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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어머니의 등은 누가 닦아드렸을까

  • 등록일
    2004/09/20 13:11
  • 수정일
    2004/09/20 13:11

내 어머니의 등은 누가 닦아드렸을까
- 시골집배원의 섬마을 이야기 
 

 


                                                                                                                     편집부 editor@digitalmal.com
 
월간 말 신간 안내 보도자료

 

▶ 함성주 글 /신국판변형(151×216)/280쪽/값9,000원/9월13일 초판발행/비소설 에세이 인생이야기 isbn 89-90748-16-× 03810
금년 추석에는 이 책을 읽고 고향에 갑시다. 고향의 기억을 오롯이 되살려낸 이 책을 읽고 가면 고향이 사뭇 다르게 보일 것입니다. 휴일이라 의무적으로 가는 고향길이 아니라 정말 애터져 그리운 고향이기에 작년 방문길과는 그 걸음걸이가 아주 다를 것입니다.
▶ 현직 시골집배원(영광군 홍농우체국)이자 생태해설가로 활발히 살고 있는 한 사내의 열두 살 유년의 섬마을 이야기. 그리고 절망에 빠진 오늘의 고향에 희망을 불어넣는 이야기.
▶ 각 장마다 편지마당 마련. 오랜만에 어머니, 아버지, 벗들에게 편지를 써서 책과 함께 띄우자.
▶ 교사와 학생이 함께 읽으면 교육효과가 클 것이다. 옛고향의 생활이 세밀하게 그려져 있기에.
▶ 추석을 맞아 고향 가는 사람들의 필독서. 나와 함께했던 가족과 고향 사람들이 떠오른다.
▶ 오늘의 고향이 더 이상 무너지지 않도록 시골집배원이 목소리 높여 외치는 책.




 

월간말 출판부 : 서울시 용산구 효창동 동호빌딩 5층, 담당 : 김서정(3270-2735)

 

 

1. 출간 의의

요즘의 젊은 세대들에게 시골고향은 그리움의 대상이 아니라 농촌체험과 생태체험을 하는 학습의 공간으로 여겨지고 있다. 자연과 농촌을 가르치려는 어른들의 노력의 산물이다. 현재 우리의 시골고향은 산업적으로 보면 정말 먹고살기 힘든 농사일, 삶의 터로 보면 영원히 머물러 살기 힘든 소외지역일 뿐이다. 그러나 그곳에도 엄연히 열심히 살려는 사람들이 생명으로 꿈틀거리고 있다.

 

지도에도 잘 나오지 않는 전남 신안의 작은 섬 재원도에서 어린 시절을 보내고 현재 영광군 홍농우체국에서 집배원으로 일하고 있는 저자는 남들과 다른 세밀한 기억력의 소유자다. 그가 따듯한 묘사를 통해 우리에게 잊혀진 고향의 풍경을 되살려내고, 현재의 고향이 어떠한지를 사실적으로 그려 놓았다.

어른들에게는 유년의 기억을, 농촌경험이 없는 아이들에게는 자연과 함께 살아간다는 것이 무엇인지를 알려주는 이 책을 통해 또 다른 의미의 생태적인 삶에 대해 생각해볼 수 도 있다.

 

 

2. 구성

 

▶ 앞마당 “내가 살던 고향이 그립습니다”에는 ‘어머니의 부엌’을 비롯한 12개의 이야기들이 엮어져 있다. 밥상, 문 바르기, 뒷간, 명절날 목욕하기, 학교, 메주 등에 얽힌 가족과 고향 사람들의 이야기다. 주전부리 사계(四季)에는 어린 시절의 먹거리가 맛깔스럽게 소개되어 있다. “쉬어가는 마당” ‘도꾸의 묵언’에는 처음 암태도에서 집배원을 시작했을 때 인연을 맺은 개 이야기다. 그리고 뒷마당 “지금 내가 사는 새 고향입니다”에는 모두 다섯 편의 이야기가 모여 있다. 오늘날 고향의 풍경이 섬뜩할 정도로 사실적으로 그려져 있다. ‘꽃향기가 없는 카네이션’ ‘너무나, 너무나 쓸쓸한 어르신들’ 등이다.

▶ 각 장 끝마다 ‘편지마당’이 있다. 어머니, 아버지, 친구들 혹은 어린 시절 함께했던 물건, 가축 등에 대해 펜으로 한번씩 쓰게끔 되어 있다. 펜으로 한번 써봄으로써 저자의 고향을 자신의 고향으로 체험할 수 있다. 또한 편지를 써서 어머니나 벗들에게 책을 보내도 뜻있는 선물이 될 것이다.

 

 

3. 차례 및 주요 본문

 

▶ 재원도를 아시나요 : 저자의 고향인 신안군 임자면 재원도에 대한 스케치
목포로 전학 나온 열두 살 때, 할머니께서 시장에서 사오신 배추에 앉아 있던 조그만 청개구리가 제가 생전 처음 보는 개구리였습니다.(5쪽)

앞마당 : 내가 살던 고향이 그립습니다

▶ 어머니의 부엌 : 섬마을 부엌에서 밥을 짓던 어머니에 대한 회상
가끔 울퉁불퉁한 양은 그릇에 싸라락거리며 보리쌀 씻는 소리나, 톡톡거리며 나무 타는 소리에 잠에서 깨어나곤 했는데, 엉금엉금 기어가 밥상문의 문고리를 한 손으로 잡고, 다른 한 손으로 문턱을 짚은 채 찡그린 얼굴로 억지 눈을 뜨고 내다보면 어김없이 어머니의 얼굴은 감빛으로 일렁이고 있었습니다. 언제 일어나셨는지 비땅(부지깽이)으로 땔나무를 이리저리 들춰가며 밥을 하고 계셨지요.(19쪽)

 

▶ 문 바르던 날의 수묵화 : 태양담배 물고 문 바르던 아버지를 그리며
그렇게 창호지를 다 벗기고 나면, 아버지께서는 뼈만 앙상하게 남은 문살을 햇살 좋은 돌담에 기대어 세워두셨습니다. 그리고 토방에 앉아 창호지를 가위로 자르기 시작하셨습니다. 입에 태양담배를 문 채로 말이지요. 파랗고 하얀 담배연기가 햇살에 작은 입자까지 들켜가며 아버지 눈으로 들어가면, 아버지께서는 얼굴을 찡그리시면서도 담배를 재떨이에 올려놓는 일없이 끝까지 다 태우셨습니다.(32쪽)

 

▶ 술 익는 집 : 집에서 술을 담가 먹던 방법과 술에 얽힌 가족의 풍경 소개
한겨울밤, 아버지께서 “술 한 그릇 퍼온나” 하시면 큰 양푼과 수저 하나를 들고 뛰어나가, 항아리 뚜껑 위에 쌓인 눈을 걷어내고 술을 퍼서 방으로 가져갑니다. 말이 술이지 아직 물을 붓고 체에 거르지 않은 상태여서, 온 식구가 모여 숟가락으로 떠먹으면 뱃속이 뜨듯해질 뿐 그다지 취기가 오르지도 않는 훌륭한 간식거리였지요.(44쪽)

 

▶ 어머니의 밥상 : 식사예절과 밥시중을 들면서 초라하기만한 어머니의 밥상에 대한 이야기. 어머니는 상의 크기가 작았기에 반찬의 가짓수도 적은 상에 앉아서 식사를 하셨습니다. 그것도 부엌으로 난 작은 문 앞에 앉아 식사하시며, 물 달라는 할머니의 시중을, 김치 더 퍼오라는 아버지의 시중을, 밥 더 달라는 제 시중을 부엌을 들락거리며 매 끼마다 들어주셨습니다. 그러고 보면 어머니께서는 항상 물에 밥을 말아 식사하셨고, 포기로 담근 김장김치를 식구들 먹기 편한 크기로 찢어주시느라 젓가락은 아예 쥐지도 않으셨습니다. 김치 찢고 난 손가락을 ‘쪽’ 소리나게 빨아 드시는 것을 반찬으로 삼으셨지요.(58쪽)

 

▶ 사라져버린 것들 : 깡통 복숭아, 손톱깎이, 병마개, 목함성냥 등에 얽힌 추억
화들짝 놀라 이미 깡통 속에 들어가 2차 범행을 저지르던 손가락을 급하게 빼내는 순간, 섬뜩한 통증이 느껴졌습니다. 깡통에 손을 베인 것이지요. 하지만 아버지께 다친 모습을 보이게 되면, 무슨 짓을 하다 다쳤는지를 들키게 될 것이 ‘종자 고구마 갉아먹은 놈이 쥐’라는 것보다 더 빤한 일인지라, 피 뚝뚝 떨어지는 손가락을 감싸쥐고 뒷문으로 냅다 달아났습니다. 그날 저녁 밥상머리에서 할머니의 은은한 미소는 다친 제 손가락에 내려앉아 떠날 줄 몰랐습니다.(64~65쪽)

 

▶ 또 하나의 가족 : 소, 염소, 개, 돼지, 고양이, 닭 등 가축과 함께했던 그 시절
저녁상에 돼지가 올라오면 또 한번 눈물이 났습니다. 아침까지 눈 맞췄던 살아 있던 돼지가 죽은 고기가 되어 상에 올라왔기 때문입니다. 얼마나 불쌍한지요. 얼마나 안쓰러운지요. 얼마나 미안하던지요. 하지만 저는 울면서도 그 고기를 먹었습니다. 그럴 때면 아버지는 “저 놈이 저렇게 맛있게 처먹을람서 울고 불고 지랄을 했구마” 하시며 핀잔을 주셨지만, 어쩝니까, 먹고 싶은것을요.(92쪽)

 

▶ 어머니의 등은 누가 닦아드렸을까 : 추석과 설날, 일년에 두 번 목욕하던 이야기
지수를 씻어주다 떠오른, 아비가 되어서야 궁금해진 것이 하나 있는데요, 바닷일에, 농사에, 밥이며 빨래 청소까지 다 하시고, 명절음식 장만까지 준비하셔야 했고, 차례로 네 형제들을 허리 굽혀 씻겨주시던 제 어머니의 등 말입니다. 당신의 손이 닿지 않는 제 어머니의 등은 어떻게 닦으셨을까요.(113쪽)

 

▶ 혹, 고무신에 맞아본 적 있습니까 : 고무신을 통해 본 옛고향의 풍경
“어어……” 소리만 내며 계속 맞던 영만이의 코에서는 급기야 피가 흘렀고, 반항할 틈은커녕 숨쉴 틈도 주지 않고 작심한 듯 휘갈기는 혜순이의 고무신은 매번 짝짝 소리를 내며 영만이의 등이며 팔뚝이며 얼굴 위에서 튀어올랐습니다. 땅바닥에 누워 꺽꺽대며 제대로 울지도 못하는 영만이를 뒤로하고 명남이를 잡아끌어 걷던 혜순이. 혜순이가 이겼으면서도 왜 우는지를 그때는 몰랐지만, 그날의 기억은 너무 선명해서 지금까지도 잊혀지지가 않습니다.(121~122쪽)

 

▶ 귀신이 사라진 변소 : 옛 고향의 화장실 문화에 대한 여러 이야기
두드러기가 나면 형은 옷이 다 벗겨진 채 아버지 손에 끌려 변소로 갔습니다. 아버지는 변소 지붕에서 보릿짚을 한줌 뽑아들고 변소 앞에 쪼그리고 앉아 짚에 불을 붙이셨습니다. 보릿짚은 순식간에 변소를 밝히며 연기를 내뿜었지요. 그러면 아버지는 큰형이 그 짚 사이로 폴짝폴짝 뛰며 건너다니게 하셨지요. “중도 고기 묵은대야. 중도 고기 묵은대야(중도 고기를 먹느냐).” 아버지는 무당처럼 주문을 외며 큰형 몸에 소금을 뿌리셨고, 똥빗자루로 형의 몸을 쓸어내리셨습니다.(134쪽)

 

▶ 국민학교 다니던 시절 : 프린트 숙제, 연필, 책받침, 위생 검사, 국민체조, 청소 등의 이야기

숙제로 나눠줄 문제지 작성이 끝나면 얼멍얼멍한 모기장 같은 천이 있는 네모난 틀에 그 기름종이를 붙이셨지요. 그러고 나서 옆에 놓인 고무판에 까맣고 끈끈한 잉크를 따르신 후, 네모난 틀 아래에 ‘갱노지’라고 부르던 누런 종이를 깔고, 널따란 롤러로 문지르시면 한 장 한 장 거짓말처럼 똑같은 숙제가 찍히고는 했습니다. 그 네모난 틀은 곧추서 있는 막대기에 고무줄로 묶여 있어서, 선생님이 롤러로 한번 문지르시고 나면 위로 올라가고, 곁에 서 있던 저는 그 틈에 인쇄된 프린트를 한 장씩 빼내는 게 일이었지요.(145쪽)

 

▶ 메주 쑤던 날의 삽화 : 메주 쑤기, 간장 담그기, 된장 만들기 등의 풍경
힘겹게 올라가는 어머니의 도굿대가 겨울하늘 날랜 구름들을 쫓아내면, 콩이 묻은 도굿대에서도 어머니의 이마에서도 옅은 김이 나와 다시 구름의 빈자리를 메우곤 했습니다. 적당히 빻고 나면 울퉁불퉁한 절구통 안에 박혀 있는 콩을 솔잎으로 긁어내셨는데, 어머니는 항상 절반 정도만 긁어내시고 나머지는 먹성 좋은 셋째가 먹을 수 있도록 배려해 주셨습니다.(165~166쪽)

 

▶ 주전부리 사계(四季) : 보리똥나무, 앵두, 소라, 운저리, 으름, 칡, 김, 동백꽃 등에 얽힌 이야기

-동네 어른들은 육지 사람들이 쟁피를 실어가는 모습을 보고 “무식헌 놈들이 품 베린다(노동력 낭비한다)” 하시며 끼던 팔짱은, 나중에 그 쟁피를 육지 사람들은 ‘춘란’이라고 부르며 어떤 것은 한 뿌리에 그때 돈으로 몇백만 원씩 한다는 얘기를 듣고 나서야 호미를 쥐고 부랴부랴 산에 올라가며 풀렸습니다.(176~177쪽)

-볕 좋은 담벼락에 기대 하루쯤 세워두면 삐득삐득하게 말라가며 박제처럼 김이 되는 것이었습니다. 하지만 그렇게 해봐야 여남은 장밖에 나오지 않았습니다. 우습게 보이는 한 장의 김이 얼마나 귀했고, 50장을 묶어야 한 톳이 되는데 겨울 한철에 스무 톳 넘게 땄던 어머니는 얼마나 힘드셨을까요.(207쪽)

 

쉬어가는 마당 : 도꾸의 묵언 - 암태도로 처음 집배원 발령 받아 가서 겪은 개와의 인연

도꾸의 배가 불러움을 막 느낄 즈음, 저는 영광으로 발령을 받아 짧은 섬생활을 곱게 접어서 이사를 나오게 되었습니다. 휴가 받아서 꼭 한번 보러 가야지 하고 마음먹은 게 벌써 6년째입니다. 제 머리에 자리하기 시작한 흰 머리만큼 도꾸도 많이 늙었겠지요.(228쪽)

뒷마당 : 지금 내가 사는 새 고향입니다

▶ 꽃향기가 없는 카네이션 : 요즘 어버이날 풍경에 대한 쓴소리
여름 휴가철이면 농사도 한창 바쁠 때입니다. 여름에 내려와서 예쁜 내 새끼 모기 물렸다고 약 바르며 호들갑 떨지 말고, 파리 모기 없는 어버이날에 내려와서 농사일이나 좀 거들다 가시는 건 어떻습니까. 여름에 낼 수 있는 휴가, 어버이날엔 못 냅니까?(238쪽)

 

▶ 살가운 우편물이 그립습니다 : 채권회수 회사에서 발송하는 우편물이 늘어난 세상을 개탄하며
증시 부양책도 좋고, 부동산 안정대책도 좋고, 경기 부양책도 좋습니다. 다 잘살아야지요. 그런데 힘없는 농민들은 이대로 도태시킬 심산인가요? 다 떠나고 텅 빈 농촌에 러브호텔 농사지을 생각인가요? 농민들에게 집 뺏고 땅 뺏어서 거기에 주말농장 지을 계획인가요? 허리 굽은 노인들마저 돌아가시고 나면 중국에서 농민 수입해다 농사시킬 겁니까?(248~249쪽)

 

▶ 너무나, 너무나 쓸쓸한 어르신들 : 홀로 살아가는 사람들이 점점 늘어나는 농촌
집집의 내막을 속속들이 아는 사람도 드물 테고, 집배원들은 배달을 위해서 매일 지나야 하는 길이니, 지나는 길에 홀로 사는 노인들이나 생계를 책임져야 하는 어린 사람들에게 매일 들러서 건강도 챙기고 일도 보아드리게 하는 것은 어떨까요? 책상머리에 앉아서 서류 검토하는 사회복지사도 늘려야겠지만, 집배원들을 많이 뽑아서 일을 좀 덜어주고, 그만큼 소외 계층의 복지 증진에 힘쓰게 하는 것은 어떨까요.(258쪽)

 

▶ 몸뚱아리가 아퍼 죽겄어 : 병원버스 운행 중단에 대한 항의의 변
병원버스 타고 나가, 시장도 보고 볼일도 보는 어르신들이 있는 것도 사실입니다. 버스회사에서 보는 피해도 적지 않겠지요. 이해합니다. 그렇지만 보건지소 하나 없는 마을에 살면서, 군내버스도 들어오지 않는 곳에서 사는 사람들은 아파도 참아야 하는 건가요.(264쪽)

 

▶ 평화로운 고향땅에 살고 싶습니다 : 순진한 사람들 속여서 실속 챙기는 사람 사라져야
눈을 무섭게 부릅뜨고 한참을 따지던 그들이 훈계조(?)로 말했습니다. “우체부면 배달이나 똑바로 해.” 그래도 화가 안 풀리는지 그들은 차 문을 쾅 닫고 시꺼먼 매연을 제게 뿜어내고 갔습니다. 참 화가 났습니다. 잡힌 목이 얼얼해서가 아니라, 동네에 단 한 사람이라도 세상 물정에 밝은 젊은이가 있었다면 그들이 그렇게 태연하게 바가지를 씌우려 들지는 못했을 터인데 말입니다.(275쪽)

 

저자 소개 : 함성주

저는 전남 신안군 임자면 재원리에서 태어났습니다. … 수업을 거의 받지 않는 체육특기자치고 국어시험 하나는 잘 봤습니다만, 모범생보다는 문제아에 더 가까웠다는 점은 열일곱 살 때 가출하여 기름바지 입은 프레스공이었던 것이 대신 말해줍니다. 그후 수은이 사람에게 얼마나 위험한 것인지도 모른 채 형광등 만드는 공장에서 1년 넘게 일했고, 술시중 드는 웨이터도 했습니다. 그러다가 대학에 들어가 학비 때문에 주말이나 방학마다 막노동을 했지요. 졸업하고 나서 지금도 이름 쟁쟁한 ㄹ사에 합격하여 화이트칼라도 아니고 블루칼라도 아닌 어중간한 스카이칼라로 밥벌이하다가, 바쁘고 빠듯한 도시 삶에 적응하지 못하고 돌아섰습니다. 건설회사 경리로 일해보기도 하고, 자유로운 직업을 찾다가 영업사원도 했습니다.

그러다 이 직업, 시골의 집배원이 되었습니다. 저는 이 일이 즐겁습니다. 저처럼 보잘것없는 사람이, 아무 가진 것 없이 누군가에게 사소한 도움이라도 줄 수 있는 일, 그리고 정신이 자유로운 일, 하루하루가 이렇게 즐거운데 월급까지 받아야 하는 게 미안하기까지 한 이 일, 하늘이 주신 천직입니다.

… 철없습니다. 뜨거운 아스팔트길을 가로질러 건너가다 헤매는 뱀을 위해 도로를 가로막고 무사히 건널 수 있도록 도와주고 … 차창 밖으로 미친놈 소리를 던져놓고 지나가는 사람들에게 인사하는 철없는 사람들입니다. 평생 시골 집배원으로 살다 퇴직금 받아서 섬에 들어가 흙집 짓고 호롱불 아래에서 자연인으로 살다가는 것이 소원입니다. 그래서 천연염색, 차 만들기, 전통 서민가옥, 술 담그기, 농사일 등은 제 관심사에서 벗어나지를 못하고 제게 시달립니다.


"차례"

재원도를 아시나요

앞마당 : 내가 살던 고향이 그립습니다

어머니의 부엌
문 바르던 날의 수묵화
술 익는 집
어머니의 밥상
사라져버린 것들
또 하나의 가족
어머니의 등은 누가 닦아드렸을까
혹, 고무신에 맞아본 적 있습니까
귀신이 사라진 변소
국민학교 다니던 시절
메주 쑤던 날의 삽화
주전부리 사계(四季)

쉬어가는 마당
도꾸의 묵언

뒷마당 : 내가 사는 새 고향입니다
꽃향기가 없는 카네이션
살가운 우편물이 그립습니다
너무나, 너무나 쓸쓸한 어르신들
몸뚱아리가 아퍼 죽겄어
평화로운 고향땅에 살고 싶습니다

간장 오타맨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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