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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테헤란> 패는 게 일이다^^

 

흔히 테헤란에 대해서는 여행자들이 하는 말은 별 다른 볼거리가 없으니 그저 하루 이틀만 머물고 빨리 빠져나가는 게 좋다고들 한다. 특히 교통이 혼잡하고 매연이 심해서 그 하루 이틀도 견디기가 쉽지 않다고 들었다. 과연 여행자 숙소가 있는 거리도 우리나라 옛날 청계천을 보는 듯 공구 상가만 즐비한데다 차들이며 오토바이가 한데 뒤엉켜 길을 다니기도 쉽지 않아 보인다. 아닌게 아니라 가이드북을 뒤져봐도 박물관 몇 개를 제외하고는 딱히 가보고 싶은 곳도 없다. 아무리 그래도 이제 다시 일정 짜서 다니는 게 탄력이 붙었는지 또 습관적으로 가이드북을 뒤적거려 갈 곳을 대충 만들어 둔다. 박물관 몇 곳과 바자르 그리고 하루는 숙소에서는 조금 떨어져 테헤란 북부까지 올라가 보기로 한다.


먼저 찾아간 바자르는 이제 더 이상 재미가 없다. 넓기는 오지게 넓은데 옷이며 물건들이 매번 보던 것과 다를 게 없다. 길가 쪽만 한 바퀴 둘러보고 안으로 들어가는 건 포기다. 그 다음에 국립 박물관이다. 어쨌든 한 나라의 수도에 가면 그래도 국립 박물관 하나쯤 보아주는 건 여행자의 예의에 속하는 일인 것 같은데 이 나라 국립박물관은 상태가 많이 안 좋다. 그리 크지 않은 전시실이 일층에 있는데 그게 전부다. 나라도 무지 크구만 이 땅에서 나온 그 많은 유물들은 죄다 어디다 팔아먹은 건지 국립박물관 꼴하고는... 그나마 이슬람이 들어온 이후 유물이 전시되어 있다는 이슬람 박물관은 공사 중이라 문을 닫은 상태다. 국립박물관에 실망하여 박물관 순례를 중단할까 하는 생각도 들었지만 혹시 알아.. 저기 없는 게 죄다 다른 곳에 있을지 싶어 이번엔 유리와 도자기 박물관에 가본다. 조그만 주택을 개조해 만든 박물관의 전시물은 개인 소장품 수준이다. 에이 박물관 순례 중단이다!!라고 맘먹었다가 그래도 뭔가 아쉬워 보석박물관 하나만 더 가보기로 한다.


테헤란의 공원, 운동기구들이 놓여 있다


거리에서 낮잠 자는 아저씨들


보석박물관은 이란 중앙은행 지하 금고에 있다. 즉 전시실 안에 들어가는 게 결국 거대한 금고 속으로 들어가는 것인데 입장부터 보안이 삼엄하다. 게다가 이란의 입장료는 2004년부턴가 내외국인을 동일하게 적용하기 시작해 큰 부담이 없어졌는데 개인주택들이나 몇몇 교회 그리고 이 보석박물관 등은 개인이나 사기업이 운영해 입장료도 만만치 않다. 전시물은 보석으로 만들 수 있는 모든 것이다. 반지며 목걸이 같은 악세서리에서 그릇이며 옷, 검, 왕관과 의자, 침상에 이르기까지 한때는 권력자들의 것이었을 물건들이 이 지하에 총망라 되어 있다. 그중에는 제법 아이 주먹만한 다이아도 있는데 빛의 바다라나 뭐라나 하는 물건이란다. 어디서 이렇게 많은 진짜 보석들을 볼 수 있겠어.. 그저 눈이라도 호사를 하는 거지 하고 생각하려고 해도 너무 많은 보석들이 한 공간에 모여 있어서인지 아님 보는 눈이 그것뿐이어서 그런지 보석박물관도 그만그만하다.


국립박물관, 썰렁한 와중에 소금인간이라 불리는 미이라 한 구


그리고 세계사 교과서에서 봤던 거 하나는 건졌다. 이름하여 함무라비 법전!!

 

하루는 북부 쪽으로 올라가 본다. 테헤란은 서울과는 반대로 숙소가 있는 남쪽이 상대적으로 못 사는 동네란다. 그래서 북쪽은 남쪽보다는 공원도 많고 좀 한산한 느낌이 든다니 이 혼잡한 동네를 좀 벗어나 보기로 한다. 먼저 이슬람 혁명 이전까지 이란의 왕이었던 팔레비 국왕이 살던 궁전을 찾아가본다. 북부 지역까지는 버스를 타고 갔지만 궁전까지는 합승택시를 타야 한다. 이란의 택시는 대부분 합승택시로 구간구간 이동하며 갈아타게 되어 있어 가격이 아주 저렴하지만 외국인이 타는 순간 개인택시로 바뀌는데다 가격도 열배이상 뛴다. 현지인이 타고 있는 택시를 타는 게 좋은데 방향을 잘 모르니 그것도 쉽지 않다. 대략 궁정으로 가는 비용을 물으니 보통 가격에 20배쯤 되는 가격을 부른다. 하긴 4명을 태울 택시에 나 혼자 타고 가니 20배는 아니고 5배쯤 되는 모양이다. 원래 테헤란 택시들 악명이 높다더니 과연 그런 거 같다. 슬슬 궁전 쪽으로 걸어가다 보면 합승택시가 있겠지 싶어 걸어가니 빈택시가 와서 선다. 가격을 물어보니 웬일인지 현지인 가격을 부른다. 초보인가 싶어 탔더니 내릴 때 딴소리다. 이 아저씨 영어가 짧아 2000토만 부를 거 200토만 불렀다는 거 아닌가^^. 당근 200만 주고 내렸다.


팔레비 왕의 궁전터는 원래 커다란 공간에 궁전이 열개 가까이 있었던 모양인데 현재 대부분 박물관으로 개조된 상태이다. 모든 궁전마다 모두 개별적으로 표를 끊고 들어가게 되어 있어 두 곳만 표를 끊는다. 그 중 가장 유명하다는 화이트 팔레스와 블루 팔레스다. 즉 하얀 궁전과 파란 궁전 두개만 본 셈인데 이 두 곳은 팔레비 왕이 이슬람 혁명정권에 쫓겨날 때까지 살았던 곳으로 지금도 가구며 집기들이 그대로 전시되어 있다. 방마다 가구는 프랑스에서 만들었고, 카페트는 이란 어느 지방에서 만들었고 등등이 쓰여 있어 박물관에도 잘 안 해주는 안내가 왜 이리 잘 되어 있나 했더니 이 시절 왕의 사치를 국민들에게 보여주려는 의도가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든다. 왕이 쫓겨난 뒤에 전시되어 있는 궁전이야 어디나 다 비슷비슷한 느낌이니 그저 궁전 주변으로 조성되어 있는 공원에서 시간을 보낸다. 오랜만에 하늘을 찌를 듯 솟아있는 나무들 사이를 걸어가니 마음이 상쾌해진다.


파란 궁전의 거실, 벽이 온통 크리스탈로 되어 있다.


팔레비 왕의 동상, 이슬람 혁명 당시 성난 군중에 의해 부서지고 지금은 다리부분만 남아 있다고 한다.


여기까지 왔으니 내친 김에 산이 있다는 다르반드까지 가 보기로 한다. 이란의 산이야 나무하나 없이 멋대가리 없긴 하지만 이곳에는 등산로도 있고 리프트도 설치되어 있다니 그저 리프트나 타고 올라갔다 올까 하는 생각이 든다. 하지만 막상 그 곳에 도착해보니 완전히 우이동 골짜기다. 물이 흐르는 계곡 주변으로는 온톤 식당이며 찻집이 들어서 있어 밥이라도 먹지 않으면 어디 앉아서 쉴만한 공간도 없다. 그나마 리프트는 특정한 시간에만 운영하는 지 꼼짝도 않고 서 있다. 그저 사람 사는 곳은 다 똑같다는 생각이 든다. 산중턱 가게가 끝나는 지점까지 올라갔다 그냥 내려온다. 나무 하나 없는 산은 진짜 올라가고 싶지 않다. 마음 같아서는 계곡 옆에 깔아놓은 평상 위에서 물담배나 한대 피우고 가고 싶은데 혼자서는 그도 처량할 거 같아 망설이다가 그냥 돌아온다.


다르반드, 산에 나무 한그루가 없다


계곡마다 카페트가 깔려 있다.


테헤란에서는 말로만 듣던 성추행을 두어 번 당한다. 일단 범인을 확인하면 냅다 패주고 보는데 그럼 대부분 슬금슬금 인파 속으로 도망가 버린다. 경찰을 부르라는 말도 있지만 엉덩이 슬쩍 만지고 가는 놈을 경찰에 까지 넘기기는 좀 뭣해 일단 폴리스에 가자고 큰 소리는 쳐도 나 역시 그럴 생각이 꼭 있는 건 아니다. 하지만 테헤란 북부에서 만난 놈은 경찰에 확 넘겨버릴까 하는 생각이 든다. 다르반드 가는 버스를 알아보러 길가 부스에서 꽃을 파는 사람에게 길을 물었더니 가게 안으로 들어오란다. 마침 꽃들도 볼 겸 안으로 들어갔더니 어디어디 방향이라며 가르쳐주는 척 하더니 가슴을 슬쩍 건드린다. 일단 손에 들고 있던 물병으로 냅다 패기 시작한다. 하지만 페트병이란 게 퍽퍽 소리만 요란하지 상대에겐 별 타격이 없는 듯 이 자식 이리저리 피하며 자기는 아무 짓도 안했다는 제스쳐를 한다. 갑자기 성질이 확 난다. 이번에 멱살을 잡고 부스 밖으로 끌어내며 폴리스 가자고 큰 소리를 친다. 가게 밖으로 나오니 이 녀석 좀 쪼는 게 보인다. 지나가는 사람들이 모여 들고 얘가 내 몸을 만졌다고 영어로 떠들어봐야 알아듣는 사람도 없다. 이제 영어도 안 나온다. 내 분에 겨워 *새끼, *새끼-나도 내가 그렇게 욕을 잘하는지 몰랐다^^- 해 가며 소리소리를 지르며 걷어차고 난리를 치니 완전히 구경거리가 난 셈이다. 이 자식 가게가 여기니 도망도 못 가고 그저 자기는 아무 짓도 안했다는데 결국 사람들이 말려 그쯤에서 끝을 낸다. 여튼 인간들 혼자 다니는 여자는 더 지들 좋으라고 다니는 줄 안다. 미친 새끼들.. 


이제 이란이 슬슬 지겨워지기 시작한다. 딱히 불편한 건 아닌데 왠지 모르게 조금 갑갑한 느낌에다 고만고만한 유적들 그리고 사람들의 친절을 넘어선 관심들이 조금씩 부담스러워진다. 게다가 한동안 한국 사람들 구경을 못해서인지 조금 심심하기도 하다. 여기서 바로 터키로 넘어갈까.. 원래 생각했던 곳 하나를 더 들렀다 갈까.. 잠시 고민이 된다. 그래도 가서 후회하는 것이 안가고 후회하는 것보다는 낫다는 생각으로 일단 한곳만 더 거쳐 터키로 넘어가기로 한다. 가보고 맘에 안 들면 다시 떠나면 그만이라고 생각하니 마음이 조금 편해진다. 늘 그렇듯이 처음에 가야겠다고 생각한 곳은 결국 가게 되는 모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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