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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페샤와르> 사흘간 이동만 하다

디르에서 페샤와르 가는 길은 이때까지 보던 길과는 확연하게 달라진다. 북부 지역에서는 내내 산허리를 굽이굽이 돌아왔는데 여기서부터 완연한 평지다. 산은 눈에 보이지 않고 멀리 지평선이 시야에 들어온다. 그래서인가 차도 제법 속력을 내서 달리기 시작한다. 그래도 출발이 조금 늦어서인지 차는 어두워진 후에야 페샤와르에 도착한다. 이때까지 낯선 도시에 들어갈 때는 어둡기 전에 도착하는 걸 목표로 삼아왔는데 이번에 도리가 없다. 버스를 내려 릭샤를 탄다. 페샤와르에 있는 투어리스트 인에 가자고 하니 다행히 알아듣는 눈치다. 하지만 이 릭샤가 제대로 가는지야 알 도리가 없으나 숙소에 도착하기 전까지 마음을 놓을 수가 없다. 불빛 없는 좁은 길로 들어서기라도 하면 공연히 마음이 두근거린다. 다행히 릭샤는 오래 가지 않아 숙소 바로 문 앞에 차를 세워준다.

 

숙소에 들어가 보니 한숨만 나온다. 도미토리밖에 없다는 그 여행자 숙소는 침대가 다닥다닥 붙어 있는 게 허름하기 그지 없다. 아니 허름한 건 그렇다 치더라고 도무지 나란히 붙어있는 침대를 제외하곤 아무 것도 없는 게 무슨 수용소 같다. 파키스탄은 여행자가 많지 않아서 그런지 훈자 정도를 제외하면 대도시에 있는 도미토리는 거의 시설이 형편없다고 하는데 라호르와 이슬라마바드에서 분에 넘치는 숙소에 묵은 탓인지 이런 도미토리는 또 처음이다. 다행히 숙소에는 한국 여행자가 두 명 있다. 일년 반째 여행 중이라는 남자 여행자와 훈자에서 만난 적이 있는 여행 넉달째의 대학생이다. 파키스탄쯤 오니 대부분이 장기 여행자들이다. 이 친구들과 잠시 이야기를 나누다가 잠자리에 든다. 오늘은 늦었으니 하루는 묵는다만 내 내일은 무슨 일이 있어도 숙소를 옮겨야지 다짐한다. -결국 숙소는 못 옮겼다. 딴 데도 그만 그만한데다 또 한국여행자들과 수다를 떨다 보니 그냥 머무르게 되더라는^^-


페샤와르 시내


바라 히사르성, 군인이 주둔하고 잇어 주말 특정시간대를 제외하고는 들어갈 수 없단다.

 

다음날은 만사를 제쳐두고 기차표를 끊으러 간다. 정보북에 따르면 페샤와르에서 끊을 수 있는 기차표가 한정되어 있어 원하는 날짜에 표 끊기가 쉽지 않다고 되어 있다. 페샤와르에서 이삼일 묵을 생각이니 표가 없지는 않겠지 하는 생각으로 역에 나가보니 에어콘 슬리퍼는 이미 매진이고 그 아래 칸인 일반 슬리퍼만 남아 있다. 여기서 퀘타까지는 34시간이 걸리는 거리이고 파키스탄 기차는 학생할인이 되니 이번엔 좀 편안히 가보려고 했는데 별 수 없이 그냥 일반 슬리퍼를 끊는다. 이것도 학생 할인이 되는데 역사무실에 거서 서류를 한 장 작성해야 한다. 아시는 분은 아시겠지만 내 가짜 학생증의 나이와 여권 나이가 엄청난 차이가 있어 조마조마 하며 서류를 내미니 다행히 여권은 확인을 하지 않고 학생증만으로 할인을 해준다. 결국 가짜 학생증을 또 한 번 써 먹는다.

 

페샤와르에서는 블랙마켓 한군데만 다녀온다. 블랙마켓은 페샤와르 북쪽에 있는 암시장인데 총기류와 마약류는 물론 위조지폐까지 판매되는 이상한 곳이라고 한다. 아마 국경 근처라 공권력이 미치지 못하는 곳인 듯하다. 퍼미션을 받아야 된다는 말도 있지만 그냥 들어갔다 왔다는 친구들도 있어 일단은 그냥 가보기로 한다. 조금 위험한 곳이라 혼자는 가지는 말라는 말을 들었지만 기차표 끊으러 간 날 다른 친구들은 이미 이곳에 다녀왔기 때문에-퍼미션이 없어 안에 들어가지는 못했다고 한다- 별 수 없이 혼자 길을 나선다. 일단 카르카누마켓 가는 버스를 타고 종점에서 내리니 거대한 시장이 눈앞에 보인다. 카르카누 마켓까지는 합법적인 시장인데 이곳에도 미군 식량인 씨레이션이며, 담배, 술 등 다양한 물건들이 쌓여 있다. 이곳에서 위로 조금만 더 올라가면 블랙마켓이 나온다고 한다. 가는 길을 물어보니 하나같이 못 들어간다며 가지 말라고 말린다. 게다가 카르카누 마켓의 분위기도 그리 좋지가 않다. 결국 블랙마켓 쪽으로는 가지도 못하고 시장만 둘러보다 버스를 타고 돌아온다

 


카르카누마켓에서1


카르카누마켓에서2

 

나머지 시간은 그저 시내에 있는 바자르를 돌아보거나 숙소에서 음식을 만들어 먹으며 보낸다. 이곳 숙소가 그나마 좋은 점은 프리 키친이 있다는 것이다. 취사도구 뿐 아니라 여행자들이 남기고 간 여러 가지 양념들도 있어 식사는 간단하게 여기서 만들어 먹을 수 있다. 주로 아침은 토스트를 구워서 오믈렛과 커피를 곁들여 먹고 저녁엔 라면을 끓이거나 스파게티를 만들어 먹는다. 식당 시설이 잘 되어 있으면 한식도 아닌데 굳이 번거롭게 이럴 필요는 없지만 사실 파키스탄은 치킨 커리를 제외한 음식은 거의 없다시피 한 편이니 그나마 이렇게라도 먹는 게 다행이다. 이곳에서도 이란으로 넘어가는 한국 여행자는 없다. 일년 반째 여행한다는 친구는 파키스탄의 북쪽을 돌고 한 달 뒤쯤에나 이란으로 넘어갈 예정이고 대학생 친구는 아프가니스탄을 거쳐 이란으로 갈 예정이다. 아무래도 이란은 혼자 가야할 팔자인가 보다.

 

페샤와르에서 사흘을 머물고 퀘타로 가는 기차를 탄다. 파키스탄의 기차는 중국이나 인도의 기차와는 달리 컴퍼트먼트 형태인데 4 1실로 되어 있다. 아침에 기차에 타보니 객실에 손님이라고 나밖에 없다. 가만 있자.. 어차피 여기서 자야 하는데 남자 손님 하나만 달랑 타면 어쩌나 싶은 생각이 든다. 다행히 기차가 이슬라마바드에 도착하자 아버지와 딸로 보이는 두 사람이 객실로 들어온다. 다행이다 싶다. 특히 아버지 되시는 분은 영어는 한마디도 못하시는 대신 사람 좋은 미소를 지으며 이것저것 챙겨주신다. 에어컨칸의 경우 식사주문이 된다는 말을 들어서 여기도 그렇겠거니 싶어 별 준비 없이 기차를 탔는데 웬걸 일반칸은 기차가 정차 했을 때 뛰어내려 먹을 걸 사와야 한다. 근데 도대체 이 역에 얼마나 정차할지 알 수가 없으니 이래저래 눈치만 보고 있는데 이 분이 끼니때마다 음식을 사오시면서 내 것도 함께 챙겨 주신다. 파키스탄에서 참 사람들에게 신세만 지는 것 같다


퀘타 거리 풍경


구두 수선 아저씨

 

다음날 5시를 훌쩍 넘겨 퀘타에 내려 바로 터미널로 이동한다. 몸은 조금 고되지만 아무 일없이 그저 이 도시에 하루밤을 묵는 것 보단 그냥 밤버스로 국경도시인 타프탄으로 넘어갈 생각이다. 터미널에 도착한 시간은 6 10분전이지만 타프탄 가는 6시 버스에는 자리가 없다. 꼭 오늘 가야 된다고 생떼를 썼더니 그럼 통로에 있는 보조 의자에 앉아서라도 가라는 데 그건 또 자신이 없다. 결국 퀘타 시내에 있는 게스트하우스에서 하루밤을 묵고 다음날 저녁 타프탄행 버스를 탄다. 버스는 밤새 달려 아침 10시경에 국경 도시인 타프탄에 도착준다. 다시 트럭을 타고 몇 분을 달려 국경에서 내리니 나무 하나 보이지 않는 황량한 벌판에 출입국사무소만 덩그러니 서 있다. 출국수속은 간단하게 끝이 난다. 드디어 이란이다. 인도에서 누군가에게 얻어두었던 스카프를 주섬주섬 꺼내 쓰고 조금은 비장한 마음으로 이란으로 가는 첫걸음을 내딛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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