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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정규노동자 가득한 구로를 뒤집는다

비정규노동자 가득한 구로를 뒤집는다
예사롭지 않은 단식 7일째, 김소연 분회장을 만나다
오도엽 기자 odol@jinbo.net
장기투쟁사업장을 취재하는 것은 그 투쟁의 시간만큼이나 힘이 든다. 제자리를 맴도는 교섭은 더 이상 질문 내용을 만들어주지 않는다. 사용주는 든든한 힘으로 버티기를 하고, 노동자들은 집회, 농성, 삭발, 단식을 반복한다. 사용자는 노동자를 노동자로 인정하고 싶지 않은 자존심으로 시간을 끌 때, 노동자는 자신의 생명을 내놓으며 투쟁을 이어가야한다.


한 달 만에 김소연 기륭전자 분회장을 만났다. 8월에는 공장으로 돌아간다고 하였는데, 교섭은 진척이 있는가라고 묻자, 김소연 분회장은 하얀 소복을 내려다본다. 목숨을 건 단식 7일째를 맞고 있다. 취재는 끝이 난 거다.

기륭의 1년

2005년 7월 5일 금속노조 기륭전자 분회 설립, 8월 5일 노동부로부터 불법파견 판정, 8월 24일 계약해지 중단, 성실교섭요구 현장 철야농성 돌입. 그리고 55일째, 공권력이 투입되고 공장에서 쫓겨났다.

“노동부에서 회사의 불법파견판정이 나자 이겼다고 생각했죠. 현장철야농성에 들어갈 때만해도 3일이면 이긴다고 생각을 했어요. 그런데 55일 농성이 되었고, 공권력에 끌려 나가고, 한 해를 훌쩍 넘겼어요.”

이미 노동조합은 처음 요구에서 양보할 대로 양보한 구체적인 교섭안을 내놓았다. 하지만 회사는 교섭안이 없다고 배짱으로 맞서고 있다고 한다. 노동조합은 ‘전원 정규직화’ 요구에서 인원도 축소하였고, ‘직접고용’을 추가함으로 고용형태의 유동성도 받아들이겠다는 입장이다.

단식, 투쟁의 방법이 아니다

8월 30일, 단식 일주일째를 맞이한 기륭전자분회 점심 선전집회에 가자, 장송곡이 스피커를 타고 흘러나온다. 단식을 하고 있는 강화숙 부분회장은 천막에 드러누워 있다. 단식을 한 뒤로 얼굴과 몸에 부스럼이 심하게 나고 열이 난다고 한다. 김소연 분회장은 귀가 멍멍해지지만 아직 버틸 만 하다고 한다.


“해를 넘기고도 해결이 되지 않으니, 결단을 내려야한다는 생각에 단식농성에 들어갔어요. 이번 단식은 투쟁의 방법으로 선택이 아니라 진짜 목숨을 건 투쟁이라는 것을 뚜렷하게 보여주는 겁니다. 공장에 돌아가는 날까지 목숨을 걸고 강도 높은 투쟁을 보일 겁니다.”

지난 해 7월 5일, 노조설립 총회 날, 10분 만에 200여명이 조합에 가입하였다. 그리고 일 년. 지금은 40여 명만이 남았다. 김소연 분회장은 어느 누구보다도 조합원에게 미안하고 책임감을 느낀다고 말을 한다.

“열심히 싸웠다고 생각했는데,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돌파구를 만들지 못했어요. 회사의 탄압과 생계의 어려움으로 먼저 회사를 떠날 수밖에 없었던 조합원들에게 정말로 미안해요.”

포기할 수 없다

남은 조합원들은 1년이 넘게 싸웠으니 이제 와서 포기할 수 없다고 말들을 한다. 날이 갈수록 비관보다는 낙관을 가진다고 한다.

김소연 분회장이 구로공단에 온지 15년이 되었다. 갑을전자에서 노동조합 활동을 시작하였고, 공장이 청산되자 잠시 금속연맹 서울본부에서 일을 하기도 했다. 공장생활이 지겹기도 했을 텐데 다시 공장으로 돌아온 까닭을 물었다.

“상급단체에서 일을 할 사람보다는 현장을 조직할 사람이 더 부족하다고 생각했죠. 2002년 파견업체를 통해 기륭전자에 입사했죠.”

언제 계약해지 통보를 받을지 모르는 기륭전자 노동자에게 동료애를 찾기는 쉽지가 않았다. 함께 라인에서 일을 하지만 서로에게 말을 거는 일조차 어렵다. 김 분회장이 첫 출근을 한 날 식당을 찾지 못해 점심을 굶을 뻔했다고 회상을 한다.


말조차 건네기 힘든 현장 분위기에서 10분 만에 200여 명의 조합가입을 받아낸 힘은 어디에서 왔을까? 늘 고용불안에 떨어야 했던 2000년대 구로공단 노동자의 처지가 만든 것은 아닐까?

2006 구로노동자의 모습

“생계가 어려워 떠난 조합원이 다시 비정규직으로 취업을 하고, 얼마 지나지 않아 계약해지를 당하여 일자리를 찾아 떠도는 모습을 마주칩니다. 이 싸움에 목숨을 걸 수밖에 없는 이유에요.”

구로지역에는 정규직으로 취업할 곳을 찾기가 쉽지 않다. 아직도 많은 공장들이 구로에 자리를 잡고 있지만 비정규직이 태반이다. 불법파견 판정을 받아내고, 정규직을 요구하는 기륭전자 노동자의 투쟁은 기륭전자만을 보여주는 게 아니다. 2006년 구로지역 노동자의 현실을 고스란히 짊어지고 있는 투쟁이다.

“지금껏 투쟁하면서는 금속노조나 연맹에 우리분회가 요구한 게 없었어요. 이제는 투쟁계획을 세워 적극적으로 함께 할 겁니다. 또한 비정규, 장투사업장이 모여 함께 돌파구를 여는 투쟁도 할 거예요.”

언제 끝날지 모르는 단식, 농성자를 천막에 남겨두고 구로를 벗어난다. 8월에는 공장에 들어간다는 계획은 추석 전에 공장에 들어간다로 수정을 한다. 단순한 수정이 아니라 이번에는 목숨이 걸려있다.

정당한 요구에도 목숨을 걸어야하는 노동자의 현실에 김소연 분회장은 분노보다 서글픔이 앞선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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