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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두율이라는 질문-침묵과 망각의 카르텔

#8.
지난해 어느 다큐 감독으로부터 '송두율 사건'에 대한 다큐멘터리가 곧 나온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경계도시2>라고 했다. 솔직히 <경계도시1>을 본 적도, 들어본 적도 없었다. 하지만 송두율이라는 이름은 마치 금기의 언어인 것처럼 내 몸 어딘가를 찌릿하게 했다. 영화를 꼭 봐야겠다고 마음먹었다. 아래는 <경계도시2> 공식 사이트에서 가져온 것이다.  
 

SYNOPSIS
2003 년, 재독철학자 송두율 교수는 체포영장이 발부된 상황에서 37년만의 귀국을 감행한다. 그러나 그는 열흘만에 ‘해방 이후 최대의 거물간첩’으로 추락하고, 한국사회는 레드 컴플렉스의 광풍이 불어온다. 그리고 그를 구하기 위해 노력했던 그의 친구들조차 공포스러운 현실에서 자유롭지 않다. 그리고 6년이 흘렀다. 2003년 그는 스파이였고, 2009년 그는 스파이가 아니다. 그때 그의 죄는 과연 무엇이었을까? 그리고 한국사회는 그때와 얼마나 다른가?

DIRECTOR’S NOTE
Dynamic Korea, 한국사회는 여전히 숨 가쁘다. 그렇게 사건으로부터 6년이 흘렀고, 사건은 완벽하게 사라졌다. 지나버린 과거 사건일 뿐이라면 미련을 가질 필요가 없다. 그러나 한국사회는, 그리고 우리는 그때로부터 과연 얼마나 멀리 왔는가? 송두율 교수 사건을 통과하면서 다큐멘터리 감독으로서, 한 인간으로서 쉽지 않은 시간을 보냈다. 스스로의 내면을 정직하게 들여다보는 일은 힘겨울 수밖에 없다. 무엇이 나를 둘러싸고 있는지, 그리하여 어떻게 우리를 움직이는지... 이 영화가 한국사회를 들여다볼 수 있는 내면의 거울이 되기를 희망한다.

[출처] [경계도시 2] 작품정보|작성자 bordercity2 


#7.
몇 해 전 출판사 후마니타스 박상훈 대표를 우연한 자리에서 만난 적 있다. 나였는지, 그 자리에 다른 누구였는지 모르겠지만 후마니타스에서 낸 책들 중 제일 기억에 남는 책이 무었인지 물었고 그 대답이 <미완의 귀향과 그 이후>라는 책이었다. 첫 장을 펼치자 책은 2003년 여름으로 나를 데려갔다. 그가 귀국했을 무렵, 국정원에서 조사를 받던 중 '노동당 입당', '북한 정치국 위원'이란 말들이 언론에 등장했을 때, 한 강연장에서 '대한민국 만세'를 외치라고 강요받았다는 어처구니 없는 이야기를 들었을 때, 독일 국적을 포기했다는 소식을 전해듣고 다시 한 번 허탈했을 때, 그의 부인과 아들이 구명운동을 하고 다니는 것을 지켜봤을 때가 주마등처럼 스쳐지나갔다. 고백하자면 나또한 그와의 '비판적 거리두기'라는 허울좋은 명분 아래 그저 광기를 피하고, 혹은 마녀사냥을 외면하고 있었을지도 모르겠다.

#6.
책은 크게 네 부분으로 되어 있다. 1부는 구속 이후 심경을 메모형식으로 담고 있는 '한 경계인의 비망록'이며, 그가 한국에 머물렀던 2003년 가을부터 2004년 여름까지 썼던 강연문(그러나 끝내 발표되지 못한 강연문도 포함되어 있다)과 편지글, 재판 과정에서의 최후진술 등을 담은 것이 2부다. 3부는 그가 독일에 돌아온 이후 사회와 철학, 통일에 대한 생각을 담은 글이고, 4부는 박상훈 대표와의 대담이다. 
 

#5.
그리고 부록으로 '사태 전개의 기록'이 붙어 있는데, 여기서 나는 '송두율 사건'의 이해를 위해 이 부록을 먼저 짧막하게 요약하고 싶다. 

- 송두율 교수는 2003년 9월17일 민주화운동기념사업회의 초청으로 귀국하여 국정원에 자진출두, 이후 네 차례의 조사를 받는다.  
- 9월30일 국회에서 정형근 의원이 송두율 교수는 북한 정치국 후보위원이라고 자백했다고, 최병렬 당시 한나라당 대표는 이 사건이 '해방 이후 최대의 거물 간첩 사건'이라고 언론에 공표했다. 
- 10월14일 송 교수는 기자회견에서 노동당 탈당, 독일국적 포기 등을 담은 성명을 발표했다. 
- 10월22일 송 교수는 서울구치소에 입감되었고 2004년 1월까지 그의 스승이자 저명한 철학자 하버마스, 노벨문학상 수상자 권터 그라스 등이 탄원서를 제출했다.
- 2004년 4월13일 국제엠네스티는 송 교수를 양심수로 지정했다.
- 7월21일 2심판결에서 일부 무죄 및 집행유예로 석방되었으며 광주 망월동과 그의 고향 제주를 방문한 뒤 8월5일 독일로 출국했다. 

#4.
그는 국정원 조사를 각오하고 귀국했다고 했다. 물론 민주화운동기념사업회는 간단하고 형식적인 조사라고 했지만 그러하더라도 이러한 조사를 거부하며 끝내 귀국을 거부했던 윤이상 선생에 비춰 국정원 조사를 받아들인 그에게 나는 약간의 실망감을 가졌다. 그런데 4부 대담을 보면 사실과 다르다.   
"조사에 응하려 했다면 그전에 벌써 한국에 갔겠지요. ... 국정원과 기념사업회가 그렇게 하기로 했다며 입국 시 공황에서 내게 요구했던 것이었을 뿐입니다."
당시 민주화운동기념사업회가 얼마나 그를 모시고 싶었는지 가까운 거리에서 볼 수 있었던 나는 그의 말에 무게를 두고 싶다.
어쨌든 결코 간단하지도 형식적이지도 않은 국정원의 조사 가운데 그는 1973년 북한 입국 시 노동당에 가입하는 서류를 작성했다는 이야기를 하게 된다. 그리고 얼마 지나지 않아 '북한 정치국 후보위원'이란 말이 보수 정치인과 언론을 통해 툭 튀어져 나왔다.
이 때부터 과연 그는 정치국 후보위원인가 아닌가, 그가 거짓말을 했는가 아닌가 하는 것이 초미의 관심사가 되었다. 젊은 날 북한에 입국하며 노동당에 가입했다는 말을 스스로 밝히지 않은 것의 연장선 상에서 그를 못 믿을 사람이라고 하는 이들도 생겨났다.  
"송씨에게 실망... 국민에 보다 진솔해야" , "송씨 친북행위, 민주화운동 욕되게 해"... 보수 정치인의 말이 아니다. 김근태, 장기표의 발언이다. '좌파 지식인의 배신', '사상적 간통'... 물론 보수 언론의 경우 더욱 심했지만 국가보안법을 없애라고 요구해온 이른 바 개혁진영, 진보진영에서의 이같은 태도는 또한 놀라웠다. 이들이야 제도권 정치인이기 때문에 그럴 수도 있겠다 싶지만 더욱 놀라운 것은 작가 황석영이 그를 찾아가 "공개적으로 전향할 뜻을 발표하고 대국민 사과를 하고 영구 귀국 의사를 표명하라"고 했다는 것이다. 국정원의 전향공작 전담반이 아니라 한국사회 존경받는 작가가 말이다.
국가보안법 체제, 국가보안법이 있는 한국사회에서는 자신이 속한 정치조직을 미리 말하지 않는 것도 죄가 되는 사회였다. 형법 어디를 뒤져도 거짓말이 죄라고 써있지 않지만 적어도 북한과 관련되어 거짓말을 한 사람은 죄값을 치뤄야 한다.
결국 재판에서 그가 북한 정치국 후보위원이라는 부분은 무죄가 선고되었다. 독일국적을 가졌던 그가 북한에 들어간 것도 죄가 될 수는 없었다. 그렇다면 그의 죄는 단 한 가지, 북한을 좋게 이야기하고 남한을 헐뜯었다는 것. 그건 이미 그의 저술활동을 통해 이미 드러나있던 것이었다.  
 

#3. 
3부 '다시 경계의 공간을 열며'에서 그는 경계를 이렇게 이야기한다.
"경계선은 원래 전투적 개념이다. 이쪽과 저쪽을 가르는 선으로서 공격과 방어를 가르는 배타적 개념이다. ... 그러한 경계가 선이 아니라 면이나 공간이라면 문제는 달라진다. 경계면이나 경계공간은 이미 이쪽과 저쪽 사이에 자리 잡을 수 없는 제3의 어떤 존재를 말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물론 서로 배타적인 이쪽과 저쪽은 대체로 이러한 제3의 존재를 애써 무시하려 들거나 아니면 그것이 자신에게 불리한 결과를 가져오지 않을까 불안해하기도 한다."
"0과 1 사이에는 무수한 가치가 존재하고 있다는 사실을 거듭 강조한다. 제3의 무엇을 인정하는 이러한 태도는 불확실성이나 애매성을 전제하는 것이기도 하다. 따라서 이것이냐 저것이냐를, 그것도 당장에 빨리 결정해야 한다고 믿는 사람들에게는 이러한 논거는, 현실을 모르는 이상주의자의 헛소리거나 아니면 중간에서 미적거리는 기회주의자의 억지소리처럼 들릴 수도 있다. '경계인'이 때로 비극의 주인공이 되는 것은 바로 이러한 태도로부터 비롯된다."

#2.
그는 이 책 서문 말미에 이렇게 썼다.
"야만과 광기가 무섭게 휘몰아쳤던, 너무나도 낯선 땅에서 그야말로 모든 것을 바쳐 남편과 아버지를 지켜냈던 아내와 두 아들에게 이 책을 바친다."

#1.
이 책이 나오게 된 배경을 엿볼 수 있는 대목이 있다. 송두율 교수가 일상의 철학적 주제를 엮어 만든 원고를 출판사에 보냈고 그에 대한 긴 편지를 받았다.
" (2004년 독일로 돌아간 뒤) 지난 2년 반 동안 선생님 문제에 대한 논의를 찾을 수 없었다는 사실입니다. 이른바 '송두율 사건'은 선생님의 출국과 더불어 사회적 공론의 의제에서 갑작스럽게 실종되어 버린 겁니다. .. 모든 논의는 신기루처럼 사라져 버렸습니다. ... 결국 2003년 가을부터 이듬해 여름까지 약 10개월, 그리고 그 안팎의 시기를 추적해보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  '기록'을 다시 접하면서 과연 이 땅에서 지식인이라 부를 만한 여지가 얼마나 남았나 하는 회의감을 갖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밀란 쿤데라는, 권력의 핵심은 망각하게 하는 것이라며 기억하기 위한 투쟁의 중요성을 강조했는데, 우리는 그 평범한 진리조차 실천해 내지 못한 것 같습니다. ... 그래서 이번 책이 '침묵과 망각의 카르텔'이라 부를 만한 그간의 상황에 대해 뭔가 문제를 제기하는 것이 되어야 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을 하게 되었습니다."

#0.
며칠 전 윤구병 선생의 '철학이란 무엇인가'라는 강연을 들었다. 거기서 철학하는 일은 '듣는 것'에서부터 시작한다고 했다. 또한 묻지 않으면 답할 수 없다고 했다. 혹시 나는 제대로 된 질문을 할 생각은 하지 않고 제대로 된 답만을 구했던 것은 아닌지 모르겠다. 깨우치기 위해서는 들어야 하고, 듣게 위해서 물어야 하고, 묻기 위해 제대로 된 물음을 찾아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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