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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코메디언의 죽음

코메디가 아니라 코미디가 맞는 말이고 그래서 코메디언이 아니라 코미디언comedian이 맞는 말이라는 사실을 안 지 얼마되지 않았다. 그래도 자장면이 아니라 짜장면이라고 불러야 제맛인 것처럼 그는 왠지 코메디언이라고 불어야 할 것 같다. 요즘은 다들 개그, 개그맨이라고 하지만 개그와 코미디는 마치 칼라사진과 흑백사진만큼이나 다른 느낌이다. 

 

비실비실 배삼룡. 

 

TV 오락프로에서 연예인, 아이돌 흉내내는 아이들을 볼 때마다 조금 불편하고, 내 아이는 저런 짓 안 했으면 좋겠다 싶은 생각을 하지만, 고백하건데 아들 둘에 막내인 나는 배삼룡 흉내로 가족들의 귀여움을 꽤나 많이 받았다. 다섯 살 무렵 우리 집에도 드디어 텔레비젼이라는 게 들어왔고 그 당시 그가 어떤 코미디를 했는지는 하나도 기억나지 않지만 늦은 저녁 이부자리에서 내가 배삼룡 흉내를 낼 때면 웃으시던 부모님 얼굴만큼은 눈에 선하다.   

 

국민학교를 들어가고(난 초등학교가 아니라 국민학교를 다녔다) 토요일인가 아니면 일요일인가, <웃으면 복이와요>를 틀어놓고 아무 근심걱정 없이 바보상자를 들여다보고 있던 그 시간. 그때도 배삼룡, 구봉서, 서영춘이 나와서 뭘 했는지는 자세히 기억나지 않지만 그 오후의 나른함만은 기억에 남아 있다. 어쩌면 행복이라는 단어를 생각할 때 가장 먼저 떠오르는 풍경이지 않나 싶다.  

 

바보연기, 슬랩스틱이라고도 한다는 몸개그의 원조를 꼽히며 한국의 찰리 채플린으로 불렸던 그는 80년대 종적을 감췄다. 빵구똥구가 불편한 분들처럼 저질로 권력을 잡은 전두환 신군부는 그의 코미디를 저질이라며 출연을 못하게 했다. 누가 저질이고 누가 빵꾸똥구인지야 새삼 말할 필요도 없지만, 그래서인지 그를 생각할 때면, 그의 코미디 앞에 '슬픈'이란 형용사를 붙여야 어울릴 것 같은 느낌이다.  

 

말년에 외로웠고 불우하였으니, 장례과정에서도 병원과 입원,치료,장례 등의 비용 문제로 마찰이 있었던 모양이다.  

 

난 그와 생전에 만나본 적도 없고, 철이 들고 그를 좋아한다거나 존경한다는 생각도 한번 해본 적이 없지만 왠지 그의 죽음 앞에 미안하다. 뭔가 많이 빚을 진 느낌인데 그 부채를 상환받을 당사자가 훌쩍 떠나버린 것이다.  

 

내 할아버지, 아버지와 생김새와 체구가 닮았고 그래서 나와도 많이 닮은 배삼룡. 오늘이 발인이라고 한다.  내 동심의 우상, 내 유년의 슈퍼스타 배삼룡의 영전에 삼가 술 한 잔 올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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