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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치앙마이> 트레킹을 하다

 

사실 한달 만에 여행기를 쓰자니 이젠 기억도 가물가물한게 별다른 생각이 나지 않는다. 그냥 혼자 다닌 여행기라면 살짝 지어서 쓴들 누가 눈치채랴마는 이건 증인이 엄연이 있으니 그럴 수도 없고 게다가 그 증인이 어리버리한 인간도 아니니 대략 난감이다. 그냥 넘어가나, 사진으로 대충 때우나 별 생각을 다 해봤으나 그냥 넘어가면 더 이상 여행기를 안 올리고 싶어질 것 같고, 사진으로 때우자니 그나마 카메라가 치앙라이 어느 지점에선가 그 수명을 다하고 장렬히 전사했으니 그도 불가능해 막연히 일산주민이 찍은 동영상이나 편집해 올려줬으면 좋겠다는 생각도 해보지만 돈안받고 찍은 비디오는 남의 결혼식 비디오도 둘째아이 돌날에나 갖다 주는 우리네 상태를 생각해 보건데 부지하세월일 것이 분명한 고로 그냥 기억나는 대로 써 보기로 한다. 뭐 안 읽어도 그만이다^^


치앙마이로 가는 여행사의 밤버스는 가격이 싼 대신 여행자들로 초만원이다. 이제 시즌이 시작된 건지 한국인들도 제법 눈에 뛴다. 태국의 버스는 대략 이층버스를 가장한 일층버스인 경우가 많은데 -좌석 높이는 이층인데 일층에는 사람이 거의 타지 못한다- 이 이층버스는 일층에 제법 응접실 같은 공간이 있다. 대학생처럼 보이는 한국남녀 둘이 냉큼 올라타서는 여기에 앉아도 되냐고 묻는다. 괜찮다고 했는지 일층에 널찍하니 자리를 잡고 앉는다. 뭐 그 자리도 좋아 보여 우리도 슬쩍 옆자리를 차지하고 앉는다. 또다른 한국청년 하나를 포함해 다섯 명이서 열명은 족히 앉아갈 공간을 차지하고 떠날 때까지는 좋았는데.. 이 버스 한 시간 가량을 달리다가 아유타야에서 다시 열 명 가까운 사람을 태운다. 행복도 잠시 초만원이 된 일층에서 발도 못 뻗고 밤새워 가야하는 신세가 된다. 더구나 악명 높은 에어컨 버스는 아무리 추운 날에도 절대 에어컨을 끄지 않는 전통을 자랑하지 않는가 말이다. 더구나 창가에 앉은 안숙은 문틈사이로 들어오는 바람까지 온전히 맞으며 태국에서의 신고식을 치르게 되는데 지금도 가끔 그 버스에 치를 떠는 안숙의 모습이 떠오른다^^


치앙마이에서의 안숙


버스가 도착하자마자 당일 트레킹에 오르는 최강 체력 이십대 초반 둘과 삼십대 초반 하나를 남겨두고 삼십대 중후반의 숙소잡기에 나선다. 아.. 이 얼마나 좋으냐 말이다. 둘이서 구하니 돈은 덜 들지, 방은 더 좋지 역시 여행에는 일행이 있어야 하는 법이다^^. 방을 잡아두고 트레킹 예약을 위해 치앙마이에서 가장 친절하다는 한국인 업소인 미소네 게스트하우스를 찾아 나선다. 뭐 길에 널려 있는 게 여행사긴 하지만 트레킹을 위해선 짐도 맡겨야 하고 뭐 트레킹 멤버 중 한국 사람이라도 하나 더 있으면 좋고 기타 등등한 이유로 그냥 한국인 숙소에서 트레킹을 신청하기로 한 터다. 조금 헤매긴 했지만 한국인 게스트하우스치고는 심하게 친절한 미소네에서 트레킹을 신청하고 내친 김에 트레킹을 다녀와서는 숙소를 아예 이곳으로 옮기기로 한다.


치앙마이 구시가를 둘러보고 나이트바자도 구경하고 이젠 이름도 기억나지 않는 무슨 호텔에서 무려 세금포함 삼백밧이나 하는-뭐 대략 칠팔천원 돈이지만- 샤브샤브 부페까지 먹고 돌아오니 벌써 하루가 지나 있다. 담날 트레킹은 출발 시간이 그리 빠르지 않아 여유있게 짐을 싸 픽업 장소인 미소네로 이동한다. 작은 배낭도 하나 빌려 옷이며 물 등을 싸고 나니 출발 시간이다. 막상 픽업트럭에 올라보니 한국인 게스트 하우스에서 신청한 보람도 없이 우리 둘을 제외하곤 전부 서양애들이다. 더구나 다국적군도 아닌 게 영국앤가 하나를 제외하고는 전원이 호주 애들이다. 게다가 나이 거의 이십대 초반이라 뭐 애초부터 어울리기는 쉽지 않아 보인다. 뭐 사실 크게 어울리고 싶은 생각도, 어울릴만한 영어도 아니긴 하지만 말이다^^.


트레킹 코스는 시장을 보는 일부터 시작해 점심을 먹고 오후에서야 본격적으로 시작되는데 처음에 완만한 등산로를 오르다가 약간의 계곡을 건너는 등 뭐 이정도면 할 만하다 싶은 길이 두어 시간 이어지더니 마지막 30분가량을 밑도 끝도 없는 오르막을 올라가는 것으로 마무리된다. 헉헉거리며 따라가다 결국 더는 못가겠다고 잠시 뒤로 빠진다. 가이드가 2분만 더 가면 된다는 게 그 말을 어찌 믿는단 말인가.. 줄 뒤에 낙오되어 헉헉거리고 있는데 그래도 일행이라고 안숙이 옆에서 기다려준다. 잠시 후 정신을 차리고 보니 정말 일이분거리에 정상이 보이고 사람들이 거기 모여 쉬고 있는 것이 아닌가. 에휴 이분만 참았으면 스타일 안 구기는 건데^^ 여튼 어찌어찌해 라후족 마을에까지 도착한 시간이 다섯시 경인데 땀이 채 마르지 않은 탓인지 갑자기 추워가 느껴진다. 아무리 태국이라도 지금은 겨울철이고, 치앙마이는 북부인데다, 게다가 여기는 산 속인 것이다, 우리가 하루밤을 묵어야 하는 집 역시 대나무로 얼기설기 얽은 집이라 대체 바람이 막아질 것 같지 않다.


트레킹 숙소


라후족 마을 전경


마을 한 바퀴 돌고 가이드가 해 주는 저녁을 먹고 마을 아이들의 재롱 잔치까지 봐도 시간은 고작 여덟시다. 모닥불 앞에 옹기종기 모여 이어지는 가이드의 영어로 하는 말장난까지 들어줘도 시간은 아홉시나 됐을까 날은 더 추워지고 하늘은 흐려 그 예쁘다는 별도 보이지 않고, 호주애들은 술도 안마시고 노래도 안 부르더니 일찌감치 잠자리에 드는 분위기다. 우리도 안숙이 한국에서 가져온 소주 한 병을 쵸콜렛을 안주삼아 나눠 마시곤 잠자리에 든다. 옷이란 옷은 다 껴입고 침낭에 담요까지 서너개를 덮어도 별다른 온기가 느껴지지 않는다. 이럭저럭 잠자리에 들긴 했는데 바깥에서 들리는 바람소리가 무슨 전설의 고향이라도 찍는 것 같다. 이럭저럭 아침이 오고 그래도 얼어 죽지는 않았다는 안도감에 아침에 주는 따뜻한 커피며 차를 좋아라 마시고 다시 산을 내려온다. 내려오는 길은 훨씬 수월해 올라가는 중간에 폭포에서 잠시 놀다 내려와도 올라가는 시간보다는 덜 걸린다.


 

코끼리를 탄 안숙과 나. 고소공포증이 있는 안숙 심히 무서워하더군^^

코끼리 코,, 저건 바나나를 달라는 신호다. 안 주면 콧물 같은 것을 쏜다^^


산을 다 내려와서 코끼리타기며 래프팅, 뗏목 타기 등의 이벤트가 줄줄이 이어지는데 죄다 처음 해보는 것들이라 제법 흥미를 끈다. 특히 레프팅은 말 그대로 온 몸이 다 젖는다는 가이드의 말에 어릴 적 운동회에서나 입을 법한 조악한 색깔의 나일론 반바지를 하나씩 사입고 시작한다. 물살이 그리 세지 않아 크게 위험해 보이지는 않는데 제대로 된 래프팅을 해봐도 재미있겠다는 생각이 들만큼 스릴이 느껴진다. 래프팅을 마치고 돌아온 날 미소네 아주머니의 추천으로 동네 천막집으로 새우 부페를 먹으러 간다. 민물 새우긴 하지만 새우를 비롯해 각종 고기와 야채 뷔페가 199밧, 우리돈으로 삼천원 남짓이다. 구워먹어도 되고 수끼로 먹어도 되는데 우린 물론 양쪽을 다해 먹었다^^ 이젠 수끼는 지겨워.. 뭐 새우는 바다 새우라야 되는데 맛이 좀 떨어지지.. 등의 배부른 소리를 해가며 돌아온다. 여튼 안숙 오고 나서부턴 진짜 잘 먹는다.


치앙마이에서의 마지막날은 혼자서는 다니기 쉽지 않은 치앙마이 근교를 숙소에서 소개해 준 한국인 몇명과 차를 대절해 다녀온다. 한쌍의 부부와 한쌍의 남매 그리고 우리가 그 일행이다. 부부는 나이차가 좀 나보여 불륜으로 오해받기 쉬워 보이는 그러나 결혼한 지 10년이나 됐다는 커플이고 남매는 대학교 일학년 누나가 중3짜리 동생을 데리고 다니는데 그 누나도 고등학생쯤으로 보이는 커플이다. 치앙마이 추위를 우습게 보고 반바지 차림으로 나온 우리는 결국 숙소에서 사원에서 입으라고 챙겨준 긴바지를 내내 입고 다니는 만행을 저지르기에 이른다. 그게 방콕편 사진에서 보신 차림새 되시겠다. 저녁에는 미소네 게스트하우스에서 한달째 머물고 있는, 동남아만 8개월째 돌아다닌다는 해병대 출신의 박병장과 술자리를 같이 한다. 어제 우리가 맥주를 일인당 세캔씩이나 먹는 걸 보고 재들 정도라면 술먹을 하다고 생각했다나 어쨌다나 하는 인간이다. 그 친구 내숭 안 떠는 화끈한 언니들이라며 간만에 술친구 만난 분위기인데  뭐 상태가 썩 훌륭해보이지는 않지만 그런들 뭐 어떻겠는가, 뭐 같이 살 것도 아니고^^ 덕분에 두어시간 유쾌하게 보낸다. 이차 가자는 걸 뿌리치고 일어서는데 꽤나 서운해 하는 눈치다. 


대학생 누나와 중학생 동생 커플, 몽족의 전통 의상을 입었는데 좀 하얀 것만 제외하면 그냥 현지애들 같다.


일단 크리스마스 이브는 치앙라이에서 보내자는 생각으로 다음날 치앙라이로 이동하기로 한다. 치앙라이는 이전에 한나절 정도 있어 본 곳이긴 하지만 이번엔 그 주위에 있는 매쌀롱이나 치앙센, 골든트라이앵글까지 돌아볼 생각이니 새로운 곳에 가는 듯한 느낌이 든다. 일단 크리스마스에는 왕창 술을, 크리스마스 당일에는 휴식 그리고 크리스마스 다음날은 치앙라이 주변투어 그리고 그 다음날 방콕을 거쳐 남부로 내려가자는 야무진 계획을 세우고 치앙라이 입성했으나 뭐 인생이 아니 여행이 언제 그리 만만하던가.. 그냥 치앙라이에서 발목이 잡혀 날마다 과음에 시달려가며 무려 5일이나 머물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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