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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항건설…깨져도 받을 수없는 합의안이다

포항건설…깨져도 받을 수없는 합의안이다
포항건설 합의안 부결...또 다시 선택한 투쟁
오도엽 기자 odol@jinbo.net
아침부터 집을 지키고 있는 포항건설노동자 정 씨는 답답하다. 아들은 학교에 가고, 아내는 일터에 갔다. 마트에서 시간제로 일하는 아내의 벌이로는 생활비도 팍팍한 형편. 아들이 다니는 학원도 다음 달부터는 그만 둬야할지도 모른다. 다가오는 추석은 생각할 여유조차도 없다. 담배라도 끊어야 하는데, 파업 이후로 끊기는커녕 더욱 늘어가는 게 담배다.

 참세상자료사진

파업을 접고 일을 하고 싶다. 아니 일을 해야 한다. 하지만 도저히 이번에 나온 합의안은 받아들일 수 없다. 13일 조합원 임시총회에서 갈등을 거듭하다 반대에 찍을 수밖에 없었다. 그 동안의 투쟁이 아쉬워서도, 하중근 열사의 죽음을 이대로 끝낼 수 없어서도 아니다.

“합의안이 가결되었다고 현장에 돌아갈 수 있느냐하면 그게 아니야. 고용이 보장되지 않았는데 파업을 그만둔다고 돌아갈 일터가 있는 게 아니잖아. 죽고 머리통이 깨져가며, 집에서는 눈초리를 받아가며 싸운 대가가 이번 합의안은 아냐.”

2천여 명이 모여 합의안 찬반투표를 했는데, 찬성은 7백여 명, 반대는 1천3백여 명이었다. 투표가 끝나고 구속된 이지경 위원장을 대신한 최규만 직무대행은 책임을 통감하고 직무대행직을 사임하였다.

집행부의 한 간부는 한숨을 내쉰다. “합의안을 만들고, 가결되리라고 믿지는 않았다. 하지만 상상이외로 반대가 많았다. 실제 투쟁에는 힘이 실리지 않으니, 교섭에서 우위를 점하기도 힘들고, 이대로 끌고 간다는 것도 부담이 된다. 조합원들의 뜻을 알았으니 비상대책위를 꾸려 투쟁의 힘을 다시 일궈가는 길 밖에 없다.”

이번 합의안은 기존 단체협약에서 보장되었던 인사원칙인 ‘조합원 우선채용’ 조항마저 포기한 ‘개악안’이라고 조합원들은 반발을 한다. 실제로 파업지도부는 전문건설업체가 제시한 기존보다 후퇴된 단협안을 수용하였다. “이대로 파업을 끌어가는 것은 조직력을 약화시키고, 노조가 깨지는 일마저 발생할 수 있다”는 위기감에서 비롯되었다.

 참세상자료사진

“노조가 깨진다고 했는데, 합의안에 찬성을 하고, 파업을 멈춘다고 조직이 지켜질 것 같으냐. 개악된 단체협약안을 받아들이는 순간 노조는 끝장이다”고 정 씨는 흥분을 한다.

“아예 잘 됐다. 다시 싸우는 길 밖에 없다. 가결되면 어쩌나 은근히 걱정도 됐다. 이번 찬반투표 결과는 그동안 평화적인 싸움만을 외쳤던 지도부에 대한 불신임도 포함된 것이다”며 주섬주섬 조끼를 입는다. 오후 3시에 있을 집회에 나가기 위해서다.

하지만 정 씨의 마음은 오락가락한다. 다시 힘을 내서 싸울 수 있을까, 아내의 눈초리는 더욱 날카로워질 텐데, 추석은 어찌하고, 아들 학원은 그만두게 해야 하나…. 꼬리에 꼬리를 물고 걱정거리는 이어가지만 조끼를 입고 머리띠를 챙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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