 그 날 못가

...

으..음. 그러냐. 뭐 할섭지. 또 가을에 함 가덩가. 재밌게 놀아라

 

다른 후배에게. 꾹꾹꾹.. 통화꾹. 야 나다. 어 그래 어? 어? 어~ 어~

 

 

췟. 그런다고 내가 못 갈쏘냐. 혼자라도 간다니깐?

하지만 떠오르는 기억들.. 혼자 여행은 환자 여행이 된다...

블로그에 같이 갈 사람을 구하는 글을 쓰고는 나만이라도 여행 준비를 시작한다.

 

 

자전거 메신저.. 휴가 보내드립니다

 

내 자전거 여행은 "8월 초 주말에 간다" 이렇게만 잡아놨는데 같이 가기로 한 친구들이 못 가니 내가 자유롭게 일정을 잡을 수 있게 됐다. 어디 보자.. 어니? 정동진 영화제가 8월 7,8,9일이라고? 금,토,일 이거 딱이군. 좋아 이날 가는거다.

 

8월은 휴가 시즌이다보니 너도 나도 휴가를 떠나는데, 이미 8월 1일부터 여름 휴가를 떠나 쉬는 상점들이 곳곳에서 보이며 넌 거기서 뭐하냐 어휴. 그러고 있다. 내가 같이 하겠다고 했지만 실제로는 같이 하지 못하고 있는 여럿 중 하나인 "자전거 메신저"도 휴가 시즌을 맞았다. 주력 메신저?인 지음, 그리고 라봉이 선수를 친 상태. 라봉은 자신이 맘 놓고 다녀올 수 있도록 대타를 찾았고, 마침 빈집에 간 지각생은 훗 이번에 만회좀 해볼까 하는 심정으로 덜컥 그 역할을 맡는다.

좋아. 일주일만 대신 하면 되는거지. 문제없어. 아무렴 문제없지.

 

라봉은 채식공룡과 가온, 짱돌, 데반과 함께 "농알"을 떠나고, 내가 목표한 자전거 여행은 그보다 일주일 뒤다. 블로그 글에 양군과 꼬미가 호응해서 자전거 여행단 재결성! 둘이 조금 미심쩍긴 하지만 다들 자전거 타기를 좋아하는 사람들이 아닌가. 잘 되었다. 연락해서 같이 만나 여행 계획 대강 짜고 준비좀 하자는데 어찌 한 날 모이기가 쉽지 않다. 결국 당일 언제 어디서 만날지만 얘기하고 꼬미는 그때 그곳, 양군은 좀더 미심쩍으므로 전날 아랫집에서 같이 자고 아침에 출발하기로 한다.

 

땜빵 자전거 메신저 일은 별 무리 없이 이틀을 보냈다. 평소에 하던 일도 뭐 큰 이변이 발생할 조짐은 보이지 않는다. 이거 뭐 껌이구만. 정동진은 지음 아규 도영과 2006년에 자전거 타고 간 적이 있다. 완전하진 않아도 그때의 기억이 중간중간 생생하니, 어디로 어떻게 가고, 어떻게 먹고 머물고 하는 것도 별로 걱정이 안된다. 오직 내 마음속에는

 

대관령 옛길을 60km/h 의 속도로 질주해서 내려가는

 

상상만이 있을 뿐이었다.

그리고 여행 출발 전전날부터.. 슬슬 그것은 날 조여오기 시작했다.

 

(계속 * 사진은 2007년 해남 땅끝 마을 다녀오며 찍은 것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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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9/08/29 14:51 2009/08/29 14: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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뎡야 2009/08/31 14:16 URL EDIT REPLY
존네욘...사진에 디게 젊어보이네욘...
지각생 | 2009/09/01 12:37 URL EDIT
아직 지각생은 젊다는! 가꾸질 않아서 그렇지 ㅋㅋ
앙겔부처 | 2009/09/01 12:44 URL EDIT
가꾼 담에 보여주세욤'ㅁ' ㅋㅋㅋ
su | 2009/09/01 12:50 URL EDIT
가꾼 담에 보여주세욤'ㅁ' ㅋㅋㅋ
채경★ 2009/09/01 13:24 URL EDIT REPLY
가꾼 담에 보여주세욤'ㅁ' ㅋㅋㅋ
지각생 2009/09/05 19:17 URL EDIT REPLY
윽 -_-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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