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GM창원공장 진입투쟁

  • 등록일
    2006/04/02 18:01
  • 수정일
    2006/04/02 18:01
4월 1일 오후2시부터 GM대우 창원공장 정문에서 집회가 있었다. 500여 동지가 모였다. 짧게 집회를 끝내고 공장 안으로 들어가기 위한 투쟁을 시작했다. 고공농성을 하고 있는 동지들에게 물품을 전달하러 들어가기 위해서였다. 이미 회사는 정문으로 가는 다리를 콘테이너 4개로 막고 있었다. (후문 역시 동일하게 막혀 있었고 경찰병력이 진주하고 있었다) 그리고 집회 시작 즈음부터 비눗물 같은 거품 물대포를 쏟아붓기 시작했다. 콘테이너는 두 개씩 겹쳐져 용접되어 있었고, 한 치의 빈틈 없이 다리 전체를 가로막고 있었다. 놈들은 줄로 끌어내는 것을 막기 위해 콘테이너에 줄을 묶을 수 있는 구멍까지 치밀하게 용접을 해 둔 상태였다. 우선 미리 준비한 산소용접기로 용접한 부분을 끊고 첫번째와 두번째 콘테이너를 끌어 내는데 성공했다. 세번째와 네번째 콘테이너에는 철조망이 설치되어 있었는데 그것을 제거하는데는 성공했다. 그러나 정문에 더 가까워진 탓에 물대포 공격이 집중되었고, 산소용접기를 사용하는데 커다란 애를 먹었다. 결국 물대포를 막기 위해 30여 동지들이 콘테이너 위에 올라가 온몸으로 물대포를 막았다. 그리하여 결국 용접을 끊는데 성공했다. 그리고 다시 줄을 묶어 콘테이너를 끌어내려 했으나 콘테이너는 움직이질 않았다. 콘테이너에는 30톤 만큼의 물건을 채울 수 있는데 놈들은 콘테이너 안에 무언가 쇳덩어리와 같은 것들을 채워둔 것으로 추정된다. 악천후 속에서 집회 대오는 조금씩 줄어드는 상황. 빗방울이 굵어지면서 바람이 거세어졌는데 물대포를 쏘는 방향으로 대오를 향해 불어왔다. 당길 줄도 사실 넉넉하지 않았다. 결국 콘테이너를 끌어내는 데는 실패했다. 집회지도부는 황급하게 투쟁 종료를 선언하고 마무리집회를 진행하겠다고 방송했다. 너무 아쉽지만 여기서 정리하고 발언 두 개 하고 민주노총 총파업 투쟁 등으로 힘차게 투쟁하자는 소리였다. 다소 황망하게 시작된 정리집회에서 첫번째 발언자로 조성웅 현중하청지회장이 나섰다. 조성웅 지회장은 여기서 투쟁을 중단할 수는 없다면서 집회에 모인 모든 동지들이 투쟁을 결의해 줄 것을 요구했다. 하천 밑으로 내려가서 담벼락에 줄을 묶어 끌어당겨서 담을 무너뜨리고 들어가자고 제안했다. 그리고 지도부가 이를 재논의해 줄것을 발언에서 요청했다. 결국 집회지도부(금속 경남)는 투쟁을 종료하기로 이미 합의했건만 조성웅 지회장이 다시 제안을 했다면서 각 조직 담당자들을 다시 모았다. 그러나, 논의는 간단히 끝났다. 집회지도부의 설명 내용은 제안된 방법은 너무 위험하고 부상자가 많이 생길 수 있다는 것이었다. 더이상 발언하는 이는 없었고 회의는 끝났다. 집회 대오는 흩어지기 시작했다. 이에 사내하청단위 독자 마무리집회가 시작되었다. GM창원지회, 현중하청, 현자비노조, 기아비지회, 대자정원투(?), 전해투 등 100여 명 조금 못되는 인원들이 모였다. 몇몇 결의발언 이후 사회를 본 김수억 기아비지회조직국장은 투쟁을 회피하는 지도부가 있으면 끌어내리자고, 그러기 위해서 우리가 더 많이 조직하자고 정리했다. GM지회의 한 동지는 비정규직 노동자가 1200명인데 조합원 30명밖에 안된다며 울분을 토하면서도 끝까지 싸우겠다고 다짐했다. 마지막에 전해투 한 동지가 자유발언을 신청했는데 내용이 의미심장했다. 투쟁을 회피하는 관료들도 나쁘지만 전비연 사내하청모임도 사실 준비하지 않고 온 것 아니냐면서 비판했다. 집회가 끝나고 모든 대오는 해산했다. <개인평가> 1. 진입투쟁의 의지는 정말 있었는가? - 지도부 비판과 또다시 폭로된 정규직 운동 악천후에 물대포에 용접된 속이 꽉찬 콘테이너까지, 집회대오 숫자는 한정되어 있고 어제는 조건이 너무 좋지 않아서 어쩔 수 없지 않냐고 말하는 이도 있을 것이다. 하천으로 내려가서 벽을 무너뜨리자는 제안은 어제의 상황-대오상태와 준비상태-에서는 사실 무모했다. 그렇지만 집회지도부(상급단체)의 결정은 옳게 봐 줄 수 없다. 자본이 그렇게까지 준비할 줄 과연 몰랐다고 할 수 있을까. 적들이 바리케이드를 설치하는 과정을 파악하지 못했다는 것도 말이 안 된다. 정말 뚫고 들어가고자 하는 의지가 있었다면 모든 방법을 강구해서 준비했어야 한다. 홍콩 반WTO시위대는 구명조끼를 입고 헤엄쳐서 진입하는 기막힌 방법을 만들어낸 적이 있다. 창원공장에는 정문과 후문이 있고 둘 다 다리를 건너야만 들어갈 수 있다. 공장 담 바로 밑으로 하천이 흘러서 누구 말마따나 옛날 성(城)에 파놓은 해자를 연상시키는 구조다. 하천으로 내려갔을 때는 공장 담이 2M정도 위에 있어서 들어가는 것 자체가 사실 쉽지 않다. 그리고 굉장히 고립되기 쉬운 지형이다. 그러나 공장의 한 측면은 도로와 맞닿아 있다. 즉, 공장을 위에서 크게 보면 정사각형 모양이라 볼 수 있는데 정문과 후문이 있는 마주보는 양 변은 하천이 바로 담에 붙어 있지만 한 쪽 변은 성주로란 도로와 붙어 있다. 그 쪽은 공권력이 진주하고 있었다. 공권력과의 충돌을 불사하고라도 그쪽으로 뚫고 갈 수도 있는 것이다. 이것은 한 예일 뿐이다. 다양한 투쟁 전술, 그리고 그를 위한 준비를 할 수 있었다는 것이다. 그러나 그렇지 않았다. 즉, 실제 진입투쟁의 의지는 없어 보였다는 것이다. 이것은 집회조직화 상황을 봤을 때 훨씬 더 분명하게 드러난다. 집회에는 사내하청 단위외에 덤프연대 경남지부, 한국합섬 등의 투쟁사업장과 대구건설노조, 대경공공서비스노조 등 영남 지역 비정규직노조 등 비정규직 단위들이 집결했다. 그런데. 경남지역의 굵직한 정규직 노조들은 볼 수 없었다. 대우 창원지부는 물론이고, 경남지역의 핵심 금속 사업장들도 보이지 않았다. 부산, 울산은 말해 무엇하랴. 지역상급단체는 이토록 집회를 조직하지 않았다. 경남지역 상황에 대해서 잘 알지는 못한다. 하지만 얼마 전 들춰본 "내사랑 마창노련"이라는 책에서 본것처럼, 한때 노동운동의 메카라고 불렸던 울산 못지 않게 노동자 대투쟁과 계급적 단결과 연대의 기억을 품고 있는 곳이라 알고 있다. 하지만 창원 지회의 고공농성에도 불구하고 창원공장의 정규직노조와 지역 정규직 금속사업장들은 실질적인 연대를 하고 있지 않다. 단지 상급단체가 조직하지 않은 게 아니고, 정규직노조들도 실제로 나서지를 않는 것이다. 이것은 상호작용하는 거다. 어제의 집회는 조합주의에 찌들어 투쟁하지 않는 정규직 운동과 절박함 속에서 절박한 투쟁으로 나서는 비정규직 운동의 갈등을 다시 한 번 선명하게 보여주었다. 2. 여전히 취약한 전투파 그리고 무엇을 고민할 것인가 집회는 그냥 정리되지 않았다. 그러나 결과적으로는 작은 문제제기 이상 할 수 없었다. 사내하청단위 정리집회의 마지막 자유발언처럼 전비연 사내하청모임에서도 준비가 안된 것은 마찬가지였다. 집회로의 집중을 호소하고 한 장소로 모이는 것은 하였으나 그 이상을 하지는 못했다. 전투적인 입장을 견지하는 사내하청단위들이 모인 전비연 사내하청모임이지만 실력은 현재 이 수준이다. 벌써 몇 년째 투쟁의 양상은 반복되고 있다. 박일수 열사 투쟁 때도, 비정규 법개악 저지 투쟁 때도, 이번 투쟁에서도 그렇고 많은 투쟁에서 반복되고 있는 양상 : 자본의 악랄한 탄압 - 대중조직력의 부재로 인해 현장에서 밀려남 - 결사대의 고공농성 돌입 - 총연맹/상급단체/정규직노조 등 기존 운동질서와의 격렬한 대립과 충돌 - 타협적인 마무리 혹은 완전한 해체. (정규직노조의 연대거부 등의 문제는 중간중간에 다 들어간다) 이런 양상을 박살내야 하는데 어떻게 할 수 있는가가 고민이다. 물량 준비해서 대가리 박고 싸우면 된다로 해결되지 않는다는 것도 몇 번째 똑같지 않은가. 마지막 GM지회 동지의 발언이 기억에 남는다. "공장 안에는 1200명의 비정규직 노동자들이 있는데, 조합원으로 같이 투쟁하는 사람 수는 30명 밖에 안된다." 사실 다른 비정규직 노조의 상황도 크게 다르지 않다. 공장 안에 수천 명의 비정규직 노동자들이 있지만, 조합원으로, 넘어서서 투쟁하는 조합원으로 있는 숫자는 사실 많지 않다. 이 갭을 극복하기 위한 고민이 절실하다. 조직화. 조직화. 조직화. 자본가들에게 뛰는 놈 위에 나는 놈 있다는 걸 노동자가 보여 주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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