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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그마한 한 아이의 죽음을 기리며.

  • 등록일
    2005/06/23 09:30
  • 수정일
    2005/06/23 09:30

혹시 가끔 들리는 문연 친구들만 보세요...

 

  지난 몇 주간 난, 네가 남긴 글들을 읽어내면서 잊어버렸던 1990년대로의 시간여행 속에서 있는 것처럼, 너와 관계가 소원해진 이후, 네 삶의 궤적을 뒤쫓아가듯, 아득하고 조각나 흩어진 기억의 희미한 소음들 속에서 헤매고 있었단다. 그곳에서 나도 모르게 잊고 있던 너의 반짝이던 눈웃음과, 문득문득 우울하지만 물 흐르듯 쏟아내던 생에 대한 통찰들을 재잘거리던, 웃음기 가득한 네 목소리를 다시 찾게되어 무척 반갑더구나.
하지만 뒤늦게 너를 쫓는 일은 그다지 행복한 일은 못되더구나, 지난 세 번의 만남에서 찰라간에 남겨진 너의 조각난 흔적들이, 온전히 들어 날 때마다 온통 가슴아픈 일 투성이구나.

 

  도서관과 아크로가 한눈에 보이는 두 세평 남짓한 그곳에서, 날이 좋으면 좋아서, 비가 오면 비온다고, 눈오면 더 말할 이유도 없이. 몸이 아프면 아프다고, 좋으면 좋다고 허구헌 날 청울을 끼고 앉아, 도란도란 노닐던 그곳을 벗어나긴 쉽지 않은 일이지? 아마 우리에겐 총문연이 사상과 정치 그리고 사랑과 문화적 감수성, 그 모든 것을 새로 재구성해 낸 한바탕 흐드러진 축제의 공간이었겠지. 하지만 네 얼굴에 그늘진 어머니 상실의 아픔을 많이 읽어내진 못했구나. 너의 우울하지만 재기발랄한 삶의 궤적을, 온갖 불행 속에서도 오로지 자신만을 부여잡아야 했던 너를 외로움을, 이제 너무 늦었지만 온통 이해할 수 있겠구나. 그래서 미안하구나, 여전히 좋은 선배로 남아 방황하던 네 옆에 있어줬으면 더 좋지 않았을까... 하긴 또 그러면. '괜한 말이네요.' 괜히 새침한 척 이렇게 말할지도.

 

  네 아파트에 유품 정리하러 가던 날, 난 몰래 아파트 앞에 나와 서성였단다.
신림동 아파트로 이사하던 날 너를 내 무릎에 앉히고 덜덜거리던 이삿짐 트럭을 타고 가던 일이 생각났단다. 어찌나 가볍고 조그마했던지 속된 말로, 난 자세가 딱 잡혔었는데. 아마 보경이 너는 얼굴이 차창에 닿아 무척 불편했었겠지.
안동으로 가던 버스 안에서 잠시 안고 있던 너의 마지막 하얀 흔적마저도 그 날처럼 무척 불편했을지도 모르겠구나.

 

  난, 너와 차가운 영안실에서 울먹이는 얼굴로 이별을 할 줄은 꿈에서도 생각지 못했다. 어쩌면 몇 년이 더 흘러 키득이며 술잔 한번은 더 기울이지 않을까 그런 생각을 했었는데.
그 동안 그렇게 힘들게 사는 줄도 모르고 옆에서 지켜주지 못한 것이 못내 통탄스럽고. 평생의 한으로 남게 되었구나. 나는 아직 너와 끝맺지 못한 일이 있는데. 넌 안동 산자락에 작은 비문하나로 사라졌구나. 소설처럼 살다간 너의 짧은 생이 내게는 무척 미안하고 시리다.
보경아, 그 동안 너에게 닥친 무수한 불행과, 억울한 생의 마침표를 서러워하진 말아라. 넌 그냥. 그냥. 타임머신을 타고 잠깐 날아 간 거야. 네가 그토록 그리워하던 어머니가 계신 그곳으로. 좋았던 옛날들을 거닐고 있는 그런 꿈의 여행을 하고 있는 것 뿐이야. 근데 어쩌면 조금 길어질지도 모르겠구나.
그리고 언제나 우리가 찾아갈 때, 앞뜰에 핀 꽃들처럼, 넌 손에 턱을 괴고 파란 하늘과 산들 바람결 속에서 우리를 향해 웃고 있겠지. 그렇게 술 한 잔 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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