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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징홍> 조짐이 이상하다

 

징홍에 있는 한국인 게스트 하우스 <나무야>에 짐을 풀고 나니 갑자기 맥이 풀린다. 집이 나갔다고는 하지만 몇 가지 처리해야 할 문제가 남아 있는데다 만약 한국에 가면.. 하고 마냥 미뤄두었던 일들도 이것저것 정리해야 한다는 생각이 드는데 도무지 그 일들이 뭔지도 잘 정리가 안되는 게 머릿속만 복잡하다. 다행히 숙소에는 성수기가 지나서인지 아님 징홍이 운남의 주요 여행지가 아니라서 그런지 여행자들이 그리 많지는 않다. 며칠 복잡한 맘이며 지친 몸이나 추슬러야겠다 싶어 하루 이틀을 게스트 하우스에서 빈둥거린다. <나무야>의 여주인인 선영씨가 가져다 놓은 구슬 꿰는 일이나 거들며 수다나 떤다. 역시.. 단순노동이 체질인 듯 구슬만 꿰도 그냥 아무 생각 없이 하루가 흘러간다^^

 

그래도 어디론가 움직여야지 싶어 가방 깊숙이 넣어 두었던 론리 플레닛 쪼가리-분철했다^^-를 다시 꺼내 징홍과 징홍 주변의 갈만한 곳을 살펴봐도 그리 내키는 곳이 없다. 마침 게스트하우스에서 하는 프로그램 중에 주변의 소수 민족인 하니족 마을에 다녀오는 프로그램이 있다면서 같이 가겠느냐고 누가 물어온다. 옆방에 묵고 있는 아이 셋과 함께 여행하는 일가족의 아빠다. 사실 고산족이나 소수민족 투어는 더이상 가보고 싶은 맘은 없지만 그냥 일반적인 투어 프로그램이 아니라 숙소 스탭인 하니족 친구의 집을 방문하는 것이라는 점과 숙소 주인인 선영씨가 소수 민족을 돕고 있는데 그 마을로 간다는 점 등에 마음이 끌려 다녀오기로 한다.

 

담날 아침 일찍 나서보니 옆방의 부부와 아이 셋, 나랑 같은 방을 쓰던 청도에서 유학하고 있는 여학생 둘, 그리고 회사에서 연수차 북경에 왔다가 여행 중인 회사 동료 셋 그리고 주인인 선영씨까지 모두 12명이나 되는 대부대다. 여느 투어 프로그램과는 다르게 대중 교통수단을 타고 움직인다. 택시를 타고 터미널에 가서 근교 도시인 멍하이로 다시 멍하이에서 하니족 마을로 가는 버스를 타고 가다 어느 산길에 내려 30분을 걸어가니 드디어 마을이 보인다. 그냥 마을이다. 맘이 놓인다. 최소한 소수 민족 마을을 빙자한 관광지는 아닌 듯싶다. 그저 어릴 적 외가집에나 가듯 마중 나온 주인아주머니를 따라 집안으로 들어선다. 중국의 마을들은 지붕이 기와라 그런지 그냥 우리나라 어느 시골을 연상시키는 데가 있다.


하루를 묵었던 하니족 마을의 숙소


마을 전경

 

프로그램도 소박하다. 마을에 도착해서 점심을 먹고 마을 어귀 뒷산에서 참게를 잡으러 간다. 제법 큰 개울인가 했더니 조그만 실개천이다. 그래도 아이들 셋은 신나게 논다. 참게를 잡아다가-뭐, 우리는 한 마리로 못잡고 주인 아주머니와 그 딸래미가 다 잡긴 했지만- 장작불에 구워서 대나무밥이랑 역시 대나무통에 삶은 계란과 함께 먹는다. 참게 밑에 깔아 함께 구운 돌미나리의 향이 향긋하다. 논밭이 눈앞에 펼쳐진 전경이며 야트막한 산들이 그저  우리나라 어느 교외에 하루쯤 나들이 나온 것만 같다. 저녁에는 숯불을 피워 구운 돼지고기와 함께 맥주며 중국술인 바이주가 한순배씩 돈다. 사람들과도 적당히 친해지고 그래.. 한국 사람들하고 트레킹을 하니 이런 게 좋구나 싶은 맘이 든다.


굽기 전 참게


대나무밥을 만드는 주인 부부

 

그리고 나선 다시 게스트 하우스에서 뒹굴거린다. 떠나야 하는데 웬지 발걸음이 떨어지질 않는다. 제법 친해진 일행들은 아침마다 오늘도 안 나가요? 하며 놀리는데 아.. 예.. 뭐 별로 갈 데도 없고.. 하면서도 뭘 하는지 하루는 순식간에 지나간다. 결국 유학생 친구둘이 쿤밍으로 떠나고, 회사 동료 셋이 리장으로 떠나고, 일가족 다섯이 태국으로 떠난 뒤에야 슬슬 움직여야겠다는 생각이 든다. 따리로 가는 버스를 끊어 놓고 잠이 들었다가 한밤중에 잠이 깬다. 머리가 어질어질한게 뱃속이 울렁거린다. 저녁에 먹은 사발면이 잘못된 모양인지 속이 영 거북하다. 후레쉬를 꺼내들고 배낭 어딘가에 넣어둔 소화제를 꺼내 먹고 다시 잠을 청한다. 아침에 일어나도 상태는 그대로다. 전날 체크인한 한의대생 친구가 이리저리 맥을 집더니 체한 것 같다더니 양약으로는 안된다며 한방 소화제를 사다 준다. 역시 룸메이트는 잘 만나고 볼일이다^^ 결국 따리가는 버스를 하루 연기하고 선영씨가 끓여준 죽으로 하루를 연명한다.

 

결국 징홍에 8일이나 머무른 셈이다. 여행하고 처음으로 아무 것도 보지 않은 채 그 도시를 떠난다. 여행하기 전 1년 4개월을 여행하고 돌아 온 하우아시아가 그런 말을 한 기억이 난다. 한달, 6개월 그리고 1년 되는 때가 고비라고.. 한번씩 내가 뭐하러 여행하나 싶은 생각이 들면서 무기력해지는 시기가 그때인데 그때는 빨리 환경을 바꿔주는 게 좋다는 말을 들었던 것 같다. 생각해 보니 여행 시작한지 어언 6개월이 되어 간다. 돌이켜보면 베트남 넘어가기 전 쿤밍에서 내가 뭐하는 짓이지.. 하며 꽤나 우울했던 것도 여행 시작하고 약 한달쯤 되었을 때의 일이다. 이게 장기여행 증후군인가 싶으면서도 설마.. 하며 버스를 탄다. 


하니족 마을에서 찍은 단체사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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