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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랍 혁명과 불가능한 꿈

지난해 12월 17일, 튀니지 시디부지드라는 지역에서 스물여섯 살 청년이 자기 몸에 불을 질렀습니다. 이 청년은 시디부지드 지역에서 오랫동안 뿌리내려온 부족 출신이라 합니다. ‘부아지지’라는 이름의 이 청년이 행상수레를 빼앗기며 여성 공무원에게 뺨까지 맞았다는 소식이 전해지자 그가 겪은 모욕은 부족 전체의 분노로 바뀌었습니다. 이틀 뒤 시디부지드 청년들이 거리로 나섰고 경찰과 충돌이 발생하자 시위는 인근 도시로 걷잡을 수 없이 확대되었습니다. 벌써 몇 달째 이어지고 있는 아랍 혁명의 불씨가 당겨진 겁니다.

결국 채 한 달도 못 버티고 1987년부터 집권해온 벤 알리 튀니지 대통령은 사우디아라비아로 도망쳐야 했습니다. 불길은 이집트로 번졌습니다. 1월 25일 이집트 수도 카이로에 있는 타흐리르(해방) 광장에 수만 명이 모여 무바라크 대통령의 퇴진을 요구합니다. 수백 명의 사상자가 속출하는 가운데서도 대규모 시위는 연일 계속되었고 18일 만에 미국과 각별한 관계였던 무바라크 대통령 또한 30년 동안 독차지했던 권력을 내놓아야 했습니다. 이제 혁명의 기운은 북아프리카와 아랍 전역으로 퍼집니다. 이란 아지즈(자유) 광장으로 수천 명의 시위대가 모여듭니다. 바레인에서는 일주일 넘게 시위가 이어지고 수도 마나마의 중앙광장을 시민들이 점거했다는 소식이 들립니다. 예멘에서는 사복을 입은 경찰관이 친정부 시위대로 가장해 민주화를 요구하는 시위대를 무차별 공격하여 10여 명이 사망했다는 소식도 있습니다. 이라크에서도 수천 명의 시위대가 경찰과 충돌해 9명이 사망했으며 모로코에서도 수만 명이 거리로 나와 헌법 개정을 요구하며 시위를 벌입니다. 8주 동안 민주화 시위를 계속하고 있는 요르단과 수백 명이 도로를 점거한 오만, 튀니지 혁명 이전부터 싸움을 벌여왔던 알제리도 있습니다. 그리고 모두들 불가능하다고 여겼던 나라, 멈추지 않는 정부군의 학살과 수천 명의 희생자 속에서도 혁명의 불길이 꺼질 줄 모르는 리비아가 있습니다.

예측불허의, 모두의 예상을 간단히 뛰어넘는 아랍 민주주의의 전진을 전 세계가 지켜보고 있습니다. 어떤 이들은 이집트에서 무바라크가 물러나고 군부가 권력을 이양받자 1980년 서울의 봄과 5월 광주, 87년 6월 항쟁을 떠올리며 우려를 내비치기도 합니다. 하지만 타흐리르 광장에서의 시위는 지금 이 순간도 계속되고 있습니다. 튀니지 민중은 혁명의 과실을 가로채려했던 총리까지도 물러나게 했습니다. 각본 없이 시작된 드라마는 세계사를 다시 쓰고 있는 중입니다. 정치적 지도자도 조직도 없이, 구체적인 계획도 없이 폭발한 이 저항은 그 자체로 새로운 가능성이자 희망입니다. 페이스북이나 트위터 같은 소셜네트워크가 시위를 조직하고 알리는데 큰 역할을 했다는 이야기를 들으니 2008년 촛불이 떠오릅니다. 어쩌면 아랍 혁명은 우리의 어제가 아니라 다가올 내일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해봅니다. 아랍 민중의 봉기는 독재정권에 대한 반대와 함께 전 지구적인 자본주의, 신자유주의 체제로 인한 경제상황의 악화와 그로 인해 가장 고통 받을 수밖에 없는 이들의 절망에서 비롯되었기 때문입니다. 최근 십여 년간 아랍 국가들의 복지체계가 말할 수 없이 망가졌으며 여기서 국가는 제 역할을 전혀 못했다는 이야기들이 뒤늦게 들려옵니다. 이 혁명이 어떻게 폭압적인 체제를 무너뜨리고 정치적 민주주의를 획득하는가와 함께 새로운 경제질서를 요구하고 또 만들어갈 것인가를 주의 깊게 봐야겠습니다.

또 누구는 북한이나 중국으로 시선을 돌리기도 하는 모양이지만 저는 한국사회를 돌아보게 됩니다. 왜 튀니지의 독재정권이 가장 먼저 무너졌는지에 대해 튀니지의 벤 알리 정권은 억압적인 경찰체제인 반면 이집트와 같은 나라는 좀 더 유연하고 지능적인 독재를 펼쳤기 때문이라는 분석이 있습니다. “권력이 분산된 독재체제는 명확한 독재자의 얼굴을 가진 체제보다 무너뜨리기 어렵다”는 것이지요(‘혁명, 연쇄와 징후’, 르몽드디플로마크, 2011년 2월호). 우리가 직면하고 있는 어려움 또한 마찬가지가 아닐까요. 2008년 촛불 이후 민주주의와 인권에 대한 대대적인 공격이 계속되고 있지만 그 양상은 참으로 다양합니다. 민주적 통제란 굴레를 아예 벗어버린 검찰과 제 철을 만난 듯 활개를 치는 경찰은 공권력을 들이대며 계기가 생길 때마다 사람들의 일상을 위협하고 공포를 조장합니다. 정권과는 대립과 타협을 반복하며 줄다리기를 하지만 자본의 이익과 논리 앞에서는 철저히 복무하는 사법부는 또 어떻습니까. 게다가 너무 쉽게 권력에 길들여진 방송과 권력 길들이기에 흠뻑 취한 보수신문들, 급속도로 퇴행하는 학계와 종교계와 문화계, 학교에서 기업까지 벅찬 싸움은 곳곳에서 벌이지고 있습니다.

더 교활하고 그래서 더 잔인합니다. 봄소식보다 먼저 날아든 쌍용자동차 노동자의 열세 번째 죽음이 그렇습니다. 금속노조 쌍용자동차지부에서 보낸 보도자료에는 ‘희망고문’이라는 말이 나옵니다. 쌍용자동차는 2009년 파업을 끝내며 무급자에 한해 1년 뒤 순환복직을 한다고 합의했습니다. 하지만 약속은 지켜지지 않았고 막연한 희망에 기대어 생활고를 견뎌내던 한 노동자는 파업투쟁으로 인해 우울증을 겪던 부인이 집 베란다에서 투신한지 10개월 만에 세상과 이별했습니다. 장례가 채 마무리되기도 전에 또 한 명의 쌍용 노동자는 자신의 차에 연탄불을 피우고 또 그렇게 세상을 등졌습니다. 개별 사업장에 대한 개입은 하지 않겠다던 정권은 공권력을 투입해 살인적인 진압을 펼쳤고, 법원은 노동자 96명을 구속시키고 아무렇지도 않게 80억 원이 넘는 손배가압류와 110억 원 구상권 청구결정을 내렸습니다. 그러나 정작 합법적으로 합의된 약속을 회사 측은 지킬 생각조차 하지 않는데 어떤 권력집단도 이를 강제할 의지를 보이지 않았습니다. 이 죽음의 행렬 뒤에 권력을 거머쥔 자본의 얼굴이 어른거립니다.

국가기관들을 수하로 부리는, 임기가 없기에 레임덕도 없는 자본은 천천히 그러나 집요하게 우리네 삶을 제 입맛에 맞게 요리합니다. 제1야당에서 무상의료란 말이 등장하고 여기저기서 유행처럼 복지국가가 거론되지만 재벌총수의 야구방망이 폭행에는 떠들썩해도 재벌기업 노동자가 죽어나가는 것은 뉴스에 나올 수 없게 된 한국사회에서는 허망한 소리일 따름입니다. 자본권력에 대한 각성과 성찰, 변화된 권력구조와 지배방식에 대항하는 새로운 저항이 기획되고 실천되지 않는다면 우리의 내일은 그저 예측 가능한 절망일 수밖에 없겠지요.

오는 5월이면 50번째 《사람》이 나옵니다. 6월은 창간 6주년이 됩니다. 누가 《사람》이 어떤 잡지냐고 물으면 우스갯소리로 ‘인권독립잡지’라고 말하곤 했습니다. 인권은 그렇다 치고, 광고료에 의지하지 않고 영리목적의 광고는 아예 싣지 않으니 자본으로부터 자유로운 독립잡지가 분명합니다. 간혹 몇 부나 찍는지 궁금해 하는 인권활동가를 만나기도 합니다. 그럴 때면 영업비밀이라 그럽니다. 잡지나 신문의 발간부수가 영업비밀인 까닭은 그에 따라 광고료가 오르락내리락하기 때문인데 광고에 기대지 않는 《사람》이 발간부수를 밝히지 못할 이유가 없습니다. 다만 창피해서 둘러대는 것이지요. 냉정히 말해 자본으로부터는 독립한 잡지라지만 ‘인권재단 사람’의 기관지를 벗어나지 못하고 있는 것이 사실입니다. 이제 여섯 살이니 경제적으로는 힘들겠지만 정서적으로나마 재단으로부터 독립하고 최소한 제 앞가림은 해야겠습니다. 그래서 올봄부터 한 달에 테이크아웃 커피 한 잔보다 저렴하고 담배 한 갑보다는 겨우 5백 원 비싼 정기구독자를 열심히 모아볼까 합니다. 인권단체들에게 파격적인 할인가에 공동구매도 제안해볼 생각입니다. 한국인권운동의 기관지 《사람》은 너무 야무진 꿈일까요?

아랍 혁명을 보며 불가능한 꿈꾸기를 멈추지 말자는 어느 혁명가의 말을 다시 새겨봅니다.   

 


- <사람> 2011년 3-4월호(49호)에 쓴 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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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식에 실패하는 국군

쫄병시절 우리끼리 하던 군대격언이 있습니다. 
 
"무능한 지휘관은 적보다 무섭다." 

당시 무서운 지휘관 참 많았지요. 또 이런 격언도 있었습니다.

"작전에 실패한 군인은 용서해도 배식에 실패한 군인은 용서받지 못한다."

배식의 핵심은 공정성과 투명성입니다. 부족한 밥을 똑같이 나누는 것(고참이 좀 덜 먹기도 하고), 그에 앞서 오늘 밥이 얼마큼이고 뭐가 얼마나 모자라고 또 남는지 공개하고 지혜를 모으는 것. 그것이 선행되지 않으면 전우끼리의 신뢰는, 아니 전우라는 말 자체가 성립될 수 없겠죠.

사랑받는 군, 자랑스런 군까지 못 가더라도 최소한 국민의 군대라면 이 또한 마찬가지입니다. 며칠전까지 작전 동영상을 알아서 언론에 배포하던 군이 이제는 기밀이라며 해경에게도 작전 동영상을 주지 않는다네요.

국민이 믿지 못하는 군대, 신뢰를 받지 못하는 군대는 어쩌면 적보다, 무능한 군대보다 더 위험하지 않을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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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뷰스앤뉴스] 국방부, 1일엔 "교전 없었다", 7일엔 "있었다"

석해균 선장 몸에서 해군 총알 나오자 당황, 은폐의혹 자초


2011-02-07 20:10:25


국방부가 7일 해경 특별수사본부가 석해균 삼호주얼리 선장의 몸에서 해군 총탄이 발견됐다고 발표하자 크게 당황해하며 1주일 전 주장을 180도 바꿔 은폐 의혹이 확산되고 있다.

지난 1일 다음 아고라에는 '석 선장 과연 해적이 쐈나', '석해균 선장, 아군 UDT 소지 MP5 총상으로 밝혀져', '석 선장 총상 6발, 해적이 쐈나, 아군 오발인가?' 등의 글이 줄줄이 올라왔다.

이들은 석 선장이 해적의 AK소총에 맞았다는 국방부 발표에 대해 "해적의 AK소총에 맞은 것이라면 몸이 산산조각 나야하는데 석 선장은 총탄이 몸 속에 박혀 있다"며 "우리 UDT 대원의 MP5 기관총에 맞았을 가능성이 높다"고 의혹을 제기했다.

이들은 의료진이 총탄 1발을 분실한 데 대해서도 "가장 중요한 물증임에도 불구하고 정부가 그렇게 소홀히 했을 수 있겠느냐"며 "일부러 축소 은폐하려는 것 아닌가"라는 의혹도 제기했다.

그러자 국방부는 당일 다음 아고라 게시판에 올린 '석 선장의 몸에서 꺼낸 총알 관련 사실관계를 알려드립니다'라는 제목의 반박글을 통해 "석 선상의 총상은 해적이 쏜 총에 의한 것"이라며 "당시 석 선장이 인질로 잡혀 있던 장소에선 교전이 일어난 사실이 없는 것으로 확인됐다"고 주장했다.

국방부는 또 "국립과학수사연구소에서 정확한 탄두분석 결과가 나오기 전에 미리 예단하는 행위를 삼가해달라"고 경고했다.

한나라당 안형환 대변인은 더 나아가 지난 5일 논평을 통해 "석해균 선장에 대해서 우리 UDT 대원이 사격을 했다는 허위사실이 인터넷에 떠돌았다"며 "버젓이 그 주장을 하는 사람들은 대체 어느 나라 사람들이고, 어떤 의도를 가지고 있는지 분노하지 않을 수 없다"고 비난했다. 그는 "문제는 이런 음모론을 믿는 국민들이 일부나마 있다는 것"이라며 "제가 만나본 사람들은, 이런 주장을 한 사람들은 찾아서 사법처리를 해야 하지 않겠냐는 주장도 했다. 우리 사회의 신뢰를 실추시키고 갈등을 부추기려는 간첩의 소행이나 다름이 없다는 말들도 있었다"며 네티즌들의 의혹 제기를 '간첩 소행'에 비유하기까지 했다.

국방부는 그러나 7일 해경 특별수사본부가 석 선장의 몸에서 해군 총알이 발견됐다고 발표하자, 크게 당황해 하며 다음 아고라에 180도 다른 내용의 해명 글을 올렸다.

국방부는 "1월 21일 새벽 아덴만 여명작전간 UDT 작전팀이 선교로 진입할 당시 석 선장은 이미 해적이 쏜 총에 의해 총상을 입고 바닥에 쓰러져 있는 상태였다"며 "UDT 작전팀은 선교로 진입후 해적과 교전시 근거리에서 정확하게 조준사격을 실시하여 해적 7명을 사살하였다"며 석 선장이 쓰러져 있는 선교에서 '교전'이 벌어졌다고 주장했다.

국방부는 "해경에서 발표한 UDT 작전팀의 권총 탄환으로 추정된다는 1발은 교전간 발생한 유탄일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으나 추가 확인이 필요한 사안"이라며 "정확한 것은 현재 조사중인 국과수 최종 감식결과가 나와야 확인될 수 있을 것"이라고 덧붙였다.

그렇게 도도하던 국방부가 불과 1주일 사이에 말을 180도 바꾼 것. 국방부는 이와 함께 아고라에 실었던 지난 1일자 반박글을 아무런 해명없이 신속히 삭제하기까지 했다.

인터넷상에 각종 의혹이 떠돌게 만든 '원인 제공자'가 다름아닌 정부여당인 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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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 1-2월호가 나왔습니다

  

세상을 두드리는 사람 2011.1.2 - 48호 
세상을두드리는사람 편집부 엮음 / 사람생각 / 2011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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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 호 특집은 '국가인권위원회 사태'를 다뤘습니다. 지난 연말 참 뜨거웠던 문제였는데 금새 잊혀진 듯 합니다. 아직도 꿋꿋이 자리를 지키고 있는 현병철 위원장은 2010년 트위터들이 뽑은 올해의 찌질한 인물에 오세훈, 안상수를 제치고 1위를 찾이하기도 했지요. (바로가기 - 위키트리 선정, 2010 10대 '찌질뉴스'

기륭의 6년 동안의 투쟁기록이 담긴 글과 얼마전 2주기를 맞은 용산참사에 대한 인터뷰 기사도 실렸습니다. 연평도 사건을 바라보는 장애운동 활동가의 다른 시선도 만나볼 수 있습니다.

3-4월호는 한국사회에서 점점 기승을 부리고 있는 혐오발언, 증오범죄, 차별금지법 제정 반대 움직임과 관련해서 '혐오'라는 주제를 가지고 특집을 꾸미고 있습니다. 많은 기대와 관심을 가져주시길...
 

 

 

 

사람이 사람에게 주름잡는 시간
인터뷰 끝나지 않은 용산 | 용산참사 유족 정영신 씨
인권이 내게로 왔다 관계의 비틀림에서 이끌리다
특집 국가인권위원회, 죽거나 나쁘거나
  인권위의 타락과 남겨진 숙제
  너무 멀리 가버린 국가인권위원회
기획 대담 풀뿌리운동과 인권운동의 대화
기고 기륭 6년, 남기고 싶은 이야기
  잇따른 해외파병, 누가 좀 말려줘요
서평 복지국가는 우리의 미래인가
엄마에게 쓰는 편지 남 좋은 일만 시키는 차별
사람답게 연평도 사건이 생각나게 하는 것들
희망을 위한 직접행동 평화, 인권과 생태가 만나는 자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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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름잡는 시간

지금도 있는지 모르겠지만 제가 고등학교를 다닐 적에는 지구과학이란 과목이 있었습니다. 문과를 지망한 학생들은 대입시험에서 물리, 화학, 생물, 지구과학 같은 과학 과목 중 하나를 선택해 시험을 봐야 했죠. 그 지구과학 첫 시간에 선생님이 들어오더니 대뜸 칠판 이쪽 끝에서 저쪽 끝까지 선을 쭉 긋고는 그 위에 점을 하나 딱 찍는 겁니다. 그리고는 이 선이 인류의 역사라면 우리의 일생은 이 점보다도 짧다고 그럽니다. 또 이 선이 우주의 역사라면 지구의 역사 또한 이 점보다도 짧답니다. 지금 와서 생각해보면 그 선생님은 다단계 회사 대표나 사이비종교 교주의 ‘포스’를 물씬 풍기던 분이셨습니다.  결론인 즉은, 이처럼 방대한 범위에서 대입시험에 나올 20문항을 뽑으니 문제가 그 얼마나 쉽겠나, 그러니 다들 지구과학을 선택하라는 것이었지요. 물론 저는 한 치의 망설임도 없이 지구과학을 선택했습니다. 지금 별로 기억에 남는 건 없지만 전혀 ‘과학’같지 않았던 지구과학 수업은 참 재미있었습니다. 그놈의 입시만 아니라면 물리, 화학, 생물, 심지어 수학까지도 아주 흥미로운 학문이란 사실을 십 수 년이 지나서야 깨닫고 있지요. 


지구가 또 한 바퀴 먼 길을 돌았습니다. 2011년 한 해 또 어떤 일들이 우리를 기다리고 있을까요? 칠판에 찍힌 점은커녕 훅하고 불면 분필가루처럼 날아가 버릴 찰나일 수 있지만 지난해에도 참 많은 일이 있었습니다. 연말이면 롤러코스터를 타다가 내린 것 같은 기분이 드는 건 저뿐만이 아니겠지요. 개인적으로는 둘째 아이가 태어났습니다. 지난 연말에 동갑내기들은 이제 마흔 살이라고 구시렁거렸지만 저는 속으로 마흔이든 마흔 다섯이든 빨리 둘째가 커서 어린이집에 다녔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했지요. 그래도 훌쩍 커버린 첫째를 보면 새삼 칠판에 그어진 줄이 떠오르고, 시간 참 빠르다는 걸 실감하게 됩니다.  


왜 나이가 들수록 시간이 더 빨리 가는 것처럼 느껴질까요? 누구는 한 살짜리 아이에게 1년이 1이라고 할 때 백 살 노인에게 1년=1/100인 셈이니 이렇게 계산하면 열 살의 1년=0.1이고 마흔 살 1년=0.025가 되어 열 살 때 비해 마흔 살 때는 시간이 네 배나 빠르게 간다는, 믿어야 할지 말아야 할지 모를 공식을 알려주더군요.


좀 더 과학적인 이야기도 있습니다. 대강 두 가지 이유 때문인데, 먼저 사람에게는 물리적인 시계 말고 생체시계라는 것이 있어 그것이 나이가 들수록 느려진다는 것이지요. 어느 심리학자가 70대 노인 그룹과 20대 젊은이 그룹으로 나누어 눈을 가린 뒤 한 번은 1분, 2분이 지났다고 생각될 때마다 신호를 하게하고, 그 다음에는 1분, 2분마다 얼마나 지났다고 느끼는지 말하게 했습니다. 실험결과 연령에 따라 명확한 차이가 드러났다고 합니다. 노인 그룹은 실제 1분보다 더 긴 시간이 지나서야 1분이 흘렀다고 답하고, 실제로 2분이 흘렀는데 40초밖에 안 됐다고 했다는 것이지요. 물리적인 시간이 흐르는 강물이라면 생체시계가 빠를 때는 강물보다 더 빨리 달리지만 나이가 들수록 생체시계가 느려져 강물보다 뒤처지게 되고, 그러니 상대적으로 강물(시간)이 훨씬 빠르게 느껴진다는 겁니다. 또 다른 이유는 정보량의 차이 때문이라고 합니다. 초행길이 더 멀게 느껴지는 것처럼 매순간 낯선 경험을 하고 새로운 정보를 많이 접하게 되는 어린 시절은 길게 느껴지고 늘 반복되는 일상을 사는 성인이 되면 짧게 느껴진다는 것입니다. 이는 기억 속에서의 시간 감각이 정보량에 따라 재구성되기 때문이라네요.


머리를 많이 쓸수록 뇌에 주름이 많이 잡힌다는 말을 들어봤는데 시간에도 주름이 잡히는 모양입니다. 굳이 이런 이야기가 아니더라도, 벌써 100년 전에 발표됐다지만 여전히 알쏭달쏭한 아인슈타인의 상대성이론이 아니라도 우리는 저마다 다른 시간을 갖고 있거나 같은 시간을 다르게 살고 있다는 것을 알고 있습니다. 사람에 따라, 장소에 따라, 처한 조건 그리고 기분에 따라 1분 60초, 1년 365일이 다 같을 수 없는 것이죠.


그럼 안 해본 싸움 없이 다 해봤다는 기륭의 1895일은 어떠했을까요? 용산참사로 가족과 동지를 잃은 이들이 장례식까지 견뎌야 했던 355일은 또 어떤 시간이었을까요? 시답지 않게 시간에 대해 이러저러한 생각을 하게 된 계기는 이번호 <사람>에 실린 기륭과 용산에 대한 글 때문이었습니다.


2010년 막바지, 6년간의 질기고 질긴 싸움 끝에 마침내 사측과 조인식을 했다는 기륭 소식을 접하고는 ‘쓰잘~데 없지만 그래도 남기고 싶은 이야기’를 써달라고 부탁했습니다. 이 난해한(?) 요구에 성심껏 답해준 김소연 님의 글에는 1895라는 숫자를 만들어낸 시간의 주름들이 자글자글합니다. 방귀를 뀌고 잠꼬대를 하며, 단식을 하다  나물을 캐고, 안동찜닭을 먹으며 싸워온 그 주름들은 칠판을 가로지른 한 줄 선으로는 표현할 수 없는 그 무엇일 테지요.


이제 곧 용산참사가 일어난 지 두 해째가 됩니다. 용산참사 유족 정영신 님이 인터뷰에서 했던 “정말 후회되는 건 장례식을 치룬 거”라는 말이 참 아프게 다가옵니다. 우리에게 용산참사가 일어나고 장례를 치르기까지의 1년, 그리고 그로부터 또 1년은 과연 얼마큼의 길이, 얼마큼의 무게일까요?


늦어진 마감에 개인적인 사정까지 겹쳐 해를 넘기가 쉽지 않았습니다. 폭설과 한파로 한반도가 다 몸살입니다. 수십만 마리가 살처분되었다는 가축들이며 4대강 사업으로 소리 소문없이 죽어가는 생명들은 어떤가요. 이 살처분이란 말을 들을 때마다 저는 부수적 피해(collateral damage)라는 단어가 떠오릅니다. 미군이 이라크에서 민간인을 죽여놓고는 전투 중에는 불가피하게 따르는 피해가 있다며 이를 부수적 피해라고 했다지요. 미국이나 한국이나 권력을 손에 쥔 자들은 늘 그런 식이지요.


올 한 해 또 얼마나 많은 ‘부수적 피해’와 부대끼며 결코 누구도 부수적인 존재일 수 없음을 증명해야 할지 모르겠습니다. 다만, 그 가운데 더디 가는 생체시계를 너무 탓하지 마시길. 눈가나 이마 혹은 뱃살 어딘가에 새로 잡힐 주름에도 부디 노여워 마시길.


- <사람> 48호에 실은 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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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늘을 듣는다-한 에이즈인권활동가의 삶과 노래

격월간<사람>에 연재되었던 윤가브리엘의 노래 이야기가 책으로 묶여 나왔습니다.
다음 달에는 북콘서트도 예정되어 있구요. 
호모포비아가 난무하는 작금에 더욱 더 많은 애정과 관심 부탁드립니다.
- 아래는 북콘서트 웹자보와 신간 보도자료입니다.

->책 사러 가기^^
 



 

 

사람생각 신간안내

 

 

 

 

하늘을 듣는다

| 한 에이즈인권활동가의 삶과 노래 |

 

윤 가브리엘 지음

 

* 책 판매 수익금은 인권센터건립에 사용되며 12월 8일 북 콘서트도 열립니다.

“열다섯 시간을 숨이 턱에 차도록 일하다 지쳐 자취방에 돌아갈 때 내 지쳐버린 밤을 노래가 달래주었다. 성 정체성으로 인한 고민을 하며 갈 길이 어디인지 몰라 할 때 가려진 나의 길을 노래가 찾아주었다. 에이즈란 병마가 내 몸을 가시나무처럼 앙상하게 만들어 뼛속까지 외로울 때 노래가 슬퍼해주었다.”

 

“동성애자를 공공연히 또는 은밀히 변태나 정신병자 취급하는 다수자의 인식은 크게 변하지 않았다. 동성애자이자 HIV/AIDS 감염인 그리고 장애인이라는 최악의 조건을 다 갖춘 저자는 이러한 현실 앞에 무릎 꿇기도 하지만 우뚝 일어선다. 그리고 자신의 꿈과 고통, 희망을 절절히 노래한다. 그리하여 이 노래는 우리 모두의 가슴을 친다.” 조국(서울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

 

* 도서출판 사람생각은 재단법인 인권재단 사람에서 운영하고 있습니다.

◎ 지은이 윤 가브리엘

 

윤 가브리엘은 동성애자이며 에이즈 감염인 그리고 에이즈인권활동가이다.

열다섯 살에 집을 나와 20년 가까이 봉제공장에서 일했다. 민주화에 대한 열망으로 온 나라가 뜨거웠던 80년대, 평화시장에서 실밥을 뜯던 가브리엘의 관심사는 20년 전 전태일과 마찬가지로 하루빨리 봉제 기술자가 되는 것이었다.

사춘기부터 시작된 성 정체성에 대한 번민과 좌절에 아파할 뿐 아니라 가난과 냉대를 혼자 사려야 했다. 열다섯 시간이 넘는 살인적인 노동에 고달파하고 재단판 밑에서 괴롭힘을 당할 때 그를 보듬어준 이들은 미싱사 누나들뿐이었다. 새천년으로 들떠 있던 때 그에게 에이즈 바이러스가 찾아왔다. 연이어 크고 작은 질병이 그를 공격했다. 그중에서 가장 이해할 수 없는 것은 ‘사회적 차별’이라는 질병이었다. 그는 환자이지만 누워 있지만은 않았다. 동성애자인권연대의 문을 두드려 인권운동이라는 새로운 세상으로 들어섰고 에이즈 감염인에 대한 국가의 방치와 제약회사의 착취에 저항하기 위해 HIV/AIDS인권연대 나누리+를 만들었다.

가브리엘은 7년 전부터, 비감염인에게 그리 대수롭지 않은 바이러스지만 에이즈 환자에게는 폐렴이나 중추신경계의 장애를 가져올 수 있어 치명적인 CMV 바이러스와 질긴 싸움을 하는 한편 에이즈인권 모임의 대표로 활동의 최전선에 서 있다. 건강세상네트워크의 환자권리상과 HIV/AIDS 감염인 단체 러브포원, 카노스 등이 공동으로 수여한 감염인 인권상, 2009년 한국인권재단 인권홀씨상을 수상했다.

이 책은 인터넷방송 참세상 별라디오의 DJ로 활동하던 것이 계기가 되어 격월간 인권잡지『세상을 두드리는 사람』에 연재한 에세이를 엮은 것이다.

 

 

 

 

지은이윤 가브리엘 판형152 * 210 가격13,000원 면수240쪽

발행일2010년 11월 24일 ISBN978-89-88686-54-6 펴낸곳도서출판 사람생각

주문 전화02) 363-5855 이메일 dshrfund@hanmail.net

기획․편집 김정아(010-2640-1895)

◎ 차례

 

서문 기억 속의 나, 노래 속의 나

추천사 진솔한 다큐멘터리 같은 위로와 격려 - 김조광수

 

1_ 떠도는 아이

방랑자

붉은 노을 속으로

집을 떠나다

재단판 밑‘섬집 아기’

 

2_ 미싱이 돌고 나의 노래도 돈다

열다섯 시간의 노동, 사람 그리고 노래

아버지의 죽음

미싱은 잘도 도네 돌아가네

 

3_ 게이, 장밋빛 인생을 노래하고 싶었다

가리워진 길

낙원상가 데뷔

아 하늘이 밉다 목이 타온다

슬금슬금 다가가는 눈빛들

장밋빛 인생

 

4_ 나, HIV/AIDS 감염인이 되었다

어머니 걱정 마세요

쉼터, 같은 아픔의 사람들

큰형의 야속한 죽음

하늘을 듣는다

늘어가는 바이러스 HIV

거대세포바이러스

망막을 붙잡기 위해

 

5_ 그래도 나는 희망을 노래한다

새로운 세상으로 들어서다

나누리+

모두에게 접근권을

상덕이

용수철 같은 한영애의 목소리

어려워 마! 두려워 마!

환영받지 못할 세 개의 타이틀

푸제온, 말도 안 돼!

 

6_ 고마운 사람들, 엘라에게 보내는 편지

 

7_ 가브리엘의 에이즈 묻고 답하기

 

 

 

◎ 책 소개

 

“이 책을 이 땅의 모든 HIV/AIDS 감염인들과

성소수자들(동성애자, 양성애자, 성전환자)

그리고 한영애님께 바칩니다.”

 

윤 가브리엘은 2008년 7월부터 7개월 간 인터넷방송국 참세상의 별라디오 DJ로 활동했다. 차분하면서도 슬픔을 띈 그의 목소리가 음악과 함께 사람들의 마음에 흘렀다. 가브리엘만의 선곡, 가브리엘만의 이야기로 채워진 그 방송은 1년을 넘지 못했지만 그의 노래는 긴 여운을 남겼다. 청취자들은 에이즈 환자로만 알려진 윤 가브리엘이 아니라 음악을 운명적으로 만나서 깊이 사랑하고, 지금도 함께 하고 있는 그를 알게 되었다.

그의 삶의 노래가 이제 글로 태어났다. 이 책은 격월간 인권잡지『세상을 두드리는 사람』에 연재되었던 자전적 수필「윤 가브리엘의 노래이야기」를 다시 보완하고 다듬어 엮은 것이다.

 

“그렇게 노래 속에 살다가 내 마음을 알고 만든 것 같은 노래들을 만나게 되었다. 열다섯 시간을 숨이 턱에 차도록 일하다 지쳐 자취방에 돌아갈 때 내 지쳐버린 밤을 노래가 달래주었다. 성 정체성으로 인한 고민을 하며 갈 길이 어디인지 몰라 할 때 가려진 나의 길을 노래가 찾아주었다. 에이즈란 병마가 내 몸을 가시나무처럼 앙상하게 만들어 뼛속까지 외로울 때 노래가 슬퍼해주었다. 그 고단하고 아팠던 삶에 노래가 위안이었고, 노래 속에서 삶을 배웠다. 노랫말이 나를 생각하게 하고, 삶을 깨닫게 해주고, 사람에게 희망이 있다는 걸 알게 해주었다. 자연의 이치가 삶의 이치라는 걸 깨닫게 해준 노래, 삶에 대해 알려주고, 조언해주는 사람 하나 없는 나에게 노래를 통해 삶을 가르쳐준 사람이 한영애님이었다. 그리고 20년이 넘는 시간 동안 수년에 한 번씩 나오는 한영애님의 새로운 노래들은 마치 그때의 내 심정을 알고 만든 것 같은 노래들이 꼭 있었다.”

 

 

1장 떠도는 아이

책은 ‘떠도는 아이’, 가브리엘의 유년시절부터 시작된다. 친어머니에 대한 사무치는 그리움을 안고 구박만 받는 집을 떠난 가브리엘은 공장노동자가 된다. 중학교도 마치지 않은 어린소년이 쉴 곳은 재단판 아래 외에는 아무 곳도 없었다.

박인희의 <방랑자>, 만화영화주제가 <엄마 찾아 삼만리>, 동요 <섬집 아기>가 이 시절 가브리엘의 친구가 되어준다.

 

“그 공장은 여자들만 기숙사 방이 있었고 남자들 방은 따로 없었다. 재단판 밑에 공간을 만들어 그곳에서 자야 했다. 밤늦게까지 일해 피곤한 몸으로 재단판 밑에 자려고 누우면 그동안의 일들이 스쳐 지나갔다. 깨져가는 빙판 위를 뛰어가듯 두려움에 떨며 집을 뛰쳐나온 일, 하지만 뒤돌아보면 뭔가가 잡아당길 것 같아 뒤 한 번 안 돌아보고 이 낯선 곳까지 도망 오게 된 일. 이 먼 데까지 왔으니 큰형도, 아버지도, 누구도 날 찾지 못할 거란 생각에 마음이 편안해졌다.

그렇게 원하던 집밖의 세상에 나오니 생각했던 것보다 더 힘들다는 걸 알았지만 아무리 힘들어도 집에는 돌아가지 않으리라 마음먹었다. 그렇게 마음먹어도 이 넓은 세상에 혼자라는 사실에 울적해지며 앞으로 또 무슨 일이 닥칠까, 두려운 마음이 들었다. 이럴 때 누가 옆에 있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하다 한동안 부르지 않았던 그 노래, 친어머니가 생각나서 더욱 부르지 않았던 그 노래 섬집 아기를 속으로 불렀다.”

 

2장 미싱이 돌고 나의 노래도 돈다

집 떠난 가브리엘은 15시간 이상의 중노동에 시달리는 먼지 날리는 봉제공장에서 청춘을 보낸다. 80년대 민주화의 열망이 한국사회를 강타하지만 봉제공장 노동자 가브리엘은 자신들을 노래하는 <사계>가 라디오에서 흘러나오자 오히려 어리둥절해한다. 아버지의 때 이른 죽음마저 찾아와 슬퍼하는 가브리엘에게 미싱사 오야 누나들이 가장 큰 위로가 된다. 한편 성 정체성으로 인한 혼란과 괴로움이 더욱 심해진다.

신형원의 <잃어버린 밤> 나훈아 <고향역> 노래를 찾는 사람들 <사계>가 여기서 흐른다.

 

“‘미싱은 잘도 도네 돌아가네’

우리는 잘못 들은 게 아닐까 귀를 의심했다.“ 지금 저 노래 미싱이라고 한 거 맞지?”누군가 물었고 잠시 일을 멈추고 귀를 쫑긋 세웠다.“ 미싱 맞네.”다들 신기해하며 웃었다. 노래 가사에 미싱이 나오는 노래가 다 있다며 세상에 별일이 다 있다고들 하였다. 라디오에서 그 노래는 자주 나왔고, 그 노래가 나올 때마다 “그럼 미싱이 돌아야 먹고 살지, 미싱 안 돌리면 누가 밥 먹여주냐?”며 다들 웃었다. 저 노래를 부른 사람들은 전직 미싱사 출신이 아니었겠냐는 우스갯소리를 했고, 누군가는 만들 노래가 그렇게 없어 미싱을 노래로 만드느냐고 타박하기도 했다. 나른한 게 졸립다며 노래 좀 바꾸라고 누가 소리쳤고 재단사 아저씨는 삼태기 메들리에 이어 주현미의 쌍쌍파티 메들리를 틀었다. 나 역시 그 노래 사계가 어떤 의미의 노래였는지 몰랐었다. 솔아 솔아 푸르른 솔아가 무엇을 위한 노래였는지 알지 못했다. ‘노래를 찾는 사람들’이란 노래패는 청계피복노동조합만큼이나 생소했고 낯설었다. 사람들은 이제 군사독재가 끝나고 민주화가 이루어져 많은 변화가 생길 거라고 하였다. 하지만 평화시장 공장들은 문을 안에서 잠그고 열다섯 시간 일을 시키는 건 변함이 없었다. 군사독재가 뭔지 민주화가 무슨 의미인지 몰랐던 스무 살, 1987년 내 최대 관심사는 하루빨리 더 많은 미싱 기술을 익히는 것이었다.”

 

3장 게이, 장밋빛 인생을 노래하고 싶었다

성정체성의 고민이 더욱 깊어질 즈음 가브리엘은 가수 한영애의 노래를 만나 평생 위로와 안식과 힘을 얻는다. 자신을 혐오하다 못해 자살까지 결행했지만 실패한 가브리엘은 남자를 좋아하는 자신을 인정하고 받아들인다. 그때 한영애의 노래가 자신을 바라볼 수 있는 힘을 준다. 이후 한영애의 팬으로 그녀와 인연을 맺고 이 책의 많은 곳에서 한영애가 등장하며 책을 헌사하는 배경이 된다.

낙원상가 데뷔. 양성애자들은 쉽게 알 수 없는 세계로 독자를 안내하는 가브리엘. 동성애자임을 인정했으나 그가 사랑할 사람을 만나는 곳은 낙원상가 어둠침침한 카페였다. 같은 ‘인류’를 만날 수 있다는 안도는 길게 가지 못하고 연이어지는 사랑의 실패에 괴로워하는 가브리엘에게 노래는 다시 위안이 된다.

유재하 <가리워진 길> 한영애 <갈증> <바라본다> 에디뜨 피아프 <장미빛 인생>이 가브리엘 곁에 있어준다.

 

“전화를 끊자 뭔가 큰일을 해낸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설레는 마음으로 종로를 배회하며 밤 열 시가 넘기만을 기다렸다. 다시 그 술집 앞에 서자 가슴이 두근거렸다. 지하로 내려가면서 긴장이 더해졌다. 문 앞에서 심호흡을 하고 문을 여니 음악소리와 함께 “어서 오세요” 하는 아까 그 목소리가 다시 들려왔다. 사람들의 시선이 쏟아졌다. 나는 바짝 긴장한 채 종업원에게 어색한 웃음을 지었다. 나를 알아본 종업원은 웃으면서 바 쪽에 앉으라고 했다. 자리에 앉아 둘러보니 바와 테이블에 사람들이 제법 있었다. 저 사람들이 다 나와 같은 사람들이라니 신기하기만 했다. 종업원은 아까 왔을 땐 일반 손님인 줄 알았다고 말을 꺼냈다. 초저녁에 간혹 일반 손님들이 멋모르고 와서 조심을 한다는 것이었다. 그때 중년의 어떤 남자가 내게 인사를 했다. 40대 후반에서 50대 초쯤으로 보이는 그는 자신을 마담이라고 소개하였다. 마담은 그 나이의 아저씨들처럼 적당히 머리숱도 없고 평범한 인상이었지만 뿌옇게 분칠한 얼굴과 펜슬로 가늘게 그린 눈썹이 좀 이상했다. 그는 내 옆에 앉더니 종업원에게 나에 대해 들었다며 이것저것 물어왔다. 나이를 묻고 이름을 묻고 이런 곳에 오늘 처음 나온 거냐고 물었다. “네”라고 대답하자 “그럼 오늘 데뷔한 거네”라고 했다. “데뷔라뇨?” 하고 되물었더니 이런 세계에 처음 나왔을 때를 데뷔라고 한단다. 무슨 연예인이야, 나는 피식 웃었다. 식성이 뭐냐고 묻기에 뭐 다 잘 먹지만 밀가루 음식을 특히 좋아한다고 했다. “초짜 맞네. 그 식성 말구 좋아하는 남자 스타일 말이야. 그런 걸 식성이라고 해.” 마담이 웃으며 말했다. “아! 예, 잘 모르겠어요.” 나는 어색하게 웃었다.”

 

“죽는 것도 내 마음대로 되지 않았다. 연탄불에 달궈진 양철통에 데인 팔목의 상처가 더 씁쓸했다. 자살을 시도한 후 2년여의 시간 동안 남과 다른 내가 남과 똑같은 내가 될 수 없을까 깊은 고민에 빠졌다. 밤이면 깊은 생각에 빠져 잠을 이루지 못할 때가 많았다. 어떻게 해야 하나, 무얼 해야 하나, 아무리 생각해봐도 남과 다른 나를 억누르고 남과 똑같이 살 자신이 없었다. 그렇게 고민에 빠져 있을 때 한영애가 내 안의 나를 똑바로 바라보라고 노래해주었다.

내 안의 나를 바라보면 남과 다른 내가 있고 그걸 인정하는 것이 자유가 될 수 있는 거라고 생각하게 되었다. 보통의 사람들이 이성에게 끌리는 게 본능적인 거라고 얘기하듯이 내가 동성에게 끌리는 것 역시 본능적인 것이었다. 그 본능은 거부할 수도 부정할 수도 없는 것이어서 내 성 정체성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기로 하였다. 나는 나! 남과 다른 나를 인정하고 다시 종로를 찾으니 느낌이 새로웠다.”

 

4장 나, HIV/AIDS 감염인이 되었다

 

새천년 HIV/AIDS가 가브리엘을 찾아온다. 보건소 직원에게 에이즈 감염 사실을 통보받는 가브리엘은 오히려 담담했다. 얼마 후 슬픔과 절망은 친어머니에 대한 그리움으로 가브리엘을 덮친다. 일을 그만두고 쉼터를 찾아가고, 에이즈와 싸우는 한편 몸에서 받아들이지 못하는 약과도 싸워야 했다. 면역력은 바닥나고 거대세포바이러스가 가브리엘의 목숨을 위협한다. 죽음의 고비까지 간 가브리엘은 다시 되살아난다. 왼쪽 시력을 빼앗기고 청력이 현저히 떨어졌지만 그는 살아났다. 죽음의 문턱에서 되돌아오면서 에이즈는 저주받은 불치병이 아니라 약만 제대로 투여하면 관리할 수 있는 병이라는 사실을 알았고 그의 몸이 그것을 증명했다.

시인과 촌장 <기쁜 보리떡> <가시나무> 복숭아 <햇님> 이문세 <광화문 연가> 속에서 가브리엘은 다시 살아난다.

 

“기운도 없고 정신도 없고 이대로 영원히 잠들어버렸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하며 눈을 감았다. 누군가의 손이 내 이마를 어루만지고 있다. 그 손길에 온몸이 따뜻해지는 것 같아 누구의 손인지 얼굴을 보려했지만 얼굴이 보이지 않았다. 혹시 내가 그리워하던 친어머니가 아닐까? 엄마? 엄마? 신음소리처럼 부르다가 눈을 떴다. 꿈이었지만 너무 생생한 그 손길의 여운을 생각하며 그 노래를 처음 들었을 때 친어머니가 생각났던 ‘시인과 촌장’의 기쁨 보리떡을 찾아 들었다.

‘친어머니가 지금 내 옆에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세 살 때 친어머니와 헤어진 후 친아버지와 키워주신 어머니, 이복형제들과 살면서도 항상 혼자였고 집을 나와서도 늘 혼자였지만, 혼자라는 사실이 이렇게 아프게 느껴진 적이 없었다. 난 이제 어떡하나! 보건소에서 받았던 충격적인 통보가 그제야 실감이 났다. 누가 들을세라 이불을 입에 틀어막고 소리죽여 흐느꼈다.”

 

“다른 질병이 오지 않기를 바라며 2년여를 버텼지만 결국 거대세포바이러스가 다시 또 찾아왔다. 지금까지 투병하면서 최악의 몸 상태였던 2006년 봄부터 겨울까지 입원했다 퇴원했다를 다섯 번이나 반복하며 사계절을 병원에서 살다시피 하였다. 시간이 지날수록 최악의 상황으로 내몰렸다. 거대세포바이러스는 면역력이 심하게 결핍된 내 몸 곳곳을 돌아다니며 문제를 일으켰다. 대장에 와서 하루에도 열두 번이 넘는 설사를 하게 하고, 신경계에 와서 다리에 마비 증상까지 나타나게 하였다. 망막에도 찾아와 눈이 잘 안 보이게 만들었다. 그 겨울은 최악의 절정이었다. 거대세포바이러스를 치료하는 약마저 내성이 생겨 새로운 약을 써야 했으나 그 약은 의료보험이 적용되지 않아 한 달에 약값이 2백만 원이 넘게 들었다. 난 그 약값을 감당할 돈이 없었다. 내가 활동하고 있는 HIV/AIDS 인권연대 나누리+ 활동가들이 여기저기서 돈을 빌려 우선 약값을 댔다.”

 

“병실에서 주사를 맞으며 눈 내리는 겨울을 보내고 있었고, 나누리+ 친구들은 주사약값 마련을 위한 후원회를 조직해 한 달에 2백만 원이 넘는 약값을 댔다. 그 주사제는 하루도 빼지 않고 매일 맞아야 했다. 퇴원을 해서는 쉼터에서 근무하는 간호사와 간호사 수녀님이 번갈아 가며 주사를 놔주었다. 매일 360cc의 주사제를 두 시간 이상 혈관에 맞으면서 거대세포바이러스와 1년 9개월간의 끈질긴 싸움을 끝냈다. 주사를 끊던 날 나누리+ 친구들과 기념 파티를 하고 쉼터에서 식구들과도 파티를 했다. 이 주사를 끊고 난 후 에이즈치료제인 ‘푸제온’치료에 들어갔다. 나에게 꼭 필요한 에이즈 치료제지만 제약사 로슈가 비싼 약값을 요구하며 공급하지 않아 쓸 수가 없었던 푸제온을 외국의 구호단체에서 어렵게 도움을 받았다. 푸제온을 투여하자 면역력이 오르고 에이즈를 일으키는 바이러스 HIV가 억제되어 나는 다시 살아났다.”

 

5장 그래도 나는 희망을 노래한다

가브리엘은 새 삶을 맞는다. 육체뿐 아니라 인생에서도. 동성애자인권연대의 문을 두드렸다. 용기를 내어 에이즈 감염인이라고 고백했다. 밀어내지 않고 받아들여주는 사람들, 따뜻하게 안아주는 사람들을 만난 가브리엘은 세상을 살아낼 힘을 얻는다. 에이즈 환자들이 받는 차별에 대해 묻어두지 않고 말할 수 있게 되었고 질병과 차별의 연결고리를 깨닫게 되었고, 그것을 조장하는 자들에게 저항하는 에이즈인권활동가가 되었다. 도저히 혼자서 감당할 수 없는 주사약값을 친구, 활동가 동료, 수녀, 의사 등 후원자들의 지원을 받으며 자신의 몸이 죽음에서 되돌아온 ‘부인할 수 없는 증거’임을 증명해낸다.

김광석 <서른 즈음에> 한돌 <꼴지를 위하여> 강산에 <넌 할 수 있어> 한영애 <말도 안 돼>가 가브리엘의 투쟁의 깃발이 되어준다.

 

“말도 안 되는 일들이 쌓일수록 분노도 쌓여갈 때 동성애자인권연대에서 연락이 왔다. 보건의료단체연합이란 곳에서 주최하는 ‘아시아 보건포럼’이 열리는데 프로그램 중 아시아의 에이즈 문제를 토론하는 프로그램에 참가하여 한국의 문제에 대해서 발언을 해보면 어떻겠냐고 물었다. 좋은 기회라고 생각했지만 용기가 필요했다. 내가 감염인이란 사실을 밝히고 얘기를 해야 설득력이 있을 텐데 사람들의 시선이 부담스러웠다. 그렇다고 이런 부당한 일들에 아무도 나서서 말하지 않는다면 그 누구도 알아주지 않을 거란 생각을 했다. 사람들의 부담스런 시선보다 내 안의 분노가 더 컸다. 처음으로 많은 사람들 앞에서 내가 HIV/AIDS 감염인이란 사실을 밝히고 서 있자니 마이크를 잡은 손은 떨렸고 무슨 얘기를 하고 있는 건지 정신이 하나도 없었다.”

 

“배운 것 가진 것을 따지는 세상에서 나는 꼴찌였고 꼴찌라서 힘들었지만 늘 모르면 모르는 대로 사람들에게 배우면서 몸으로 부딪히고 깨지는 경험을 하며 살아온 나였다. 과거에는 꼴찌라는 게 창피했지만 이제는 당당한 꼴찌가 되어야 한다고 마음을 다졌다. 사람들에게 잘못된 걸 잘못되었다 말하려면 당당해야 하고 당당하려면 배운 것 가진 것 없는 것에 솔직해져야 한다고 생각했다. 에이즈인권활동이란 새로운 숙제 앞에 놓인 나에게 꼴찌를 위하여가 등을 토닥여주었다. 그때 나는 HIV/AIDS 감염인으로서 또 한 번의 전환점을 맞이하게 되었다.”

 

6장 고마운 사람들, 엘라에게 보내는 편지

이 장에서는 가브리엘에게 도움을 주고 친구가 되어 준 많은 사람들을 일일이 호명하며 감사와 축복의 인사를 한다. 가톨릭레드리본지원센터 회장 로사 수녀가 가브리엘에게 보내는 편지가 뒤를 잇는다.

 

7장 가브리엘의 에이즈 묻고 답하기

에이즈에 대한 올바른 정보를 문답 형식으로 전해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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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 46,47호 업데이트 됐어요

두 달에 한 번 나오는 잡지라 두 달 먼저 시작하고 두 달 먼저 시작하고 두 달 먼저 끝난다.  

11-12월호가 나왔으니 올해는 종친 셈이고, 내년 1,2월에 무슨 일이 생길지, 무슨 이야기를 담을지 고민해야 한다.  

다들 12개월을 사는 듯 한데 잡지를 만들다보면 난 여섯 고개를 넘으며 살아가는 듯 하다. 그래서 일년이 더 빨리 가는 느낌...  

 

11-12월호 '근로기준법 다시보기'
9-10월호 '누구를 위한 G20인가'

 




 

 

사람이 사람에게 근로기준법과 차별금지법
인권이 내게로 왔다 병역거부자는 어떻게 노동조합 활동가가 되었나
인권이 내게로 왔다 삶의 현장에서 인권을 꿈꾸다
기획 근로기준법의 허와 실
기획 망하거나 죽지 않고 존중받을 권리
기획 근로기준법의 변천사
기고 불법 다운로드와 해적들
기고 그런 악의 뿌리를 뽑아야 한다
기고 재벌슈퍼의 동네슈퍼 습격사건
기고 추가된 문정현 사찰 기록카드
사람, 오름을 만나다 복잡한 차별 현실, 차별금지법에 담기
서평 “집은 인권이다? 아니잖아!”
엄마에게 쓰는 편지 김치와 자유
여의도에서 날린 홀씨 그래, 해 보는 거야
희망을 위한 직접행동 소유는 인간의 권리일까?







사람이 사람에게 들리세요?
기획-좌담 G20, 누구를 위한 안전인가
기획 불안의 정치와 경찰국가
기획 용두사미 G20, 어디로 가나
인권이 내게로 왔다 삼성 노동자에서 삼성과 싸우는 노무사로
르포 4대강, 선택의 마지막 시간
기고 전자발찌와 화학적 거세가 답은 아니다
기고 인권활동가를 위한 재무설계
기고 폭력과 혐오, 정신장애인이란 낙인
기고 당신의 몸은 몇 점 짜리인가
기고 이용당하고 색출당하는 HIV/AIDS 감염인
2010 제주인권회의 신자유주의 시대 ‘국가 없음’과 사회권
2010 제주인권회의 풀뿌리와 인권이 만났을 때
2010 제주인권회의 사회권과 함께, 사회권을 넘어
서평 모성에 대한 신화 부수기
엄마에게 쓰는 편지 칠순의 풍금 연주와 교육의 사다리
여의도에서 날린 홀씨 사람을 아는 것이 가장 좋은 지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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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권재단 사람 블로그 오픈

인권재단 사람 블로그가 생겼습니다. http://saram-fund.tistory.com

 

많이 놀러오시고 이웃신청도 해주시고 관심 가져주시길...

 

박래군 상임이사가 페이스북, 트위터를 하겠다고 야무지게 마음먹고 있으나 한 달 전에 구입한 아이폰을, 오늘에서야 계정을 만든 까닭으로 당분간 연동은 힘들 것 같습니다.  

 

아래 글은 현재 블로그 대문에 걸린 글입니다.

 


 

사용자 삽입 이미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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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권센터 주춧돌을 놓아주세요

 

 

 

 

 

인권센터는 인권세상을 함께 만드는 사람들의 소중한 만남의 공간이 될 것입니다. 인권세상을 꿈꾸는 사람들의 참여로 인권센터를 만들어 갑시다.

 

 

○ 작지만 소중한 기부; 너무 작다고 망설이지 마세요. 작지만 소중한 정성이 모여서 아름다운 세상을 만드는 힘이 됩니다.

 

○ 커서 더 긴요한 기부; 한 사람이 여러 사람의 몫을 해낼 수 있으니 좋지요. 크고 탄탄한 주춧돌로 쓰입니다.

 

○ 정기 기부; 이번 기회에 아예 인권재단 사람의 정기 기부자가 되어 보세요. 인권재단의 정기 기부자가 되시면 유일한 민간 인권잡지 격월간 <사람>을 보내드립니다.

 

기부하는 모든 분들의 이름을 돌에 새기겠습니다.

 

 

◎ 인권센터 주춧돌 놓기에 참여하는 방법

 

○ 인권재단 사람의 구좌로! 일시 기부 또는

신한은행 100-025-564580(재단법인 인권재단 사람)

 

○ 인권재단 사람 CMS 신청: 인권재단 사람 홈페이지(www.hrfund.or.kr) 방문하여 후원하기 가볍게 클릭!

 

인권재단 사람에 기부하시는 모든 분들은 소득공제를 받을 수 있습니다.

 

입금하시기 전에, 또는 입금 후에 꼭 메일이나 전화로 이름과 연락처를 알려주시기 바랍니다. 소중한 인연으로 간직하겠습니다.

 

 

 

 

☞ 전화 02)363-5855~6, 031)211-58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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근로기준법과 차별금지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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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호 표지모델은 문정현 신부님입니다. 역대 표지모델 중에 가장 유명인사가 아닐까....

 

이번주 목요일부터 시작되는 문정현 신부님 헌정공현(http://cafe.daum.net/hrfund)에 맞춰 사진작가 노순택 님이 사진도 찍어주시고, '추가된 문정현 사찰 기록카드'라는 글도 한 편 기고해주셨지요.

 

이번호 기획은 전태일 40주기에 맞춰 근로기준법에 대해 다뤘습니다. 근기법의 역사와 현실과의 괴리, 그리고 인권의 관점에서 근기법을 재구성해보자는 제안까지...

 

종이 잡지는 이제 막 인쇄 중이고 사이트도 조만간(?) 업데이트 될 것입니다.

 

아래는 이번호에 실은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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근로기준법과 차별금지법

 

 

애써 무시하고 지나치려 해도 쉽지 않습니다. 텔레비전의 채널을 돌릴 때마다, 길을 걷거나 버스나 지하철을 탈 때도 그놈의 G20 타령은 거의 공해 수준입니다. 내용도 우리나라가 G20 의장국이니 레스토랑에서 큰 소리로 떠드는 것을 자제하자는 둥 외국인을 만나면 미소를 짓자는 둥 어이없습니다. KBS노조 발표에 따르면 KBS가 G20과  관련해서 이미 방송을 했거나 방송을 준비 중인 특집 프로그램만 60개, 55시간에 달한다고 합니다. 게다가 G20 성공기원 콘서트와 영화제, 릴레이 명사 강연 등등. 정작 G20에서 어떤 이야기가 오가고, 성공리에 치르면 국가 브랜드가 올라간다는데 어찌 올라가는지는 쏙 빠져있습니다. 이 무슨 “남자한테 참 좋은데 뭐라 설명할 방법이 없네.”만 되풀이하는 건강식품 광고도 아니고 말입니다.


그러다 엊그제 광화문에서 색다른 플래카드를 보았습니다. 문구를 정확하게 기억할 수 없지만 “세계 67개국이 참전해서 지킨 기적의 나라 대한민국이 G20정상회담 의장국이 되었으니 어려운 이웃나라를 대변해야 한다”는 요지였습니다. 그 밑에는 한국전쟁이 최대 참전국이 참가한 전쟁으로 기네스북에 등재도 되었다는 글귀도 적혀있었습니다. 별 걸 다 갖다 붙인다는 생각이 들다가도 한편 G20이 세계에서 잘 사는 나라 스무 개 나라의 모임이고 영국, 미국, 캐나다 같은 이른바 서방 선진국이 아닌 나라에서 처음 열리는 행사이니 그럴듯한 주장이란 생각도 듭니다. 그런데 정작 한국이 어려운 이웃나라를 대변할 위치에 있는 것인지, 어려운 이웃나라들은 그걸 원하기나 하는지 살짝 의문이 생깁니다. UN과 같은 공식 국제기구도 아니고 그야말로 되는 것도 없고 안 되는 것도 없는 친목모임 수준인데 괜히 거들먹거리고 호들갑을 피우는 게 꼴사납지나 않을까 모르겠습니다.


“네 이웃은 누구인가.” 지난해 용산참사 현장에 걸려있던 수많은 플래카드 중 하나였습니다. 성경에 나오는 착한 사마리아인이 등장하는 에피소드의 한 구절이라고 합니다. 네가 길을 가다 강도를 만나 쓰러졌는데 사회적으로 존경받는 사람들은 다 모른 척 지나가고 당시 유대 사회에서 핍박받던 사마리아인이 도와주었다. 그럼 네 이웃은 누구인가? 예수는 사마리아인이 바로 네 이웃이며 그 이웃을 네 몸과 같이 사랑하라는 계명을 내렸다고 합니다. 좋은 이야기고 이 문구가 용산참사 현장에 걸린 취지도 이해는 가는데 워낙 심사가 삐뚤어진 탓인지 이웃이라고 하면 ‘불우이웃 돕기’가 떠올라 저는 그걸 보면 왠지 불편했습니다.


한국사회에서 개신교는 워낙 말도 많고 탈도 많은 동네지만 지난 며칠 또 한 차례 개신교 때문에 사이버공간이 시끄러웠습니다. 이른바 ‘봉은사 땅 밟기’란 동영상이 인터넷상에 퍼졌는데 몇 명의 젊은 개신교 신자들이 늦은 밤 봉은사란 절에 들어가 찬송가를 부르고 불탑을 잡고 기독교식으로 기도를 올리며, 불교를 비하하고 절이 무너지라고 기원하는 내용이었죠. 동영상이 크게 문제가 되자 담임목사와 젊은 신자들은 봉은사를 방문해 사과하는 것으로 사건은 일단락되었지만 여전히 개신교의 배타성에 대해서는 말들이 많습니다. 저는 이 동영상을 보며 자연스레 차별금지법이 떠올랐습니다.


2007년 차별금지법이 만들어지려다 안 된 제일 큰 이유는 차별 사유에 ‘성적 지향’이 들어갈 것인가 말 것인가의 문제였고 이를 반대하는데 큰 역할을 한 것이 바로 종교계, 특히 보수적 개신교 집단이었습니다. 올해 들어 법무부에서 다시 차별금지법을 준비하고 있다는 이야기가 들려오더니 아니나 다를까 SBS 드라마 <인생은 아름다워>를 빌미로 5월부터 호모포비아(동성애혐오)를 조장하는 신문광고가 실리기 시작하고, 며칠 전에는 “동성애차별금지법이 11월 중 처리될 것이며 이렇게 되면 성경을 가지고 동성애를 반대하는 설교만 해도 처벌된다”는 문자가 돌고 다음날 법무부 사이트가 마비되는 일이 벌어지기도 했습니다. 그리고 지난 10월 29일 국회에서는 ‘동성애차별금지법 입법반대 포럼’이란 행사도 열렸습니다. 그만큼 차별금지법에 성적 지향이 들어가는 것을 반대하는 사람들, 동성애를 계속 차별해야만 한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2007년과는 다르게 매우  조직적이고 전략적으로 움직인다는 것이지요. 게다가 일부에서는 동성애를 거부할 권리, 동성애를 죄라고 말할 표현의 자유를 말하기도 합니다. 타인의 권리를 빼앗을 권리, 타인에게 폭력을 행사할 자유 같은 건 애초부터 없다는 이야기를 그들에게 해주기 이전에 과연 종교란 무엇인가 스스로 되묻게 됩니다. 저는 종교에는 문외한입니다. 성경 몇 구절을 안다고, 불경을 좀 읽었다고 종교를 안다고 할 수는 없지요. 하지만 핍박받는 이웃과 함께하지 않는 종교, 차별받는 이들과 이웃하지 않는 종교란 대체 무슨 의미가 있을까 싶습니다.


G20 행사에 비하면 아주 초라하지만 올해는 전태일 열사 40주기로 매우 다양한 행사가 진행되고 있습니다. 《사람》 이번호 기획도 ‘전태일 40주기, 다시 보는 근로기준법’입니다. 근로기준법이 그러했듯 차별금지법도, 그 어떤 법률도 세상을 바꾸기에는 역부족일 겁니다. 하지만 전태일이 그랬듯이 법률 하나가 어떤 사람을 만나고 어떻게 읽히느냐에 따라서 역사적 사건이 생겨날 수도 있지 않을까요?


저는 개인적으로 아주 오랜만에 『전태일 평전』을 다시 꺼내 읽었습니다. 열여덟 그 시절 이 책을 읽지 않았다면 지금과 전혀 다른 삶을 살고 있을까요? 아마도 그렇지는 않았을 겁니다. 하지만 당시 학교공부를 좀 더 열심히 해 내신등급은 좀 오르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을 해봤습니다. 올해는 또한 『전태일 평전』을 쓴 고 조영래 변호사의 20주기이기도 합니다. 저뿐만이 아니라 한국사회는 전태일에게 그리고 조영래에게 참 많은 빚을 지고 있습니다. 또한 전태일과 조영래의 만남은, 비록 때늦은 안타까운 만남이지만 참 아름답고 소중한 만남이었습니다. 좀 뜬금없지만 이번호에는 인권재단 사람에서 주최하는 문정현 신부님의 헌정공연을 즈음해 사진작가 노순택의 신부님에 대한 헌사를 실었습니다. 사진이 아닌 잔글씨로 노순택이 기록한 문정현 신부의 행적을 읽으며 문정현과 대추리, 문정현과 용산, 문정현과 노순택의 만남도 생각해봅니다. 《사람》도 이렇듯 소중하고 아름다운 만남의 자리가 되고 그 기록이 되었으면 하는 바람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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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자부는 전자국새나 만들어라

절대적으로 시간이 부족하다보니 블로그보다 페이스북이란 걸 더 많이 쓰게 되는 것 같네요.

 

 <사람> 11-12월호에 이 정부의 전자주민증 추진에 대한 글을 싣기로 했는데 도무지 청탁방향을 못 잡겠어서 고민중입니다. 90년대 중후반, 2000년대 중반에 이어 세번째로 정부에서 다시 추진 중인데 10년 전, 15년 전과 별로 달라진 것 없는 같은 논리, 같은 반박, 참 힘 빠지는 모양새입니다.

 

스마트 카드가 들어간다는 말에 관련 주가가 치솟고, 행자부는 개인정보 유출을 더 확실히 막을 수 있다는 괘변을 늘어놓고, 게다가 이메일 감청에 생체여권에 공항 알몸투시기까지 등장하는 마당이다보니 이게 대세인가 싶기도 합니다.

 

뭔가 좀 새로우면서도 명쾌한 이야기가 있었으면 좋겠는데... 하기사 전자주민증 자체가 워낙 진부한 레파토리다보니...

 

얼마전 행자부는 사기단에게 국새 사기를 당해 망신살이 뻗쳤는데 이참에 전자국새나 만들일이지, 왜 이러는 걸까요? 

그런데 뜬금없이 쓰다보니 전자제품과 전기제품의 차이가 궁금해집니다. 전자렌지와 전기밥솥은 대체 뭐가 다른 건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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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루하루 내가 어떻게 사는지, 세상이 어찌 돌아가는지

제목 그대로다. 요즘 어떻게 하루하루를 보내는지 모르겠다. 주구장창 내리는 비에 지겨워하다 문득 오늘 파란 하늘을 봤는데, 이게 얼마만인지... 어느덧 9월 중순, 찬 바람이 분다.  

 

9월 6일 둘째가 태어났다. 퇴원 후 산모는 아이와 산후조리원에 들어갔고 나는 네 살 난 아이와 한부모 가정 체험을 하고 있다.  

 

아침 7시에 일어나(내가 아이를 깨우는 게 아니고 먼저 일어난 아이가 나를 깨운다) 밥하고, 밥 먹이고 (다른 집은 어떤지 모르겠지만 난  아침에 씻기지 않는다. 자기 전에도 아이가 땀에 찐득찐득 해야 "우리 씻고 잘까?" 슬쩍 물어보곤 하는데 아이는 다행히 씻는 걸 별로 좋아하지 않는다.--;)  어린이 집에 보낼 준비물을 챙기고, 그래도 티가 너무 날가 싶어 머리 빗겨 묶어주고, 옷 갈아입히고, 아이를 보내고 출근을 하고, 6시에 아이를 데려와 밥먹이면서 놀아주면서 하다 씻기고(얼굴만), 책읽어주다 재우면 10시 반이다. 밀린 빨래 하고, 보리차 끓이고, 집안 정리 하고 그러면 11시, 12시. 지금 이 글을 쓰고 있는 시간이 딱 12시 10분이다.  

 

블로그? 그런 거 참 오랜만에 들어보는 소리다. 한부모 가정 체험 덕에 첫째와 무진 가까워졌고 애착이 생겼지만(이제 그만 생겨도 좋을 것을...) 도대체 책 한 권 펼쳐본 게 언제쩍인지 모르겠고, 세상 돌아가는 건 신정환, 태진아 이야기 정도 밖에 모르겠다. 

 

그러다 엇그제 새로운 출산장려정책이란 게 나왔다는데, 우리 마눌님 같은 비정규직은 육아휴직은 전혀 해당사항도 아니고 당연히  땡전 한푼도 못 받는데  월 250만원 소득의 정규직 여성에게 월 100만원이나 준다는 말을 듣고 마눌님과 함께 분을 삭히지 못했다. 젠장!!

 

하여튼 결론인즉은, 새삼 이 땅의 모든 워킹맘에게 경의를 표한다, 는 것이다. 

   

 

 

   

 

예정일보다 일주일 먼저 태어났음에도 3.46킬로그램이란 만만치 않은 체구를 가진 신생아. 그래서인지 목이 없다. 태명은 '벼리'였는데 이제 이름을 지어줘야 한다. 이름짓는 게 쉬운 일이 아니다. 내가 뭐라고, 한 아이가 수십년 동안 불릴 이름을 지어준단 말인가. 기회가 되면 모든 이들이 성년이 되면 (혹은 고등학교 입학하면서?) 개명의 기회를 부여하여 자기 이름은 자기가 짓게, 혹은 동료가 지어주게 하는 제도를 제안해보는 운동을 해볼까 고려중이다. 어쟀든 이 둘째 딸내미의 이름은 '윤슬'(달빛이나 별빛이 어른거리는 잔물결이란 뜻의 순 우리말)이 어떨까 생각중인데 누구는 좀 쓸쓸하데나... 하여튼 고심 중이다.    

 

 

 

첫째 딸 윤이. 외자 '윤'이 이름이다. 이제 다음 달이면 36개월, 꽉 찬 네살이다. 추석 전에는 어린이집에서 한복을 입고 오라 그럴지도 모른다고 해서 처형네 가서 빌려왔다. 이 아빠의 가상한 노력을 이 아이가 얼마나 알아줄지... 중2가 되면 꼭 이 사진을 보여줘야겠다. 어쨌거나 마음에 들었는지 한복을 입더니 한동안 벗지 않고 일상생활을 하려고 해서 약간의 실랑이를 벌이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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