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닷새째, 담양.

  • 등록일
    2007/01/26 16:52
  • 수정일
    2007/01/26 16:52
여행 다섯번째 날. 목적지는 담양, 그리고 담양을 넘어 광주에 도착해 자는 것.
그런데 이날은 구경한 것보다 예닐곱 개의 고갯길을 넘었던 것이 더 기억에 남는다.

정읍에서 담양으로 갈 수 있는 코스는 두 가지.

장성으로 좀 돌아가거나, 내장산을 직접 넘어서 가거나, 내장산 옆을 돌아 순창을 걸쳐 담양으로 넘어가는 길.
전라도는 경상도에 비하면 정말정말 평야가 많지만,
전북에서 전남으로 넘어가는 길에는 노령산맥 줄기가 뻗어나와 내장산 자락이 떡 하니 버티고 있다.
 
아마 장성으로 돌아가는 길이 그나마 언덕이 좀 적었을 것이다.
그러나 나는.
순창을 걸쳐 넘어가는 길을 택했다.

분명히 계획을 짤 때는 장성으로 가겠다고 마음 먹었는데,
왜 당일 아침에 코스를 바꿨는지 모를 일이다.

"1번 국도 타고 장성으로 가면 엄청 돌아가는 거야~"
라는 택시기사의 한 마디 때문이었을까.

내가 잤던 찜질방의 위치가 1번국도로 쪽으로 나가기에는 너무 내장산 쪽으로 치우쳐 있기 때문이었을까...

하여튼 이 날. 해가 아직 뜨지 않은 아침 7시 30분에 출발.
장장 다섯 시간 가까이 자전거를 타다가, 질질 끌고 가다가...;;
10km의 오르막과 10km의 내리막을 지나 겨우 담양에 도착했다.

하지만 담양에 도착한 것으로 고개 넘기가 끝난 것은 아니었다.
광주로 가기 위해 나는 그 날 무등산 자락도 넘어야 했으니깐...


처음 찜질방을 출발해 내장산을 향하는 드넓은 도로에서는 참으로 상쾌했다~
그러나. 담양으로 향하는 표지판과 함께 등장은 높다란 언덕길.
나는 이 길로 갔던 것이다.



고개 하나를 넘어 보니 저 앞에 더 큰 고개가 또 하나 보이고.
지도에서 M자로 꺾인 곳을 겨우 넘어 경계선을 넘으니 드디어 순창군이 나왔다.


내가 넘어온 길. 과연 오늘 안에 담양에 도착이나 할 수 있을까 싶었다.
저~ 밑의 평지에서 올라오기 시작했는데,
내장산이 거의 눈높이에 가까워졌다는 사실에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날씨는 흐리고,
햇빛은 나지 않고,
언덕을 오르는 동안 몸과 옷은 흠뻑 땀에 젖은 상태.
길은 깨끗했지만 며칠 전에 내린 눈은 여전히 녹지 않고 곳곳에 쌓여 있었다.
8km가량의 긴 내리막을 내려오는 동안, 정말 추웠다.
싸구려 등산자켓은 땀을 자기가 흡수해서 다 머금고 있는고로 정말 얼어죽는 줄 알았다.


옷을 보니 이렇게 얼음이 얼었다.
이건.... 여의도에서 겨울에 물대포에나 맞았을 때나 봤던건데 헉.

한 시골 마을을 지나가는데 연기가 나고 있었다.
모닥불이 있나보다! 싶어서 달려가 보았더니

보기에는 따뜻한데 제대로 불을 쬘 수는 없을 정도.
이틀 전 격포에서의 그 커다란 장작불이 어찌나 그립던지.
솥 안에는 과연 뭐가 끓고 있었을까?

할 수 없이 몸을 녹이는 것도, 옷을 말리는 것도 실패하고 다시 달리다 보니 도저히 견딜 수가 없어서 어느 교회 화장실에 들어가 옷을 싹 갈아 입었다. 그러니 조금 낫더만.

순창군 쌍치면을 지나 담양군으로 들어간다. 순창에서 담양을 넘는 경계도 고갯길이다.
아... 차 타면 금방인데 이 고생을 왜 내가 사서 하나 싶기도 하고...
그래도 큰 고개를 하나 넘어 담양이 가까워졌다는 생각에 조금씩 마음은 가벼워 진다.


닭 쫓던 개 지붕 쳐다본다?
담양 가는 길. 원래는 개장 앞에 수많은 닭들이 뛰놀고 있었는데
사진 찍으려고 어물어물 하는 바람에 개장 뒤쪽으로 닭들이 다 숨었다.
고갯길을 넘느라 정신이 없는 와중에도 개그야의 "킬리만자로의 걔"가 생각나서 혼자 웃었다.

"닭 쫓던 개 지붕 쳐다본다더니, 니가 '쳐다본다'냐?"
"아니다. 내 이름은 '닭 쫓던'이다. 너야말로 '쳐다본다'냐?"
"아니다. 내 이름은 '지붕'이다."
"그럼, 누가 '쳐다본다'냐~~~~~"
(정말 불쌍한 얼굴로 김완기가 등장한다)
"내가............. '쳐다본다'다..........."
그 다음엔 어떻게 했더라? ㅋㅋ

담양으로 접어드니 왼쪽에는 거대한 담양호가 나오고,
오른쪽으로는 전남5대 명산 중 하나라는 추월산이 나온다.
추월산 참 범상치 않게 생기긴 했다.


담양호. 전망좋은 곳에서 찍은 사진.


추월산 옆구리도 다시 넘어넘어 드디어 담양읍에 도착.
죽녹원에 도착했다. 작은 산등성이에 만들어진 대나무숲 공원 정도 된다고 할까?


죽녹원.
겨울이라 춥긴 했지만 도통 녹색을 보기 힘들었는데, 여기서는 마음껏 녹색을 즐길 수 있었다.

이게 바로 '운수대통'이란 건데. 여기에 동전을 던져 넣으면 소원이 이루어질 지 모른다나~
이건 '어린이용'이다.
그런데 어린이들의 꿈은 의사, 박사, 예술가밖에 없단 말인가~~


이건 어른용.
'대박' 뭐 이런 것도 있고. 나도 하나 던졌는데 '사랑'에 골인~ 음하하!

대나무숲 곳곳에 소풍 다녀간 고등학생들의 소원지를 매달아 두었다.
이거 보는게 참 재미있었다. 소원의 대부분은 '수능 대박' 고3애들이 왔다갔나 보다.






가끔 이런 애들이 있었다. 이건희 회장보다 부자가 되려면..
이건희 친척 정도는 되야 조금 가능성이라도 있을텐데?


캬. 멋지다.


우주 정복의 첫 관문은 수능이로군. 음..


응. 그래 뭘 기다렸니?


오늘의 베스트.

지구가 역자전 하면 과연 무슨 일이 일어날런지 ㅡ.ㅡ;
잠시 심각하게 고민해 보았다.
일단 지구가 거꾸로 돌면. 해가 서쪽에서 뜨겠네? +.+
그리고 계절풍, 무역풍 따위의 방향이 바뀌면... 기후가 달라지나...?
아 그러면 기후재앙이 생길 수도 있고 혹시 세계의 평화가 깨지는 것을 아닐까.
나 원 참.












죽녹원은 괜찮았다.

관방제림도 둘러 보고 메타세퀘이어 길도 둘러 보았다.
생각보단... 역시 가을에 왔어야 했나.
그래도 담양 읍내를 흐르는 천변은 잘 가꾸어 놓았다.






담양읍내 김밥천국을 찾아 밥을 먹었다.
다음 목적지는 소쇄원. 지도가 있었지만 그냥 현지 사람에게 말도 붙일 겸 식당 아저씨한테 물어봤더니 한 번도 못 가봤다면서 잘 모르더라.
아저씨도 내가 신기했는지 이것저것 물어 보길래 잠시 얘기를 나누었다.
사실 자기는 연중무휴로 식당을 해야 해서 어디 놀러가거나 할 여가가 없다고.
왠지 말 속에 아쉬움이 배어 있는 듯했다. 그러고 보니 괜히 물어본 것 같아 미안하기도 했다.

이제 담양과 광주의 경계 쯤에 있는 이른바 '가사문학문화권'의 중심지인 소쇄원으로 출발.
지나다 보니 광주호가 나온다. 참 곳곳에 인공호수가 많다.


먼저 도착한 곳은 식영정. 여기가 참 경치가 좋았다. 광주호를 내려다 볼 수도 있고.










반면.
유홍준의 "나의 문화유산 답사기"에 나온 소쇄원. 한국식 전통정원이라는데.
솔직히 1000원 내고 들어간 것 치고는 대실망.
겨울이라서 그랬나. 아니면 해 지기 직전이어 햇빛이 없어서 그랬나.
무슨 수해 당한지 얼마 안 된 것 같은 그런 기분. 어차피 건전지가 다 돼서 사진도 얼마 못 찍었다만. 하여튼...


소쇄원을 나오니 해가 다 졌다.
이제 광주 시내로 들어가 잘 곳을 찾아야 했다.
소쇄원 쪽에서 광주로 가는 길은 두 개. 대체로 평탄하지만 거의 'ㄱ'자로 돌아가는 코스가 있고, 무등산 자락을 넘어 거의 직선으로 가는 코스가 있다.
또 살짝 주유소 아저씨한테 물었더니 얼마 안 걸린단다. 자전거로 20분이면 된다나.
설마... 20분은 아니고 3~40분은 되겠지 하고 속으로 생각했다.
마침 세부적인 지도가 없었다. ㅡ.ㅡ 그 부분만.

주유소 아저씨 말을 믿는 바람에 나는 또 캄캄한 밤에 두 개의 고개를 넘어 한시간 반만에 광주 시내로 들어설 수 있었다. 쌩쌩 달리는 차들을 욕하면서.
에휴~


두번째 고갯마루에서 만난 광주 시내 야경.
어찌나 반갑던지-

시내에 들어가 저녁은 대충 때우고.
찜질방을 찾았다. 광주 시내 굴지의 찜질방. 마침 토요일 밤이어서인지 진가 수백 명이 복작복작하고 있었다.
과연 잘 잘 수 있을까...

자기 전에 내일 코스를 점검했다.
이왕 가는 거 땅끝까지 간다. 그러면 내일은 무조건 강진읍까지 가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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