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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 2011년 11-12월호

세상을 두드리는 사람 9-10월호

[사람7-8월호] 전투적 자본주의와 국가보안법

 




사람이사람에게 끝나지 않는 전쟁 | 편집인
르포르타주 85호 크레인, 그 여자네 집 | 이선옥
人터뷰 “친구 하나 있음 소원이 없겠어”  | 해정
인권이내게로왔다 머리로 안 것을 가슴으로 알기까지 | 변춘희
기획 풀뿌리 정치를 통해 사람을 만나다 | 서형원
기획 마을과 정치 | 문치웅
사람in인권 패러디와 소수자 운동 | 웅
사람in인권 탈북자와 국가보안법이란 블랙코미디 | 이광철
사람in인권 전투적 자본주의와 국가보안법 | 오동석
사람in인권 부양의무 기준, 죽음의 제도 | 최예륜
사람in인권 소는 누가 키울 것인가 | 김명수
사람in인권 도시에 대한 권리란 무엇인가 | 강현수
서평 인권은 교문을 넘었을까? | 세안세다
엄마에게쓰는편지 모욕을 거부하는 사회 | 류은숙
사람답게 선녀의 옷을 찾습니다 | 박김영희
희망을위한직접행동 반핵, 예고된 파멸과의 싸움 | 하승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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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 5-6월호가 업데이트되었습니다

이번호 특집은 "5.16 60년, 박정희의 유산과 싸우다"입니다. 군사쿠데타가 벌어진 지 60년, 박정희가 죽은 지 언 30년이 넘었지만 우리는 아직도 박정희의 망령에서 자유롭지 못합니다. 아직도 그가 남긴 유산들과 힘겨운 싸움을 벌이고 있는 것은 아닌가 합니다. 군사문화가 고스란히 남아있는 학교, 근로자와 산업역군, 수출과 성장제일주의가 판치고 있는 사회, 통치권력의 눈치보기에서 자본의 눈치보기로 인권의 최후의 보루로서의 자기역할을 등한시 하고 있는 사법부, 그리고 이러한 박정희의 유산을 극복하기 위한 과제 등을 짚어봤습니다. 

2011년 연중기획 '풀뿌리운동과 인권운동'에서는 최근 관심이 높아진 핵문제에 대한 풀뿌리운동의 고민을 들어봤습니다. 에너지와 민주주의, 그리고 인권에 대한 성찰과 모색, 실천이 어느 때보다 절실한 이 때 2003년 부안에서는 어떤 실험이 벌어지고 있는지, 그 의미는 무엇인지를 함께 나누고 싶습니다.   

이번호는 통권 50호입니다. 편집인의 글에서는 그동안 <사람>을 발간하며 들었던 문제의식을 담았습니다. 초심을 잃지 않고 더욱 넓고 깊게 사람과 만나는 잡지가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사람이 사람에게 대자보를 붙이는 마음
人터뷰 춤추는 별과 시 쓰는 하마
인권이 내게로 왔다 매력만점 두리반
특집 아버지의 ‘착한’ 유산
  개미와 베짱이
  청산 못한 과거, 되풀이되는 사법파동
  박정희의 유산을 어떻게 청산할 것인가
기획 핵을 넘어 생태도시로
  에너지 민주주의와 풀뿌리 민주주의
사람in인권 진보, 인권, 성정치 그리고 진보정당
  국가인권위원회의 위험한 변신
서평 병역거부자, 병역거부운동 그리고 국가
인권의 장르를 찾아서 뽀로로의 편견
엄마에게 쓰는 편지 퉁명스러움과 사회적 정의
사람답게 잔인한 계절 잔인한 세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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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자보를 붙이는 마음

 

몇 주 전부터 《사람》 사무실에 머리가 희끗희끗한 중년의 사내 서너 명이 찾아옵니다. 둘러앉아 회의를 합니다. ‘작은 음악회’라는 문화행사를 준비하고 있다는데 별로 음악적 조예가 깊어 보이거나 문화와 친해 보이지는 않습니다. 흔히 유서대필 사건으로 불리는 ‘강기훈 유서대필 조작사건’ 20년을 맞아 하는 행사랍니다. 꽤나 시끌벅적 회의를 합니다만 그 모양새가 좀 안쓰럽기도 하고 약간 쓸쓸해 보이기도 합니다.  
 
한국판 ‘드레퓌스 사건’으로 널리 알려진 이 사건은 1991년 5월 8일 서강대 본관 옥상에서 “노태우 정권 타도하자”는 구호를 외치며 분신했던 전민련 사회부장 김기설 씨의 죽음이 발단이 되었습니다. 김기설 씨의 유서를 당시 전민련 총무부장이였던 강기훈 씨가 대신 작성했으며 자살을 사주했다는 수사당국의 발표로 한국사회는 충격에 휩싸였으며 큰 혼란에 빠져들었습니다. 항간에 떠돌고 보수언론이 확대재생산하던 ‘죽음의 배후설’이 공안기관의 조작을 통해 ‘터무니없는 소리’에서 ‘그럴 법한 이야기’로 탈바꿈하는 순간이었기 때문입니다. 강기훈 씨는 자신의 무죄를 끊임없이 주장했고 유서의 필적에 대한 국립과학수사연구소의 감정에 수많은 의문이 제기되었음에도 결국 그는 3년 2개월의 실형을 선고받았습니다. 하지만 이 사건의 진정한 발단은 김기설 씨의 죽음 이전, 1991년 4월 26일 시위 도중 경찰의 쇠파이프에 맞아 숨진 명지대생 강경대 씨의 죽음으로 봐야 할 것입니다. 이 사건으로 인해 강경대 씨의 죽음으로 촉발된 분신정국에서 궁지에 몰렸던 노태우 정권은 민주화운동의 도덕성에 치명적인 상처를 입히고 국면을 전환하는데 성공했습니다. 
 
1991년 그해 저는 대학시험에 떨어져 재수를 하고 있었습니다. 개인적으로 ‘91년 5월’과의 인연은 대학생이 된 친구를 만나러 시내에 나갔다 우연찮게 시위에 참여하게 됐고, 바로 그날 성균관대생 김귀정 씨가 경찰의 토끼몰이 진압 속에서 질식사를 했다는 것뿐입니다. 그날 저는 거리로 쏟아져나온 무수한 대학생들과 함께 뛰어다니면서도 어쩐지 국외자가 된 듯 낯설고 어색했습니다. 하지만 연이은 분신과 투신 소식, ‘죽음의 굿판을 걷어치워라’란 김지하의 <조선일보> 칼럼, 의문사한 한진중공업 노조위원장 박창수 씨의 시신을 빼돌리기 위해 영안실 벽을 뚫고 들어오는 백골단의 사진, 저녁 9시 뉴스에서 정원식 국무총리 서리가 밀가루를 뒤집어쓰는 장면 등은 아직도 생생합니다.

20년, 팔팔했던 젊은이를 머리 희끗한 중년 사내로 변하게끔 한 그 세월을 떠올리자 저절로 그동안 걸어왔던 길이 되짚어지고 지금 선 자리를 둘러보게 됩니다. ‘91년 5월’로부터 서너 해가 지난 어느 날, 대학 학생회관 화장실. 아마도 ‘인권’이라는 단어를 처음 만난 건 그때였을 겁니다. 소변기마다 붙어있던 A4 종이 한 장, 지금은 <인권오름>으로 바뀐 팩스신문 <인권하루소식>이었습니다. 그때는 별 생각 없이 ‘뭐, 이런 것도 있네.’하며 지나쳤던 이십대 초반의 대학생이 십 수 년이 흐른 뒤 벌써 몇 년 째 인권잡지를 만들고 있으니 사람 사는 게 참 모를 일이지요. 

제가 이 일을 시작한 것이 2006년 1월, 《사람》이 생긴 지 반년이 지나서였으니 저로서는 이 잡지가 어떤 취지나 의도로 만들어졌는지, 왜 하필 이름을 ‘세상을 두드리는 사람’으로 했는지 그 속사정까지는 알 지 못합니다. 대학에서 브렌드 네이밍(Brand Naming)이라고 하는 상품 이름붙이기 수업을 들은 적도 있지만 이 방면으로는 영 소질이 없는 저로서는 의견을 내봤자 묵살되었겠지만 아마도 제가 그 자리에 있었다면 그냥 ‘인권잡지’라고 하자고 했을 겁니다. 잡지이름이 참 좋다는 사람이 아주 없는 건 아니지만 ‘세상을 두드리는 사람’이라고 하면 대개는 그게 무슨 잡지냐고 되물어옵니다. 그래서 “인권잡지를 만들고 있다.”고 말하곤 합니다. 군더더기 없이 깔끔하게 ‘인권잡지’, 괜찮지 않나요? 다만 국가인권위원회의 <인권> 때문인지 간혹 제가 국가인권위원회에 다니는 줄 오해하는 분도 있는데 이름까지 ‘인권잡지’면 더 헷갈릴 듯도 합니다.   

어쨌든 《사람》을 창간하며 어떤 이는 인권현장을 취재하여 특종을 터뜨리는 시사지를 염두에 두었을 수도 있고, 누군가는 깊이 있는 이론과 비평을 담은 전문지를 구상했을지도 모릅니다. 또 사람의 마음을 움직이고 인권감수성을 키우는 교양지가 됐으면 했을 수도 있지요. 월간으로 나오던 그 시절 《사람》에는 이러한 세 가지 지향이 그런대로 녹아들어 있었습니다. 하지만 정작 문제는 평택 대추리 싸움으로 정신없이 바빴던 인권활동가이자 재단 상임이사까지 겸직한 박래군 전 편집인과 달랑 저 하나뿐인 기자로 매달 거르지 않고 잡지를 내는 것만도 벅찼습니다. 원고를 청탁하고 취재하고, 취재한 내용을 기사로 만들다 짬을 내 다음호를 구상하고, 교정을 보는 와중에 기획회의를 준비하고. 그렇게 서른 세 권의 월간 《사람》을 낸 뒤 6개월의 휴식기를  거쳐 격월간 《사람》으로 개편한 데는 여기서 오는 피로감도 한몫했습니다.  

두 달에 한 번 잡지를 만드니 여유가 생겨 좋기는 합니다만 격월간이라는 것이 참 어정쩡합니다. 휴간을 결정하고 나서 편집부에서는 아예 폐간을 하자는 안부터 인터넷 웹진으로 전환하자, 계간지로 만들자 등등 여러 논의가 있었습니다. 만만치 않은 제작비용과 인력충원이 어려운 현실도 감안해야 했습니다. 그럼에도 인권분야에서 정기적으로 나오는 종이 잡지 하나쯤은 반드시 필요하다는 데 의견이 모아졌고 그 현실가능하고 지속가능한 형태가 격월간이라고 결론이 났습니다. 일간지에 인권담당 기자가 생길 정도로 제도언론에서 인권문제를 다루는 비중도 높아졌고 인권의 각 영역 별로 단체에서 발행하는 웹진이나 뉴스레터, 소식지도 많지만 좀 더 종합적으로 분석하고 영역을 가로지르는 매체가 있어야 한다는 점은 분명했습니다. 돌아보면 ‘사람에 주목하는 잡지’, ‘경계를 넘나들며 인권의 영역을 넓히는 잡지’, ‘다양한 시각과 상상력으로 인권운동과 만나는 잡지’라는 개편 당시 모토에 얼마나 부응하여 왔는지 모르겠습니다. 
 
옛말에 “뭇사람의 입은 쇠를 녹인다.”는 말이 있다. 고대 가락국이란 나라에서 군중들이 모여서 지팡이로 땅을 치면서 불렀다는 노래가 ‘구지가’나 ‘해가’와 같은 고대가요로 오늘까지 전해 내려온다. 어느 시대를 불문하고 힘없고, 가난한 사람들은 비슷한 처지에 있는 사람들끼리 모이는 것으로 힘을 발휘하기 때문이다. … 그러나 이들의 외침은 세상의 권력과 부와 언론 등을 장악하고 있음으로 세상에 하나 아쉬움이 없는 세력들로부터 외면당하고는 한다. ‘인권’이란 지팡이로 세상을 두드려 깨우고, 사람들의 목소리를 하나로 묶어내고 한 입으로 외치는 일에 《사람》은 모든 관심을 기울일 것이다. ‘뭇사람의 입’이 되어 강철 같은 반인권의 현실을 녹여버리고 싶은 게 《사람》의 작지만은 않은 바램이다.
 
 
2005년 7월 《사람》이 세상에 나오면서 뱉은 첫소리입니다. 바다 건너 나라의 어느 혁명가는 “우리의 말이 우리의 무기”라고 했습니다. 여러분의 말은 여러분의 무기인가요? 언제부터인가 “내가 쏜다.”는 말이 ‘한 턱 낸다’는 의미로 쓰입니다. 총알이 돈의 은유로 쓰이고 있는 현실이 한편 섬뜩하기도 합니다. 하지만 돈이 무기인 사람들과 말이 무기인 사람들 사이의 싸움이 곳곳에서 점점 치열하게 벌어지는 것 또한 분명한 현실입니다. 
 
잡지란 말은 근대 이후 서구에서 들어온 대다수의 단어들이 그렇듯 일본 사람들이 영어 매거진(magazine)을 옮기며 만든 것이지 싶습니다. 매거진의 어원은 창고를 뜻하는 네덜란드어의 ‘magazien’에서 왔다고 합니다. 한편 영어 매거진은 잡지라는 뜻 외에 탄약고나 탄창이란 뜻으로도 쓰인답니다. 포토저널리즘에서는 사진을 찍는다는 뜻과 총을 쏜다는 뜻을 함께 가진 슈트(shoot)를 거론하며 포토저널리즘의 속성을 설명하기도 합니다. 어쩌면 잡지는 좀 더 넓고 긴 시공간을 향해 던져지는 그물 같기도 합니다. 지금 당장은 아니더라도 언젠가 쓸 일이 있을지 모르는 물건을 이것저것 주워 담아 차곡차곡 제여 놓는 일 같기도 합니다. 
 
 
진실, 저는 진실을 말하겠습니다. 왜냐하면 정식으로 재판을 담당한 사법부가 만천하에 진실을 밝히지 않는다면 제가 진실을 밝히겠다고 약속했기 때문입니다. 제 의무는 말을 하는 겁니다. 저는 역사의 공범자가 되고 싶지 않습니다. 만일 제가 공범자가 된다면, 앞으로 제가 보낼 밤들은 가장 잔혹한 고문으로 저지르지도 않은 죄를 속죄하고 있는 저 무고한 사람의 유령으로 가득한 밤이 될 겁니다.
 
 
1894년 반유태주의의 광기를 등에 업고 무고한 드레퓌스를 스파이로 몰았던 프랑스에서 소설가 에밀 졸라가 신문에 기고한 「나는 고발한다!」의 한 대목입니다. 졸라는 이 글로 인해 징역 1년을 선고받고 영국 망명길에 올랐야 했지만 그로부터 7년 뒤 드레퓌스는 재심을 거쳐 복권될 수 있었습니다. 한국에서도 무수한 에밀 졸라와 드레퓌스가 있었지만 그들은 더욱 혹독한 길을 걸어야 했습니다. 강기훈 유서대필 조작사건은 2007년에서야 진실화해위원회의 진실규명 결정이 나왔으며 아직도 대법원에서 재심결정이 나기를 기다리고 있는 중입니다.
 
화장실 소변기 위에 붙은 <인권하루소식>을 무심히 읽어가던 그 무렵 워낙 악필인데다 특히 매직글씨는 지독하게 못 쓰던 제게 주어진 일은 다른 이들이 밤새도록 써놓은 대자보를 새벽녘 교정 곳곳에 붙이는 것이었습니다. “우리의 말이 우리의 무기”임을 미처 알지 못했지만 자판기 커피를 뽑아들고 대자보 앞으로 하나둘 모여들 사람들을 생각하면 가슴이 뛰었습니다. 팩스로 들어온 <인권하루소식>을 복사해 화장실 칸칸마다 붙이던 이의 마음도 그랬을까요? 쉰 번째 《사람》을 세상에 내놓습니다. 50이란 숫자에 큰 의미를 두고 싶지는 않습니다. 다만 그때의 심정, 그 마음만은 잃지 않으려 합니다.

 
- <사람> 50호 편집인의 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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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함께 받아보실 분의 이름과 연락처를 적어
아래 이메일로 보내주시면 됩니다. (바로 여기에 비밀댓글로 남겨주셔도 됩니다^^)


아래와 같은 조촐한 이벤트도 준비했습니다.
   


50호 발간 기념 앙케이트
 
《세상을 두드리는 사람》창간호부터 지금까지 중에서 
 

하나, 가장 좋았던 호는 몇 호인가요?

 

둘, 가장 인상 깊었던 글은 누구의 혹은 어떤 주제의 글이었나요?

 

셋, 재미 있고 소개해주고 싶었던 연재가 있었나요?

 

넷, 앞으로 꼭 다루었으면 하는 주제가 있다면 무엇인가요?
 
 
※5월 25일까지 이름, 연락처와 함께 이메일(esaram0@gmail.com)로 보내주시거나 여기에 비밀댓글로 남겨주세요. 네 가지 문항을 모두 적어주신 분에 한해 추첨을 통해 다섯 분에게 도서출판 사람생각 발행 단행본 3권을 드립니다.

세상을 두드리는 사람
서울 서대문구 충정로3가 227-1 우리타워 2층 02-363-5855
사이트 www.esaram.org / 이메일 esaram0@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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잡지와 인권, 인권잡지 이야기(준비호?)

누가 《사람》이 어떤 잡지냐고 물으면 우스갯소리로 ‘인권독립잡지’라고 말하곤 했습니다. (...) 냉정히 말해 자본으로부터는 독립한 잡지라지만 ‘인권재단 사람’의 기관지를 벗어나지 못하고 있는 것이 사실입니다. 이제 여섯 살이니 경제적으로는 힘들겠지만 정서적으로나마 재단으로부터 독립하고 최소한 제 앞가림은 해야겠습니다. 그래서 올봄부터 한 달에 테이크아웃 커피 한 잔보다 저렴하고 담배 한 갑보다는 겨우 5백 원 비싼 정기구독자를 열심히 모아볼까 합니다. 인권단체들에게 파격적인 할인가에 공동구매도 제안해볼 생각입니다. 한국인권운동의 기관지 《사람》은 너무 야무진 꿈일까요? - <사람> 49호 편집인의 글에서
 
 
《사람》 3-4월호(통권49호)가 업데이트 되었습니다  (☞바로 가기)
 
이번호에서는 반차별 운동의 중요한 주제 중 하나라 할 수 있는 ‘혐오’에 대해 특집으로 다루었습니다.
기획단계에서는 참 신선하고 좋은 주제라고 생각했는데 막상 소주제를 구성하고 필자를 물색하다보니 어려움이 많았습니다.
혐오에 대한 한국사회의 인식과 이해의 깊이가 참 얇다(?)는 생각을 해보았습니다.
반차별 운동, 차별금지법 제정을 위한 노력이 더욱 필요하다는 반증이기도 하겠죠.
멀리 아랍에서 일어나고 있는 민중봉기에 대한 소식은 격월간지의 성격 상 부득이하게 다루지 못했지만 방글라데시 노동자들의 시위, 필리핀 인권활동가의 죽음에 대한 이야기를 전합니다.
학생인권조례의 등장으로 학교에 대한 고민이 더 깊어진 교사의 자기고백과 성찰이 담긴 글도 권합니다. 
 
 
 
사람이 사람에게 아랍 혁명과 불가능한 꿈
人터뷰 누가 민주주의의 적인가
人터뷰 풀을 누이고 일으키는 바람
인권이 내게로 왔다 포이동에서 맺은 인연
특집 혐오라는 사회적 질병
특집 혐오범죄, 그 폭력의 구조
특집 혐오발화는 어떤 힘을 갖고 있나
기획 인권조례제정 이대로 좋은가
기획 삶을 바꾸는 조례제정운동
사람in 인권 존중이 사라진 학교, 학생인권은 안녕한가
사람in 인권 어느 필리핀 인권활동가의 죽음
사람in 인권 방글라데시 노동자 시위, 현장을 가다
사람in 인권 천안함 연평도 이후 한국사회 군사주의
사람in 인권 엠비(MB)식 법치에 물 만난 경찰
인권의 장르를 찾아서 은밀한 독재
엄마에게 쓰는 편지 누구에게나 자리가 있는 복지
사람답게 조카의 사춘기
희망을 위한 직접행동 충돌하는 민주주의와 직접행동
 
 
 
50호 발간 기념 앙케이트
 
격월간《사람》에서는 50호 발간을 기념해서 월 3천원 CMS 정기구독자 확대 사업을 구상 중입니다.
광고성 메일을 돌리기가 뭐해서 구차하게(?) 잡지와 인권, 인권잡지 이야기라는 이름으로 격주간 뉴스레터를 만들기로 했습니다.
아래처럼 조촐한 이벤트도 준비했습니다.
 
  
《세상을 두드리는 사람》창간호부터 지금까지 중에서 
 

하나, 가장 좋았던 호는 몇 호인가요?

 

둘, 가장 인상 깊었던 글은 누구의 혹은 어떤 주제의 글이었나요?

 

셋, 재미 있고 소개해주고 싶었던 연재가 있었나요?

 

넷, 앞으로 꼭 다루었으면 하는 주제가 있다면 무엇인가요?
 
 
※4월 25일까지 이름, 연락처와 함께 이메일(esaram0@gmail.com)로 보내주세요. 네 가지 문항을 모두 적어주신 분에 한해 추첨을 통해 도서출판 사람생각 발행 단행본 3권을 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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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랍 혁명과 불가능한 꿈

지난해 12월 17일, 튀니지 시디부지드라는 지역에서 스물여섯 살 청년이 자기 몸에 불을 질렀습니다. 이 청년은 시디부지드 지역에서 오랫동안 뿌리내려온 부족 출신이라 합니다. ‘부아지지’라는 이름의 이 청년이 행상수레를 빼앗기며 여성 공무원에게 뺨까지 맞았다는 소식이 전해지자 그가 겪은 모욕은 부족 전체의 분노로 바뀌었습니다. 이틀 뒤 시디부지드 청년들이 거리로 나섰고 경찰과 충돌이 발생하자 시위는 인근 도시로 걷잡을 수 없이 확대되었습니다. 벌써 몇 달째 이어지고 있는 아랍 혁명의 불씨가 당겨진 겁니다.

결국 채 한 달도 못 버티고 1987년부터 집권해온 벤 알리 튀니지 대통령은 사우디아라비아로 도망쳐야 했습니다. 불길은 이집트로 번졌습니다. 1월 25일 이집트 수도 카이로에 있는 타흐리르(해방) 광장에 수만 명이 모여 무바라크 대통령의 퇴진을 요구합니다. 수백 명의 사상자가 속출하는 가운데서도 대규모 시위는 연일 계속되었고 18일 만에 미국과 각별한 관계였던 무바라크 대통령 또한 30년 동안 독차지했던 권력을 내놓아야 했습니다. 이제 혁명의 기운은 북아프리카와 아랍 전역으로 퍼집니다. 이란 아지즈(자유) 광장으로 수천 명의 시위대가 모여듭니다. 바레인에서는 일주일 넘게 시위가 이어지고 수도 마나마의 중앙광장을 시민들이 점거했다는 소식이 들립니다. 예멘에서는 사복을 입은 경찰관이 친정부 시위대로 가장해 민주화를 요구하는 시위대를 무차별 공격하여 10여 명이 사망했다는 소식도 있습니다. 이라크에서도 수천 명의 시위대가 경찰과 충돌해 9명이 사망했으며 모로코에서도 수만 명이 거리로 나와 헌법 개정을 요구하며 시위를 벌입니다. 8주 동안 민주화 시위를 계속하고 있는 요르단과 수백 명이 도로를 점거한 오만, 튀니지 혁명 이전부터 싸움을 벌여왔던 알제리도 있습니다. 그리고 모두들 불가능하다고 여겼던 나라, 멈추지 않는 정부군의 학살과 수천 명의 희생자 속에서도 혁명의 불길이 꺼질 줄 모르는 리비아가 있습니다.

예측불허의, 모두의 예상을 간단히 뛰어넘는 아랍 민주주의의 전진을 전 세계가 지켜보고 있습니다. 어떤 이들은 이집트에서 무바라크가 물러나고 군부가 권력을 이양받자 1980년 서울의 봄과 5월 광주, 87년 6월 항쟁을 떠올리며 우려를 내비치기도 합니다. 하지만 타흐리르 광장에서의 시위는 지금 이 순간도 계속되고 있습니다. 튀니지 민중은 혁명의 과실을 가로채려했던 총리까지도 물러나게 했습니다. 각본 없이 시작된 드라마는 세계사를 다시 쓰고 있는 중입니다. 정치적 지도자도 조직도 없이, 구체적인 계획도 없이 폭발한 이 저항은 그 자체로 새로운 가능성이자 희망입니다. 페이스북이나 트위터 같은 소셜네트워크가 시위를 조직하고 알리는데 큰 역할을 했다는 이야기를 들으니 2008년 촛불이 떠오릅니다. 어쩌면 아랍 혁명은 우리의 어제가 아니라 다가올 내일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해봅니다. 아랍 민중의 봉기는 독재정권에 대한 반대와 함께 전 지구적인 자본주의, 신자유주의 체제로 인한 경제상황의 악화와 그로 인해 가장 고통 받을 수밖에 없는 이들의 절망에서 비롯되었기 때문입니다. 최근 십여 년간 아랍 국가들의 복지체계가 말할 수 없이 망가졌으며 여기서 국가는 제 역할을 전혀 못했다는 이야기들이 뒤늦게 들려옵니다. 이 혁명이 어떻게 폭압적인 체제를 무너뜨리고 정치적 민주주의를 획득하는가와 함께 새로운 경제질서를 요구하고 또 만들어갈 것인가를 주의 깊게 봐야겠습니다.

또 누구는 북한이나 중국으로 시선을 돌리기도 하는 모양이지만 저는 한국사회를 돌아보게 됩니다. 왜 튀니지의 독재정권이 가장 먼저 무너졌는지에 대해 튀니지의 벤 알리 정권은 억압적인 경찰체제인 반면 이집트와 같은 나라는 좀 더 유연하고 지능적인 독재를 펼쳤기 때문이라는 분석이 있습니다. “권력이 분산된 독재체제는 명확한 독재자의 얼굴을 가진 체제보다 무너뜨리기 어렵다”는 것이지요(‘혁명, 연쇄와 징후’, 르몽드디플로마크, 2011년 2월호). 우리가 직면하고 있는 어려움 또한 마찬가지가 아닐까요. 2008년 촛불 이후 민주주의와 인권에 대한 대대적인 공격이 계속되고 있지만 그 양상은 참으로 다양합니다. 민주적 통제란 굴레를 아예 벗어버린 검찰과 제 철을 만난 듯 활개를 치는 경찰은 공권력을 들이대며 계기가 생길 때마다 사람들의 일상을 위협하고 공포를 조장합니다. 정권과는 대립과 타협을 반복하며 줄다리기를 하지만 자본의 이익과 논리 앞에서는 철저히 복무하는 사법부는 또 어떻습니까. 게다가 너무 쉽게 권력에 길들여진 방송과 권력 길들이기에 흠뻑 취한 보수신문들, 급속도로 퇴행하는 학계와 종교계와 문화계, 학교에서 기업까지 벅찬 싸움은 곳곳에서 벌이지고 있습니다.

더 교활하고 그래서 더 잔인합니다. 봄소식보다 먼저 날아든 쌍용자동차 노동자의 열세 번째 죽음이 그렇습니다. 금속노조 쌍용자동차지부에서 보낸 보도자료에는 ‘희망고문’이라는 말이 나옵니다. 쌍용자동차는 2009년 파업을 끝내며 무급자에 한해 1년 뒤 순환복직을 한다고 합의했습니다. 하지만 약속은 지켜지지 않았고 막연한 희망에 기대어 생활고를 견뎌내던 한 노동자는 파업투쟁으로 인해 우울증을 겪던 부인이 집 베란다에서 투신한지 10개월 만에 세상과 이별했습니다. 장례가 채 마무리되기도 전에 또 한 명의 쌍용 노동자는 자신의 차에 연탄불을 피우고 또 그렇게 세상을 등졌습니다. 개별 사업장에 대한 개입은 하지 않겠다던 정권은 공권력을 투입해 살인적인 진압을 펼쳤고, 법원은 노동자 96명을 구속시키고 아무렇지도 않게 80억 원이 넘는 손배가압류와 110억 원 구상권 청구결정을 내렸습니다. 그러나 정작 합법적으로 합의된 약속을 회사 측은 지킬 생각조차 하지 않는데 어떤 권력집단도 이를 강제할 의지를 보이지 않았습니다. 이 죽음의 행렬 뒤에 권력을 거머쥔 자본의 얼굴이 어른거립니다.

국가기관들을 수하로 부리는, 임기가 없기에 레임덕도 없는 자본은 천천히 그러나 집요하게 우리네 삶을 제 입맛에 맞게 요리합니다. 제1야당에서 무상의료란 말이 등장하고 여기저기서 유행처럼 복지국가가 거론되지만 재벌총수의 야구방망이 폭행에는 떠들썩해도 재벌기업 노동자가 죽어나가는 것은 뉴스에 나올 수 없게 된 한국사회에서는 허망한 소리일 따름입니다. 자본권력에 대한 각성과 성찰, 변화된 권력구조와 지배방식에 대항하는 새로운 저항이 기획되고 실천되지 않는다면 우리의 내일은 그저 예측 가능한 절망일 수밖에 없겠지요.

오는 5월이면 50번째 《사람》이 나옵니다. 6월은 창간 6주년이 됩니다. 누가 《사람》이 어떤 잡지냐고 물으면 우스갯소리로 ‘인권독립잡지’라고 말하곤 했습니다. 인권은 그렇다 치고, 광고료에 의지하지 않고 영리목적의 광고는 아예 싣지 않으니 자본으로부터 자유로운 독립잡지가 분명합니다. 간혹 몇 부나 찍는지 궁금해 하는 인권활동가를 만나기도 합니다. 그럴 때면 영업비밀이라 그럽니다. 잡지나 신문의 발간부수가 영업비밀인 까닭은 그에 따라 광고료가 오르락내리락하기 때문인데 광고에 기대지 않는 《사람》이 발간부수를 밝히지 못할 이유가 없습니다. 다만 창피해서 둘러대는 것이지요. 냉정히 말해 자본으로부터는 독립한 잡지라지만 ‘인권재단 사람’의 기관지를 벗어나지 못하고 있는 것이 사실입니다. 이제 여섯 살이니 경제적으로는 힘들겠지만 정서적으로나마 재단으로부터 독립하고 최소한 제 앞가림은 해야겠습니다. 그래서 올봄부터 한 달에 테이크아웃 커피 한 잔보다 저렴하고 담배 한 갑보다는 겨우 5백 원 비싼 정기구독자를 열심히 모아볼까 합니다. 인권단체들에게 파격적인 할인가에 공동구매도 제안해볼 생각입니다. 한국인권운동의 기관지 《사람》은 너무 야무진 꿈일까요?

아랍 혁명을 보며 불가능한 꿈꾸기를 멈추지 말자는 어느 혁명가의 말을 다시 새겨봅니다.   

 


- <사람> 2011년 3-4월호(49호)에 쓴 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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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 1-2월호가 나왔습니다

  

세상을 두드리는 사람 2011.1.2 - 48호 
세상을두드리는사람 편집부 엮음 / 사람생각 / 2011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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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 호 특집은 '국가인권위원회 사태'를 다뤘습니다. 지난 연말 참 뜨거웠던 문제였는데 금새 잊혀진 듯 합니다. 아직도 꿋꿋이 자리를 지키고 있는 현병철 위원장은 2010년 트위터들이 뽑은 올해의 찌질한 인물에 오세훈, 안상수를 제치고 1위를 찾이하기도 했지요. (바로가기 - 위키트리 선정, 2010 10대 '찌질뉴스'

기륭의 6년 동안의 투쟁기록이 담긴 글과 얼마전 2주기를 맞은 용산참사에 대한 인터뷰 기사도 실렸습니다. 연평도 사건을 바라보는 장애운동 활동가의 다른 시선도 만나볼 수 있습니다.

3-4월호는 한국사회에서 점점 기승을 부리고 있는 혐오발언, 증오범죄, 차별금지법 제정 반대 움직임과 관련해서 '혐오'라는 주제를 가지고 특집을 꾸미고 있습니다. 많은 기대와 관심을 가져주시길...
 

 

 

 

사람이 사람에게 주름잡는 시간
인터뷰 끝나지 않은 용산 | 용산참사 유족 정영신 씨
인권이 내게로 왔다 관계의 비틀림에서 이끌리다
특집 국가인권위원회, 죽거나 나쁘거나
  인권위의 타락과 남겨진 숙제
  너무 멀리 가버린 국가인권위원회
기획 대담 풀뿌리운동과 인권운동의 대화
기고 기륭 6년, 남기고 싶은 이야기
  잇따른 해외파병, 누가 좀 말려줘요
서평 복지국가는 우리의 미래인가
엄마에게 쓰는 편지 남 좋은 일만 시키는 차별
사람답게 연평도 사건이 생각나게 하는 것들
희망을 위한 직접행동 평화, 인권과 생태가 만나는 자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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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름잡는 시간

지금도 있는지 모르겠지만 제가 고등학교를 다닐 적에는 지구과학이란 과목이 있었습니다. 문과를 지망한 학생들은 대입시험에서 물리, 화학, 생물, 지구과학 같은 과학 과목 중 하나를 선택해 시험을 봐야 했죠. 그 지구과학 첫 시간에 선생님이 들어오더니 대뜸 칠판 이쪽 끝에서 저쪽 끝까지 선을 쭉 긋고는 그 위에 점을 하나 딱 찍는 겁니다. 그리고는 이 선이 인류의 역사라면 우리의 일생은 이 점보다도 짧다고 그럽니다. 또 이 선이 우주의 역사라면 지구의 역사 또한 이 점보다도 짧답니다. 지금 와서 생각해보면 그 선생님은 다단계 회사 대표나 사이비종교 교주의 ‘포스’를 물씬 풍기던 분이셨습니다.  결론인 즉은, 이처럼 방대한 범위에서 대입시험에 나올 20문항을 뽑으니 문제가 그 얼마나 쉽겠나, 그러니 다들 지구과학을 선택하라는 것이었지요. 물론 저는 한 치의 망설임도 없이 지구과학을 선택했습니다. 지금 별로 기억에 남는 건 없지만 전혀 ‘과학’같지 않았던 지구과학 수업은 참 재미있었습니다. 그놈의 입시만 아니라면 물리, 화학, 생물, 심지어 수학까지도 아주 흥미로운 학문이란 사실을 십 수 년이 지나서야 깨닫고 있지요. 


지구가 또 한 바퀴 먼 길을 돌았습니다. 2011년 한 해 또 어떤 일들이 우리를 기다리고 있을까요? 칠판에 찍힌 점은커녕 훅하고 불면 분필가루처럼 날아가 버릴 찰나일 수 있지만 지난해에도 참 많은 일이 있었습니다. 연말이면 롤러코스터를 타다가 내린 것 같은 기분이 드는 건 저뿐만이 아니겠지요. 개인적으로는 둘째 아이가 태어났습니다. 지난 연말에 동갑내기들은 이제 마흔 살이라고 구시렁거렸지만 저는 속으로 마흔이든 마흔 다섯이든 빨리 둘째가 커서 어린이집에 다녔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했지요. 그래도 훌쩍 커버린 첫째를 보면 새삼 칠판에 그어진 줄이 떠오르고, 시간 참 빠르다는 걸 실감하게 됩니다.  


왜 나이가 들수록 시간이 더 빨리 가는 것처럼 느껴질까요? 누구는 한 살짜리 아이에게 1년이 1이라고 할 때 백 살 노인에게 1년=1/100인 셈이니 이렇게 계산하면 열 살의 1년=0.1이고 마흔 살 1년=0.025가 되어 열 살 때 비해 마흔 살 때는 시간이 네 배나 빠르게 간다는, 믿어야 할지 말아야 할지 모를 공식을 알려주더군요.


좀 더 과학적인 이야기도 있습니다. 대강 두 가지 이유 때문인데, 먼저 사람에게는 물리적인 시계 말고 생체시계라는 것이 있어 그것이 나이가 들수록 느려진다는 것이지요. 어느 심리학자가 70대 노인 그룹과 20대 젊은이 그룹으로 나누어 눈을 가린 뒤 한 번은 1분, 2분이 지났다고 생각될 때마다 신호를 하게하고, 그 다음에는 1분, 2분마다 얼마나 지났다고 느끼는지 말하게 했습니다. 실험결과 연령에 따라 명확한 차이가 드러났다고 합니다. 노인 그룹은 실제 1분보다 더 긴 시간이 지나서야 1분이 흘렀다고 답하고, 실제로 2분이 흘렀는데 40초밖에 안 됐다고 했다는 것이지요. 물리적인 시간이 흐르는 강물이라면 생체시계가 빠를 때는 강물보다 더 빨리 달리지만 나이가 들수록 생체시계가 느려져 강물보다 뒤처지게 되고, 그러니 상대적으로 강물(시간)이 훨씬 빠르게 느껴진다는 겁니다. 또 다른 이유는 정보량의 차이 때문이라고 합니다. 초행길이 더 멀게 느껴지는 것처럼 매순간 낯선 경험을 하고 새로운 정보를 많이 접하게 되는 어린 시절은 길게 느껴지고 늘 반복되는 일상을 사는 성인이 되면 짧게 느껴진다는 것입니다. 이는 기억 속에서의 시간 감각이 정보량에 따라 재구성되기 때문이라네요.


머리를 많이 쓸수록 뇌에 주름이 많이 잡힌다는 말을 들어봤는데 시간에도 주름이 잡히는 모양입니다. 굳이 이런 이야기가 아니더라도, 벌써 100년 전에 발표됐다지만 여전히 알쏭달쏭한 아인슈타인의 상대성이론이 아니라도 우리는 저마다 다른 시간을 갖고 있거나 같은 시간을 다르게 살고 있다는 것을 알고 있습니다. 사람에 따라, 장소에 따라, 처한 조건 그리고 기분에 따라 1분 60초, 1년 365일이 다 같을 수 없는 것이죠.


그럼 안 해본 싸움 없이 다 해봤다는 기륭의 1895일은 어떠했을까요? 용산참사로 가족과 동지를 잃은 이들이 장례식까지 견뎌야 했던 355일은 또 어떤 시간이었을까요? 시답지 않게 시간에 대해 이러저러한 생각을 하게 된 계기는 이번호 <사람>에 실린 기륭과 용산에 대한 글 때문이었습니다.


2010년 막바지, 6년간의 질기고 질긴 싸움 끝에 마침내 사측과 조인식을 했다는 기륭 소식을 접하고는 ‘쓰잘~데 없지만 그래도 남기고 싶은 이야기’를 써달라고 부탁했습니다. 이 난해한(?) 요구에 성심껏 답해준 김소연 님의 글에는 1895라는 숫자를 만들어낸 시간의 주름들이 자글자글합니다. 방귀를 뀌고 잠꼬대를 하며, 단식을 하다  나물을 캐고, 안동찜닭을 먹으며 싸워온 그 주름들은 칠판을 가로지른 한 줄 선으로는 표현할 수 없는 그 무엇일 테지요.


이제 곧 용산참사가 일어난 지 두 해째가 됩니다. 용산참사 유족 정영신 님이 인터뷰에서 했던 “정말 후회되는 건 장례식을 치룬 거”라는 말이 참 아프게 다가옵니다. 우리에게 용산참사가 일어나고 장례를 치르기까지의 1년, 그리고 그로부터 또 1년은 과연 얼마큼의 길이, 얼마큼의 무게일까요?


늦어진 마감에 개인적인 사정까지 겹쳐 해를 넘기가 쉽지 않았습니다. 폭설과 한파로 한반도가 다 몸살입니다. 수십만 마리가 살처분되었다는 가축들이며 4대강 사업으로 소리 소문없이 죽어가는 생명들은 어떤가요. 이 살처분이란 말을 들을 때마다 저는 부수적 피해(collateral damage)라는 단어가 떠오릅니다. 미군이 이라크에서 민간인을 죽여놓고는 전투 중에는 불가피하게 따르는 피해가 있다며 이를 부수적 피해라고 했다지요. 미국이나 한국이나 권력을 손에 쥔 자들은 늘 그런 식이지요.


올 한 해 또 얼마나 많은 ‘부수적 피해’와 부대끼며 결코 누구도 부수적인 존재일 수 없음을 증명해야 할지 모르겠습니다. 다만, 그 가운데 더디 가는 생체시계를 너무 탓하지 마시길. 눈가나 이마 혹은 뱃살 어딘가에 새로 잡힐 주름에도 부디 노여워 마시길.


- <사람> 48호에 실은 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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