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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2006/09/23
    엊그제 같았는데
    이스
  2. 2006/09/11
    박치기?(2)
    이스
  3. 2006/09/10
    아버지가 남겨준 숙제(1)
    이스
  4. 2006/09/09
    끊어야 한다는 것
    이스
  5. 2006/09/09
    기문둔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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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6. 2006/09/09
    대접받으면서 살아야 한다
    이스
  7. 2006/08/01
    지금 필요한 노래
    이스
  8. 2006/08/01
    친구?
    이스
  9. 2006/06/09
    월드컵?
    이스
  10. 2006/06/09
    시정잡배의 사랑
    이스

엊그제 같았는데


 

올해 초 였던가, 게이트에 가기 직전에 간부에게 말해서 후임과 찍었던 사진이다. 이 시절이 엊그제 같은데 벌써 전역했다. 그냥 기억만을 남기고. 비판적인 관점에서 바라보는 군대 조직과 국가폭력의 폐해를 잠시 잊고, 그냥 힘겨운 적도 편했던 적도 있었던 내 생존의 현장의 기억으로, 그렇게 남기고.

 

그렇게 나는 떠났다. 그리고 새로운 인생을 다시 시작해야 할 때가 되어버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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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치기?

 

 

1리터의 눈물을 보다가 그만 사와지리 에리카씨에게 반해버려서 관련 영화를 찾았다. 찾아낸 영화는 전혀 의외의 영화였다. 사와지리 에리카씨, 이 영화로 2004년의 신인상을 말 그대로 싹쓸이 했다는데, 어째 제목이 좀 이상하다. 거기다가 스틸샷으로 보여지는 에리카씨의 사진도 이상하다. 아무리 내가 눈이 삐꾸라도 일본 기모노와 한복의 차이를 망각할 정도로 망가지지는 않았는데 - 더군다나 나는 양안 1.0의 그리 나쁘지 않은 시력의 보유자이다 - 에리카씨는 한복을 입고 피리를 (나중에 플룻이라는 것을 알았다) 불고 있지 아니한가.

 

영화를 틀었다. 근데 이것도 이상하다. 일본영화라고 알고 있었는데, 제목이 한글이다. 한글로 박.치.기 라고 세 글자 선명하기 그지없이 뜨는 것이 아닌가. 순간 나는 이 영화가 일본영화가 맞나, 라고 조금 의심했던 것 같다.

 

영화의 시대는 60년대다. 처음부터 어떤 가수의 공연에 기절하는 소녀들, 이런 머리가 뜬다지 라면서 버섯머리를 해 대는 주인공들, 곳곳에서 터지고 있는 시위 광경들. 영화의 모습을 보는 순간, 일본에서든 세계적으로든 남한을 제외하고 60년대는 참으로 향수가 많은 시대라는 생각이 든다. 잘은 모르지만 68혁명을 팔아먹은 영화는 아마도 꽤 많은 것으로 알고 있다. 거기다가 68혁명을 신성화 시킨 사례 역시도 많은 것으로 안다.

 

나는 68혁명의 시기를 그린 영화라고는 고작해야 몽상가들 이라는 베르톨루치 씨의 영화 밖에는 본 것이 없다. 그러나 몽상가들을 보면서 '혁명'을 떠올리는 것은 좀 우스웠다. 어떠한 혁명 이라고 일컬어지는 사건은 명백한 정치적 사건으로서 집단적 봉기와 해방공간의 창출을 말한다. 해방공간의 창출이란 끊임없는 해방공간의 확산을 위한 노력 역시 겸해지는 것이다. 하지만 몽상가들에서, 해방공간은 그려지지 않는다. 오직 제정신인지 의심스러운 쌍둥이와 판타지 보수주의자 미국인의 집안싸움만이 그려진다. 박치기에서는 68혁명을 떠들지 않는다. 단지 일본에서 벌어지는 가두투쟁 속에서의 일과, 일상적인 이념 이야기와, 소수자들과 다수자들 간의 끊임없는 싸움, 각종 신종 가치관의 몰이해로 인한 행동양상의 코믹함 등등이 그려질 뿐이다. 하지만 혁명기라면 오히려 이러한 사태가 정상이 아닐지 싶다. 프리섹스의 의미가 길거리 섹스가 되었는지 뭔지 모르고, 고등학교에서 마오를 숭상하는 좌파 선생이 학생들을 선동하려 하지만 뭔가 이음새가 안 맞는, 그런 불협화음 적인 모습.

 

이 영화에서는 두 개의 집단의 대립이 극명하게 그려진다. 1929년(맞나?)의 광주학생운동을 패러디 한 것인지 무엇인지는 모르겠지만 조선인 여학생을 희롱하는 일본인들에게 분개한 재일 조선고교 청년들이 불같이 들고 일어나 일본인들을 구타하고 버스를 뒤집는 광경이 그 시작이다. 그리고 영화 내내 일본계 고등학교와 조선 고등학교는 대립한다. 우리는 물론 대체적으로 일제 강점기 때 일본으로 왔던 조선인들의 비극에 대해서 공감하고 있고, 그런 장면에 대해서 고개를 끄덕이면서 받아들인다. 일본 사회 안에서 소수자는 많지만 일본국가의 역사적인 상황 속에서 형성된 수많은 소수자의 하나로 재일조선인은 분명히 존재하며, 이것은 일본 사회 내의 모순과 더불어서 역사적 문제의 하나이다. 그러한 부분을 다룬 것 만으로도 박치기를 보면서 나는 이 영화가 드물게 용기있는 영화가 아닐까, 라는 생각을 했다.

 

이 가운데에서 조선인 여학생인 경자(사와지리 에리카)에게 반한 코스케는 강개 라는 한국식의 이름을 받고, 한국어를 공부하고, 경자가 연주하던 북한의 노래인 [임진강]을 부르면서 조선인들과 가까워진다. 그 과정에서 즉각적인 민족적 적대는 드러나보이지 않는다. 코스케는 조선인들에게 다가가기 위한 최선의 예의를 다 한다. 그 과정에서 일어나는 일단의 일들은 코믹하기까지 하다. 그것은 다수자의 소수자에 대한 여유있는 배려 가 아니다. 그것은 말 그대로 친구가 되기 위한 일상적인 노력이다. 가장 골이 멀어져 있는 두 개의 집단에 속해 있는 인물들 사이에서 그 누구라도 친구가 된다는 것은 보기에도 유쾌한 경험이다.  

 

그러나 그 폭력의 과정에서 돌이킬 수 없는 사건이 일어나면서 코스케는 조선인들에게 일본의 역사의 무게를 책임져야 할 죄인이 된다. 이것은 친구가 되기 위해 겪어야 할 필연적인 사태이다. 화해라는 것은 과거를 넘어서지 않고서는 성립되지 않으며 그 화해를 통해서만이 친구는 친구가 될 수 있다. 영화는 한국의 근현대사에서 일어났던 수많은 일들에서 일본의 책임을 직설적으로 이야기한다. 제국주의 국가로서 일본이 저질렀던 만행에 대해서 코스케는 그 책임을 회피하지 못한다. 그것은 그 자신이 직접적으로 책임져야 한다는 차원을 넘어서, 그 근미래의 시대를 살아가는 이로써의 책임이다. 임진강으로 나뉘어진 남과 북을 넘어서, 강으로 나뉘어져 있는 수많은 나눔을 만들어 낸 폭력에 대한 책임감이다.

 

바로 그 시점에서 임진강은 단지 사랑하는 사람을 통해서 알게 된, 사랑하는 사람에게 고백하기 위한 노래가 아니게 된다. 마지막 장면에서 부르는 임진강은 세레나데 일 수도 있지만 수많은 나눔과, 폭력과, 역사적인 비극에 대한 코스케의 외침이다. 그 순간 코스케는 일본에서는 조선인이고, 남성과 여성의 비를 들자면 여성인, 비주류의 인물이 된다. (실질적으로도 코스케는 일본 사회에서 금지되어 있는 노래를 부름으로 해서 주류의 금기를 깨뜨린 비주류의 인물로 등장한다) 그리고 코스케는 다시 한 번 그 과거의 벽을 넘어서는 과정에서 조선인인 경자의 사랑을 얻고, 조선인들에 대해 화해를 요청하고, 다시 한 번 친구가 될 것을 노래하는 것이다.

 

일부러 일본인임이 분명한 배우들이 어색하나마 한국어를 사용하면서 연기하는 것도, 단순한 리얼리티 차원의 문제가 아니었다. 그것은 소통의 예의를 말하는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어떤 이와 소통할 대 예의를 갖추는 방식은 그 상대방의 방식에 맞춰가려는 노력을 의미하는 것이다. 어색하나마 그 노력은 성공했다고 생각하고 싶다. 적어도 영화는 모든 것이 허상이되, 말하고자 하는 바는 진실되기 때문이다.

 

박치기는 많은 사람들에게 권하고 싶은 영화다. 한국인들은 일본 사회 안에서의 자기 성찰을 제대로 경험한 바가 없다. 일본 사회 내부에서의 역사적 자기 성찰과 소수자적 문제제기를 우리가 제대로 알고 있다면 맹목적인 우익적 민족주의의 열풍에 빠져서 쪽빠리들 다 죽으라는 식의 생각없는 증오를 과연 할 수 있을까. 바로 그래서, 제대하고 나서도 한 번 더 보고 싶은 영화가 있다면 이 영화일 듯 하고, 많은 사람들이 박치기를 보기를 원한다.

 

:::추신:::

 

나는 사와지리 에리카씨의 팬클럽에 가입할 수 있다면 가입하기로 마음을 정해버렸다. 하. 하. 하. 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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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버지가 남겨준 숙제

1리터의 눈물, 이라는 드라마를 보고 있다. 아니, 이제 최종화인 11화를 남겨두고 '다' 보았다. 결국, 진짜 힘겨운 상황이 닥쳤을 때 피를 나눈 가족 밖에는 없다. 그래서, 그 누구보다도 가족이 소중하고, 가족이 우선이 되어야 하는 것이 당연하다. 그리고 이것은 드라마 때문이 아닌 실제 삶이 그러하기 때문에 진실이다. 

 

아버지가 입원하셨다. 고질적인 심장질환이다. 다행히도 빠른 조치 덕에 크게 이상은 없겠지만 당분간은 입원치료를 받으셔야 한다. 10년 전의 심장병이 10년 후를 옥죄고 있다. 우리 집은 결코 가난하지는 않다. 하지만,(아니, 어쩌면 그래서) 결코 내가 운동을 하는 것을 원하지 않는다. 그 어느 집이나 마찬가지겠지만, 내가 운동을 하는 그 자체가 아버지의 심화를 돋구는 꼴이 되어버렸다. 내가 학교 다닐 때 하도 속을 썩여대서 아버지가 그렇게 되었다는 말에 입에 열 개라도 할 말이 없어 혼자 나와서 조용히 담배를 입에 물었다.

 

한 동안 아버지가 병자라는 것을 잊고 살았는데, 얼마 전에도 아직 일어나지도 않은 일을 가지고 아버지께서는 화를 내셨다. 제대하면 학생운동이니 노동운동이니 그런 건 그만두라는 그 말에, 내가 "예" 라는 대답을 하지 않아서이다. 아버지는 불안하셨던 것이다. 아직도 어리고 과히 똑똑하거나 유능한 구석이 없는 아들이, 누가 보더라도 한 몸의 안위와 거리가 먼 길을 가면서, 아버지의 기준으로 볼 때 - 사실 이 한국 사회에서의 대다수의 사람들이 볼 때 - 결코 성공적이지는 못한 인생을 사는 것이 싫으셨던 것이다.

 

돈도, 사회적 힘도 없는 인생이 얼마나 무시받는 인생인지, 실질적인 능력 없이는 친구도 동지도 없다는 것을 너무나 잘 알기에, 아버지께서는 "혹여라도" 내가 좌파운동을 통해서 그러한 길을 갈 우려 자체를 배제하고 싶으셨던 것이다. 그냥 눈 딱 감고 내 한 몸만 잘 챙겨서 공부 열심히 해서 돈 잘 벌고 지위도 좀 있는 좋은 직장에 취업해서 괜찮은 아가씨와 결혼하고 떡두꺼비같은 손자 낳아드리겠다는 그런 확답을 받고 싶으셨던 게다.

 

이미 하루 이틀 벌어졌던 일은 아니다. 하지만 아버지의 심장병이 다시 한 번 생각하게 만든 것은 사실이다. 내가 어떤 식으로 살아야 하는지에 대해서, 물론 모든 결정의 책임은 전적으로 나에게 있지만 적어도 그 결정을 내리는 고민의 과정에서 한 가지 요인으로 작용할 수는 있는 것이다. 돈을 벌어서 효도하겠다는 차원이 아니다. 어떤 식으로 살아야 아버지와 어머니의 마음을 편하게 해 드릴 수 있는 길인지, 그렇게 사는 데에 있어서 운동이 장애가 된다면 그 문제를 어떤 식으로 해결할 수 있을 것인지를.

 

그것을 고민하게 되었다.

 

가족의 마음을 편하게, 가족이 나 때문에 고민하지 않게 하면서 내가 좌파로서의 삶을 지속시킬 수 있게 하는 것. 아버지의 발병이 내게 남겨 준 진지한 숙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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끊어야 한다는 것

전에 말년휴가를 들어갈 때, 결심한 게 있었다. 그건 두 가지다.

 

하나는 나 자신을 올바르게 세운다. 지금 이대로 아무 것도 모르는 상태로, 아무 말도 할 수 없는 상태로 머물러 있지 않겠다.

 

하나는, 술을 끊는다. 완전히 끊는 것은 불가능하더라도, 석 잔 이상을 마시는 일을 없애야 한다는 것.

 

말년휴가 들어가기 전날, 나는 나 자신이 올곧게 서지 못하고, 뜻이 서지 않아 나와 상관없이 느껴지는 많은 이야기들이 서러웠고, 스스로가 멍청하게 느껴졌다. 그들이 인간적으로 내가 의지할 대상이기를 바랬지만, 그들 자신도 버거운 사람들이었는데 내가 의지한다는 것 자체가 모순이었다. 오히려 내가 오히려 여유가 있는 편일 것이다.

 

스스로를 올곧게 세워야 한다. 그러지 않고서는 아무 것도 할 수 없을 것이다. 그러기 위해서, 나는 끊어야 할 것이 많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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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문둔갑?

자식이 유산 때문에 아버지를 죽이고 아내가 보험금 때문에 남편을 죽이고 정부가 한-미 FTA라는 이름으로 제 나라 사람들의 인생을 박살내려 한다. 이 정도면 심각한 정신착란증세인데 스스로는 그걸 모른다. 스스로는 그렇게 하는 게 어쩔 수 없는 일이고 올바른 일이라고 생각하면서 산다. 아니, 정확히는 그렇게 하는 게 그런 범죄적 결과를 부른다고는 전혀 생각하지 않는다.

 

조진행 씨의 기문둔갑 이라는 무협지에서는 정신의 착란이 얼마나 무서운 것인지 알 수 있게 하는 모산파의 기문둔갑술이 나온다. 분명히 자기 동료는 죽었지만 그 기문둔갑술은 자기 동료의 죽었다는 사실 자체를 인지 못하게 한다. 바로 자기 스스로 옆에, 동료는 그대로 살아있고 똑같이 말을 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것이 바로 정신착란의 무서움 아닌가.

 

발전 노조의 파업은 15시간 만에 접었고 사람들은 자신들도 노동자 신세고 사회의 귀족과 이익관계를 달리 하지만 그들의 눈은 귀족의 눈이다. 이 또한 심각한 정신착란 증세다. 도대체 보통 사람들이 보통 사람들보고 노동귀족이라고 욕해대면서 이건희 회장님께는 간이라도 빼줄 듯이 떠드는 그 엄청난 인간존엄 포기란, 미치지 않고서야 가능한 일이 아닐 것이다.

 

모두가 하나의 거대한 기문둔갑술에 걸려 있는 것이다. 알고 보면, 내가 지금 보고 있는 것들도 다 하나의 허깨비에 불과한 게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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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접받으면서 살아야 한다

이제 제대할 때가 되었고, 무엇을 하고 살 것인지를 고민해야 하고, 별 것 아닐 수도 있지만 복잡한 일들이 다가왔다.

 

안에서 대접 못 받으면 바깥에서도 대접 받기 힘들다.

 

대접을 받으면서 살아야만이 결국에는 제대로 된 삶을 살아가게 된다. 자기가 무엇을 하던 간에.

 

군대 다녀왔다고 자만할 게 아니다. 군대에서 고참이 되면 건들 사람이 없는 관계로 정신을 못 차리고 사니까.

 

자기 자신을 제대로 세워내지 못하고서 어찌 인민해방이니 노동자 민중이니 하는 거창한 소리를 입에 담을 수 있겠는가.

 

두 가지만 없애더라도, 내 삶은 지금보다 진보할 것이다.

 

말은 필요없다. 단지, 대접받고 사는 것. 대접받기 위해서 해야 할 것. 그것을 찾아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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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 필요한 노래

희망

(도종환/시, 이희진/가락)


 


그대 때문에 사는데 그대를 떠나라 한다

많은 사람들이 그렇게 돌아서듯

이제는 그대를 떠나라 한다

 

겨울숲같은 우리 삶의 벌판에

언제나 새순으로 돋는 그대를

 

이세상 모든 길이 얼어붙어 있을 때

그 길을 흘러 내게 오던 그대를

 

아직도 늦지 않았다고

다시 또 시작할 수 있다고 말해주던 그대를

눈물과 아픔도 쉽게 이겨낼 수 있도록

지켜주던 그대를 희망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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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구?

친구를 만났다. 어쩌다 보니 모였다. 이야기를 했다. 반가웠다. 그리고 어색했다.

 

어릴 때 일본 하위문화, 판타지에 심취하는 것 만으로도 그토록 할 말이 많았던 시절의 친구들은 살아남기 위해 노동자가 되기 위해 매진해야 한다는 현실 앞에 다가서 있었다. 4학년. 어느 새 그들도 그 시절의 고통을 노래하고 있는데 나 홀로 묵묵히 말이 없다. 제대도 하지 않은 상태이기도 하지만, 어차피 그들이 하는 모든 이야기는 나와 너무나 다른 이야기이기 때문에 나의 이야기가 별로 열심히 떠들어 댈 만한 이야기는 아니어서이기도 했다.

 

박정희 시대를 예찬하고 황우석을 보호해야 했다며 민주화 세력이 나라 다 말아먹었고 노동자 새끼들 때문에 못살겠다는 이야기 속에서 나는 그냥 지쳐서 그저 가만히 앉아만 있었다. 그러다가 어느 순간 그들이 내 눈치를 보더니 조용해진다. 그들은 말한다. "선거나가면 한 표 찍어줄께" 내 운동의 이야기와 인민해방을 말하던 내 열정은 그렇게 밖에 비치지 않았었던 건지, 내가 운동을 잘못했던 것인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사적인 문제로 인해 2년 만에 만나는 친구도 있었다. 진심으로 반가웠다. 하지만 불편함도 역시 존재했다. 진짜로 운동은 그렇게 밖에 되지 않는 것이었는지, 순간적으로 현기증이 일었다. 이미 나는, 그들과 너무 달라져 있었고 그들을 설득할 힘도 생각도 갖지 못했다. 이미 그렇게 달라져서 모든 것이 변해버린 지금 나는 그 만남이 마냥 반갑지만은 않았다.

 

그냥, 잠시의 속좁음이기만을 바래야 할 지, 어떻게 해야 할지 그것조차도 알 수가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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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드컵?


 

 

진짜 없나?

 

월드컵에 의해서 묻혀가고 있는 많은 일들은, 어쩌면 우리의 인생을 좌우하는 무언가들일 지도 모른다.

 

어쩌면 월드컵에 의해서 묻혀가고 있는 많은 일들 때문에, 누군가는 죽어가고 있을 지도 모른다.

 

축제는 광기의 그늘 아래 이루어진다. 국가의 이름 아래, 국익을 위해서라는 이름으로 눈감아주고 있는 많은 일들, 국익을 위해서 국가의 명예를 위해서 싸우고 있는 태극전사들에 대한 찬양이 단 한 사람의 반대를 찾기 힘든 - 정확히는 그 분위기에 동조하지 않는 이들은 매장되어버리고 마는 - 상황 그것이 곧 파시즘이다.

 

한일 월드컵 때 중학생 둘은 미군 장갑차에 깔려 죽었고, 비정규직의 문제는 그저 외면당할 뿐이었다. 월드컵에 미치지 않은, 미칠 수 없었던 사람들은, 어쩌면 월드컵에 열광하는 사람들에게는 사람이 아니었을 지도 모른다.

 

과연 이 월드컵은 축구를 위한 월드컵인가, 국가를 위한 월드컵인가, 즐거운 축제를 위한 월드컵인가.

 

어쩌면 셋 다 빙자한 집단광기 표출을 위한, 너와 나는 대한민국이라는 동질감 하나를 확인하는 통과의례로 존재하는 게 아닐지 의심스럽다. 월드컵이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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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정잡배의 사랑

시정잡배의 사랑

 

 

-허연

  시정잡배에겐 분노가 많으니 용서도 많다.  서늘한 바위절벽에 매달려 있는 빨갛게 녹슨 철제 계단 같은 놈들,  제대로 매달리지도,  끊어져 떨어지지도 못하는 사랑이나 하는 놈들, 사연 많은 놈들은 또 왜들 그런지.

  소주 몇 병에 비오는 날 육교 밑에 주저앉는 놈들. 그렁그렁한 눈물 한번 비추고  돌아서서 침 뱉는 놈들.  워낙 쉽게 무너지는 놈들. 그러고도 실실 웃을 수 있는 놈들. 그들만의 깨달음이 있다. 시정잡배의 깨달음.

  술국 먹다 말고 울컥 누구의 얼굴이 떠오른다. 가물가물하지만 무지 아팠다. 죽을 만큼 아팠다. 그 술국에 눈물 방울 떨어뜨리고 또 웃는다.

  잊어버리는 건 쉽지만
 다시 떠오르는 건 막을 수가 없다.
 그게 시정잡배의 사랑이다.

  마지막으로 십팔번 한 번 딱 부르고 죽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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