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맘 속의 우물

▒ 워킹

 

자전거 이야기를 꺼내자마자 다들 한껏 비웃어주는 상황에 원래부터 없던 자신감이 급감소.. 바닥을 쳤다.

하여, 대체수단으로 뚜벅이 삶을 실현해보는 건 어떨까 싶어.. 실험해보았다..

일단 구로 사무실에서 목동 5거리까지 버스를 탄 후.. 목동 5거리에서 걷기 시작했다..

총 거리의 절반 가량을 걷는데 하이힐 신고 대략 45분 정도 걸렸으니까.. 운동화 신고 좀 더 빠른 걸음으로 걷는다면 전체 거리를 걷는데는 한시간 반 가량이 소요될 듯하다..

 

왕복 세시간.. 흠.. 차를 갖고 출퇴근하면서 왕복 30분 정도 걸리는 현재와 비교할 때 길거리에 너무 많은 시간을 흘리고 다닌다는 생각이 든다..  그런데 두시간 가량 절약한다고 해서 내가 다른 생산적인 일을 하는걸까?

컴퓨터 앞에서 쓰잘데기 없이 보내는 시간이 족히 한시간 이상일텐데.. 그런 낭비를 줄인다면 2시간쯤은 걷기에 내주어도 될 시간을 만들 수 있을거 같은데..

 

그런데 뚜벅이 생활을 하면 가뜩이나 짧고 굵은 다리 더 장롱다리되는 거 아닌가몰라..

 

 

▒ 드라이빙

 

어제 아침에 현관 문을 나설 때까지만해도 '오늘은 구로에서 목동5거리까지 걸으면서 시간 체크해봐야지'.. 였으나 여지없이 차키를 꽂고 시동을 걸고 있는 나를 발견했다.. '편한 것이 좋은 것이여.. 얼~쑤!' 정말?

습관이란 참 무서운거야.. 대부분 내 의지를 배반하고 제멋대로 하는 것은 이 습관이란 동물이다.. 아무리 기를 쓰고 저항해봐도 물리치기 힘든 대단한 포스의 이 동물..

사실 나같은 겁많고 소심한 사람에게 운전이라는 건 편한 일이 아니다.. 운전경력 10년차(?) 임에도 여전히 운전대를 잡으면 모든 차들이 나에게 달려드는 상상에 스트레스지수 치솟고 에너지가 상당히 소모되는 일이다.. 다만 다리가 편하다는 것과 시간이 절약된다는 것이 유이한 장점이랄까?

아.. 또 하나의 장점은 밤거리의 공포감에서 벗어날 수 있다는 것이다. 가끔 차를 두고 출근해서 밤 늦게 타박타박 언덕길을 올라오다가 내 그림자에 흠칫 놀라서 가슴을 쓸어내리곤 하는 소심한 나로서는 택시조차도 안심할 수 없는 이 뭐같은 세상에 집앞까지 세상과 차단된 채로 도착할 수 있다는 건 상당한 장점이긴 하다.. 내 스스로 느끼는 안정감보다 더욱 중요한 건 다 큰 딸.. 밤길 걱정하시는 부모님에게 다소의 위안을 드릴 수 있다는 사실이다.. 개를 키우는 것이 건강에 안좋다고 굳게 믿으시는 부모님께서 태양이를 기르는 것에 대해 기뻐하시는 점도 이런 맥락에서이다.. 만에 하나 있을지도 모르는 바깥 침입자로부터 태양이가 나를 보호해줄 수 있을거라는 믿음..훗.. 나이 들어 혼자 사는 여자는 여러모로 주변에 걱정을 끼친다..;;

 

 

▒ 라이딩

 

초딩 시절 동네 언니가 나에게 자전거를 가르쳐주겠다고 나를 뒤에 태우고 보무도 당당하게 도로로 나선 순간 어마어마하게 큰 트럭과 부딪혔었다.. 교통사고로 죽을 뻔했다는 사실보다 내게 더 오래 남아있는 공포는 그 순간이 아니다.. 트럭과 부딪힌 직후 동네 언니는 잽싸게 자기만 도망쳐버렸고 십년감수한 운전기사의 화를 고스라니 받아낸 건 나였다.. '너 집이 어디야?' '저 이 동네 안살아요'  우리 집을 알려주는 순간 그 아저씨가 내 머리채를 쥐고 부모님 앞에 나를 내동댕이칠 것 같은 공포가 엄습했었고 집요하게 나를 추궁하던 그 아저씨는 시간에 쫒겨 결국 알아 듣지도 못할 욕설을 퍼붓고는 가버렸는데 그때의 공포라는 것은 평생 잊지 못할 것이었다.. 그래서 나는 자전거 타기가 무서웠었다.. 그 이후로 가끔씩 나에게 자전거를 배우게 하려는 사람들이 있었지만 되살아나는 공포로 포기하고 말았었다..

다시 자전거를 타보고 싶다는 생각을 했던 건 운전하고 가는데 저만치서 플레어 스커트를 입고 바구니 달린 자전거를 타고 오는 여자를 본 이후부터인 것 같다.. 요즘 블로거들의 라이딩 포스팅을 접할 때도 가슴이 설레이며 '나도 자전거 타고 싶어'라는 생각을 슬쩍하게 되는 건 그 여자의 이미지 때문이다.. 애니에서 툭 튀어나온 듯했던 그 여자의 자전거 타는 모습.. 아하 긴머리도 휘날리고 있었다.. 머리 자르면 안되겠다.. ㅎㅎ..

몇년 전부터의 로망이지만 스포츠라는 건 보는 것 외에 담을 쌓고 살아온 나로서는 꽤나 용기가 필요한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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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7/07/29 16:06 2007/07/29 16: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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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각생 2007/07/29 17:01 URL EDIT REPLY
아.. 아픈 기억이 있으셨군요.그래도 자전거!
나침반 2007/07/29 23:02 URL EDIT REPLY
음.. 라이더들이 정말 싫어하는 것이 뒷차의 쓸데없고 거만한 경적소리인데,. 여성라이더인 경우에 더 심한 것 같애요. 특히나, 교통사고가 나면 자전거는 무조건 피해자인데 적방하장으로 소리까지 쳐댔으니.. 잘 극복하세요~ 자전거 꼭 타세요! 정말 친구같아진답니다~
☆디첼라 2007/07/30 14:01 URL EDIT REPLY
지각생/흐.. 그래도 자전거..
나침반/출퇴근 길에 자전거를 종종 봅니다.. 1차선에서 느긋하게 앞서가는 자전거을 볼 때마다 빵빵 누르고 비켜주세요 하고 싶은 적이 가끔 있답니다.. 그러나 그런들 얼마나 시간절약하겠어요.. 걍 그 뒤를 살살 따라가는 재미가 더 솔솔하더라구요.. 여튼 우리나라는 조금이라도 큰 교통수단이 권력을 휘두르며 폭력적이라는 건 아주 동감이 가는 말이예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