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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진숙- 비정규직 강의 자료

왜 우리는 비정규직, 파견법 개악 안 입법저지 투쟁에 나서야 하는가?

엮은이(삶이 보이는 창 기고자): 아래 글은 민주노총 부산본부 김 진숙 지도위원의 강의를 발췌한 것입니다.
작년에 올라온 글이라서 때늦은 감이 없지 않아 있지만 의미 있는 일이라 생각 되서 옮겨봅니다.

지난 10월 26일은 근로복지공단 비정규직 노조 광주지부장 고 이 용석 열사가 작년 종묘집회에서 분신한지 1주년이 되는 날입니다.
이날 저녁 건강보험공단 지하 강당에서는 민주노총 부산본부 김 진숙 지도위원의 특강이 있었습니다.
김 위원은 지난 해 노동자 대회 때 고 김 주익 열사의 추도사를 하도 절절하게 해서 집회장을 눈물의 도가니로 만들었던 장본인 입니다.
민주노동당 서울시당과 전국 사회보험노조 주최로 열린 이 강연의 주제는 “왜 우리는 노동운동 진보정당 운동의 사활을 걸고 비정규직 파견법 개악 안 입법저지 투쟁에 나서야 하는 가”였습니다.
김 위원의 목청은 힘찼고 사용하는 말은 이해하기 쉬웠습니다.
시원스럽게 넘어가는 이야기는 재미있으면서도 의미심장해서 청중을 웃겼다가 울렸다가 마침내는 각성과 결의를 이끌어내는 것이었습니다.
과연 신들린 강연이었습니다.
특강이 끝난 후 공덕시장에서 순대 국을 먹으면서도 가슴이 울렁이는 것을 진정시키기가 어려웠습니다.
그리고는 한참 비정규직에 관한 이야기를 나누다 헤어졌습니다.
다음은 강연내용을 핵심만 살려서 요약 기록한 것입니다.
최대한 김 위원의 입맛을 살리려 노력했고 소제목은 내용에 따라 분류해 제가 임의로 정한 것입니다.

김 진숙 지도위원은 사회자의 소개말이 끝나자마자 성큼 강단으로 뛰어 올라가 청중을 향해 활짝 웃으며 “고생 많으시죠!”란 말로 인사를 건냈다.
그리고 나서 오랜 벗에게 이야기하듯 친근한 말투로 경상도의 보수성, 국가보안법 철폐이유, 계급성의 필요성, 비정규직 투쟁의 어려움, 연대의 의미 등에 대해 연설했다.
마치 폭포수처럼 격정적이면서도 현장성이 생생하게 담긴 말은 나태한 의식에 일침을 가하기에 충분했다.

- 누나, 이제 박대통령은 누가 해? -

선거가 끝나면 부산에 산다는 게 뒤지게 쪽팔립니다.
한 나라 당이 수도이전 반대하면 저들도 반대를 합니다.
국가보안법 폐지도 한 나라 당이 반대하니까 지들도 반대를 합니다.
저는 이번 총선에서 정동영하고 통 했던 게 6~70대는 투표하지 말라는 거였습니다.
더 나아가 박 정희가 나라를 살렸다고 믿고 군대를 다녀온 50대 이상의 경상도 남자들에겐 투표권 주면 안 된다고 봅니다.
아니면 자격시험을 보던가.........................!(웃음과 박수)

노 무현이 잠깐 대기발령 받고 있을 때는 부산 사람들하고 선거 얘기가 되더군요.
참 신기한 경험이었습니다.
그런데 얘기의 결론은 저에게 이렇게 묻는 것으로 끝나더군요,
“아지 매 전라도 지예?”
그런데 박 근혜 이 여자가 나타나서 다 휘저어버렸는데, 박 근혜가 야당 지도자입니까?
바로 박 정희 딸 아닙니까?
초등학교 다니는 조카도 아는 사실입니다.
거 부산 사람들 보러 박 근혜가 왜 좋으냐고 했더니 시집을 안가서 좋디야?
시집은 나도 안 갔는데 하니까 넌 못 간 거지 합니다(웃음)
그야말로 말초적인 본능에 의해 움직이는 겁니다.
박 정희 정권이 청렴결백했다는 건 웃기는 개소리입니다.
워낙 틀어막고 해먹으니까 당시에 몰랐던 거 아닙니까?
정수장학회는 장물장학회입니다.
뭔 놈의 장학회가 방송사 지분을 그렇게 많이 갖고 있습니까?
박 근혜는 여기 출근도 하지 않으면서 1.100만원의 월급을 받습니다.
그런데 월급 100만 원도 못 받는 것들이 이걸 찍어준다니까요!
오직 경상도라는 이유 하나만으로!

대구에서는 더 황당한 일이 있었습니다.
하얀 두루마기를 입은 여든 먹은 영감이 박 근혜가 오니까 그 앞에 너부죽 엎드리며 한다는 말이 “오래 사십시오”(웃음) 이게 말이 됩니까?
제가 1960년 생 입니다.
박 정희가 18년 대통령 해먹으리라고 생각이나 했겠습니까?
내가 태어나면서부터 열아홉 살 될 때까지 글마가 대통령 해먹었습니다.
박 정희가 딱 죽고 나니까 우리 동생이 그러더라구요
“누나 이제 박대통령은 누가 해? 참 내~!(웃음과 박수)

박 정희가 그렇게 해 먹을 수 있었던 근거가 뭐겠습니까?
제가 한진 중공업 땜 쟁이었다는 건 다들 아시죠?
한진 중공업 입사해서 스물한 살 때 첫 휴가를 받아서 혼자 유달산에 놀러갔었습니다.
처음 가는 길이라 여기저기 무어보고 카메라로 동서남북을 찍고 있는데 짜바리(경찰) 둘이 오더니 연행해 갔습니다.
지금이야 인권이 어떻고 미란다원칙이 어쩌구 하지만 그때만 해도 짜바리 하고 눈만 잘못 맞으면 2박3일은 똥 밞은 시절 아니었습니까?
2박3일 동안 생사를 몰라요,
어디 대공 분실에 있는지, 남부경찰서에 있는 건지...............!
파출소에서 배낭을 막 뒤지면서 하는 말이 대공용의자를 잡았다는 겁니다.
저는 그 때 그 말이 뭔지도 모르고 있는데 아무리 뒤져도 난수표가 나오나 무전기가 나오나 뒤지던 끝에 지덜끼리 그러더군요.
자기가 김일성이라도 이런 걸 간첩으로 내려 보내진 않겠다고,
그 날 밤에 집에 갈 수가 없어서 숙직실에서 하루를 보내는데 벽에 표어가 죽 붙어있는 겁니다.
그걸 보고 내가 왜 붙잡혀 왔는지 알겠더군요.
“홀로 가는 저 등산객 간첩인가 다시보자” 이건 좀 낫습니다.
“사랑하는 내 애인 알고 보니 간첩”(웃음)

지금도 촌에 가면 농협 바람벽에 이런 거 붙어 있습니다.
기억 나십니까?
멸공방첩, 반공방첩 하고 그 밑에 적여 있는 간첩색출요령

1.산에서 낚시가방 메고 내려오는 자
2.농구화에 뻘 흙을 묻혀갔고 다니는 자
3.담배 값을 물어보는 자(웃음)
4.압권입니다, 이불을 뒤집어쓰고 라디오를 듣는 자(웃음과 박수)
이게 국가보안법입니다.
국가보안법이 어디 간첩만 불편합니까?

제가 팔 육년에 대공 분실을 세 번 갔었습니다.
거긴 뭐 물어보지도 않고 무조건 팹니다.
옷 다 벗겨서 군복 갈아입히고 고무신 신겨 놓은 뒤에 줘 패기 시작하면서 누구 아냐? 누구 아냐?
하면서 100명의 이름을 갖다 댑니다.
정말 비슷한 이름이라도 나오면 대고 싶었습니다.
워낙 나오는 게 없으니까 그놈들이 상부에 뭐라고 보고했게요?
자생적 공산주의자!(웃음)
그게 국가보안법이고 그걸 움켜쥐고 있는 게 한 나라 당입니다.

진보에도 계급이 있습니다.
조선일보를 볼 순 없으니 한겨레신문을 보는데 이게 잘 나가다가 선거 때만 되면 민주당보 짓을 했다가 열린 우리당보 짓을 했다 합니다.
촛불시위를 할 때도 이거야 말로 평화시위의 모범이라고 했었습니다.
1980년대 집회 한번 하려면 다 전화 도청하고 그 자리에 먼저 경찰들이 가 있어요.
이럴 때 집회 자리를 만들려고 화염병 안 던질 수가 없었습니다.
쟤들이 먼저 최루탄으로 도발하니까 화염병 던져서 집회할 자리를 만드는 겁니다.
그 불 끄러 가는 동안 자리 만들어서 노래 부르고 쟤들이 그 불 다 끄고 우루루 또 몰려오면 다시 또 던지고.........그 때 그 시절에도 촛불 들었으면 아름다웠을까요?
아마 전국 양초제조공장 압수수색영장 떨어졌을 겁니다.
아마 촛불에 관한 특별법 만들어 졌을 걸요?(웃음과 박수)

그게 역사입니다.
그렇게 지나온 역사를 간과해서 안 되는 겁니다.
그렇게 촛불이 아름다우면 그럼 부안은 뭡니까?
이백일 넘게 촛불 켜들었던 부안은 뭐냔 말이죠?
그래서 계급성 이야말로 가장 중요하게 시대를 가르는 개념이라고 생각합니다.
저는 그래서 진보에도 계급이 있다고 보는 겁니다.
여러분, 우리나라에서 가장 진보적이라 일컬어지는 작가 조 정래가 쓴 “한강”이란 소설이 있습니다.
“한강”을 읽다보면 7권에 박태준이 이야기가 반이나 나옵니다.
박태준이야말로 포항제철의 주인이고 이 땅의 진정한 산업역군이라는 얘기가 반 권에 걸쳐 나옵니다.
그 말이 맞나 봅시다.
포철에는 시뻘건 철근만 하루에도 수백만 개가 뽑아져 나오고 그것으로 건물과 다리가 만들어집니다.
시뻘건 철근이 뽑아져 나오다가 하나가 불량이 나서 철근이 솟구치는데 옆에 있는 노동자를 꿰고 지나갔습니다.
철근이 항문으로 들어가서 머리로 나왔습니다.
그리고 떨어졌습니다.
그 시신을 놓고 사람들이 위로했는데 뭐라고 했는지 아십니까?
“아유 그나마 로에 안 빠진게 얼마나 다행이야” 그 옆에 용광로가 있었는데 거기 빠졌으면 가관일 뻔 했지요.
그야말로 꼬치에 튀겨지는 셈이니까, 살아있는 사람들이 시신을 놓고 뭘 고민 했는 줄 아십니까?
두고 간 새끼들을 걱정했게요?
아닙니다.
그 철근을 그대로 관에 넣을지 , 시신에서 철근을 빼고 관에 넣을지, 관 크기에 맞게 철근을 자를지.........그 고민을 했다는 겁니다.
저는 포항제철은 이런 노동자들이 만들었다고 봅니다.

포철에도 노조가 있습니다.
조합원이 모두 열여덟 명입니다.
수만 명이 넘는 사업장에 20년 동안 그 수가 변함이 없는 게 이상하지 않습니까?
한 명이 정년이 되어 나가면 또 한 명이 채워집니다.
그 포철에 노조를 만들었다가 노조간부가 부모 보는 앞에서 박 태준에게 따귀를 맞았습니다.
그게 박태준이 한 짓입니다.

- 노동자들의 투쟁을 외면하는 언론 -

1991년에 삼화고무에 김 경은 이라는 노동자가 있었습니다.
운동화는 가죽이 두꺼우니까 종종 미싱 바늘이 부러지기도 합니다.
그렇게 부러진 미싱 바늘이 김 경은의 눈으로 들어갔습니다.
조장한테 가니까 “뭐 어디 그런 걸로 조퇴시켜 주는 데 봤냐?”
형광등 아래서 조장이 눈을 까뒤집어 보니 안 보이거든요, 그래서 다시 가서 일을 하라고 지시했고 그날 잔업까지 했습니다.
그런데 일하는 중에 그 바늘이 눈 뒤에까지 이어져서 시신경이 다 파괴돼 버렸습니다.
그 때 김 경은의 나이 열여덟이었습니다.
여러분, 프레스 노동자가 왜 지 손가락 지가 잘라먹는지 아십니까?
습관적인 동작 때문에 0.1초만 늦어도 그 안에 손가락이 들어가는걸 알면서도 기계를 밟는 겁니다.
이른바 주방의 명품 퀸센스를 만드는 사업장에서는 한 노동자의 손가락 네 개가 한꺼번에 잘라졌습니다.
그런데 봉합을 한다는 것이 손가락을 원래 있던 자리가 아닌 다른 곳에다 붙여 놓았습니다.
이런 일이 있어도 “본인 부주의”로 보고가 됩니다.
이런 노동자가 하루에도 수 십 명입니다.
그 노동자가 비정규직이고 노동조합이 없으면 제대로 보상도 못 받습니다.

화물연대 파업할 때 민주노총에서조차 무리한 파업 때문에 노무현 정권이 등을 돌렸다고 스스럼없이 예기했습니다.
3개월 사이에 화물연대 노동자가 여섯 명이나 자살했습니다.
개인사업자가 투쟁에 조직적으로 나서기까지 얼마나 힘든지 조직사업 해본 분들은 압니다.
화물연대 김해지부장 최 복남 동지가 톨게이트에서 유인물을 나눠 주다가 젊은 운전자와 시비가 붙었습니다.
젊은 운전자의 요지는 그거 였습니다.
왜 유인물을 나눠주며 교통을 마비시키고 물류를 중단시켜 사회를 불편하게 하냐는 거였습니다.
그는 배운 대로 한 것입니다.
최 복남 동지는 일단 유인물을 읽고 판단하라고 차에다가 꾸역꾸역 유인물을 넣어주려 했고 젊은 운전자는 최씨의 손이 들어온 상태에서 유리문을 올린 채 달렸습니다.
어떻게 됐겠습니까?
유리문에 몸이 낀 채 길바닥에 쓰러졌고 그 위를 몇 대의 차가 더 지나가 개구리처럼 납작해져서 죽었습니다.
그 젊은 운전자도 노동자였을 것입니다.
그 노동자가 대학을 나왔는지 안 나왔는지는 모르지만 어쨌든 교육을 10년, 20년 받아도 노동자들이 왜 투쟁하는지, 왜 자식이 셋인 아버지가 크레인에 올라가고 50이 넘은 노동자가 지 몸에 불을 붙이는지 알려주지 않는 학교, 언론이 더 큰 문제입니다.

- 노동자들의 신자유주의적 사고를 경계해야 -

대한민국은 자본가와 노동자가 10:90으로 명확하게 구분되는 나라입니다.
90은 절대 10이 될 수 없는데도 사람들은 그 환상을 믿습니다.
로또를 100번 당첨되고 잔업을 100대가리로 해보십시오,
90이 10이 될 수 있나.
그래봤자 과로사할 뿐입니다.
저는 90이 단결해서 10을 없애고 100을 만드는 것이 평등세상이라고 생각합니다.

현대자동차에서 지금 일부 대의원들을 중심으로 어떤 단협 안을 요구하고 있는지 아십니까?
애비가 정규직이고 아들이 비정규직인데 이 아버지가 내가 정년퇴직을 하게 되면 그 자리를 내 아들에게 줘서 정규직으로 해달라, 이걸 노동조합 집행부에다가 요구하고 있다니까요?
현실이 이렇게까지 되고 있는데 90이 10이 될 수 있다는 환상을 심어주는 게 자본주의입니다.
연속극이나 광고를 한번 보세요.
부동산을 광고하는 게 대한민국입니다.
고교등급제 문제가 뭐겠습니까?
10이 지 새끼들까지 10으로 만들려고 발악하는 거 아닙니까?
노동자들이 잔업 많이 해서 지 새끼들 학원 많이 보낸다고 10이 될 수 있겠습니까?
그래봐야 정 몽헌이 종밖에 더 되겠습니까?
노동자들도 이 이율배반을 깨지 못하면 자본의 종으로 살 수 밖에 없습니다.
한진 중공업이 명예퇴직 투쟁을 2년 했습니다.
구조조정 싸움이 어려운 건 명단이 발표되기 전까지 모든 사람들이 자기는 아닐 거라고 믿고 있는 겁니다.
자기만은 회사에서 꼭 필요한 사람이라고 생각하는 게 얼마나 자본을 순진하게 보는 겁니까!
50대 이상 아저씨들 600명이 명퇴 대상이 됐습니다.
정년이 얼마 안 남은 이 사람들을 정리해고 시키는 이유가 뭐겠습니까?
바로 젊은 사람들과 분리시키려는 자본의 논리입니다.
어떤 사업장에서 남성 조합원들이 고용보장 받는 대가로 여성 노동자들을 정리해고 시키는데 동의했습니다.
이런 얘기는 이제 꽤 익숙해 졌습니다.
그 위원장에게 왜 그딴 식으로 했냐고 물었더니 뭐라는지 아십니까?

“아지매들은 어차피 반찬값 벌러 나온 것 아닙니꺼?”

아니 여자들 월급이 반찬값이면 남자들 월급은 안주 값인가요?
이런 자본의 논리가‘(상황이) 어렵다' 는 이유로 노동에도 침투해 있다는 게 신자유주의의 무서움입니다.
600명의 아저씨들이 싸우다가 300명은 더럽고 아니꼽다는 이유로 사표를 쓰고 나가고 2년 만에 이겨서 막걸리를 마시는데 아저씨들이 눈물을 줄줄 흘리더군요.
조합의 사무국장은 2년 만에 처음으로 집에 들어갔습니다.
근데 사장이 합의한 사실을 회장이 번복하자 노동조합의 지회장이 할 일이 무엇이었겠습니까?
밤11시에 새끼가 셋인 애비가 혼자 크레인에 올라가서 129일을 햇빛과 비를 피할 데 없는 그 공간에서 짐승처럼 갇혀 살았습니다.
129일 동안 밥을 까만 비닐봉지에 담아 매달아서 올려 보냈는데 바람 때문에 크레인에 도착하면 저절로 비빔밥이 돼 있더랍니다.
작년 여름이 더웠다지만 한진 중공업 노동자들에겐 생애에서 가장 더웠을 겁니다.

하루는 냉면이 먹고 싶다고 크레인에서 전화가 왔답니다.
냉면을 올려 보낼 때마다 번번이 실패했답니다.
수십 미터짜리 크레인까지 국물을 안 흘리고 올려 보낼 수가 없었던거죠.
결국 내려와서 먹으라고 했는데 그 냉면이 사자 밥이 되었습니다.
그 때 그 시신에 대해서도 압수수색영장을 내린 게 저놈들입니다.
그게 구조조정 싸움입니다.

- 비정규직 문제는 정규직의 결단이 필요합니다. -

한진 중공업도 하청노동자가 반이 넘습니다.
어떤 노조에 가니까 노조간부가 차를 하나 샀는데 억대의 차가 있더군요.
은근히 자랑까지 했습니다.
연봉이 6000만원이랍니다.
그 사업장 화장실에 갔더니 더운 여름날 청소용역 아줌마들이 화장실 앞에서 박스를 깔고 쉬고 있었습니다.
월급을 물었더니 11년 동안 하루에 아홉 시간 일해 왔는데 63만원이라고 했습니다.
그래도 옆에 있는 회사보다는 나은 대우라고 하더군요.
다시 노조 사무실에 와서 그 간부에게 얼마나 일하느냐고 물었더니 하루 여덟 시간씩 9년 됐다고 했습니다.

전라도 익산에 원광 대 병원에서 작년에 청소용역 아줌마들이 파업을 시작했습니다.
부산에서 거기까지 가 봤는데 투쟁하고 있는 장소를 찾지 못했습니다.
정규직 노조에 가서 물어보니 거기에는 간호사나 병원직원들이 있는데, ‘우리가 왜 파업을 하느냐’면서 정색을 하며 안 가르쳐 주더군요,
이미 타결이 됐나?
그러면 미리 연락이라도 해주지, 욕이라도 해주고 가려고 아줌마들을 찾았는데 지하2층에 가서야 그들을 발견했습니다.
그곳은 아줌마들이 옷 갈아입고 휴식하는 공간인데 세상에, 그렇게 습기 차고 형편없는 곳을 어디에서도 못 봤습니다.
아줌마들은 월급이 40만원 이었는데 용역재계약시 38만원으로 깎이게 되어 투쟁을 시작하게 된 것이었습니다.
월급이 깎이니까 이 아줌마들도 자식이나 노동부에 물어봤겠지요.
그러다가 60평생에 우리나라에 최저임금법이 있다는 걸 처음 알게 된 것입니다.
그것도 무려 51만8,150원이라는 걸......@@@
임금뿐만 아니라 그런 곳을 휴식공간으로 내준 놈들이 사람처럼 생각되지가 않았습니다.
그래, 여기 이러고 있을 것이 아니라 로비에 올라가서 하든지, 정문 앞에 천막을 치든지, 원장 집 앞으로 가든지 해야 될 거 아니냐고 했더니, 로비에 있다가 내려왔데요.
왜 내려온 거냐고 했더니 정규직 노조 지부장이 내려가 있으라고 했답니다.
‘아줌마들이 여기 이러고 있으면 환자가 떨어져서 협상하기 어려우니까 내려가 있으라’고 했데요
더 골 때리는 건 그 정규직 노조가 작년 자기들 임금 인상 시에는 가열차게 투쟁했던 곳이었습니다.
어용노조가 아니었습니다.
그 때 파업에 앞장섰던 노조 상집간부가 하는 말 ‘40만원 받던 아줌마들이 갑자기 51만원을 주장하면 병원경영은 어떻게 합니까?
아니 지가 무슨 원장입니까?
이 사람은 월급이 200만원이 넘습니다.
그렇다고 제가 이 사람의 200만원이 많아서 임금인상투쟁 하지 말라는 것 아닙니다.
중요한 건 어떤 놈은 200만원이 작고 어떤 년은 51만원이 많다고 생각한다는 겁니다.
문제는 그런데 있습니다.

청소하는 아줌마들은 임금이 작아도 된다.
식당 아줌마들이 100만 원 받으면 많이 주는 거라는 생각, 이런 치사한 새끼들이 노조 간부라니까요.
그리고 밖에 나와서 시민들에게 비정규직 철폐하자고 유인물을 나눠줍니다.
이런 사람들은 시민은커녕 자기 조합원들도 설득시키지 못합니다.

- 비정규직 개악안 저지투쟁과 연대 -

나는 우리 운동이 진짜로 내려가야 한다고 봅니다.
17~18년 동안 민주노조운동 열심히 해왔긴 했으나 결국 정규직 임금인상을 위해 싸운 것 밖에는 안 됩니다.
비정규직, 이주노동자, 여성노동자 다 놔두고........... 비정규직 보호입법이란 게 뭐겠습니까?
근로자 파견법 만들어서 몇 년 해 보니까 현대자동차, 금호타이어 같은 곳에서 불법파견이 문제 되니까 합법파견으로 만들겠다는 것 아닌가요?
WTO, FTA로 시끄러운데, 난 아무리 WTO란 말을 들어도 뭔 말인지 모르겠던데, 월드 테러리스트 올가니제이션이라 생각하니까 이해되더군요,
한일FTA가 체결이 되면 자동차 시장이 개방되는데 자동차만 해도 일자리가 2만개가 없어지는 겁니다.
이런 것들을 위해 노무현정부가 개악하려는 겁니다.
우리는 일상적으로 연대란 말을 잘 씁니다.
이 연대란 말을 가장 적절하게 표현한 것을 재작년 경희의료원 구내식당 아줌마에게서 들었습니다.
경희의료원에서 구조 조정 시에 제일 먼저 식당부터 용역을 주겠다고 하니 20년 넘게 일해 온 아줌마들이 싸움을 시작한 것입니다.
로비를 점거해서 싸우고 있는데 하루는 깍두기(용역깡패)들 수십 명이 왔습니다.
공권력을 투입시키기에는 부담스러우니까 병원 측에서 용역깡패를 부른 것입니다.
이들과 대치해서 싸우는 중에 한 아줌마가 기절했습니다.
근데 웃기는 건 자기네 식당 아줌마가 쓰러졌는데도 병원 응급실에서 거부하더라는 겁니다.
어찌어찌해서 치료받기는 했는데 알고 봤더니 그 아줌마가 쓰러진 이유가 더 가관입니다.
어디 맞아서 기절한 게 아니라 그 용역 깡패들 속에서 자기 아들을 만나서 그랬다는 겁니다.
취직 했다 길래 축하해 주며 오늘 아침까지도 따뜻한 밥을 해먹인 자기 아들이 거기 나와 있는 겁니다.
이미 비정규직인 아들이 비정규직이 안 되려고 하는 어머니의 투쟁을 막기 위해 나와 있는 모습, 21세기 대한민국에서는 어머니와 아들이 이렇게도 만납니다.
어쨌든 내가 부산에서 왔다니까 이 아줌마가 사람을 하나 찾아달랍니다.
울산에서 올라온 빨간 조끼를 입은 청년이라는데 그것만 가지고 내가 어떻게 알 수 있겠습니까
그래 왜 찾느냐고 이유를 물었더니 그 청년에게 밥 한 끼 못 사준 게 마음에 걸린다는 겁니다.
1998년 현대자동차 정리 해고될 때 장대비 속에 한 노동자가 회기 역 부근에서 출근길에 유인물을 나눠 주면서 외쳤다는데, ‘경희의료원 노동자 여러분, 현대자동차에 정리해고가 도입되면 전국의 사업장에서 많은 노동자들이 정리해고가 될 수밖에 없습니다!’
물론 그 아줌마는 그 유인물을 받지 않았고 그 일을 까맣게 잊고 지내다가 4년 후 자기가 그 처지가 되니까 그 생각이 나더라는 것입니다.
그 청년이 오죽 막막했으면 서울까지 와서 고함을 쳤을까?
그 심정이 이해되더랍니다.
그 때 그 청년 유인물 받지 않은 것, 고생한다고 밥 한 끼 못 사준 게 지금까지 미안하다는 것이었습니다.
그 때만 해도 현대자동차에서 정리 해고되는 것은 남의 일이었습니다.

여러분, 노동자에겐 남의일이 없습니다.
비정규직이나 이주노동자가 불쌍해서 그들을 도와주는 게 아니고 그들의 차별을 없애지 않고 끌어올려 하나가 되지 않으면 내가 그 수렁에 내가 빠질 수밖에 없으니까 그런 것입니다

김진숙 위원은 강연의 뒷부분에 자신이 노동현장에서 경험한 소외감을 덧붙이면서 “인간에 대한 착취와 억압이 없어지는 세상을 만들기 위한 것이 노동조합 운동밖에 없다고 믿었다”고 밝혔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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