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이드바 영역으로 건너뛰기

게시물에서 찾기윤구병

1개의 게시물을 찾았습니다.

  1. 2010/03/18
    경계와 운동의 철학
    사람

경계와 운동의 철학

 

여기 그림 하나가 있다.  

 

있는 것

없는 것

 

 

위에 있는 그림 중 있는 것과 없는 것 사이의 실선은 과연 있는 것인가, 없는 것인가?  
있는 것은 하나인가, 여럿인가?
없는 것은 없는 것이라는 형태로 있을(존재할) 수 있는가, 없는가?
 

 



<있음과 없음>은 흔히 '존재와 무'라고 철학에서 일컬어지는 있음과 없음에 대한, 존재론에 대한 책이다.  이 책의 저자 윤구병의 존재론 강의를 들을 기회가 있었다. 책을 읽고 3시간 가까운 강의를 들었지만, 감히 존재론에 대해, 윤구병의 존재론에 대해 입을 뻥긋하기도 벅차다. 어쩌면 철학에서 가장 머리 아픈 분야가 아닐까 싶기도 하고, 수학과 자연과학, 불교와 도교, 기독교 등 종교의 영역까지 맞닿아 있는 분야여서 더욱 그럴지도 모른다.  

 

존재론은 윤구병의 말에 따르면 '모든 의문에 답할 수 있어야 하는' 엄밀성을 가져야 한다(그래서 논리학, 수학과 맞닿아 있다. 집합, 직선과 삼각형, 원주율, 적분과 미적분이 등장한다). 다시 그의 말에 따르면 존재론(그리고 철학)의 과제는 "가장 큰 하나인 있는 것과 가장 작은 하나인 그 무엇을 양극단에 두고 이 두 끝, 한계 사이에 우주 전체의 삼라만상이 어떻게 배열되는지, 차례로 하나하나를 겹쳐서 우주의 전체 구조와 그 구조에 따르는 기능을 밝혀내는 일이다." 

 

그런데 현대에 들어와서 이러한 존재론의 과제는 종교와 철학에서 과학으로, 빅뱅이론에서 소립자까지를 탐구하는 자연과학으로 이동했다. 그리고 거의 신앙에 가까운 과학에 대한 믿음이 생겨났다. 하지만 자연과학, 수학은 아직도 원주율(파이)의 어떤 규칙성도 질서도 찾아내지 못하고 있다. 그의 말에 따르면 어쩌면 부질없는 짓일지도 모른다. 직선의 세계에서나 있을 법한 법칙을 곡선의 세계, 원에서 찾고 있으니 말이다. "자연은 직선이 아니라 곡선으로 되어 있다!"  

 

잘 알려졌다시피 윤구병은 농사짓는 철학자이다. 철학과를 나와 한국 잡지계의 독보적인 존재인 <뿌리깊은 나무> 초대 편집장을 지냈고, 어린이 책으로 유명한 보리출판사름 만들었고, 대학에서 철학을 가르치다 1995년 변산에서 공동체 학교를 열고 농사를 짓는 이다. 그래서 그의 존재론, 그리고 철학은 서양철학에도 뿌리를 두고 있지만 한편 불교, 도교의 사상과도 맞닿아 있다. 

있는 것과 없는 것보다 있을 것과 없을 것이 중요하다는 것이 바로 그것이다. 그가 말하는 좋은 세상은 "있어야 할 것이 있고 없어야 할 것이 없는" 세상이며 그럴 때 존재론은 객관성이 아닌 당파성에 기초해야 한다는 것이다.

더 존재론에 대해 입을 열었다가는 선무당이 사람잡는 꼴이 되기 십상이다.

다시 첫번째 질문, 있는 것과 없는 것 사이의 실선은 있는 것인가, 없는 것인가? 답을 하자면 실선은 있기도 하고 없기도 한 것이다. 실선이 있는 것이라면 있는 것과 없는 것은 하나가 되고, 실선이 없는 것이라도 마찬가지다. 왼쪽으로 가면 좀 있는 것, 좀 더 있는 것, 조금 더 더 있는 것...오른 쪽으로 가며 조금 없는 것, 조금 더 없는 것, 조금 더 더 없는 것... 바로 실선, 경계에서 운동이 생겨난다. 실선이 없으면 다 있거나 다 없는 세상이 되고 말기에 실선, 경계야 말로 존재하는 세상을 현실로 인식하게 하는 열쇠이며 운동의 출발점인 것이다. 

 

있는 것과 없는 것의 관계만이 아니다. "어떤 하나가 다른 하나와 관계를 맺어 둘을 이루면.. 이 둘 사이에는 이 하나도 아니고 저 하나도 아닌 것이 나타나는데... 둘이 없으면 크기도 없고 공간도 없"다. "둘은 이 하나와 저 하나의 만남의 다른 이름이고, '실체'의이름이 아니라 관계의 이름"인 것이다.     

 

그러하기에 사람이 살아가는 일에서 해가 뜨고 지는 일까지, 운동에서 관계맺음은 핵심이고 본성이다. 운동은 경계에서 벌어지는 일이다. 그 본성에 대한 탐구, 경계에 대한 존재론, 존재에 대한 질문, 운동하는 존재의 철학이 절실하다.  
 

진보블로그 공감 버튼트위터로 리트윗하기페이스북에 공유하기딜리셔스에 북마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