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이드바 영역으로 건너뛰기

모순2

  • 등록일
    2008/02/08 01:40
  • 수정일
    2008/02/08 01:40

내가 속한 단체에서 작년 하반기부터 수당이라는 것을 지급하기 시작했다.

뭐 그래봐야 얼마안되는 활동비에, 그나마 제대로 안나오기 다반사인지라

이런걸 조삼모사라고 해야 하긴 하겠지만.

 

처음 시작은 남들 한다는 명절수당 같은 것이었다.

상근비는 다 못주는 처지이나 돈 쓸일 많은 명절인데, 조금이라도 보탬이나 되보자는 취지에서 제안되었다.

 

그런데 이게 가족주의라는 지적이 활동가들 사이에서 나오게 되었다.

두 명절 다, 현재 한국사회에서 가족주의의 핵심적 제도이자 이데올로기중 하나인데

나름대로 진보적인 운동을 한다는 단체에서, 그런 가족주의에 편승하는 급여시스템은 어울리지 않는다는 지적이다.

반박의 여지가 별로 없는 주장이다.

 

그래서 올해는 1년에 두번 수당을 지급하되, 설과 추석 말고, '메이데이'와 '전태일기념일'에 지급하자는 의견이 나왔고

다들 '오~호~~'하며 만장일치 가결되었다.

 

그러나, 막상 명절에는 돈이 정말 많이 든다.

우선 마흔을 낼모래 앞둔 장남인 노총각이 부모님들과 어떤 관계일지 설명할 필요는 없을 것이다.

그리고 어떤 모욕들과 빈점댐을 견뎌야 할지 역시 굳이 설명하지 않겠다.

그래서 돈이 많이든다.


나이를 한살 한살 차곡차곡 개어내어, 이제 마흔을 앞두고 있자니 건당 1장이 아니면 내밀지도 못하는 나이를 먹게 되었다.

그러다 보니, 정말 명절에는 돈이 마른다. 그래서 이왕 줄거면 명절에 주면 정말 좋을텐데라는 생각이 문득 스쳐 지나갔다.

그리고 그제 집에 오면서 돈을 찾을때 정말 간절하게 그 생각이 들었다.

할머니,어머니,아버지 각각 1장, 조카들 몇 놈에 자동차 기름값등 기본적으로 찾아야 할 금액이 40만원 즈음 되는데.

넉넉하게 50만원 뽑고 나니 잔고가 만원대로 줄어들었던 것이다.

미친 넘, 왜 등산은 가자고해서 그 돈을 날려먹었는지.

 

한국 사회에서 명절은 현실적 필요와 정치적 올바름이 어긋나는 총체적 모순이다.



부모님들은 내가 나이를 먹을수록,
그래도 장남인데 집안 행사때 단돈 몇만원이라도 안내면 안된다고 누누히 눈치를 주시는 터라.
내가 생각해도 기특하게 매번 모든 집안행사때 부모님 눈치보며 얼추 눈높이를 맞춰왔다.

뭐 부모님과 할머니 생신과 설, 추석때 1장이야 그렇다 쳐도 5촌벌 되는 양반들 행사까지 챙기라하시니 이거 정말 죽겄다.
매년 2월과 3월에 걸쳐서는 정말 50-60만원 돈이 부모님과 할머니 용돈, 그리고 부조금으로 나간다.
대략 따져보니 작년에는 이런 돈으로 120만원 돈이 나갔었다. 오마이 갓.
할머니 생신 1장 + 어머니 생신 1장 + 아버님 생신 1장 = 30
설명절 할머니 1장 + 어머니 1장 + 아버님 1장 = 30
추석 할머니 1장 + 어머니 1장 + 아버님 1장 = 30
아마 35살을 기점으로 고정된, 가족 가입비가 1년에 90만원 돈인 것이다.
여기에 결혼식 3번에, 칠순 1번, 환갑 1번 하니 120만원이었다.
오호 한달 상근비를 홀라당 넘어서 두달 상근비에 육박하는 이 엄청난 위력이라니..

가족사이에 돈이 중요한것은 아니지만, 돈 싫어하는 사람 없다고,
내 처지에 대해 조금이라도 유리한 입지를 만들기위해 - 아니 갈굼을 덜 받기 위해 - 돈질을 하는 것이다.

나이 먹는게 서러울때는 딱 세가지이다.

첫째, 얼굴 보자마자 맨날 형 그래서 몇살이지? 하고 빈정거리는 인간들 면상 볼때.. (나이가 궁금한게 아니라 뭔가 빈정댈때 묻는 대표적인 질문이다.)

둘째, 명절때. 결혼도 못한 주제에 직장도 변변찮아 돈도 없을때

셋째, 몸이 늙어가는 것을 느낄 때 - 예를 들어 이젠 철야가 죽는것보다 싫다거나, 등산갈때 자신감을 잃어버린 나를 발견 했을 때 -

그때마다 뭐 하고 살았나 싶어 속으로 눈물이 찔끔난다.
남들처럼 번듯한 직장이 있나 집이 한칸있나, 아님 누구한테 내세울 경력이란게 있나, 능력이 있나
그렇다고 아내가 있나. 내 닮은 아이가 있나,
그렇다고 내가 속한 곳이 나이먹었다고 대우해주는 곳도 아니고,
나이먹으면 먹은만큼 빈정당하고 무시당하는 세상인데..
이런식으로 40넘어 일도못하게 되면, 노숙자되는게 아닌가 싶어서 서울역 지날때마다 흠찟하고는 하는데.
부모님 앞에 있으면 입이 단 1센치도 안떨어진다.
정말 한게 없기 때문이다.
뭐 대들 건덕지라도 있어야 삐대볼텐데 말이다.
그러니까 더더욱 용돈이라도 챙기는거 이외에는 할게 없다.

거의 악무한이다.
진보블로그 공감 버튼트위터로 리트윗하기페이스북에 공유하기딜리셔스에 북마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