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게시물에서 찾기오산에 민주화를 위하여

27개의 게시물을 찾았습니다.

  1. 2005/05/22
    산다는 것
    지리산
  2. 2005/05/22
    노동자
    지리산
  3. 2005/05/21
    한겨레 21 4월 29일 기사 반론
    지리산
  4. 2005/05/14
    한겨레 5월 14일 사회면 기사
    지리산
  5. 2005/05/13
    나의 예수님
    지리산
  6. 2005/05/12
    사랑
    지리산
  7. 2005/05/08
    열세평의 행복(1)
    지리산
  8. 2005/05/08
    걱정
    지리산
  9. 2005/05/08
    나 어릴적
    지리산
  10. 2005/05/08
    스리랑카공동체
    지리산

산다는 것

언제부터인가 칼을 갈고 있었다
이 세상을 비뚤게하는 자유를 알고
분노의 칼을...
이 세상이 많이 배우고 많이 가진자들 만의 것이 아닌 평등을 알고
미움의 칼을 ...
이 세상은 날품파는 노가다도 주인짓거리에 허물이 없어야 하는 민주를 알고
노여움의 칼을...


언제부터인가
그 번쩍이는 칼이 비수가 되어 나를 아프게 한다
분노를 삭이고 용서해야 한다며
미움을 접고 화해해야 된다며
노여움을 풀고 보다듬고 끌어안아야 한다며
그 대상이 용서될수 없는 존재라 할지라도


이승이 아니면 저 세상 하늘에서라도
행복이란 추상명사를
세상사람 모두에게 나누어달라며 평등을 소리치며
내 맘속에 칼을 녹인다...

2003-04-02(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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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동자

이땅에 노동자라는 것
먹물을 좀 먹었다는 놈들
권력이 좀 있다는 놈들
돈이 좀 있다는 놈들
소위 좀 가졌다는 놈들
양키년놈들과 화냥질에 
나뒹구는 좆털만도 못한 것

이땅에 노동자로 산다는 것
치즈 쳐먹으며 
똥기저귀한 
개새끼만도 못한 것 

무슨 고상한 말이 필요하더냐
회사에서 짤리고 
집구석이라 하나있던 사원아파트에서 쫒겨나고
거리에 나앉게 되는
진실로 개좆만도 몬헌놈들인데







진실로 가진놈들




















실업자 백만명이라고 심각한체나 말제 사는것이 사는 것이냐 마누라 새끼 앞으로 살 걱정에 말라버린 눈물에 몰아내는 한숨을 숨기며 이세상 사는 것이 사는 것이더냐 내놈 한가지는 좋다 놈들이 야기하듯 배운것 없고 가진것 없어 해고자라는 해괴한 훈장으로 자존심세우며 무식허게 씨부릴수 있어좋다 남의 것 넘보지 않고 싸가지 있게 살려한 죄로 해고된 노동자인것 자랑할수 있어 좋은게다 니기미 씨버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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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 21 4월 29일 기사 반론

오산의 세교택지개발지구에서 일어난 수청동철거민주민들의 주택공사에게 헐값에 수용당한 집을 찾기 위해서 공권력과 대치하고 있는 상황에서 사람이 죽어간 사태의 본질을 알려내고 더 이상의 희생을 막기 위한 수청동비상대책위(이하: 수청동비대위)에 함께 하고 있는 전국철거민연합(이하:전철연)을 문제시한 한겨레21의 4월 29일자 “철거민 탑은 흉기인가” 하는 기사에 반론을 제기한다.

4월 29일 한겨레21에서 기사화된 이후 22일이 지나서야 반론을 제기하는 이유는 한겨레21이 중요하게 예를 든 것이 오산의 수청동 사태였고 수청동비대위에 속한 지역의 단체들은 철거민의 문제를 처음 접한 것이었기 때문에 수청동비대위의 진상조사활동 속에서 철거민들과 이들을 지도하고 있는 전철연의 사업에 대한 이해가 필요했기 때문이다.

먼저 한겨레 21에게 묻겠다.
한겨레21은 한겨레가 민생을 우선하고 민주를 이야기한 초심을 잊었단 말인가?
계급적인 시각을 앞세워 본질 보다는 들어난 현상으로 문제를 접근하고 사실을 근거로 한 정보가 아닌 의견과 입장이 다른 단체의 확인되지 않은 “카더라 통신”을 앞세워 도덕적으로 매도하는 것은 어디서 배운 것인가?
조선일보의 김대중이 조갑제가 즐겨쓰는 빨갱이식의 몰이, 그리고 도덕적으로 몰지각한 사람들로 모는 한겨레가 그리도 싫어하고 타도의 대상으로 하고 있는 조선일보의 방식이 아닌가?

기사의 제목부터 철거민들의 절박한 마음이 담긴 망루를 흉기로 표현했는데 이것이 수청동철거민들을 보는 한겨레21의 관점인가?

기사의 요지는 폭력적인 전철연이 주거권보다는 계급적인 시각으로 접근하고 있으며 도덕적으로 문제가 있고 80년대의 운동방식이 변화하지 않았다는 것이다.

여기서 전철연의 투쟁방식을 옹호 할 생각은 추호도 없다. 지난해 9월부터 수청동철거민들의 주거권을 찾기 위해서 직장도 잃고 가정도 팽개쳐야 하는 수청동철거민들의 모습을 확인하면서 오산에서 수청동철거주민들과 함께 살고 있는 지역주민의 입장으로 철거민들에 대한 상식과 보편성을 앞세워 이 기사가 얼마나 잘못 되었는지를 짚겠다.

한겨레21은 전철연이 철거민들에게 직장까지 그만두게 하고 계급적인 시각을 앞세워 폭력적 투쟁으로 내몰고 있다고 했다.

오산세교지구 수청동 철거민들은 자신이 살던 집을 주택공사에 강제로 수용당하고 전세에도 못 미치는 보상금의 부당성을 항의하고 빼앗긴 집을 위해서 직장을 그만두어야 했다. 철거민들은 작년부터 수용에 동의한 동네사람들이 하나, 둘 떠나고 집이 헐려나가는 모습을 보면서 자신의 집조차 헐리게 되는 눈앞의 현실에서 저항하기 위해서 싸움을 택할 수밖에 없었던 것이다.

공권력의 비호를 받은 말이 철거용역이지 폭력배들과의 싸움이 집안 살림만 하던 선량한 주부들이 대항할 수 있겠는가? 철거민들이 볼 때는 태산과 같은 국가가 부리는 공권력과 맞서면서 몇 달, 몇 년이 걸릴 그 싸움이 직장에서 연, 월차휴가를 내어서 가능하다는 생각인가?

그렇다면, 그렇게 직장을 잃은 철거민들이 싸움이 끝나고 갈수 있는 일터가 어디인가? 철거민들이 돈이 많아 자영업을 하겠는가? 철거민들이 갈 자리는 일용직 노동자일 수밖에 없는 것이 우리 사회의 현실이다. 요즘 직장에서 거리에서 인간답게 살겠다고 절규를 하는 비정규직노동자로 살아갈 수밖에 없는 것이다.

철저히 소외당하고 사회적인 약자로 존재하고 있는 철거민들이 끝내는 비정규직노동자로 살아갈 수밖에 없어 가난하게 사는 계층으로 전락하는 것을 계급적인 시각으로 몰아간다면 것은 인정하자. 그 것이 참여정부의 철거민들을 보는 시각이고 한겨레21의 시각이라면 말이다.

또한 전철협이라는 지도위원의 말을 빌려 “폭력적인 투쟁방식은 철거용역회사에 돌아가는 용역비가 급격히 상승하고 둘 사이가 어떤 관계가 있는 것이 아니냐는 의심마저 든다”고 도덕적으로 아주 심각한 단체인 것처럼 몰고 갔는데, 이는 전철연조합원 전체에게 상처를 주는 것은 물론 이번 오산의 수청동사태의 원만한 해결을 위해서 전철연과 비상대책위속에서 함께 일하고 있는 오산민주단체연석회의와 타 지역의 인권단체 조차도 심각한 문제이다. 도덕적으로 문제가 있는 단체와의 함께 하는 것에 시민누구도 비상대책위의 활동에 정당성을 부여할 수밖에 없는 것이 상식이기에 이는 비상대책위의 존폐의 문제이기도 한 것이다.

책임 있는 언론이라 하면 전철협 고문의 발언을 사실 확인을 하는 원칙에 충실하여야 하지 않겠는가? 이 문제는 한겨레21의 명확한 해명을 촉구하는 바이다.

또한 전철연 지도부 구성의 예를 들어 투쟁방식이 80년대 논리와 관성이 바뀌지 않았다 하는데, 그렇다면 철거민들을 생존권을 빼앗아 극한투쟁으로 몰아넣는 주거정책은 무엇이 바뀌었는가? 일반인들은 상상도 못하는 철거용역의 무자비한 폭력을 앞세운 물리력과 이를 비호하는 공권력은 바뀌었는가?

바뀐 것이 있다. 80년대와 90년대 초반까지는 정부의 주거정책에 의한 강제철거는 사회적인 이슈화 되어 관심의 대상이 되었었다. 그러나 도시개발이 거의 이루어졌다고 하는 지금관심에서 멀어져 있다가 수청동처럼 사람이 죽어나가야 관심의 대상이 되는 것이 현실이 아닌가? 그것도 철거민의 죽음은 관심에서 멀어지고 철거용역이 죽어야 말이다.

마지막으로 집도 잃고 가정도 파괴되며 생존권 보장을 외치고 있는 철거민들에게 단전, 단수는 물론 생필품조차도 반입을 막고 있는 경찰이 반인륜적인 행태를 서슴치 않는 시기에 이기사가 나왔는지 이유를 한겨레21은 납득할만한 해명도 있어야 한다.

만약 한겨레21이 해명에 미온적이라 하면 한겨레21은 왜곡된 사실을 앞세워 주택공사의 주거정책 본질을 외면하고 철거민들을 탄압하고 있는 현 정권을 비호하고 있는 것으로 볼수 밖에 없는 것을 분명히 한다.


오산민주단체연석회의 집행위원장 지상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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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 5월 14일 사회면 기사

오산 화염병’ 철거민들 한달째 고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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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찰
‘고사직전’ 에 아사 직전


물 빼곤 생필품 반입 막아…인권단체 “사실상 고문”

“주먹밥, 간장 한종지, 맹물 한컵….”

언뜻 들으면 한국전쟁 때 빨치산들의 먹거리 같지만 결코 아니다. 경기 오산시 창우동 세교 택지개발지구 우성빌라 옥상에 망루를 설치하고 한달
가까이 ‘주거권 쟁취’를 외치며 농성을 벌이고 있는 철거민들의 식단이다.

철거 용역회사 직원들에게 화염병을 던져 한명을 불에 타 숨지게한 일(4월19일치 10면)로 ‘살인자들’이란 낙인이 찍혀 지난달 16일부터
경찰에 포위돼 농성을 벌이고 있는 철거민들은 이제 ‘생존’이란 문제를 절박하게 고민하고 있다.

경찰의 ‘고사 작전’으로 28일째 빌라 옥상에 10여m 높이의 망루를 설치하고 농성을 벌이고 있는 이들의 생활은 비참하기 짝이 없는 것으로
전해지고 있다.

최근 두차례 농성 중인 빌라에 들어가 철거민들을 진료했던 오산 강남성형외과 권용대(41) 원장은 “24명 가운데 18명이 감기와 피부질환,
눈병 등을 앓고 있는데, 제대로 씻거나 이를 닦지 못해 소설 <태백산맥>에서나 읽었던 ‘굶주린 빨치산들’의 모습을 마주 대하는 것
같았다”고 전했다. 그는 “한 여성은 생리 중이었는데도 위생적인 처리를 못해 진료를 꺼리는 등 극도로 비참한 모습이었다”면서 “대부분이 영양
불균형 등으로 처참한 모습을 하고 있었으며, 30대 중반의 한 남자는 녹내장이 의심돼 방치하면 실명까지 불러 올 수 있는 상황”이라고 우려했다.


철거민들을 ‘살인 집단’으로 지목한 경찰은 지난달 16일 사건 당일부터 현재까지 약 한달 가까이 4~6개 중대 500여명의 전경을 동원해
농성현장을 ‘완전 포위’하고 진빼기 작전을 벌이고 있다. ‘지칠 대로 지치면 스스로 걸어나오겠지….’라는 논리다.

이는 경찰이 ‘괜히 어설프게 진압에 나섰다가 불상사가 일어나면 책임을 몸땅 뒤집어 쓰게 될 것’이라는 속셈도 깔려 있다. 국가인권위원회가
지난 2일 물과 식량, 의약품 등 생필품 공급을 허용하도록 권고했으나, 경찰은 이는 작전과 ‘정반대 권고’라는 이유로 하루 평균 18ℓ짜리 생수
2통 정도만 반입을 허용하고 있다.

이러한 고사 작전이 계속되면서 인권·시민단체들의 목소리도 점차 커지고 있다. 오산 민주단체연석회의 지상훈(50) 집행위원장은 “경찰의
전술은 사실상 고문에 가깝다”면서 “이러한 사태가 지속하면 극단적인 선택을 하는 철거민도 나올 수 있는 만큼 기본적인 인권보호 차원의 대책이
마련돼야 한다”고 주장했다.

오산/김기성 기자 rpqkfk@hani.co.krmailto:rpqkfk@hani.co.kr">rpqkfk@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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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예수님

참 여리게도 생겼다
도무지 누구에게도 싫은소리를 못한다
도무지 안된다는 말도 못한다

왜 맘보가 그리 생겼는지
비켜갈줄도 모른다
어느누구의 부탁도 거절 못하고
묵묵히 일만한다

예수님처럼 편한 얼굴로
부처님처럼 편안한 얼굴을 하고
수청동망루의 굳은 일은 모두 챙기는
후배이고 동지인 박형모님이 첫번째 입니다

그제는 허탕을 치고 어제도 오셨다
"망루에 몹시 아픈분이 있는데 어쩌겠어요"
오늘하루 더 오셔주시겠느냐는 간곡한 부탁에
거절을 못하시고 오셨다

히포크라테스정신?
인류의 보편적가치?
그런말이 그이 에게는 부담스럽다

이주노동자들 에게 정기무료진료를 부탁했을때
왜 의사선생님들이 함께해야 하는지를
찬찬히 이야기한 성형외과의사선생님

자신의 일로 돈버는데 익숙할만도 한데
경찰의 눈총을 어색해 하면서 뿌리치지 못하면서도
그제는 내내 망루에 아픈이들을 걱정하며
못들어 가는 것을 아쉬워하던 권영대선생님
당신은 정말 예수님입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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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

산산조각나 나뒹구는 유리조각이 보인다
다시 뜨거움에 달구어져야 새롭게 태어날수 있는 유리조각을

 

어제 세상 가까이 보았다
가족에게서 멀어지고
인격은 하나, 둘 발가벗겨져 가고
바뀌는 계절에 쩔은 사람냄새 뿐

 

산산이 부서지고 있었다
욕지거리로 세상을 말하는 그이들은
설땅이 없단다
스스로 개만도 못하다 했다
그것은 역설적이게도
삶에 대한 깊은 애정이었다
살아야 한다는 절규이기도 했다

그렇게 신자유주의의 선봉
초국적투기자본은 우리곁에 와 있었다

 

우리네 세상사
역사라는 이름으로
때로는 발전하고
때로는 후퇴도 하고
지금 외세는 그 역사라는 허울을 쓰고 변화하라 한다
다 벗으라는 것이다
그리고 몸까지 내놓으라 한다

 

위정자들이 주절되는 세계화라는 이데올로기에
감추어진 우리네 모습들
곱고 아름답지만하지 않은 우리네 세상사


사랑을 품자
뜨거움을 나누자
발전하는 역사의 필연을 위해
거리에서 새롭게 태어나야 하는
가난을 먹고 사는 이들을 위하여 말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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열세평의 행복

지금 주공이 지은 열세평짜리 아파트로 이사 오기전 까지 구로동 지하골방을 시작으로 5년 동안 일곱번 이사를 했다 그렇게 살면서 집사람에게 제일로 미안 했던 것은 친구들 집에 가면 중견건설업체가 지은 번듯한 아파트에 없는 것 없이 꾸며놓은 집안살림이 집사람보기가 무안하게 했다 녀석들은 부모잘 맞나 공부도 하고 싶은 만치 한 것도 있지만 녀석들이 만나면 20여년 전에 벌써 재테크를 하는데 골몰해 있는 것을 볼수가 있었으니 지금도 그렇지만 밥세끼 겨우 챙기면서 월세방 살면서 제지공장 3교대를 하는 내게는 감히 재테크는 엄두도 못내는 일이었지만 그때나 지금이나 돈에는 관심이 없는 내게는 그냥 지나치는 말로 욕심없이 살자고 녀석들에게는 말도 안되는 말로 나를 내세울 뿐 이었고 열세평짜리 우리집에 장농은 집사람이 결혼할기 전에 준비한 혼수품이다 또 아직도 전기밥통이 있는데 그 것 역시 집사람의 혼수품이었다 이 외에도 작년까지 쓴 헤어드라이기를 비롯 아직도 그릇은 집사람의 혼수품이 더러 있다 그러니 23년이 다되어 가는 가제도구가 골동품이 아닌 실생활용품으로 있는 것이다 열세평짜리 아파트에 둘째누이네 집에 있는 어머니를 모셔 와서는 그 때는 정말 세상에 부러울 것이 없었는데 그리고 17년을 우여곡절이 많은 어려운 시간을 보냈다 아빠 덕에 초록이가 2년을 넘게 외가살이를 하고 집사람도 그 때는 남의 집 살이로 집은 거의 비어도 있었고 지금 내게는 열세평에서의 행복이 보인다 비록 욕심없이 살아온 내 나름데로의 간결한 삶이 나를 배부르게 하지 않았고 포만감으로 불편해 하지 않으면서 깨끗하고 맑은 마음을 세상사람 누구와도 나눌수 있는 행복을 가진 것이다 더 욕심이 있다면 우리 일곱형제를 위해서 평생을 헌신한 어머니가 생전에 계셨으면 하는 바램이 그것이고 내 주변에 살아있는 모든 것들이 질시와 모멸이 없이 살아가는 것을 보고 싶은게다 일욜날 아침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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걱정

비라도 올라치면 산등성이 겨우 의지하고 사는 사람들이 더 어려워지고 바람이라도 함께 불라치면 비닐떼기로 겨우 지붕 가리며 사는 사람들 더 어려워지고 걱정에 걱정을 더 하는데 언제나 그칠는지 비 그만 와 달라고 가슴만 쓸어 내리니 내일 즈음이면 그칠라나 엊그제만 하여도 더위에 지쳐 헉헉대며 비를 그렇게 그리워했건만 비가와도 어지간히 와야지 이바구니 밥 세끼 겨우 챙겨놓고 하늘이나 가리고 누울자리 겨우 마련하여 하루를 아둥바둥하며 가난을 지고 사는 사람들은 힘들기만 한데 내일 즈음이면 그만 올라나 그러면 비바람에 힘들어하며 마음졸이는 내도 마음이 좀 풀릴텐데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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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 어릴적

나 어릴적 ... 10시를 넘으면 아버지 불끄고 잠자라는 소리에 혹시라도 라디오소리 새어 나갈가 보아서 이불 뒤집어 쓰고 라디오 다이얼을 동아방송에 맞추었다 성우 김 세원님의 밤의 플래트 홈의 시그날 인 폴 모리아의 경음악"Isadora"속에서 감미로운 세상이야기도 들었다 그렇게 열시를 넘기면서 윤 형주님의 "0시에 다이얼"을 기다리면 프랭크 폴셀의 " in the year 2525" 이 가슴벅차게 나를 자극하고 혹시라도 밥 딜런의 "Knock on havens door"이라도 나올라치면 어데 천국을 어떻게 찾아갈까 하고 마음도 졸이면서 다이얼을 잠시도 고정시키지 못하고 조금은 무거운 음악을 듣고싶어서 다이얼을 조금 옮겨 기독교 방송에 임 문일님의 "꿈과 음악사이"를 켜놓고 킹 크림슨을 기다려 보고 블랙 사베스도 기다리면서 젊은 밤을 달랬는데 혹시라도 켄사스의 "Dust in the wind"라도 나올라치면 왜 그리 가슴이 울렁였는지 다시 우측으로 다이얼을 옮겨 임 국희님의 "별이 빛나는 밤"을 틀으면 어디 우주의 아름다운 별여행으로 안내 하는 듯한 프랑크 폴셀의 "Merci Cheri"가 나를 편안히 맞았고 유신이라는 엄혹한 그 시대에 살아온 우리가 월남전에서 전해전 비둘기 발자욱을 그려진 평화를 상징한 peace mark를 청바지 자락에 그려놓고 왜 비둘기 발자욱이 그 시대를 상징 햇는지 보다도 왜 존 바이에즈와 밥 딜런 그리고 존 레논의 노래속에서 월남전을 반대했는지를 느낌으로 받아들인 아주 감성적인 소년이었으니 돈 메클린의 울림이 각별한 "Vecent"를 듣고 메라니 사프카의 애절한 "Ruby tuesday"를 듣고 산타나의 "Sambapaty"를 에게를 여행하게 하는 듣한 감정으로 들으면서 이 때에는 내게 음악이 있어 살아있는 것을 실감한 어쩌면 음악에는 깊은 이해가 있었던 것이라 생각도 해본다 그 때는 말이지 김 민기가 내게 정말 특별하기도 했구 김 민기의 "친구" 를 들으면서 뭉클거리는 마음을 깡통이라는 친구녀석과 즐겨부르면서 한 대수의 "고무신"을 들으면서 우리가 사는 시대가 아프다는 것을 어렴풋이 감지한 고등학교 그 때의 조금은 예민한 감성을 가진 나인데 그 때의 그 예민한 감성을 자극한 음악이 지금의 아주 감성적인 나를 있게 한듯도 한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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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리랑카공동체

어제는 오산근교에서 일하는 스리랑카분 들을 공동체로 묶어주는 날이었습니다 얼굴은 검지만 키는 크고 핸섬하기만 한 그 들은 인도대륙 아래에 남한정도의 크기에 인도양에 위치한 섬나라로 70년대 중반까지 실론이란 나라로 불리어 지기도 했지요 인도, 파크스탄과 같이 1948년 이전까지는 영국의 제국주의정책에 100여년을 영국의 식민지로 있어온 까닭에 영어를 유창하게 구사하기도 하구요 문화적인 요소도 식민지의 잔재가 남아 있어 그들이 즐기는 운동도 영국연방국가 들이 즐기는 야구와 비슷한 클리켓이란 운동이기도 하지요 83년대 들어서는 48년 영국으로의 해방이후에 싱글리족과 타밀족의 민족 문제가 내전으로 번져 수많은 사상자를 나은 분쟁의 지역이기도 합니다 넉 달전 망포리에 있는 회사가 이사를 하면서 일자리를 줄이는 바람에 실업자가 되고 일한 월급도 받지 못한 헤르뜨란 청년이 상담을 청해와 일자리도 찾아주고 월급도 받아준 계기가 헤르뜨에게는 신뢰로 다가갔는지 매주 일요일이면 친구들을 데려와서 밥도 같이 먹고 인터넷도 가르치면서 마음을 나누고 오산근교에 사는 스리랑카 사람들이 모여서 함께 살아갈 공동체란 틀을 만들 것을 제안 한 것이 오늘 25명이 모여서 스리랑카공동체구성이 성사가 된 것입니다 우리 사회에서는 사회적인 약자로 존재하는 이주노동자들 자신의 나라에선 인테리 교육을 받았어도 경제활동을 할 근거가 부족하여서 일자리를 찾아서 코리아를 찾은 그 이 들을 위해서 해줄 수 있는 것은 많지가 않습니다 지난 해 9월 28일 개소한 오산의 이주노동자센터 매월 첫 번째 일요일 한번의 무료진료 공장에서 한국말 못 알아듣는다는 구박을 면해주기 위한 한글교실 이제 전 세계에 어느 구석에서도 필요할 인터넷 교육 생일잔치라도 함께 하고 어려운 일은 함께 논의하여 해결 할 수 있는 나라별 공동체구성 자칫 그 이들에게 차별화된 인권의 적용이 있다면 평등한 국제 인권 법을 들어 그 이들이 소외되지 않게 상담을 통해 해결하는 일 문화적인 이질감을 해소 해주기 위해서 우리나라의 민중문화를 공연이나 체험을 통해 접목시켜 주는 일 우리나라에서 부부로 맺어지어서 아이를 낳았는데 온종일 일을 해야 하는 엄마, 아빠를 위해서 육아방을 꾸리는 일 일자리를 찾아 오산에 온 이들을 위한 쉼터 운영 등등등 쉽지는 않습니다 온통 어려움 뿐 입니다 사람들을 챙기는 일이 모두다 그렇듯이 말이지요 순박하기만 한 스리랑카 청년들의 오산지역공동체 속에서 낯설기만 한 이국 땅 코리아의 오산이란 곳에서 자신의 외로움도 그리움도 공장의 일 속에 어려움도 해소 될 수 있었으면 하는 바램을 가져 봅니다 그 들도 우리와 똑 같이 사랑하는 가족이 있고 우리도 그 들과 똑 같이 먼 이국 땅에서 노동자로 일한 경험이 있기 때문입니다 그 들은 언어와 얼굴색만 틀리지 우리와 똑같이 생각하고 일하는 사람이기 때문입니다 오늘 우리가 가지고 있는 행복을 나누어 가지고 싶은 간절한 마음으로 그 들의 공동체 탄생을 지켜보고 있었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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