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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태일은 열사도 투사도 아니다”

“전태일은 열사도 투사도 아니다”
[인터뷰]36주기를 앞둔 어머니 이소선의 목소리
오도엽 기자 odol@jinbo.net
전태일열사가 불이 된지 서른여섯 해가 됐다. 고혈압과 당뇨, 며칠 전에는 방에서 넘어져 걸음마저도 절룩거리는 열사의 어머니께 11월 13일이 다가오니 마음이 어떠시냐고 물었다.

“요즘 잠을 잘 못자. 며칠 전에 ‘내 죽음을 헛되이 말라’라는 책을 봤지. 돌베게에서 나온 책이야. 나온 지 오래된 책인데 나는 책이 나온 지도 몰랐어. 밤새 읽으면서 얼마나 가슴이 아프던지…….”

내 죽음을 헛되이 말라

1988년 책이 나왔지만 누구도 어머니께 책이 나왔다는 말을 하지 않았다. 그 책을 보면 어머니가 아파할 것을 안 주위의 사람들은 어머니 눈에 책이 띄지 않게 하였다.

“만호(현재 전태일기념사업회 황만호 사무국장)한테 그 책을 달라고 했더니, 지도 모른데. 그래서 내가 돌베개에 가서 사오겠다고 하니 갖다 주는 거야. 종득(전태일기념사업회 민종득 상임이사)이한테 전화해 왜 책 나온 거 말하지 않았냐고 하니까, 어머니 알면 아파하실까봐 그랬다는 거야.”

어머니는 열사에 대해서 인터뷰를 하든지 강연을 하고나면 사흘 밤은 꼬박 앓아누우신다고 한다. 책을 펴고 말을 하지 않았던 이유도 여기에 있다. 커다란 돋보기로 밤을 새워 그 책을 읽은 어머니는 아직도 아프다.

책을 보신 아픔이 사라지기도 전, 다시 어머니께 열사에 대한 질문을 했다. 아마 11월 한 달은 꼬박 아파하셔야 할 것이다.

가시지 않은 아픔 위에

인터뷰를 시작하자 대뜸하시는 말이 “태일이는 열사도 투사도 아니야”다.

“쌍문동 이백팔번지에 살 때 풀밭에 천막을 치고 살았지. 보로꾸를 세면도 바르지 않고 쌓아두고 천막을 친 게 집이야. 세면을 바르면 철거반원이 와서 허물면 보로꾸가 깨지잖아. 태일이는 철거반원이 오면 미리 벽돌을 내려두거든. 철거반원한테 당신들이 허물고 가도 우리는 잠을 자려면 또 벽돌이 쌓아야 한다, 벽돌이 깨지면 돈을 주고 사야하니까 미리 벽돌을 치운다고 한 거야, 그 뒤론 태일이가 없어도 철거반원이 오면 조장이 그 집은 벽돌 깨지지 않게 조심히 내려놔 하는 거야. 그러면 태일이가 일을 마치고 와서 다시 쌓았지.”

열사가 일을 마치고 나면 집에 오면 밥도 먹지 않고 벽돌을 쌓기 시작한다. 어머니는 밥을 지어 밥 먹고 하라고 차려주고 물을 뜨러 나갔다 오면 밥은 먹지 않고 일을 하고 있더란다.

“밥 먹고 하라니까 하면 먹었다는 거야, 물 뜨러 간 사이에 밥을 다 먹을 수 없거든. 아랫집에 애들 둘이 사는데 벽돌을 쌓다보면 집들이 허물어져 아랫집이 훤히 보이는 거야. 아이들이 굶고 있거든, 그러니까 지 밥을 갖다 준 거야, 반이라도 먹고 주지 그러면, 저야 배고프면 어떻게라도 먹을 수 있지만 쟤들은 말도 못하고 굶어야 하잖아요 하는 거야. 태일이가 풀빵을 여공들에게 사줬다는 이야기도 마찬가지야.”

어머니는 아들이자 열사 전태일을 투사도 열사도 아닌 ‘사람을 끔찍이도 사랑했던 사람’으로 기억한다. 그가 불이 되고, 청계천의 노동현실을 보고 일어선 이유도 여기에 있다고 한다.

“태일이가 그 날(11월 13일) 1시까지 청계천 육교로 오라는 거야. 머리도 깎고 작은아버지가 사준 신발을 신고, 바지도 다려 입고, 바바리도 입고 좋게 꾸몄지. 밥상에 앉아서는 여동생 둘한테는 엄마 말 잘 들어야 한다, 엄마 말 잘 들으면 부끄럽지 않게 산다 하는 거야 뭐할라고 지금 그 말 하냐 물으니, 시간 있을 때 할라꼬 그런다는 거야, 나한테는 정말 하루만 그 시간만 내줘, 꼭 와 줬으면 좋겠다 그런 거야, 자꾸 나 돌아보며 가더라구.”

36년 전 11월 13일에

어머니는 가지 않으셨다. 그 날 쌍문동에서 방송을 들으셨다. “쌍문동 이백팔번지에 사는 전태일이 기름을 붓고 몸에 불을 부쳤다는 소리가 나오는 거야, 기어이 기름을 부었구나….”

조금 뒤 열사의 친구가 용케 잡히지 않고 빠져나와 어머니를 모시고 가려고 택시를 타고 왔더란다. 타고온 택시를 타고 가자고 했지만 어머니는 버스를 타고 가신다고 했단다.

“19번 버스가 평화시장까지 가거든, 내가 택시 타고 빨리가서 태일이를 보면 기절하고 쓰러질게 분명해, 그래서 버스 타고 가자고 한 거지, 너(전태일)는 갔지만 나는 어찌 할까를 생각해야 할 것 아닌가, 그걸 생각하려고 택시를 안 탔는데 태일이 친구는 그 걸 모르고….”

허연 가제로 칭칭 감겨 입하고 코만 보인 아들을 알아볼 수가 없었다. 목소리를 듣지 않았다면. 전태일열사는 빨리 죽기 위에 옷 속에 스폰지를 넣고 기름을 부었다.

“엄마 나는 죽을 거야. 옷에 스펀지까지 넣었거든. 빨리 죽으려고. 어머니께 이 추한 모습 안 보여 주려고. 나 살리려고 다른 약 구한다 주사 놔준다 애쓰지 말고 내 말 꼭 들어 줘. 내 말 안 들어주면 나중에 천국에서 엄마 만나도 안 볼거야. 내 말 들어준다고 꼭 대답 해줘.”

그 말은 내 죽음을 헛되지 않게 어머니가 싸워 달라는 부탁이다. “엄마 들어주겠다고 더 크게 말해줘.”

말을 할 때마다 열사의 명치 부근이 부글부글 끓더란다. 그것을 본 의사가 열사의 목청 부분을 따니까, 말을 한 마디 할 때마다 피가 울컥 울컥 쏟아졌단다.

내 죽음을 헛되이 말라

“내 몸이 가루가 되도 끝까지 할 거다 하니, 더 크게 대답하라고 하는 거야, 말을 할 때마다 피가 폭 쏟아지고 크게 대하라고, 피가 푹 쏟아지고, 그걸 보고 탁 쓰러졌지.”

전태일은 열사도 투사도 아닌지 모른다. 하지만 어머니는 그 뒤로 투사가 되었다. “태일이가 말한 근로기준법 8가지 들어주지 않으면 장례식을 치루지 않는다고 했지, 시체를 동강동강 내서 내 치마 폭에 싸서 이 산에다 묻고, 저 산에 묻더라도.”

당시로 7천만 원이라는 어마어마한 돈을 주겠다는 유혹도 있었다. “그 착한 아들의 뼈를 팔고 피를 팔아 좋은 집에 사고 따뜻한 밥 먹느니 죽어야지.” 중앙정보부에서 군법회의, 안기부로 어머니의 발걸음은 이천년대로 이어지고 있다.

36주기 추모식보다 앞서는 걱정이 있다. 분열되는 모습이 안타깝다. 쉽게 자신의 밥자리를 찾아가는 옛 식구들 때문에 안타깝다. 남편을 여읜 다음 해에 아들을 잃자 시어머니가 방에 담배를 밀어 넣어주더란다. 넋을 놓을지 모르니 담배라도 피우며 정신을 놓지 말라고. 일흔여덟, 어머니의 정신은 날이 서있다.

"한 번 이 소리하고 나면 사흘 동안 이 속에 들었던 것 까뒤집어 놔았꼬 견딜 수가 없어."

[시] 아들이 내준 숙제 / 오 도 엽
아들이 내준 숙제


나보고 근로기준법 배우라 하는 거야 내가 공장에 다니냐 그걸 배우게 난 그 때 보따리 장사 옷 장사였거든 쌍문동 이백팔번지 풀밭에 천막치고 사니 모기는 물어쌓지 무슨 공부야

부당해고가 뭐야 그 땐 노동자라고는 못했지 근로자가 아무런 잘못도 없는데 해고시킨 거지 유니온 숍은 큰 회사의 근로자가 전부 조합에 가입하는 거지 저녁에 아들이 와서 물으면 책을 보지 않고 대답해야 했지 그게 숙제야

육 개월 하다 말했지 내가 어디다 써먹을라꼬 그걸 배우겠냐고 픽 돌아누워 잠을 잤지 어머니 곧잘 배우다가 갑자기 안 배울라고 하는지 몰라 내 말 안 듣고 잠만 자려고 하는지 그 날이 오면 어쩌려고 통탄하겠다

일천구백칠십 년 여름 어머니와 아들의 공부 태일이가 말한 그 날은 멀지 않아 찾아왔다 아들이 내 준 숙제 일흔여덟에도 서른여섯 해를 꼬박 늙지 않고 대답을 한다 어머니 이소선은 통탄할 시간도 없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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