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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주노동자 엄호 지지 투쟁을 통한 진정한 노동자 국제주의를 실현하자!!

  • 등록일
    2008/11/16 14:47
  • 수정일
    2008/11/16 14:47

이주노동자 엄호 지지 투쟁을 통한 진정한 노동자 국제주의를 실현하자!!

이주노동자들은 86년 서울아시안게임을 통해 본격적으로 한국에 입국하여 노동자로서 생활을 하였다.
아시아게임을 통해 들어온 이주노동자들.... 현재 42만명의 이주노동자들이 전국적으로 분포하고 있다.

대부분의 이주노동자들중 중국동포들이 상당수 차지하고 있으며, 국적을 떠나 아시아 전역 그리고 아프리카에서 이주노동자들이 들어와 한국 3D 사업장에서 노동자로서 살아가고 있다.

94년 이주노동자들의 투쟁.... 이 시기를 이주노동자를 조직하기 위한 운동의 첫번째 시기로 바라볼 수 있다. 이주노동자들의 투쟁을 통하여 이주노동자들을 현실을 알아나간 한국의 진보적
목회자들을 중심으로 이주노동자지원센터와 선교센터들이 들어서면서 현재 전국적으로 분포한 이주노동자 혹은 외국인센터들이 만들어졌으며, 이 투쟁의 성과를 바탕으로 외국인노동자대책협의회(이하 외노협, 현재명 외국인이주노동자대책협의회)가 만들어졌다. 

 외노협의 출현은 이주노동자들에게 노동상담, 한글교실, 아시아 각 나라별 공동체 구성, 지원활동을 폭울 넓히는 한편, 이주노동자들의 인권과 권리를 확장하는 운동으로 발전하여 전국에 네트워크를 구축하여 이주노동자들을 인권활동 지원을 벌어나갔다. 

2000년 이주노동자들에 대한 효율적 관리를 위하여 외노협과 민주당이 공동으로 마련 한 산업연수생제도의 시행으로 외노협은 초기 인권활동이 서막을 내리고 이주노동자와 산업연수생제도에 반대하는 외노협 활동가들이 모여 이주노동자투쟁본부(이하 이주투본)을 결성하였다. 이 시기를 이주노동자 조직운동에 있어서 두번째 시기로 바라볼 수 있다. 

 이주노동자투쟁본부는 산업연수생제도가 결코 이주노동자들의 노동권보장과 노동비자를 부여할 수 없는 법안이며, 이주노동자들에 대한 정부의 통제로 인해 더욱더 많은 문제를 낳을 것이라 판단하여 이 법안에 대해 반대를 하였다. 

 이주노동자 스스로가 주체로 나서게 하기 위한 이주투본의 활동은 점점확산되어 평등노조 이주노동자지부를 건설하게되었다. 그리고 이 건설과정에서

이주노동자가 2기부터 위원장으로 참여하여 조직운영과 이주활동에 전면에 나서는 활동을 전개하게 되었다.

 평등노조 이주노동자지부는 지역의 많은 이주노동자들을 조직화와 출입국의 일방적 단속추방정책에 반대하며, 이주노동자들에게 노예와 같은 산업연수생제도 폐지,  노동권리쟁취를 위해 대정부 투쟁을 나서게 되었다. 

그리고 산업연수생제도의 문제점을 개선하기 위한 방안으로 고용허가제가 2003년 도입되는 과정에 반대하며 평등노조 이주노동자지부에서 360일이라는 농성투쟁을 전개하게 되었다. 고용허가제는 송출비리를 근절하고 효율적으로 이주노동자를 지원하겠다고 하지만 도입부터 문제가 많았다.


사업장 이동의 자유, 노동권리가 부여되지 않았으며, 사업주에게 권한을 부여하여 이주노동자들이 산업현장에서 어려움을 필연적으로 겪게하였다. 이를 반대하기 위한  투쟁은 우리는 아직도 기억하고 있다.

이 투쟁으로 농성단 단장을 맡았던 네팔 사말타파, 비두 등등 많은 수의 이주노동자들이 목동출입국관리소앞 규탄집회 과정에서 출입국에 의해 강제출국되었다. 아직도 그때의 영상이 생생히 우리의 뇌에 기억되고 있다.

명동성당농성 이후 이주노동자들은 전국이주노동자조직화라는 과제를 갖고 2004년 4월 24일 초대 아느와르위원장을 선출하여 독자적노동조합인 서울경기인천이주노동자노동조합(이하 이주노조)을 건설하였고, 이 경험을 바탕으로 이주노동자조직화의 운동의 포문을 열었다. 이 시기를 이주노동자 운동의 3시기라고 생각이 되어진다. 정부는 이주노조출범 하자마자 미등록이주노동자(일명 불법체류자)라는 이유와 주거지 불명의 이유를 들어 이주노동자 조직에 대하여 합법화를 용인하지 않고, 오히려 아느와르위원장을 표적연행하는 만행을 저질렀다. 그리고 이 과정에서 많은 수의 활동가들이 아느와르위원장 석방을 위한 활동을 전개하였다.

이 과정에서 많은 수의 이주노동자들이 연행되는가? 하면 지역에 핵심활동가들이 출입국관리소에 의해 강제연행되는 사건들이 발생하여 이주노조에 대한 탄압이 일상화되었다.
그리고 이주노동자들이 65%이상이 분포한 서울, 경기, 인천지역에 대한 탄압으로 많은 수의 활동가와 지역의 이주노동자들이 단속으로 연행되었다.
이러한 사건들이 발생되었지만 여전히 한국의 진보진영과 민주노총을 위시한 노동계에서는 이주노동자들의 문제에 있어서 고민은 커녕 모른척 하거나 이주노동자들에 대한 문제를 일거리 빼앗는 자로 여기는 낮은 인식으로 진보진영 과 노동계에서 또한 많은 소외와 등한시 되었다.

1990년부터 2008년까지 3,000명이 넘는 이주노동자들이 산재나 자살로 죽음을 맞이하였다.
노동자들의 죽음에 열사라 부르며 투쟁의 도화산을 붙이는 우리 노동계에서는 철저히 이주노동자들은 산재, 자살이라는 말로 죽음을 애써 외면하거나 모르쇠하는 현실이 지금까지 이주노동자들이 이땅에서 당해야 하는 설움이다.
죽어도 비행비표 운송비 걱정을 해야하는 이주노동자들.... 죽어서도 한을 풀지못하는 이주노동자들이 있다. 이러한 일은 비단 어제 오늘일만이 아니다.

이주노동자 투쟁의 무관심으로 일관된 우리.... 이제는 각성이 필요하다.
이주노동자들에 대한 정부의 인간사냥이 판치지만 우리는 애써 이러한 현실에 대하연 노동자연대를 위한 활동에 등한시하거나 이주노동자투쟁에 있어서 관심을 가지고 연대하지 못하였다.
지금 또한 그렇다. 이주노동자들과 함께하는 곳은 대부분이 장기투쟁사업장, 특수고용직, 전해투 등 투쟁하는 동지이외에 확산되고 있지 못한 실정이다.
이주노동자후원회가 그나마 이주노동자운동을 뒷받침하고 있지만, 우리가 이주노동자운동을 확산하기 위한 운동에 있어 물적지원을 위한 활동에 등한시 되고 있는 현시점 정부는 이주노조 지도부 3인에 대한 표적단속을 통한 강제연행을 서슴없이 펼치고 있다.

이는 전체 노동계에 대한 도발이지만 우리는 애써 자신의 문제가 아니기에 이를 외면으로 일관하고 있다.
이제 이주노동자들이 투쟁에 외침에 동참하여야 한다. 우리가 노동자 국제주의를 말하지만 한국에서의 노동자국제주의를 실천하지 못한다면 더이상 만국의 노동자라는 단결하라는 인터네셔널의 외침은 한낮 공염불에 지나지 않는다.

이주노동자 투쟁에 적극동참하여 이주노동자 투쟁에 노동자의 단결된 모습으로 노동자국제주의를 실현하여야 한다.

이주노동자는 분명 이땅의 비정규노동자이며, 우리가 함께 투쟁하고 엄호해야할 동지요. 노동자 국제주의를 실현하기 위한 조직화의 주요한 고리이다.

2008년 12월 13일 우리는 똑똑히 기억해야 한다.
이주노조에 대한 탄압이 전체 노동자에 대한 탄압임을 각인하고, 산업현장에서 강제단속되거나 얼굴이 짤려 죽거나, 팔이 잘리거나, 단속반을 피해 옥상에 떨어져 부상을 입거나 혹은 죽은 노동자들이 이후에도 계속 발생되어진다는 사실을 기억해야 한다.

우리 노동자들이 이주노조 엄호와 지지를 위한 활동에 동참하고 적극적 연대가 절실히 필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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