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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 2011년 11-12월호

세상을 두드리는 사람 9-10월호

[사람7-8월호] 전투적 자본주의와 국가보안법

 




사람이사람에게 끝나지 않는 전쟁 | 편집인
르포르타주 85호 크레인, 그 여자네 집 | 이선옥
人터뷰 “친구 하나 있음 소원이 없겠어”  | 해정
인권이내게로왔다 머리로 안 것을 가슴으로 알기까지 | 변춘희
기획 풀뿌리 정치를 통해 사람을 만나다 | 서형원
기획 마을과 정치 | 문치웅
사람in인권 패러디와 소수자 운동 | 웅
사람in인권 탈북자와 국가보안법이란 블랙코미디 | 이광철
사람in인권 전투적 자본주의와 국가보안법 | 오동석
사람in인권 부양의무 기준, 죽음의 제도 | 최예륜
사람in인권 소는 누가 키울 것인가 | 김명수
사람in인권 도시에 대한 권리란 무엇인가 | 강현수
서평 인권은 교문을 넘었을까? | 세안세다
엄마에게쓰는편지 모욕을 거부하는 사회 | 류은숙
사람답게 선녀의 옷을 찾습니다 | 박김영희
희망을위한직접행동 반핵, 예고된 파멸과의 싸움 | 하승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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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 5-6월호가 업데이트되었습니다

이번호 특집은 "5.16 60년, 박정희의 유산과 싸우다"입니다. 군사쿠데타가 벌어진 지 60년, 박정희가 죽은 지 언 30년이 넘었지만 우리는 아직도 박정희의 망령에서 자유롭지 못합니다. 아직도 그가 남긴 유산들과 힘겨운 싸움을 벌이고 있는 것은 아닌가 합니다. 군사문화가 고스란히 남아있는 학교, 근로자와 산업역군, 수출과 성장제일주의가 판치고 있는 사회, 통치권력의 눈치보기에서 자본의 눈치보기로 인권의 최후의 보루로서의 자기역할을 등한시 하고 있는 사법부, 그리고 이러한 박정희의 유산을 극복하기 위한 과제 등을 짚어봤습니다. 

2011년 연중기획 '풀뿌리운동과 인권운동'에서는 최근 관심이 높아진 핵문제에 대한 풀뿌리운동의 고민을 들어봤습니다. 에너지와 민주주의, 그리고 인권에 대한 성찰과 모색, 실천이 어느 때보다 절실한 이 때 2003년 부안에서는 어떤 실험이 벌어지고 있는지, 그 의미는 무엇인지를 함께 나누고 싶습니다.   

이번호는 통권 50호입니다. 편집인의 글에서는 그동안 <사람>을 발간하며 들었던 문제의식을 담았습니다. 초심을 잃지 않고 더욱 넓고 깊게 사람과 만나는 잡지가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사람이 사람에게 대자보를 붙이는 마음
人터뷰 춤추는 별과 시 쓰는 하마
인권이 내게로 왔다 매력만점 두리반
특집 아버지의 ‘착한’ 유산
  개미와 베짱이
  청산 못한 과거, 되풀이되는 사법파동
  박정희의 유산을 어떻게 청산할 것인가
기획 핵을 넘어 생태도시로
  에너지 민주주의와 풀뿌리 민주주의
사람in인권 진보, 인권, 성정치 그리고 진보정당
  국가인권위원회의 위험한 변신
서평 병역거부자, 병역거부운동 그리고 국가
인권의 장르를 찾아서 뽀로로의 편견
엄마에게 쓰는 편지 퉁명스러움과 사회적 정의
사람답게 잔인한 계절 잔인한 세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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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야만의 무기>를 보고

이제 보니 참 많이 닮았다. 2008년 서울 광화문 사거리에서의 촛불과 2003년 부안 반핵민주광장에서의 촛불. 광우병과 핵의 공포. 거짓과 불신. 좌빨언론에 속아 넘어간 백성들의 어리석음과 극렬 환경단체에 놀아난 촌놈들의 집단이기주의로 매도되던 풍경. 헌법 제1조에 의거해 나라의 주인임에도 주인행세를 하는 순간 쏟아졌던 물대포와 소화기, 날아들었던 방패와 곤봉, 군홧발. 눈물.

노무현 정권은 인구 2만 명의 부안읍에 전경 7천 명을 투입해 ‘경찰계엄’이란 신조어를 만들었고 이명박 정권은 광화문 사거리에 컨테이너 박스를 쌓아 ‘명박산성’이란 신조어를 만들어냈다. 두 정권 모두 자신들의 과오를 교훈삼아 군대를 동원해 평택 대추리를 밀어붙이고 경찰특공대를 동원해 평택 쌍용자동차 공장을 진압했던 것은 아닐까?

200일 동안 거르지 않았던 촛불집회, 600여 명이 부상을 당하고 300여 명이 사법조치를 당했음에도 집회참가 연인원이 경찰추산으로도 20만 명을 넘겼던 부안은 마침내 국책사업을 막아냈다. 투표율 72%, 방폐장 유치반대 91.83%. 참여민주주의는 역설적이게도 참여정부의 폭압 속에 꽃을 피웠지만 그리 오래 가지는 못했다. 2005년 불법과 탈법, 관권과 금권이 난무한 가운데 전국 4개 지역이 경합한 주민투표를 거쳐 방폐장은 경주로 결정됐다. 다시 시작된 거짓과 불신, 시기와 반목.

민주주의는 제도인가, 운동인가? 법과 절차는 인간다움을 지켜줄 수 있는가? 인권의 존재이유는 간명하다. 2차 세계대전이라는 전대미문의 참화를 겪은 뒤 유엔이 채택한 세계인권선언은 “사람들이 폭정과 억압에 대항하는 마지막 수단으로서 반란에 호소하도록 강요받지 않으려면” 인권이 보장되어야 한다고 말한다. 덧붙여 폭정과 억압에 대항하는 마지막 수단으로서 저항이 가능하려면, 야만의 무기와 맞서려면 보다 새롭고 더 나은 민주주의와 인권이 열망하고 기획되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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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인권영화제에서 청탁을 받아 영화에 대한 인권해설이란 걸 처음으로 써보게 되었다. 덕분에 좋은 영화 한 편을 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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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자보를 붙이는 마음

 

몇 주 전부터 《사람》 사무실에 머리가 희끗희끗한 중년의 사내 서너 명이 찾아옵니다. 둘러앉아 회의를 합니다. ‘작은 음악회’라는 문화행사를 준비하고 있다는데 별로 음악적 조예가 깊어 보이거나 문화와 친해 보이지는 않습니다. 흔히 유서대필 사건으로 불리는 ‘강기훈 유서대필 조작사건’ 20년을 맞아 하는 행사랍니다. 꽤나 시끌벅적 회의를 합니다만 그 모양새가 좀 안쓰럽기도 하고 약간 쓸쓸해 보이기도 합니다.  
 
한국판 ‘드레퓌스 사건’으로 널리 알려진 이 사건은 1991년 5월 8일 서강대 본관 옥상에서 “노태우 정권 타도하자”는 구호를 외치며 분신했던 전민련 사회부장 김기설 씨의 죽음이 발단이 되었습니다. 김기설 씨의 유서를 당시 전민련 총무부장이였던 강기훈 씨가 대신 작성했으며 자살을 사주했다는 수사당국의 발표로 한국사회는 충격에 휩싸였으며 큰 혼란에 빠져들었습니다. 항간에 떠돌고 보수언론이 확대재생산하던 ‘죽음의 배후설’이 공안기관의 조작을 통해 ‘터무니없는 소리’에서 ‘그럴 법한 이야기’로 탈바꿈하는 순간이었기 때문입니다. 강기훈 씨는 자신의 무죄를 끊임없이 주장했고 유서의 필적에 대한 국립과학수사연구소의 감정에 수많은 의문이 제기되었음에도 결국 그는 3년 2개월의 실형을 선고받았습니다. 하지만 이 사건의 진정한 발단은 김기설 씨의 죽음 이전, 1991년 4월 26일 시위 도중 경찰의 쇠파이프에 맞아 숨진 명지대생 강경대 씨의 죽음으로 봐야 할 것입니다. 이 사건으로 인해 강경대 씨의 죽음으로 촉발된 분신정국에서 궁지에 몰렸던 노태우 정권은 민주화운동의 도덕성에 치명적인 상처를 입히고 국면을 전환하는데 성공했습니다. 
 
1991년 그해 저는 대학시험에 떨어져 재수를 하고 있었습니다. 개인적으로 ‘91년 5월’과의 인연은 대학생이 된 친구를 만나러 시내에 나갔다 우연찮게 시위에 참여하게 됐고, 바로 그날 성균관대생 김귀정 씨가 경찰의 토끼몰이 진압 속에서 질식사를 했다는 것뿐입니다. 그날 저는 거리로 쏟아져나온 무수한 대학생들과 함께 뛰어다니면서도 어쩐지 국외자가 된 듯 낯설고 어색했습니다. 하지만 연이은 분신과 투신 소식, ‘죽음의 굿판을 걷어치워라’란 김지하의 <조선일보> 칼럼, 의문사한 한진중공업 노조위원장 박창수 씨의 시신을 빼돌리기 위해 영안실 벽을 뚫고 들어오는 백골단의 사진, 저녁 9시 뉴스에서 정원식 국무총리 서리가 밀가루를 뒤집어쓰는 장면 등은 아직도 생생합니다.

20년, 팔팔했던 젊은이를 머리 희끗한 중년 사내로 변하게끔 한 그 세월을 떠올리자 저절로 그동안 걸어왔던 길이 되짚어지고 지금 선 자리를 둘러보게 됩니다. ‘91년 5월’로부터 서너 해가 지난 어느 날, 대학 학생회관 화장실. 아마도 ‘인권’이라는 단어를 처음 만난 건 그때였을 겁니다. 소변기마다 붙어있던 A4 종이 한 장, 지금은 <인권오름>으로 바뀐 팩스신문 <인권하루소식>이었습니다. 그때는 별 생각 없이 ‘뭐, 이런 것도 있네.’하며 지나쳤던 이십대 초반의 대학생이 십 수 년이 흐른 뒤 벌써 몇 년 째 인권잡지를 만들고 있으니 사람 사는 게 참 모를 일이지요. 

제가 이 일을 시작한 것이 2006년 1월, 《사람》이 생긴 지 반년이 지나서였으니 저로서는 이 잡지가 어떤 취지나 의도로 만들어졌는지, 왜 하필 이름을 ‘세상을 두드리는 사람’으로 했는지 그 속사정까지는 알 지 못합니다. 대학에서 브렌드 네이밍(Brand Naming)이라고 하는 상품 이름붙이기 수업을 들은 적도 있지만 이 방면으로는 영 소질이 없는 저로서는 의견을 내봤자 묵살되었겠지만 아마도 제가 그 자리에 있었다면 그냥 ‘인권잡지’라고 하자고 했을 겁니다. 잡지이름이 참 좋다는 사람이 아주 없는 건 아니지만 ‘세상을 두드리는 사람’이라고 하면 대개는 그게 무슨 잡지냐고 되물어옵니다. 그래서 “인권잡지를 만들고 있다.”고 말하곤 합니다. 군더더기 없이 깔끔하게 ‘인권잡지’, 괜찮지 않나요? 다만 국가인권위원회의 <인권> 때문인지 간혹 제가 국가인권위원회에 다니는 줄 오해하는 분도 있는데 이름까지 ‘인권잡지’면 더 헷갈릴 듯도 합니다.   

어쨌든 《사람》을 창간하며 어떤 이는 인권현장을 취재하여 특종을 터뜨리는 시사지를 염두에 두었을 수도 있고, 누군가는 깊이 있는 이론과 비평을 담은 전문지를 구상했을지도 모릅니다. 또 사람의 마음을 움직이고 인권감수성을 키우는 교양지가 됐으면 했을 수도 있지요. 월간으로 나오던 그 시절 《사람》에는 이러한 세 가지 지향이 그런대로 녹아들어 있었습니다. 하지만 정작 문제는 평택 대추리 싸움으로 정신없이 바빴던 인권활동가이자 재단 상임이사까지 겸직한 박래군 전 편집인과 달랑 저 하나뿐인 기자로 매달 거르지 않고 잡지를 내는 것만도 벅찼습니다. 원고를 청탁하고 취재하고, 취재한 내용을 기사로 만들다 짬을 내 다음호를 구상하고, 교정을 보는 와중에 기획회의를 준비하고. 그렇게 서른 세 권의 월간 《사람》을 낸 뒤 6개월의 휴식기를  거쳐 격월간 《사람》으로 개편한 데는 여기서 오는 피로감도 한몫했습니다.  

두 달에 한 번 잡지를 만드니 여유가 생겨 좋기는 합니다만 격월간이라는 것이 참 어정쩡합니다. 휴간을 결정하고 나서 편집부에서는 아예 폐간을 하자는 안부터 인터넷 웹진으로 전환하자, 계간지로 만들자 등등 여러 논의가 있었습니다. 만만치 않은 제작비용과 인력충원이 어려운 현실도 감안해야 했습니다. 그럼에도 인권분야에서 정기적으로 나오는 종이 잡지 하나쯤은 반드시 필요하다는 데 의견이 모아졌고 그 현실가능하고 지속가능한 형태가 격월간이라고 결론이 났습니다. 일간지에 인권담당 기자가 생길 정도로 제도언론에서 인권문제를 다루는 비중도 높아졌고 인권의 각 영역 별로 단체에서 발행하는 웹진이나 뉴스레터, 소식지도 많지만 좀 더 종합적으로 분석하고 영역을 가로지르는 매체가 있어야 한다는 점은 분명했습니다. 돌아보면 ‘사람에 주목하는 잡지’, ‘경계를 넘나들며 인권의 영역을 넓히는 잡지’, ‘다양한 시각과 상상력으로 인권운동과 만나는 잡지’라는 개편 당시 모토에 얼마나 부응하여 왔는지 모르겠습니다. 
 
옛말에 “뭇사람의 입은 쇠를 녹인다.”는 말이 있다. 고대 가락국이란 나라에서 군중들이 모여서 지팡이로 땅을 치면서 불렀다는 노래가 ‘구지가’나 ‘해가’와 같은 고대가요로 오늘까지 전해 내려온다. 어느 시대를 불문하고 힘없고, 가난한 사람들은 비슷한 처지에 있는 사람들끼리 모이는 것으로 힘을 발휘하기 때문이다. … 그러나 이들의 외침은 세상의 권력과 부와 언론 등을 장악하고 있음으로 세상에 하나 아쉬움이 없는 세력들로부터 외면당하고는 한다. ‘인권’이란 지팡이로 세상을 두드려 깨우고, 사람들의 목소리를 하나로 묶어내고 한 입으로 외치는 일에 《사람》은 모든 관심을 기울일 것이다. ‘뭇사람의 입’이 되어 강철 같은 반인권의 현실을 녹여버리고 싶은 게 《사람》의 작지만은 않은 바램이다.
 
 
2005년 7월 《사람》이 세상에 나오면서 뱉은 첫소리입니다. 바다 건너 나라의 어느 혁명가는 “우리의 말이 우리의 무기”라고 했습니다. 여러분의 말은 여러분의 무기인가요? 언제부터인가 “내가 쏜다.”는 말이 ‘한 턱 낸다’는 의미로 쓰입니다. 총알이 돈의 은유로 쓰이고 있는 현실이 한편 섬뜩하기도 합니다. 하지만 돈이 무기인 사람들과 말이 무기인 사람들 사이의 싸움이 곳곳에서 점점 치열하게 벌어지는 것 또한 분명한 현실입니다. 
 
잡지란 말은 근대 이후 서구에서 들어온 대다수의 단어들이 그렇듯 일본 사람들이 영어 매거진(magazine)을 옮기며 만든 것이지 싶습니다. 매거진의 어원은 창고를 뜻하는 네덜란드어의 ‘magazien’에서 왔다고 합니다. 한편 영어 매거진은 잡지라는 뜻 외에 탄약고나 탄창이란 뜻으로도 쓰인답니다. 포토저널리즘에서는 사진을 찍는다는 뜻과 총을 쏜다는 뜻을 함께 가진 슈트(shoot)를 거론하며 포토저널리즘의 속성을 설명하기도 합니다. 어쩌면 잡지는 좀 더 넓고 긴 시공간을 향해 던져지는 그물 같기도 합니다. 지금 당장은 아니더라도 언젠가 쓸 일이 있을지 모르는 물건을 이것저것 주워 담아 차곡차곡 제여 놓는 일 같기도 합니다. 
 
 
진실, 저는 진실을 말하겠습니다. 왜냐하면 정식으로 재판을 담당한 사법부가 만천하에 진실을 밝히지 않는다면 제가 진실을 밝히겠다고 약속했기 때문입니다. 제 의무는 말을 하는 겁니다. 저는 역사의 공범자가 되고 싶지 않습니다. 만일 제가 공범자가 된다면, 앞으로 제가 보낼 밤들은 가장 잔혹한 고문으로 저지르지도 않은 죄를 속죄하고 있는 저 무고한 사람의 유령으로 가득한 밤이 될 겁니다.
 
 
1894년 반유태주의의 광기를 등에 업고 무고한 드레퓌스를 스파이로 몰았던 프랑스에서 소설가 에밀 졸라가 신문에 기고한 「나는 고발한다!」의 한 대목입니다. 졸라는 이 글로 인해 징역 1년을 선고받고 영국 망명길에 올랐야 했지만 그로부터 7년 뒤 드레퓌스는 재심을 거쳐 복권될 수 있었습니다. 한국에서도 무수한 에밀 졸라와 드레퓌스가 있었지만 그들은 더욱 혹독한 길을 걸어야 했습니다. 강기훈 유서대필 조작사건은 2007년에서야 진실화해위원회의 진실규명 결정이 나왔으며 아직도 대법원에서 재심결정이 나기를 기다리고 있는 중입니다.
 
화장실 소변기 위에 붙은 <인권하루소식>을 무심히 읽어가던 그 무렵 워낙 악필인데다 특히 매직글씨는 지독하게 못 쓰던 제게 주어진 일은 다른 이들이 밤새도록 써놓은 대자보를 새벽녘 교정 곳곳에 붙이는 것이었습니다. “우리의 말이 우리의 무기”임을 미처 알지 못했지만 자판기 커피를 뽑아들고 대자보 앞으로 하나둘 모여들 사람들을 생각하면 가슴이 뛰었습니다. 팩스로 들어온 <인권하루소식>을 복사해 화장실 칸칸마다 붙이던 이의 마음도 그랬을까요? 쉰 번째 《사람》을 세상에 내놓습니다. 50이란 숫자에 큰 의미를 두고 싶지는 않습니다. 다만 그때의 심정, 그 마음만은 잃지 않으려 합니다.

 
- <사람> 50호 편집인의 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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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래와 같은 조촐한 이벤트도 준비했습니다.
   


50호 발간 기념 앙케이트
 
《세상을 두드리는 사람》창간호부터 지금까지 중에서 
 

하나, 가장 좋았던 호는 몇 호인가요?

 

둘, 가장 인상 깊었던 글은 누구의 혹은 어떤 주제의 글이었나요?

 

셋, 재미 있고 소개해주고 싶었던 연재가 있었나요?

 

넷, 앞으로 꼭 다루었으면 하는 주제가 있다면 무엇인가요?
 
 
※5월 25일까지 이름, 연락처와 함께 이메일(esaram0@gmail.com)로 보내주시거나 여기에 비밀댓글로 남겨주세요. 네 가지 문항을 모두 적어주신 분에 한해 추첨을 통해 다섯 분에게 도서출판 사람생각 발행 단행본 3권을 드립니다.

세상을 두드리는 사람
서울 서대문구 충정로3가 227-1 우리타워 2층 02-363-5855
사이트 www.esaram.org / 이메일 esaram0@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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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의식화가 필요하다

 

1.
천정명(천둥)이 의식화되고 있다. (어릴 때 민란에도 참여했으니 정확히 말해 재의식화인 셈이다.) 예전에도 그렇고 지금도 그렇듯 그를 의식화시키는 건 불순세력이나 이념서클, 늘 웃기만 했던 선배가 아니라 당대 현실이다.

 

2.
<추노> 이후 되도록 빼놓지 않고 보는 드라마가 있다. 같은 사극이지만 결은 좀 다른 <짝패>다. 
 

솔직히 작가가 김운경이라는 사실을 알게 되어  보기 시작했다. 어렸을 때부터 드라마에는 별로 관심이 없었지만 군대에서 채널 선택권이 있을리 만무했다. 매일 수상기 앞에서 허리를 펴고 양반다리를 하고 앉아 무릅에 주먹쥔 손을 올려놓은 차렷 자세로 드라마를 시청해야 했는데 그때 일일드라마가 김운경의 <서울의 달>이었다. 

한석규, 최민식, 김원희(아, 김원히). 지금으로 치면 초호화 캐스팅이지만 그때만 해도 다들 무명이었다. 채시라 정도가 톱클라스였을 뿐. 하여튼 나는 김운경도 김수현처럼 작가론이 나올만한 작가로 생각된다. (벌써 나와있는지도 모르겠다.) 


3.
대학시절 어떤 선배는 내게 "사극은 리얼리즘일 수 없고 반동적이기 쉽다"란 말을 한 적 있다. 나도 상당부분 동의했던 것 같다. 그때 사극이란 <용의 눈물>이나 <여인천하>처럼 왕을 중심으로 한 권력다툼이나 궁중암투가 주요 소재였다. 그렇지만 언제부턴가 사극이 아래로 내려오기 시작했다. (의미심장하게도 <짝패>의 불순세력 이름은 '아래적'이다. 내가 돌아온다와 아래로라는 중의적 의미가 있다는 게 주관적인 내 해석이다.)   
 

거슬러 올라가면 <임꺽정>도 있었고 <다모>도 떠오르지만 왜 이렇게 지금 시대의 불평등과 차별, 양극화와 같은 예민한 문제를 다룬 사극이 완성도 높은 서사와 긴장감을 갖고 만들어지는지에 대해 누가 분석을 해주면 좋겠다는 생각을 해본다.  어쩌면 소설, 문학의 빈자리를 드라마가 채우고 있는 지도 모르겠다.


4.
뭐, 그래도 결국 텔레비전 드라마일 뿐 아니겠냐고? 모든 고전은 당대 시정잡배가 즐기는 통속물이었다. 지금 한국의 드라마 또는 사극이 그럴지 그렇지 않을지 모르겠지만 어쨌든 지금 나도 천정명처럼 재의식화가 절실하다. 홍세화 선생인가 누군가가 그런 말을 했던 것 같다. 끊임없는 재의식화가 필요하다. 그렇지 않으면 관념화, 보수화되기 십상이다.  


아이가 둘이다. 나이를 먹을 수록 버릴 수 없는 것, 소중한 것이 늘어난다. 세상은 왠지 더 복잡한 듯 보이고 몸과 발은 점점 무거워진다. 아는 것, 경험한 것이 늘어날 수록 놀라움과 분노, 설레임은 줄어든다.  


늦지 않게, 천둥이처럼 저작거리로 나가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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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화의 언어, 그리고 듣는다는 것

삼켜야 했던 평화의 언어 - 병역거부가 말했던 것, 말하지 못했던 것 
임재성 지음 / 그린비 / 2011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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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R2P'라는 이름의 미사일이 리비아 트리폴리로 날아가고 있다.
‘국민보호의 의무(Responsibility to protect)’라는 이 신개념의 전쟁명분은 “자국 국민을 집단학살, 전쟁범죄, 인종청소, 반인륜적 범죄로부터 보호하지 못하는 나라에 대해 국제사회가 집단행동을 취할 수 있도록 허용해야 한다”는 논리다. 그럼 미사일은, 인도적 개입이라는 폭격은 리비아 국민을 보호하고 그들에게 평화를 가져올 수 있을까? 그렇지 않다면 일방적인 군사적 우세 속에 진압당하고 있는 리비아 시민군과 리비아 민주주의를 방어하고 평화를 평화롭게 가져올 수 있는 또 다른 방법은 있나?
평화는 까다롭고 복잡하고 예민한, 참 어려운 문제다. 

2.
평화라는 단어를 언제 처음 듣고 입 밖으로 내게 되었을까? 기억을 더듬으면 여덟, 아홉 살 무렵 엄마 손을 잡고 갔던 어느 교회 부흥회였으리라. 박수를 치며 불렀던 “내게 강 같은 평화, 내게 강 같은 평화~”, 지금 생각하면 두 가지 의문이 생긴다. 왜 ‘우리에게’가 아니라 ‘내게’인가, 그리고 과연 강은 평화로운가?
사람들이 흔히 입에 올리는 평화는 집단적이고 사회적인 어떤 상태라기보다는 한 개인의, 그 내면의 어떤 상태인 듯하다. 그런 평화는 종교적 구원이나 명상과 깨달음을 통해 얻어지는 어떤 경지다. 물론 내면의 갈등이 평화의 경지로까지 이르는 길은 쉽지 않다. 그보다 더 어려운 것은 두 사람 사이에서, 삼각관계에서, 성장배경이 다르고 입장과 세계관이 다르고 가치관이 충돌하는 사람들 사이, 집단과 집단 사이에서의 평화일 것이다.
평화는 조용하지 않고 소란스러우며 정적이기보다는 동적이고 갈등을 없애는 것이 아니라 갈등의 굽이굽이를 돌아가는 길인지 모른다, 강물처럼. 

3.
병역거부자들은 전쟁에 (그리고 전쟁연습과 훈련에) 참여하는 대신 평화를 이야기한다. 검사와 판사와 기자들, 그리고 한국사회는 그들에게 “왜 군대에 가지 않느냐?” “다 거부하면 나라는 누가 지키냐?” “네 집에 강도가 들어와도 평화롭게 당할 거냐?”는 질문을 던지고 또 던진다. 병역거부자들의 답변들은 이런 질문들을 만족시키지 못한다.
그리고 병역거부자에 대한 대체복무는 (산업기능요원, 소방청, 교도대 등 이미 수많은 종류의 대체복무가 실시되고 있음에도) 노무현 정부에서 도입이 약속되었다가 이 정부 들어서 물거품이 되었다. 오히려 해병대 지원자가 늘었다는 뉴스가 전해지고 뉴스 앵커가 주말마다 병영체험을 하는 영상이 TV에 방영된다. 천안함과 연평도 사건 속에서 ‘국가를 위해 죽어간 숭고한 죽음’에 대한 애도의 물결이 넘실댔던 한국사회에서 병역을 거부하고 군대 대신 감옥을 선택했던 이들은 어떤 생각을 하고 있을까?

4.
이 책의 필자는 ‘평화학’이라는 생소한 학문(혹은 연구방법)으로 병역거부자들, 그리고 양심적 병역거부 운동을 했던 운동가들의 생생한 이야기를 기록하고 분석한다. 그들이 애초에 하고자 했던 이야기는 무엇인지, 차마 하지 못한 말은 무엇이었으며 그럼에도 할 수밖에 없었던 말은 무엇인지에 주목한다.
그 가운데 필자는 “대체복무제의 정당성이나 ‘부작용’ 없는 외국 대체복무 운용 사례가 아니라, 양심의 자유가 포괄하는 범위에 대한 논쟁이 아니라, 국제 인권규범을 인용하는 것이 아니라, 이 젊은이들이 어떤 불면의 밤을 보내면서 남들 다 가는 군대를 거부하며 부모 속을 찢어 놓으면서까지 감옥에 갔는지 (...) 이들은 손가락질당해야 할 파렴치한도, 불쌍한 피해자도, 강철 같은 신념의 소유자도 아닌 우리 시대의 평범한, 하지만 폭력에 민감했던 사람들이었음”을 드러내며 공감을 시도해보고 싶었다고 밝히고 있다. 

5.
평화는 서로의 입장을 바꾸어 생각해보는 것, 그리고 타인의 아픔과 고통, 또는 존재와 욕망에 공감하는 것이 전제되어야 한다는 생각에 동의한다. 그럼에도 왠지 아쉽다. 이는 요즘 특히 유행하는 ‘공감’에 대한 문제의식 때문일지도 모르겠다. 너나없이 소통이 중요하다고 말들 하지만 권력의 관계가 바뀌지 않는 한 말길이 트이길 기대할 수 없듯이 공감이 한 개인의 성찰과 깨달음을 넘어 어떤 사회적 힘으로 세상을 변화시키고 재구성할 수 있을 것인가는 그저 막막할 따름 아닌가. 우리의 공감대를 넓히고 그 깊이를 더 하는 것도 물론 중요하지만 거기서 한 발자국 더 나아간 무엇인가가 있어야 하는 것 아닌가. 

6.
“병역거부자가 말했던 것, 말하지 못했던 것-삼켜야 했던 평화의 언어”

평화의 언어란 무엇일까, 잠시 생각해본다. 침묵은 복종을 뜻할 때도 있지만 때론 저항의 언어가 될 때도 있다. “우리의 말이 우리의 무기입니다”라는 사파티스타의 말처럼 언어에는 분명 평화를 이끌어올 힘이 있지만 반대로 평화를 깨는 도구가 될 때도 많다. 그렇다면 평화학은 “잘 듣기”부터 시작되어야 하지 않을까. 말을 잘 하는 사람은 참 많고 달변이 되는 법, 글 잘 쓰는 법을 다룬 책은 넘쳐난다. 그러나 어떻게 들을 것인가, 무엇을 들을 것인가에 대해서는 별로 관심이 없는 세상이다. 매장된 350여만 마리의 가축들과 일본 쓰나미 피해자들, 아랍 혁명에 나선 민중들의 말을 듣기 위해 우리는 무엇을 하고 있고 또 무엇을 해야 하나. 우리의 언어는 너무나 빈곤하고 길들여져 있는 것은 아닌가.  
입에서 튀어 나오는 말들 너머의 진심을 듣는 일, 행간을 읽고 공감하고 더 나은 것을 상상하게 만드는 일이 평화학이라면 이 책은 좋은 출발점에 놓여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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잡지와 인권, 인권잡지 이야기(준비호?)

누가 《사람》이 어떤 잡지냐고 물으면 우스갯소리로 ‘인권독립잡지’라고 말하곤 했습니다. (...) 냉정히 말해 자본으로부터는 독립한 잡지라지만 ‘인권재단 사람’의 기관지를 벗어나지 못하고 있는 것이 사실입니다. 이제 여섯 살이니 경제적으로는 힘들겠지만 정서적으로나마 재단으로부터 독립하고 최소한 제 앞가림은 해야겠습니다. 그래서 올봄부터 한 달에 테이크아웃 커피 한 잔보다 저렴하고 담배 한 갑보다는 겨우 5백 원 비싼 정기구독자를 열심히 모아볼까 합니다. 인권단체들에게 파격적인 할인가에 공동구매도 제안해볼 생각입니다. 한국인권운동의 기관지 《사람》은 너무 야무진 꿈일까요? - <사람> 49호 편집인의 글에서
 
 
《사람》 3-4월호(통권49호)가 업데이트 되었습니다  (☞바로 가기)
 
이번호에서는 반차별 운동의 중요한 주제 중 하나라 할 수 있는 ‘혐오’에 대해 특집으로 다루었습니다.
기획단계에서는 참 신선하고 좋은 주제라고 생각했는데 막상 소주제를 구성하고 필자를 물색하다보니 어려움이 많았습니다.
혐오에 대한 한국사회의 인식과 이해의 깊이가 참 얇다(?)는 생각을 해보았습니다.
반차별 운동, 차별금지법 제정을 위한 노력이 더욱 필요하다는 반증이기도 하겠죠.
멀리 아랍에서 일어나고 있는 민중봉기에 대한 소식은 격월간지의 성격 상 부득이하게 다루지 못했지만 방글라데시 노동자들의 시위, 필리핀 인권활동가의 죽음에 대한 이야기를 전합니다.
학생인권조례의 등장으로 학교에 대한 고민이 더 깊어진 교사의 자기고백과 성찰이 담긴 글도 권합니다. 
 
 
 
사람이 사람에게 아랍 혁명과 불가능한 꿈
人터뷰 누가 민주주의의 적인가
人터뷰 풀을 누이고 일으키는 바람
인권이 내게로 왔다 포이동에서 맺은 인연
특집 혐오라는 사회적 질병
특집 혐오범죄, 그 폭력의 구조
특집 혐오발화는 어떤 힘을 갖고 있나
기획 인권조례제정 이대로 좋은가
기획 삶을 바꾸는 조례제정운동
사람in 인권 존중이 사라진 학교, 학생인권은 안녕한가
사람in 인권 어느 필리핀 인권활동가의 죽음
사람in 인권 방글라데시 노동자 시위, 현장을 가다
사람in 인권 천안함 연평도 이후 한국사회 군사주의
사람in 인권 엠비(MB)식 법치에 물 만난 경찰
인권의 장르를 찾아서 은밀한 독재
엄마에게 쓰는 편지 누구에게나 자리가 있는 복지
사람답게 조카의 사춘기
희망을 위한 직접행동 충돌하는 민주주의와 직접행동
 
 
 
50호 발간 기념 앙케이트
 
격월간《사람》에서는 50호 발간을 기념해서 월 3천원 CMS 정기구독자 확대 사업을 구상 중입니다.
광고성 메일을 돌리기가 뭐해서 구차하게(?) 잡지와 인권, 인권잡지 이야기라는 이름으로 격주간 뉴스레터를 만들기로 했습니다.
아래처럼 조촐한 이벤트도 준비했습니다.
 
  
《세상을 두드리는 사람》창간호부터 지금까지 중에서 
 

하나, 가장 좋았던 호는 몇 호인가요?

 

둘, 가장 인상 깊었던 글은 누구의 혹은 어떤 주제의 글이었나요?

 

셋, 재미 있고 소개해주고 싶었던 연재가 있었나요?

 

넷, 앞으로 꼭 다루었으면 하는 주제가 있다면 무엇인가요?
 
 
※4월 25일까지 이름, 연락처와 함께 이메일(esaram0@gmail.com)로 보내주세요. 네 가지 문항을 모두 적어주신 분에 한해 추첨을 통해 도서출판 사람생각 발행 단행본 3권을 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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