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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19일차]어떤 미친놈 때문에 망쳐버린 여행

8월 3일

 

관타나모에 들릴 계획이 최소됐다. 미해군 전망대 출입이 금지됐단다.

쿠바에 온 목적이 하나둘씩 없어져 버리고 말았다.

할수없이 바라코아로 향했다. 처음으로 삐끼에게 이끌리지 않고 스스로 발품팔아 숙소를 잡았다.

 

짐을 대충 정리하고 밖으로 나섰는데 한 남자가 다가온다.

"아까 터미널에서 네가 내 비씨택시를 타려고 하다가 자동차 타고 가버렸어"

"오! 미안해"

"차가 더 빠르긴 하지..."

 

광장 벤치에 앉아 어디를 갈지 찾아보고 있는데 그가 자기 자전거로 해변을 가잔다. 싫다 그랬더니 돈을 안받겠단다. 그래도 싫다고 하고 그를 피해 걷는데 자꾸만 따라온다.

"나 바다 싫어해"

"왜?"

"수영못해"

"거기 별로 물 안높아 가슴까지 밖에 안와"

'가슴까지 오면 난 죽는다 이것아~~'

"그러면 그냥 주변을 돌자"

"싫어 난 혼자가 좋아"

"돈 안받을께. 맥주 하나만 사"

그러면서 계속 들러붙길래 그냥 그의 자전거에 탔다.

그가 여기저기 가르쳐주며 한바퀴를 다 돌고 나서 맥주 한잔 사주며 서로에 대해 이야기했다.

그의 나이는 29살이란다.

근데 자전거 택시기사를 하며 힘들게 돈을 벌어서 그런지 보기에는 35살쯤으로 보인다.

 

비씨택시 기사들은 대단하다. 80년대 쌀가게 아저씨들이 끌고 다녔을 법한 자전거에 천막을 달고 뒤에 바퀴 두개를 더 달아 의자 2개를 설치해놓고 손님을 2~3명씩 태운다. 가격은 보통 2~3달러. 쿠바인들의 월급에 비하면 외국인을 상대로한 이 장사가 낫지만 민박이나 음식점등에 비하면 고생이 많은 직업이다.

한번은 바야모에서 처음 비씨택시를 탔는데 짐도있고 하니까 미안해서 몸둘바를 몰랐다. 그 이후론 왠만하면 비씨택시를 안탔는데 오늘 또 그를 고생시켰다. 그것도 맥주 한잔에...

맥주를 다 마시고 헤어지려는게 그가 바다로 가잔다. 여행사도 문을 닫고 그도 끈질기게 달라붙어서 그렇게 하기로 했다.

마을에서 5km떨어진 두아바 해변으로 향했다.

그가 이상하게도 자꾸 남의 턱을 툭툭치고, 자전거를 운전하면서도 자꾸 뒤돌아서서 "bueno?"하며 남의 턱을 만진다. 그것만 빼면 그의 매너는 괜찮았다.

 

어쨋든 해변에 도착했는데 사람이 하나도 없는 인적이 드문 바다다.

그가 하얀색 팬티만 남기고 옷을 훌렁 벗더니 바다로 뛰어든다.

나는 언제나 처럼 양말만 벗고 물이 무릎위로 넘어오지 않는 선에서 발을 담그고 있다가 자리에 앉았다.

그가 나와 내 옆에 앉더니 역시나 다른 남자들과 똑같은 수법을 쓴다.

살이 하얗다면서 은근슬쩍 팔을 만지더니 다리의 모기자국을 만지면서 다리를 만진다. 그러더니 이것이 어깨동무를 하며 몸을 밀착하네?

사람도 없는 이곳에서 무슨 일을 당하겠다 싶어 집에 가겠다고 일어서는데 그가 조금만 더 있자며 나를 붙잡는데 힘이 장난이 아니다.

순간 정신은 번쩍 더는데 몸에서는 식은 땀이 주르륵 흐른다. 그래도 온 힘을 모아 몸부림을 치며 그를 밀쳐냈다.

그리곤 숙소로 발걸음을 돌렸는데 그가 자꾸 따라오며 손을 잡는다.

"만지지마!"

그래도 또 잡는다.

"제발, 만지지 말라고!"

그러자 그가 자전거를 끌고와 데려다 주겠단다. 사실 숙소를 향해 돌아서면서도 집까지 어떻게 걸어가나 걱정이 조금 되긴 했다. 오늘 하루종일 먹은 거라곤 맥주 한캔이 전부였기에 몸은 지칠대로 지쳐있었다.

그가 미안하다며 자전거에 타라기에 못이기는척 탔다.

 

그 왈, "내가 잠깐 미쳤나봐...."

"그래. 너 미쳤어"

"내가 원래 미친건 아니고 조금 미쳤었어"

남자들이란 다 똑같군... 하는 말도 어쩜 저리 똑같을까...

 

마을 근처에 다달았을 때 걸어가겠다며 자전거에서 내렸다.

그러나 역시 그는 계속 따라오며 맥주를 사겠다며 먹고 가란다.

싫다며 숙소로 들어가 버렸다.

 

바라코아에서의 첫날은 이렇게 망쳐버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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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겨우 쓰레기장에서 나와서 세상좀 보니까, 더 큰 쓰레기장이 나오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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