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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두율이라는 질문-침묵과 망각의 카르텔

#8.
지난해 어느 다큐 감독으로부터 '송두율 사건'에 대한 다큐멘터리가 곧 나온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경계도시2>라고 했다. 솔직히 <경계도시1>을 본 적도, 들어본 적도 없었다. 하지만 송두율이라는 이름은 마치 금기의 언어인 것처럼 내 몸 어딘가를 찌릿하게 했다. 영화를 꼭 봐야겠다고 마음먹었다. 아래는 <경계도시2> 공식 사이트에서 가져온 것이다.  
 

SYNOPSIS
2003 년, 재독철학자 송두율 교수는 체포영장이 발부된 상황에서 37년만의 귀국을 감행한다. 그러나 그는 열흘만에 ‘해방 이후 최대의 거물간첩’으로 추락하고, 한국사회는 레드 컴플렉스의 광풍이 불어온다. 그리고 그를 구하기 위해 노력했던 그의 친구들조차 공포스러운 현실에서 자유롭지 않다. 그리고 6년이 흘렀다. 2003년 그는 스파이였고, 2009년 그는 스파이가 아니다. 그때 그의 죄는 과연 무엇이었을까? 그리고 한국사회는 그때와 얼마나 다른가?

DIRECTOR’S NOTE
Dynamic Korea, 한국사회는 여전히 숨 가쁘다. 그렇게 사건으로부터 6년이 흘렀고, 사건은 완벽하게 사라졌다. 지나버린 과거 사건일 뿐이라면 미련을 가질 필요가 없다. 그러나 한국사회는, 그리고 우리는 그때로부터 과연 얼마나 멀리 왔는가? 송두율 교수 사건을 통과하면서 다큐멘터리 감독으로서, 한 인간으로서 쉽지 않은 시간을 보냈다. 스스로의 내면을 정직하게 들여다보는 일은 힘겨울 수밖에 없다. 무엇이 나를 둘러싸고 있는지, 그리하여 어떻게 우리를 움직이는지... 이 영화가 한국사회를 들여다볼 수 있는 내면의 거울이 되기를 희망한다.

[출처] [경계도시 2] 작품정보|작성자 bordercity2 


#7.
몇 해 전 출판사 후마니타스 박상훈 대표를 우연한 자리에서 만난 적 있다. 나였는지, 그 자리에 다른 누구였는지 모르겠지만 후마니타스에서 낸 책들 중 제일 기억에 남는 책이 무었인지 물었고 그 대답이 <미완의 귀향과 그 이후>라는 책이었다. 첫 장을 펼치자 책은 2003년 여름으로 나를 데려갔다. 그가 귀국했을 무렵, 국정원에서 조사를 받던 중 '노동당 입당', '북한 정치국 위원'이란 말들이 언론에 등장했을 때, 한 강연장에서 '대한민국 만세'를 외치라고 강요받았다는 어처구니 없는 이야기를 들었을 때, 독일 국적을 포기했다는 소식을 전해듣고 다시 한 번 허탈했을 때, 그의 부인과 아들이 구명운동을 하고 다니는 것을 지켜봤을 때가 주마등처럼 스쳐지나갔다. 고백하자면 나또한 그와의 '비판적 거리두기'라는 허울좋은 명분 아래 그저 광기를 피하고, 혹은 마녀사냥을 외면하고 있었을지도 모르겠다.

#6.
책은 크게 네 부분으로 되어 있다. 1부는 구속 이후 심경을 메모형식으로 담고 있는 '한 경계인의 비망록'이며, 그가 한국에 머물렀던 2003년 가을부터 2004년 여름까지 썼던 강연문(그러나 끝내 발표되지 못한 강연문도 포함되어 있다)과 편지글, 재판 과정에서의 최후진술 등을 담은 것이 2부다. 3부는 그가 독일에 돌아온 이후 사회와 철학, 통일에 대한 생각을 담은 글이고, 4부는 박상훈 대표와의 대담이다. 
 

#5.
그리고 부록으로 '사태 전개의 기록'이 붙어 있는데, 여기서 나는 '송두율 사건'의 이해를 위해 이 부록을 먼저 짧막하게 요약하고 싶다. 

- 송두율 교수는 2003년 9월17일 민주화운동기념사업회의 초청으로 귀국하여 국정원에 자진출두, 이후 네 차례의 조사를 받는다.  
- 9월30일 국회에서 정형근 의원이 송두율 교수는 북한 정치국 후보위원이라고 자백했다고, 최병렬 당시 한나라당 대표는 이 사건이 '해방 이후 최대의 거물 간첩 사건'이라고 언론에 공표했다. 
- 10월14일 송 교수는 기자회견에서 노동당 탈당, 독일국적 포기 등을 담은 성명을 발표했다. 
- 10월22일 송 교수는 서울구치소에 입감되었고 2004년 1월까지 그의 스승이자 저명한 철학자 하버마스, 노벨문학상 수상자 권터 그라스 등이 탄원서를 제출했다.
- 2004년 4월13일 국제엠네스티는 송 교수를 양심수로 지정했다.
- 7월21일 2심판결에서 일부 무죄 및 집행유예로 석방되었으며 광주 망월동과 그의 고향 제주를 방문한 뒤 8월5일 독일로 출국했다. 

#4.
그는 국정원 조사를 각오하고 귀국했다고 했다. 물론 민주화운동기념사업회는 간단하고 형식적인 조사라고 했지만 그러하더라도 이러한 조사를 거부하며 끝내 귀국을 거부했던 윤이상 선생에 비춰 국정원 조사를 받아들인 그에게 나는 약간의 실망감을 가졌다. 그런데 4부 대담을 보면 사실과 다르다.   
"조사에 응하려 했다면 그전에 벌써 한국에 갔겠지요. ... 국정원과 기념사업회가 그렇게 하기로 했다며 입국 시 공황에서 내게 요구했던 것이었을 뿐입니다."
당시 민주화운동기념사업회가 얼마나 그를 모시고 싶었는지 가까운 거리에서 볼 수 있었던 나는 그의 말에 무게를 두고 싶다.
어쨌든 결코 간단하지도 형식적이지도 않은 국정원의 조사 가운데 그는 1973년 북한 입국 시 노동당에 가입하는 서류를 작성했다는 이야기를 하게 된다. 그리고 얼마 지나지 않아 '북한 정치국 후보위원'이란 말이 보수 정치인과 언론을 통해 툭 튀어져 나왔다.
이 때부터 과연 그는 정치국 후보위원인가 아닌가, 그가 거짓말을 했는가 아닌가 하는 것이 초미의 관심사가 되었다. 젊은 날 북한에 입국하며 노동당에 가입했다는 말을 스스로 밝히지 않은 것의 연장선 상에서 그를 못 믿을 사람이라고 하는 이들도 생겨났다.  
"송씨에게 실망... 국민에 보다 진솔해야" , "송씨 친북행위, 민주화운동 욕되게 해"... 보수 정치인의 말이 아니다. 김근태, 장기표의 발언이다. '좌파 지식인의 배신', '사상적 간통'... 물론 보수 언론의 경우 더욱 심했지만 국가보안법을 없애라고 요구해온 이른 바 개혁진영, 진보진영에서의 이같은 태도는 또한 놀라웠다. 이들이야 제도권 정치인이기 때문에 그럴 수도 있겠다 싶지만 더욱 놀라운 것은 작가 황석영이 그를 찾아가 "공개적으로 전향할 뜻을 발표하고 대국민 사과를 하고 영구 귀국 의사를 표명하라"고 했다는 것이다. 국정원의 전향공작 전담반이 아니라 한국사회 존경받는 작가가 말이다.
국가보안법 체제, 국가보안법이 있는 한국사회에서는 자신이 속한 정치조직을 미리 말하지 않는 것도 죄가 되는 사회였다. 형법 어디를 뒤져도 거짓말이 죄라고 써있지 않지만 적어도 북한과 관련되어 거짓말을 한 사람은 죄값을 치뤄야 한다.
결국 재판에서 그가 북한 정치국 후보위원이라는 부분은 무죄가 선고되었다. 독일국적을 가졌던 그가 북한에 들어간 것도 죄가 될 수는 없었다. 그렇다면 그의 죄는 단 한 가지, 북한을 좋게 이야기하고 남한을 헐뜯었다는 것. 그건 이미 그의 저술활동을 통해 이미 드러나있던 것이었다.  
 

#3. 
3부 '다시 경계의 공간을 열며'에서 그는 경계를 이렇게 이야기한다.
"경계선은 원래 전투적 개념이다. 이쪽과 저쪽을 가르는 선으로서 공격과 방어를 가르는 배타적 개념이다. ... 그러한 경계가 선이 아니라 면이나 공간이라면 문제는 달라진다. 경계면이나 경계공간은 이미 이쪽과 저쪽 사이에 자리 잡을 수 없는 제3의 어떤 존재를 말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물론 서로 배타적인 이쪽과 저쪽은 대체로 이러한 제3의 존재를 애써 무시하려 들거나 아니면 그것이 자신에게 불리한 결과를 가져오지 않을까 불안해하기도 한다."
"0과 1 사이에는 무수한 가치가 존재하고 있다는 사실을 거듭 강조한다. 제3의 무엇을 인정하는 이러한 태도는 불확실성이나 애매성을 전제하는 것이기도 하다. 따라서 이것이냐 저것이냐를, 그것도 당장에 빨리 결정해야 한다고 믿는 사람들에게는 이러한 논거는, 현실을 모르는 이상주의자의 헛소리거나 아니면 중간에서 미적거리는 기회주의자의 억지소리처럼 들릴 수도 있다. '경계인'이 때로 비극의 주인공이 되는 것은 바로 이러한 태도로부터 비롯된다."

#2.
그는 이 책 서문 말미에 이렇게 썼다.
"야만과 광기가 무섭게 휘몰아쳤던, 너무나도 낯선 땅에서 그야말로 모든 것을 바쳐 남편과 아버지를 지켜냈던 아내와 두 아들에게 이 책을 바친다."

#1.
이 책이 나오게 된 배경을 엿볼 수 있는 대목이 있다. 송두율 교수가 일상의 철학적 주제를 엮어 만든 원고를 출판사에 보냈고 그에 대한 긴 편지를 받았다.
" (2004년 독일로 돌아간 뒤) 지난 2년 반 동안 선생님 문제에 대한 논의를 찾을 수 없었다는 사실입니다. 이른바 '송두율 사건'은 선생님의 출국과 더불어 사회적 공론의 의제에서 갑작스럽게 실종되어 버린 겁니다. .. 모든 논의는 신기루처럼 사라져 버렸습니다. ... 결국 2003년 가을부터 이듬해 여름까지 약 10개월, 그리고 그 안팎의 시기를 추적해보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  '기록'을 다시 접하면서 과연 이 땅에서 지식인이라 부를 만한 여지가 얼마나 남았나 하는 회의감을 갖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밀란 쿤데라는, 권력의 핵심은 망각하게 하는 것이라며 기억하기 위한 투쟁의 중요성을 강조했는데, 우리는 그 평범한 진리조차 실천해 내지 못한 것 같습니다. ... 그래서 이번 책이 '침묵과 망각의 카르텔'이라 부를 만한 그간의 상황에 대해 뭔가 문제를 제기하는 것이 되어야 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을 하게 되었습니다."

#0.
며칠 전 윤구병 선생의 '철학이란 무엇인가'라는 강연을 들었다. 거기서 철학하는 일은 '듣는 것'에서부터 시작한다고 했다. 또한 묻지 않으면 답할 수 없다고 했다. 혹시 나는 제대로 된 질문을 할 생각은 하지 않고 제대로 된 답만을 구했던 것은 아닌지 모르겠다. 깨우치기 위해서는 들어야 하고, 듣게 위해서 물어야 하고, 묻기 위해 제대로 된 물음을 찾아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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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 목차 (2010. 3-4월)

 

격월간 『세상을 두드리는 사람』에서는 일상에서 인권과 관련된 이야기, 인권에 대한 고민과 주장, 인권이론 등 인권을 위해 애쓰는 여러분의 글을 기다립니다. 

편집부 이메일(esaram0@gmail.com)로 보내주시면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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래군 선배에게

<세상을 두드리는 사람> 3-4월호 발송을 오늘 마쳤습니다.

이번에도 역시, 많이 늦었죠. 아래는3-4월호에 실린 편집인의 글입니다.

책을 들고 면회를 가려고 했는데 인가가 워낙 많은 분이라 다음 주에나 볼 수 있겠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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래군 선배에게

 

봄볕에 기대어 담배 한 개비를 물었더니 이제야 편지를 써야겠다는 생각이 드네요. 이른바 ‘용산 수배자 3인’ 중 한 명이었던 선배가 명동성당 앞에서 환하게 웃으며 기자회견을 한 뒤 제 발로 경찰서에 간 게 벌써 50일 전입니다. ‘벌써’라는 말에 섭섭도 하겠지만 갇힌 사람에게는 더디 가는 시간도 형벌의 한 가지인 셈이지요. 게다가 담배 한 대도 못 피울 테니, 제가 대신 또 한 개비를 물었습니다.


지난해부터 제 주변 사람들이 하나둘 금연을 선언하고 있습니다. ‘그래, 얼마나 장수하나 두고 보자’는 못된 심보가 들기도 하지만, 한편 담배를 배운 후 한 번도 작심삼일을 넘기지 못했기에 그네들의 결단이 부럽기도 합니다. 예전에는 담배를 끊으면 독한 놈이라 했다지만 요새는 ‘아직까지도’ 담배를 피우는 게 독한 거라네요. 사실 사람이 독해서가 아니라 담배의 중독성이 심한 탓일 테지요. 변명처럼 들리겠지만 중독으로 치자면 어디 담배뿐인가요. 아침에 일어나면 핸드폰 문자부터 확인하고, 사무실에 나가면 컴퓨터 앞에서 이메일부터 열고, 퇴근하면 TV를 켜면서 못 다 본 신문을 펼치고.
 

그렇게 신문을 뒤적이다가 선배가 들어간 지 며칠 되지 않아 서울 왕십리 뉴타운지구에서 겨울철 강제철거가 또 실행되었다는 기사를 봤습니다. 지난해 12월 서울 마포구 용강동에서 60대 철거민이 목숨을 끊은 지 한 달 만에, 용산참사가 일어난 지 딱 1년 만에 다시 시작된 겨울철 철거였습니다. 서울 마포구 아현동, 북아현동과 염리동, 성동구 금호동과 왕십리, 동작구 상도동과 성북구의 장위동, 동대문구 휘경동과 답십리, 은평구 갈현동과 서대문구 가재울……. 서울만 해도 재개발 136곳, 뉴타운 재개발 113곳, 재개발 예정지역 77곳이라 하니 수도서울은 그야말로 지뢰밭입니다. 용산참사 이전에도 이후에도 한국사회에서의 재개발 병, 개발중독은 전혀 회복 기미가 보이질 않습니다. 아니 4대강 사업이 올해부터 본격적으로 시작되고 있으니 지금까지는 그저 서막에 불과한 것인지 모릅니다.
 

어디 재개발 문제뿐인가요. 비정규직 문제가 큰일이라고 너나없이 말하지만 새해 선물로 정리해고 통지를 받아야 했던 한양대학교 미화원 여성노동자들은 설 연휴 전날도 눈발을 맞으며 집회를 열어야 했고, 설 연휴 방송사들이 앞 다투어 다문화 운운하는 동안 이주노동자들 40명은 영문도 모른 채 단속을 당해 그 중에 비자가 없는 사람은 수갑이 채워져 출입국관리소로 끌려가야 했습니다. 인권을 빙자하여, 북한 인민의 인권을 볼모삼은 북한인권법이 국회 외교통상통일위원회를 통과했고, 명분 없는 전쟁의 늪 가운데 하나인 아프가니스탄에 다시 파병을 하는 법안은 별 문제 없이 국회 본회의를 통과했습니다. 아마도 선배가 밖에 있었다면 일일이 챙기고 관여했을 일들이지만 솔직히 선배가 나와 있다 한들 뭐가 달랐을까 싶습니다. 
 

인권운동의 오랜 숙원인 사형제 폐지도 헌법재판소의 합헌 결정으로 물 건너가고, 헌법재판소의 집시법 야간집회 금지에 대한 헌법불합치 결정은 밤 10시까지만 합법으로 하자는 어처구니없는 여당의 법안으로 뒤통수를 맞았습니다. 이 와중에 법무부는 차별금지법도 제 입맛대로 어떻게 만들어볼까 하는 모양이고, 오늘 인터넷에 들어가니 쌍용차 파업 이후 “사망 6명, 자살 기도 2명, 환자 70명”이란 기사가 떠 있습니다. 또 담배가 땅깁니다. 
 

요즘에는 ‘이명박’과 ‘김연아’를 거론하지 않고 글을 써야겠다 싶습니다. 칭찬이 됐든 비판이 됐든 두 사람에 대한 이야기는 넘쳐나지만 끝도 없는 블랙홀 같으니 말이죠. 대신 ‘삼성’에 대한 이야기를 하고 싶습니다. 지난해 말 출판계에 있는 후배에게서 삼성 X파일에 대해 양심선언을 했던 김용철 변호사가 삼성과 관련된 원고를 들고 출판사를 전전한다는 이야기를 들었습니다. 출판계에서는 책을 낼 경우 세무조사를 각오해야 한다는 이야기가 파다했다고 합니다. 책이 나오고 그나마 양심적인 언론들도 책 광고를 거부했다는 이야기가 들리고 그것이 기사화되기도 했습니다. 경향신문에 이 책과 관련한 칼럼이 거부되어 논란이 됐고 그 와중에 김용철 변호사의 책은 인터넷 서점을 중심으로 베스트셀러가 되었지만 여전히 대다수의 언론은 침묵하고 있습니다.
 

아마도 이 과정에서 삼성의 실질적인 압력은 없었을 것이라 저는 확신합니다. 예전 중앙정보부와 안기부와 보안사가 그랬듯이 절대 권력은 입김 없이 그저 눈빛만으로 영향력을 행사하는 존재이니까요. 이미 삼성은 그런 경지의, 신성불가침의, 알아서 자기검열이 작동되는 그런 존재가 아닐까요? 그래서 김용철 변호사의 책 제목처럼 삼성을 생각하는 일, 삼성에 대해 말하는 일은 대단한 용기와 각오와 결단을 요하는 일이 되어버렸습니다.
 

『사람』은 창간과 동시에 삼성 문제를 고민했죠. “대한민국과 삼성은 전쟁 중”이라며 특집으로 삼성 문제를 다루기도 했습니다. 2005년의 일이니 지난 5년 사이 삼성은 아마도 그 싸움에서 승리를 거둬 대한민국을 온전히 접수한 모양입니다. 삼성과 관련된 인권문제, 노동권 문제나 삼성반도체 백혈병 문제 등에 대해 『사람』은 물론 인권운동에서도 대응을 게을리 하거나 회피하지는 않았다고 생각합니다. 하지만 삼성은 더 이상 하나의 기업, 거대 자본, 재벌이 아닌 그 무엇이 되어버렸습니다. 권력 이상의 권력, 국가보안법처럼 하나의 지배체제로 한국사회를 억압하고 있는 듯합니다. 그래서 삼성의 문제, 한국 속에서 삼성의 문제가 아니라 한국과 삼성, 삼성 속의 한국의 문제를 어찌하면 좋을지, 선배가 나오면 머리를 맞대어봐야겠습니다.
 

안에서 박지원의 『열하일기』 완역본을 재미나게 읽고 있다지요. 잘은 모르지만 저는 박지원의 시대와 지금 시대가 많이 닮았다고 생각합니다. 세계의 중심축이 바뀌는 격변기, 변방의 지식인으로서 비주류와 주변부에 주목하고 주체성을 고민하며, 거기서 실사구시와 이용후생의 가치를 찾아 나섰던 연암의 삶이 선배에게는 어떤 의미일까요? 압록강을 건너 산해관을 지나 북경을 돌아오는 봇짐 속에 선배는 무엇을 담아왔을지도 꼭 이야기해주었으면 좋겠습니다.
 

올해는 봄꽃이 일찍 필 거라고 합니다. 나오면 담배는 제가 한 갑 사드리지요.
 

 강곤 드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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꿀꺽꿀꺽 술장수와 덥적덥적 술장수

꿀꺽꿀꺽 술장수가 술을 팔러 갑니다.  
덥적덥적 술장수가 술을 팔러 갑니다.  
 

"덥적이, 잘 있었나?"
"꿀꺽이, 잘 있었나?"

"목이 마른데. 덥적이, 나 한테 술 한 잔 주게. 여기 한 닢 있소." 
꿀꺽 꿀꺽

"덥적이, 술 한 잔 더 주게, 여기 한 닢 있소."
꿀꺽 꿀꺽 

......


"꿀꺽이, 나도 술 한 잔만 더 주게, 여기 한 닢 있소."
덥적 덥적 


"덥적이, 마지막으로 한 잔만 더 주게. 여기 한 닢 있소."
꿀꺽 꿀꺽 


"꿀꺽이, 나도 마지막으로 한 닢 주게, 여기 한 닢 있소."
덥적 덥적

"햐, 술 다 팔았네"
"허허, 나도 다 팔았네" 


"우리 또 만나 술장사 합시다."
"좋소, 그럽시다.

꿀꺽꿀꺽 술장수와 덥적덥적 술장수는 껄껄껄 웃으며 비틀비틀 걸어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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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살짜리 딸내미가 요즘 꽂혀서 늘상 읽어달라는 전래동화다.  

읽다보면 이야기가 범상치 않다.   

비극(혹은 희극)의 근원은 한 닢을 둘이서 주고 받은 데 있다.  

거의 알콜중독인 내가 ...  동시에 술을 팔기도 했던 모양이다. 

위험하다. 

비틀비틀 걸아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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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코메디언의 죽음

코메디가 아니라 코미디가 맞는 말이고 그래서 코메디언이 아니라 코미디언comedian이 맞는 말이라는 사실을 안 지 얼마되지 않았다. 그래도 자장면이 아니라 짜장면이라고 불러야 제맛인 것처럼 그는 왠지 코메디언이라고 불어야 할 것 같다. 요즘은 다들 개그, 개그맨이라고 하지만 개그와 코미디는 마치 칼라사진과 흑백사진만큼이나 다른 느낌이다. 

 

비실비실 배삼룡. 

 

TV 오락프로에서 연예인, 아이돌 흉내내는 아이들을 볼 때마다 조금 불편하고, 내 아이는 저런 짓 안 했으면 좋겠다 싶은 생각을 하지만, 고백하건데 아들 둘에 막내인 나는 배삼룡 흉내로 가족들의 귀여움을 꽤나 많이 받았다. 다섯 살 무렵 우리 집에도 드디어 텔레비젼이라는 게 들어왔고 그 당시 그가 어떤 코미디를 했는지는 하나도 기억나지 않지만 늦은 저녁 이부자리에서 내가 배삼룡 흉내를 낼 때면 웃으시던 부모님 얼굴만큼은 눈에 선하다.   

 

국민학교를 들어가고(난 초등학교가 아니라 국민학교를 다녔다) 토요일인가 아니면 일요일인가, <웃으면 복이와요>를 틀어놓고 아무 근심걱정 없이 바보상자를 들여다보고 있던 그 시간. 그때도 배삼룡, 구봉서, 서영춘이 나와서 뭘 했는지는 자세히 기억나지 않지만 그 오후의 나른함만은 기억에 남아 있다. 어쩌면 행복이라는 단어를 생각할 때 가장 먼저 떠오르는 풍경이지 않나 싶다.  

 

바보연기, 슬랩스틱이라고도 한다는 몸개그의 원조를 꼽히며 한국의 찰리 채플린으로 불렸던 그는 80년대 종적을 감췄다. 빵구똥구가 불편한 분들처럼 저질로 권력을 잡은 전두환 신군부는 그의 코미디를 저질이라며 출연을 못하게 했다. 누가 저질이고 누가 빵꾸똥구인지야 새삼 말할 필요도 없지만, 그래서인지 그를 생각할 때면, 그의 코미디 앞에 '슬픈'이란 형용사를 붙여야 어울릴 것 같은 느낌이다.  

 

말년에 외로웠고 불우하였으니, 장례과정에서도 병원과 입원,치료,장례 등의 비용 문제로 마찰이 있었던 모양이다.  

 

난 그와 생전에 만나본 적도 없고, 철이 들고 그를 좋아한다거나 존경한다는 생각도 한번 해본 적이 없지만 왠지 그의 죽음 앞에 미안하다. 뭔가 많이 빚을 진 느낌인데 그 부채를 상환받을 당사자가 훌쩍 떠나버린 것이다.  

 

내 할아버지, 아버지와 생김새와 체구가 닮았고 그래서 나와도 많이 닮은 배삼룡. 오늘이 발인이라고 한다.  내 동심의 우상, 내 유년의 슈퍼스타 배삼룡의 영전에 삼가 술 한 잔 올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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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 달리는 포장마차인가

<세상을 두드리는 사람> 블로그를 만들었습니다. 사실 만들어 놓은지는 한참 되었는데, 이제야 뭔가를 끄적이게 되네요.

 

이 동네는 면식이 있는 이들도 적지 않아 살짝 겁도 나고(제가 당췌 부끄럼이 많아서), 천성이 게으른 탓에 꾸준하게 잘 할 수 있을가 걱정이 앞서지만, 솔직히... 뭐 안되면 말고, 하는 심정입니다.

 

혹여 궁금해하실 분이 있을지 몰라.. .게시판 제목 '달리는 포장마차'는 예전 <사람> 월간이었을 때 잠시 제가 연재하던 꼭지 이름이기도 하고, 다른 동네에 있는 제 개인 블로그의 이름이기도 합니다. 뭐 대단한 의미는 없고 주량을 넘어 폭주를 하게 되는 포장마차에서의 술주정, 객소리를 하는 공간 쯤으로 편하게 생각하자는 자기최면인 것이죠. 

 

물론 이 게시판을 통해 사적인 이야기만이 아니라 <사람> 편집부에서 알리고 싶은 이야기, 나누고 싶은 이야기도 해볼 생각입니다. 함께 <사람>을 만들고 있는 동료도 꼬시고 있는 중이고, 구치소에 있는 전 편집인 박모 씨도 출소하면 게시판 하나 줘볼까 합니다.

 

이제 막 들어오는 3-4월호 원고를 초벌교정을 보기 시작했습니다. 보통 3번 정도 교정을 보니까 아직 시작도 안 한 것에 가깝지요. 대부분의 잡지는 서점 진열을 위해 3월호의 경우 2월 중순에 발간을 합니다. 하지만 <사람>은 서점 판매가 워낙 부진하기 때문에(쩝!) 그냥 3월호는 3월 초에 발간하죠. 어쩌면 3월호를 3월에 내는 게 당연한 게 아닌가 싶기도 해서 발간을 앞당기려는 노력은 일찌감치 그만 뒀습니다.

 

그래도 늘 <사람>에 실린 좋은 글을 어떻게 하면 더 많은 사람들과 나눌 수 있을까 고민스럽고, 바쁘고 어려운 상황에서도 소중한 글을 써주는 인권활동가들에게 미안한 마음이 드는 건 어쩔 수 없습니다. 그 미안함을 덜고자 하는 알리바이의 일환으로 이곳에 블로그를 만들었는지도 모르겠네요. 하여튼 적어도 세 번 술마시면 한 번은 끄적이자는 굳은 결심을 해봅니다. 앞으로 달릴 일만 남았습니다. 하하하   

 

- 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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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을 두드리는 사람 42호(2010년 1-2월)

세상을 두드리는 사람 42호가 업데이트 됐습니다. 

원래 짝수 달 10일 경에 업데이트를 해왔는데 이래저래 늦어졌네요. 얼마 전부터 어떤 게시판에는 사진이 안 올라가지만 아직 문제점을 찾지 못하고 있지요. 그래도 택스트는 보실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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