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맘 속의 우물

사람 사는 건 원칙대로 약속한대로 되는 건 아니다..

그러나 최소한 지켜야하는 선은 존재한다고 본다..

타인에 대한 최소한의 배려..라는 거 그다지 어렵지 않을 수 있다..

서로 멤버쉽을 갖고 있다고 여겨지는 관계일 때는 더더구나..

 

무언가를 지키지 못하게 되었을 때.. 가장 기본적인 것을 행하지 않으면

그 관계는 일그러질 수밖에 없다..

화도 나고 허무하기도 하고.. 마음 한 켠은 너무 아파온다..

최소한 이런 소통은 있어야되지 않느냐는 것조차 받아들여지지 않고 평행선을 달리는 것..

 

전화통화를 하다보니 같은 일에 대해 서로 제시하는 예는 같은데..

바라보는 시각은 완전히 달랐다..  결국.. 내가 마지막으로 한 말은

'차분히 마음을 가라앉히고 그 사람 입장이 되어보아.. 섭섭하지 않겠니?

그래도 지나가는 말이더라도 얼굴 보고 이야기했다면 그 사람은 이해했을거야

최소한의 소통조차 하지 않는다면 함께 한다는 의미가 뭘까..

입장을 바꿔놓고 생각해봐.. 낼 얼굴 보고 이야기하자'로 끝냈다..

 

통화를 마치고 나니 주책없이 눈물이 주룩주룩 직전까지 가버리고 말았다..

그러더니 얼굴 한쪽이 심하게 당기고 양손이 마구마구 경련이 나면서 저려온다..

수전증인가? 이젠 한쪽 마비로도 안돼서 전신마비가 되는건가?

흠냐.. 설마 이까이꺼..

 

눈물을 삼키며 이것저것 뒤적거리다.. 내가 5년 전에 난생처음 가출이라는 걸 하면서

썼던 글을 발견했다..혼자 밤샘 작업 끝내고 거울 보다가 멍청해진 내 눈빛을 발견하고

가출을 감행하며 식구들에게 쓴 글 두개가 아직도 남아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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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출 며칠 전..>

사랑합니다.
난.. 당신을 사랑하나 봅니다. 그래요... 난.. 당신을 사랑합니다.
사랑하지 않으려... 당신을 향한 내 그리움을 지우려.. 무던히도 애써보았습니다.
그러나... 당신을 향한 나의 사랑을... 멈출 수가 없습니다.

당신을 생각하면.. 나는... 눈물이 납니다.
당신을 잊어야한다고... 떠나야 한다고... 수많은 날을 되뇌였습니다.
이건 집착일거야 라고... 되뇌였습니다. 그래도 포기되지 않습니다.

지금... 당신과 함께 간다는 선택... 저에게는 버거운 선택입니다.
그러나...아직은 당신을 그대로 떠나기 싫은 마음이 더 큽니다.
지금까지 당신에게 보여준 나의 사랑이... 너무나 작기 때문인가 봅니다.

이렇게 어리석은 나...
당신을... 조금 더... 사랑해도 될까요..?
당신을... 조금 더... 바라봐도 될까요..?

이제 당신을 답을 기다립니다.

--- 정연.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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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출 당일>

우리 사무실... 참... 따뜻하네요.. 어떻게 말을 시작해야할런지...
이곳에서의 6년...  행복했습니다.
여기는... 제 인생 최초의 선택이었습니다.

가족을 위해... 용기가 없어서...  하지말라는 것은 하지 않고... 되지 말라는 것은 쳐다보지 않고 ....
그렇게 살았던 나를 깨고... 내가 원하는... 살고 싶은...만들고 싶은 ... 세상을 만들기 위한..
내 꿈을 이루기위한....첫 선택이었습니다.

아무것도 가진 것 없고..아는 것 없이 꽃다지에 덜컥 들어와... 힘든 일도 많았지만...

행복했습니다.
그런데... 지금... 전... 별로 행복하지 않네요.

제가 몇달전에 첫사랑과 헤어졌다고 했지요..그와의 많은 다툼... 그 대부분은..
내가 이 곳에 있고.. 활동을 포기하지 못하는 데서 기인한 것들이었습니다.
돌이켜보면... 그에 대한 내 사랑의 깊이와는 무관하게...
언제나 그보다 내 일과 이 곳이 우선이었던 것 같습니다. 그랬습니다....

물론 꽃다지 이외의 많은 이유가 있었고.. 그 난관을 이겨내지 못한 건..
우리 사랑이 그것밖에 되지 않았기 때문이었겠지만...그는 떠났습니다...
많이 아팠지만... 너무나 빨리.. 이미 그 상처는 아물어갔습니다.
내가 그를 정말 사랑한 적이 있었나 싶게...

그 상처를 아물게 한 건...
내게.... 이 세상을 엎어버리고 말겠다는 혁명에 대한 내 꿈과
그 꿈을 만들어갈 공간이 있었기 때문이었습니다.
그런데...그 상처는 아물었는데도...나는 별로 행복해지지 않았습니다.


내 꿈이 사라진걸까..?

작년에 한 사람이 떠나갈 때 몇달을 설득하다 더이상 그를 잡을 수 없었던 한마디가 있습니다..
'누나... 난 여기서 꿈이 없어요.. 내가 내 인생에서 무슨 꿈을 갖고 있는지 모르겠어요..'

저 역시도 2, 3년 전부터.. 내 모습에 많은 회의가 들고... 정리하려는 생각이
점점 크게 또아리를 틀고 있었습니다. 몸이 아팠던 것도 아마 그 때문이었을겁니다.

그런데 ... 작년에... 시련이 컸지만.. 새식구들이 들어오고...
난... 다시 용기를 만들어갔습니다. 다시 시작할 수 있다고 나에게 계속 주문을 걸었지요..
난...나의 꿈이 무언지...당신의 꿈이 무언지...함께 나누고 싶었습니다..

막연한 꿈이 아니라... 정말로 절실한 우리의 꿈을 만들고 싶었습니다.
지금도 그렇습니다.

그런데... 아직 잘 모르겠습니다.
밤새워... 아무리 생각해봐도... 그 꿈이... 우리의 절실한 꿈이 무엇인지...
그 꿈을 실현할 수 있는 우리의 노래는...무대는... 무엇인지...잘 모르겠습니다...

그래서...많이 힘이 듭니다. 이것조차도 식구들과 나누어야하는데... 그러지못하고..
식구들을 보기가... 죄송합니다. 저를 조금만 기다려주셨으면...합니다....

책상도 정리하지 않고...그냥 가네요... 저도 제가 이렇게 철부지인줄 몰랐네요..

--- ditsela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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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애편지로 착각하겠으나.. 네버!!! 소속단체와 그 식구들에게 남긴 작별인사였다.. 쩝..

가출한 일주일간 내가 한 일은 새로 뽑을 기획자 물색해서 만나보고 몇몇 선배 만나고..

단체 홈페이지에 들어오는 광고글 지우고.. 장기계획을 담은 기획서를 작성하고..  등등

 

결국 난생 처음 감행했던 내 가출은 가출로 인정! 받지도 못하고 비웃음만 샀다..

(그거 정말 가출이었단 말이야~~~~~~~~~~~~~~~)

일주일만에 다시 돌아와서 자진납세한 반성문은 더욱 가관이었다..

A4용지 3장 가득 쓴 것을 다들 쭉 앉으라고.. 나 반성할 거 있다고 하고서는 읽었는데..

다 듣고 난 식구들 왈

"이상하네.. 반성문 같기는 한데.. 어케 우리가 혼나는 것 같기도 하공.. 거 이상하네"

 

그 반성문도 다시 읽어보니 참 뻔뻔한 반성문이었다..

내가 했어야할 일과 해야할 일.. 뭘 잘못한건지.. 뭐가 한계인지 주루룩 나열하고

구조적인 차원에서 해결해야 할 일과 개인적으로 해결해야 할 일을 구분하고서는

앞으로 이걸 어케 고치겠다는 거였는데..

의도와는 달리 듣는 이들은 스스로에게 자문하지 않을 수 없는 글이었다.. 흙..

 

가출도 못하는 바보라는 손가락질(ㅎㅎ)을 감수하며 여튼 다시 복귀했고.. 또 5년이 지났다..

그 반성문을 다시 조목조목 살펴보니.. 그 때와 지금의 내 능력이나 추진력, 치열함 같은 것들은

그자리에 머물러 있고 반성해야 할 항목도 여전히 그대로이다..

아... 나 뭐했나?

이러면서 타인에게 무슨 기본적 예의 운운할 수 있는가?

결국.. 평소의 내 행태에서 벗어나지 못하는건가? 자책모드..쩝

 

어차피 제대로 하지도 못한 지난 10년은 싹뚝 잘라버려야겠다..

다시 처음부터..

내 마음도 비우고.. 욕심도 버리고.. 가장 기본적인 것만 남기고..

식구들과 얼마 전에 약속한것처럼 어떤 특화된 능력? 기술?을 가진 기획자의 모습을

만들기위해 노력해야 할 것이다..

세상에서 가장 쉬운 일이 학습모드 아닌가? 열심히 한만큼 결과를 확인할 수 있고..

앞뒤가 똑같고.. 솔직한 것.. 아주 좋다..

 

소통... 이라는 건.. 애정이 있다면 어떤 식이든지 통한다는 걸 다시 한 번 믿으며,,

힘내야지..

 

내일 사무실에 가서 이 가출선언문과 반성문을 프린트해서 걸어놔볼까? ㅎㅎ

다들 아주 즐거워할것 같은 예감.. 부끄부끄

 

 

- <노래의 꿈> 꽃다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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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7/07/11 23:35 2007/07/11 23: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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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고 2007/07/13 00:40 URL EDIT REPLY
엄청 많은 고민과 사랑이 느껴지네요. 흑.
디첼라 2007/07/13 17:02 URL EDIT REPLY
걍 투정이죠..;;
평생 못 풀 숙제인가봐요.. 소통이라는 거.. 진심과 이해만 있다면 언젠가는 될 거라 믿었는데.. 상담해주세요..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