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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름휴가 동안 읽은 책들

   

 

 

 

 

 

 

 

 

 

 

 

 

 

이번 여름휴가는 근 2주였고 주 업무는 아이보기였다. 네 살짜리 아이는 아침 일곱 시에 일어나 오후 1시에서 2시 사이에 낮잠을 두어 시간 잔다. 그리고 밤 열 시 쯤 잠이 든다. 매일 그렇지는 않았지만 대체로 이런 패턴이다보니 생각보다 책을 펼칠 시간이 많았다. 첫 번째로 읽은 책은 그야말로 다들 손에 들고 다닌다는, 누구 말대로라면 <만들어진 신>보다 더 많이 들고 다니며 또한 더 많은 이들이 끝까지 읽었을 것이라고 하는 마이클 샌델의 <정의란 무엇인가>다.  

 

난 대체로 베스트셀러나 '해운대', '태극기 휘날리며' 같은 천만 관객 운운하는 영화는 잘 보지 않는 편이지만 이 책은 웬지 한 번 봐야 할 것 같아 읽어봤다. (롤스의 정의론에 대해 적지 않은 이야기를 들은 탓이기도 할 것이다.) 

 

기대했던 것보다 읽고 생각해봄직한 내용이 많아 좋았다. 물론 이것은 주관적인 느낌일 뿐 '하버드대 명강의'란 간판으로 책을 팔아먹었다는 혹평도 존재한다. 동의가 안 되는 것은 아니지만 법과 정의, 자유와 평등, 인권에 대해 거의 배운 바 없고 논의도 제대로 되지 않는 한국적 현실(?)을 감안한다면 꽤나 소프트한 대중서로 손색이 없고 내 주변 사람들에게도 권해줌직하다는 생각을 해본다. 하지만 그런 만큼 위험하지 않을까 하는 생각도 해본다. 이 자리에서 구체적으로 뭐라 짚어서 이야기하기에는 그렇지만 불온한 생각으로, 비판적으로 읽어야 할 책이란 생각... 나중에 기회가 된다면 이에 대한 리뷰를 써봐야겠다는 허튼 다짐을 해본다.

 

 

 

 

 

 

 

 

 


 

 

 

 

 

두 번째로 읽은 책이다. 의외로 책장이 쉽게 너머가 아래 두 책을 더 읽게 되었다. 처음에는 매우 신변잡기적인 이야기로 출발했는데 중간에 과일의 생산과 유통, 유전자 조작 등 시사적이면서도 생각해볼 꺼리가 많이 있는 이야기가 나와 좋았다. 그래도 과일은 읽는 것보다 먹는 게 좋다.   

 

 

 

 

 

 

 

 

 

 
 

 

 

 

 

 

<돈키호테>는 작년 여름휴가 때 절반 쯤 읽고 말았는데 이 참에 다 읽게 되었다. 이 책을 다시 읽게 된 데에는 <한 신경병자의 회상록>이 큰 역할을 했다. <한 신경병자의 회상록>은 알라딘 서평단으로 리뷰를 써야 할 책이었는데 그만 시일을 넘기고 말았다. 뒤늦게 마저 읽고 나서 <돈키호테>가 읽고 싶어졌다.  

 

고전을 가리켜 누구나 다 아는 이야기지만 제대로 아는 이가 별로 없는 이야기라고 하는 말을 들은 적이 있다. 예전에 아는 사람이 <돈키호테> 발레 공연 티켓을 공짜로 줘서 보러 간 적이 있었는데 난 세르반테스가 이 공연을 봤으면 화가 났을 거 같다는 생각을 했다. 그의 시대와 사회를 풍자한 작품이 고급예술로 박제화된 발레와는 전혀 어울리지 않아 보였던 까닭이었다.  

 

뒤늦게 <돈키호테>를 읽고나니 어쩌면 세르반테스는 박장대소하며 발레 공연을 감상했을 거란 생각도 든다. 단순한 세태풍자의 소설만이 아니라 인간에 대한 진지한 탐구정신이 <돈키호테>의 저변에 흐르고 있다. 흔히들 햄릿형 인간, 돈키호테형 인간 운운하지만 나는 모든 인간이 돈키호테이자 산초 판사이지 않을까 싶다. 산초 판사. 이야기의 말미로 갈수록 돈키호테보다 더욱 매력적이며 흥미로운 주인공으로 자리매김하는 그야말로 햄릿과 돈키호테를 아우르는 현대인이지 않을까. 

 

<한 신경병자의 회상록>은 늦게나마 리뷰를 올릴 생각이다. 읽기 쉽지 않았던 책이다. 하도 진도가 안 나가 맨 앞 서문을 읽고, 맨 끝 부록을 읽고, 본문을 읽다가 다시 부록을 읽고 하기를 반복했다. 참 어렵게 읽었지만 그 내용은 물론 번역과 무엇보다도 책 편집과 디지인에서 높은 점수를 주고 싶다.    

 

 

   

 

 

그래도 절대적인 시간은 딸내미 유니와 함께 했다. 아이가 태어난 이후 처음으로 아이에게 짜증을 내고 성질도 부려봤다. 2주 동안 엄마와 떨어지내는 아이를 장인 장모는 대견해 했고 나 또한 그랬지만 시시때때로 미운 짓을 하는데 나의 인내심의 한계가 찰랑찰랑 했던 것이다.  

 

이 녀석이야말로 앞으로 십 여 년 동안은 내가 읽고 또 읽어야 할, 그래도 다 읽지 못할 한 권의 책일지도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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