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 홍보글

from 돌속에갇힌말 2005/11/04 11:33
진보블로그 공감 버튼
 

역사는 말하는 자의 것인가

그 해 겨울에 관해 누가 어떻게 말하고 있나

여기, 오랫동안 차마 말할 수 없었던 사람들의 더듬거리는 증언

속에

갇힌

   구로구청 부정투표함 항의농성사건 

2004년/70분/컬러/DV/다큐멘터리

 

주춤거리는 객관성, 혹은 경계에 선 다큐멘터리, 돌 속에 갇힌 말

다큐멘터리는 흔히 객관적인 기록이라고 부른다. 나는 그것이 너무나 모호하다. 강자와 약자, 가해자와 피해자, 강요한 자와 순종한 자, 능동적인 사람들과 수동적인 사람들, 그 사이 어디쯤에 객관성이 존재하는가. 나는, 당신은, 우리는 언제나 그 경계 어디쯤에 서성대거나 양쪽을 모두 밟고 선 채 당황하는 존재는 아닌가. 이 작품은 개인적인 감상과 기억을 ‘활자’로 중얼거리는 화자, 즉 목소리를 감춘 감독의 나레이션과 1987년 12월 16일에서 18일까지 농성에 참여했던 여러 사람들의 기억을 담은 인터뷰, 그리고 감독의 인터뷰가 서로 조금씩 엇갈린 채로 조립된 기록이며 모호한 것에 대해 모호하게 말하는, ‘객관성’에 대한 고민이 고스란히 담긴 기록이다.


1987년 12월 16일, 우리는 괴물과 동거하기 시작했다

87년 민주화 항쟁을 통해 얻어낸 대통령 직선제, 그리고 우리 손으로 선출한 위대한 보통사람 노태우, 그러나 그 과정이 민주적이었는가에 대해 나는 회의한다. 87년 당시 국민운동본부 산하 공정선거감시단의 활동으로 전국적인 불법적인 선거운동 사례가 집계되었고 투 개표 과정의 부정 비리는 헤아릴 수 없이 많았다. 그 어이없는 상황의 단면이 서울 구로구에서 ‘부정투표함 누출사건’으로 표출되었으며 꾹꾹 눌러참아왔던 국민들의 분노가 ‘구로구청 점거’를 통한 항의농성으로 이어졌다. 하지만 농성 과정에서 당시 재야 운동권 세력의 내부 갈등이 심화되었고, 입장의 차이는 진압에 대한 대안없는 철수로 이어진다. 부정의 현장을 끝까지 지킨 사람들은 힘없는 민중이었고 증거물은 사라졌다.

형식적인 민주주의로 정권을 장악한 세력도, 비극적인 현장에서 급히 등을 돌려버린 재야도 나에겐 괴물로 다가온다. 17년동안 농성참가자들의 꿈자리까지 지배해온 괴물과의 동거, 우리는 지금 누구를 어떻게 지지하거나 비판해야하는가. 해소할 수 없었던 분노와 좌절이 가위눌린 신음으로 남은 그 해 겨울...

 

 

2005/11/04 11:33 2005/11/04 11:3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