집에 그냥 있다가는 우울에 잠식 당할 거 같아서
사무실에 나왔다..
다른 사람들은 공연 가고 강습 가고..
텅 빈 사무실에 그것도 화창한 토요일에 나오는 건 오랜만이다..
며칠 손발의 경련 때문에 치지 못한 피아노 앞에 앉았다..
한 쪽도 제대로 못치고 포기해버렸다..
경련 나고 저리던 건 멈췄는데 너무 기운이 없어서
건반 하나 두드리는 게 이만저만 고역이 아니다..
두달간 병가 내고 집에서 쉬면서
'먹는 것만이 살아 남을 길이다..'를 금과옥조로 여기며 열심히 열심히 먹으며
찌운 내 살 4킬로그램은 지난 3주 동안 다 달아나버리고 더 빠져버렸다....
급 체중감소에 겁 먹고 지난 일주일간은 약이려니 하고 세끼 먹어주었더니
몸무게는 원상복귀했는데 기운은 좀 채 회복되지 않는다..
이틀 전에 외부 회의 나갔다가 햇살 받으며 몇 분 걷고
어제 띠동기 무리들 만나서 사람 북적이는 홍대 거리를 헤매었더니..
남아있던 기운마저 다 달아난 듯 하다..
먹고 싶어..
뭔가를 맛있게 먹고 싶다..
그래서 기운도 짱짱하게 되찾고 걸음걸이도 씩씩하게 뚜벅뚜벅 내딛고 싶은데
먹겠다는 생각이 도무지 들지 않는걸.. 사람들과 어울릴 때.. 결심하고 결심해서
꾸역꾸역 먹은 것들은 내 몸에 아무 것도 축적하지 않고 빠져나가버리고 만다..
적정 체중을 찾았으니 살은 더 빠지지 않게..
열심히 먹어줘야 하는데.. 숟가락질조차 힘들어서야..
갑자기 먹을꺼리들이 돌덩이로 변한 것도 아닌데..
왜 이다지도 나를 힘들게 하는 물질들로 다가오는 것이더냐..
먹을 거 잔뜩 사다 놓고..
저걸 언제 다 해치우나... 걱정이네..
또 썩어서 음식물 쓰레기통으로 들여보내지 말아야하는데
이래서야 지리산 종주는 커녕..
지리산자락 근처에도 못가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