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이드바 영역으로 건너뛰기

게시물에서 찾기분류 전체보기

794개의 게시물을 찾았습니다.

  1. 2004/08/17
    공짜 밥을 얻어먹었다.(1)
    간장 오타맨...
  2. 2004/08/17
    추억도 잃어버렸다.
    간장 오타맨...
  3. 2004/08/16
    비가옵니다.
    간장 오타맨...
  4. 2004/08/16
    다이어리를 잃어버렸다.(3)
    간장 오타맨...
  5. 2004/08/16
    타자에 대해서....
    간장 오타맨...

공짜 밥을 얻어먹었다.

  • 등록일
    2004/08/17 16:11
  • 수정일
    2004/08/17 16:11

오늘 공짜 밥을 얻어먹었다.

얼마만인가 누구에게 밥을 얻어먹는다는 것이.... 그동안 회의나가면 밥값(사무실에서 식비청구는 하지만)을 내고 먹다가 오늘 꽁짜로 그것도 잡채밥을 얻어먹었더니 배가 든든하다.

 

밥을 얻어먹게 된 것은 오늘 회의에 늦은 사람들이 밥값을 쏘라고 이야기 하였는데... 정말로 밥값을 냈다. 그래서 안면몰수하고 난 중국집(일명 짱깨집)에서 조금 비싼 편에 속하는 잡채밥을 시켰다. 계속되는 눈총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잡채밥을 시켰다.



돈을 내는 사람들은 비용을 줄이려는 처사인지 자장면이 좋아서인지 모르겠지만 자장면 곱배기와 보통을 시켜 먹었다.

 

오늘의 밥 얻어먹게된 이유는 다른아닌 회의시간을 늦게 도착하여 벌어졌다.

운동사회내에서도 오늘 같은 일이 널리확산되기를 바램해 본다.

다들 단체일로 바쁘다 보니 회의시간을 제시간에 도착하지 못하는 일이 비일비재 운동사회내 연대회의에서 종종 벌어진다. 오늘도 마찬가지 였다. 한사람은 회의인지 까먹었고, 한사람은 단체일로 인하여 시간에 맞추지 못했다.

이에 모여있던 사람들은 늦었으니 밥을 사라고 말을 꺼내 밥을 사게 되었다. 다음에도 늦으면 밥을 사야한다는 강박관념에 이후 회의가 정시에 진행되지 않을까 생각해 본다.

 

활동가 모두가 일에 치이고 바쁜 일정을 쪼개면서 사용하고 있다는데 대한 심정적 이해는 해줄 수 있다. 그러나 심정적 이해는 심정적 이해일뿐 활동가들이 정한 시간을 최소한 지키는 것도 운동이 아닐까 개인적 생각을 가져본다. 사견으로 난 웬만하면 회의시간을 지키기 위해 회의시간 10분전에는 장소에 도착한다. 최소한 회의를 진행하기 위한 예의이며 회의진행에 있어서 비록 10분이지만 준비시간을 갖기 위한 나름데로 노력을 하고자 한다, 잘지켜지지는 않지만 그리고 회의가 늦을 것 같으면 최소한 양해를 구한다. 어디쯤인데 몇시경에 회의장소에 도착한다는... 그리고 모여 있으면 내가 없더라도 회의를 진행해달라는 말과 더불어... 왜냐하면 활동가과 함께 잡은 시간을 지키지 못한 나의 불처저함이다. 이에 회의가 진행되었을 때 참여하지 않은 이들의 의결권이 있다손 치더라도 그 의결권 때문에 기다리기 보다는 의결을 진행하고 보고하는 것이 바람직하다 판단 든다. 

 

운동사회내 회의시간은 활동가들의 민주적(별로 좋아하지 않는 단어지만) 절차와 합의를 통해 결정된 시간이다. 시간을 맞추는 사람은 늘 그 시간대에 온다. 그들은 시간이 널널해서 오는 것은 아니다. 난 배려의 문제라 생각한다. 우스개소리로 코리안 타임 이야기 하지만 친구간의 약속 그리고 회의 그리고 중요한 일이 있을때 약속시간을 지키는 것이 되려 바보취급되는 현실인것 같아 어안이 벙벙할 때가 많다. 나도 의례 회의시간보다 조금 늦게 나갈려는 버릇이 생기지만 혹시 혹시하는 생각에 되도록 시간을 맞춘다.

 

내가 어리석은 것인지 회의시간을 잘못 잡은 것인지 잘 분간이 가지 않을 때가 많다. 다들 바쁜데 이런 사소하고 소소한 일에서부터 힘은 빼지 말았으면 한다. 활동가들 다 같이 어려운 시간 쪼개어 바쁘디 바쁜 활동을 하고 있는 것에 대해 잘 알고 있다. 연장노동은 기본이고 불철주야 주경야독으로 문건 만드랴 활동하랴 다들 분주하다. 주일은 있지만 못쉬는 활동가들 또한 부지기 수 있다. 다들 정말 정신없이 사는 것 같아 안타까움이 든다. 조금만 신경을 써주었으면 좋겠다. 다들 화이팅...

 

만약 불가능하다면 회의시간을 지킬 수 있는 시간대로 잡으면 된다. 습관이 잘못 되었다면 습관을 바꾸고자 하는 노력이 필요하다. 운동권 타임은 없어졌으면 하는 바램에 글을 써보았다.

 

공짜밥을 얻어먹었지만 그건 나의 활동시간에 대한 보상은 아니었을까.... 그냥 이런저런 잡생각이 납니다.

 

간장 오타맨이....


진보블로그 공감 버튼트위터로 리트윗하기페이스북에 공유하기딜리셔스에 북마크

추억도 잃어버렸다.

  • 등록일
    2004/08/17 01:24
  • 수정일
    2004/08/17 01:24

다이어리를 어제 잃어버렸다. 그러나 그 다이어리는 다이어리 이상의 것이다. 나에게 있어서는... 그 다이어리는 죽은 군의문사로 죽은 후배가 군에 가기전에 자신은 필요없으니 선배 쓰라고 준 소중한 물건이다. 그 다이어리는 그와의 추억 그리고 그 다이어리를 볼때만다 후배를 떠올릴 수 있는 나에게 있어 과거, 현재를 잊는 소중한 것이다.

 

하이데거는 존재와 시간에서 과거는 현재의 거울이고 현재는 미래와의 대화라는 말을 하였듯 다이어리는 과거와 현재를 이어주는 거울이었다. 그 소중한 것을 정신팔아먹으면서 잃어버린 것에 정말 죄스럽기까지 하다.

 

다이어리를 통해 후배와의 대화를 난 가끔 독백을 통해 이야기 한다. 나만의 대화 나만의 독배 그안엔 그 후배가 늘 살아있었다.



후배와의 만남 대학교 5학년(학기로 5학년 난 학기로 7학년까지 다님... 15학기 코스모스 수료 내가 생각해도 돈 무진장 대학에 퍼다날랐다....)때 과 선전부장이던 나의 후배를 동아리연합회(이하 동연)에서 만났다. 그는 좌파라고 자임하던 녀석들의 학내모임 선전부장 회의에 나타나서 나의 처음 인연을 맺었다. 그는 선전부장이 었으나 정작 글씨는 갈김체이기에 거의 선전물을 만들지는 않았다. 다만 과에서 선전부장이라는 직함을 통해 운동이라는 것을 지향하고자 하였던 이였다.

 

93년 그 뜨거웠던 여름.... 우린 농활을 통해 서로를 알아나가는 계기를 만들었다. 후배는 누나의 영향을 많이 받았다. 당시 후배의 누나는 숙대를 다니고 있었고, 숙대에서 한가닥하던 운동권의 주동자였었다. 그의 집은 늘 누나의 학생운동으로 불안초조 그리고 경찰이 불시에 들이닥치는 일이 비일비재하였다고 한다. 그의 누나는 몇번의 조직사건으로 투옥이 되었고, 이를 통해 운동이라는 것이 무엇인지 고등학교때 부터 누나의 타고난 조직화에 후배는 쁘락션되고 말았다. 부모님을 생각한 후배는 운동에 전면으로 나서지는 않았지만 92년 당시 강경대 1주기 추모식에서 어느정도 운동을 지향해야 겠다는 결의를 하였다고 한다.

 

그 친구와 동아리연합회 노숙방에서 진한 술잔과 노래하나... 늘 후배는 내가 귀거하는 동아리연합회 노숙방에 찾아와 선배 술한잔 하죠... 하면서 술을 매개로 이런저런 이야기를 하였다. 그 후배와의 대화에서 난 그에게 진솔하지 않았다. 후배는 자신이 살아왔던 과정 운동을 머뭇거리게 된 배경 그리고 집안에 대해 나에게 가슴속 깊은 이야기까지 하였다. 난 그렇지 못하고 그의 이야기만 들어줬다. 정작 나의 이야기를 그에게 하지 않았다.

 

내가 무엇하러 운동이라는 것을 지향하게 되었는지.... 나는 어떻게 대학 오기까지 살아왔는지... 다른 동지들에게도 말하지 않았다. 나만이 숨기고 싶은 비밀 그리고 알리고 싶지 않은 나의 가족사가 있었기에 난 그들의 가슴에 담은 이야기를 정작들으면서 나의 이야기를 하지 않았었다. 지금 생각하면 정말 한심한 일이다. 누구나 받아주고 감싸줄 수 있는 이야기를 난 나의 쪽팔림과 나의 존심이라는 것을 내세워 아무런 이야기도 하지 않았다. 어느 노래가사처럼 그런 입으로 난 동지라 지껄였는지도 모른다.

 

나에게 고민을 떨어놓았던 그들에게 지금 생각하면 얼굴을 들을 수 없을 정도로 부끄럽게 느껴진다. 나를 믿고, 나를 따르고, 나를 진심으로 생각해준 동지와 후배들에게 난 정작 무엇을 해주었던가.... 후배가 떠나고서야 아쉬움이 남는다. 버스는 이미 떠났다.

 

후배는 참 맑은 녀석이었다. 늘 힘들어도 웃도 열받아도 웃고 술이 떡이 되도 웃었다. 늘 힘들다고 털어놓을 때 빼놓고는 그 후배는 웃음과 미소를 잃지 않았다. 늘 밝은 그.... 그가 군대간다고 형 저 군대가요 술한잔 건하게 사줄께요 형 내가 복학하면 형 졸업하겠죠... 그래서 미리 술한잔 대접하는 겁니다하고 술한잔 건하게 사주고 입대한 그가 7개월 후 뼈가루가 되어 돌아왔다. 사인은 군대에서 자살하였다고 한다. 그 맑던 후배가 이렇게 갈 줄 알았으면 후배가 형 면회와요 할때 면회하도 갈것을 그리고 형 편지보냅니다. 편지 받았을때 편지라도 붙여줄걸 왜 이리 귀찮은지 지금 후회가 막심하다. 이도 꽤 시간이 흘렀지만 아직도 그와의 생활은 잊혀지지 않는다. 그가 준 다이어리.... 맑은 그를 다이어리속에서 발견하곤 하였는데... 그걸 잃어버리다니.... 난 내 학교시간 그 후배와 소중한 추억을 잊어버린 것과 같은 충격에 휩싸였다. 술한잔 하고 난 후 이글을 쓰면서 조금은 진정되었지만.... 오후내내 일손은 커녕 화딱질이나서 혼자 씩씩대고 있었다. 참 미련한 놈 같으니라구.... 난 참 미련한 놈이다....

 

끝나지 않은 군의문사.... 난 운동이라는 것을 접하고 동지 3인 그리고 선배 3명 후배 1명을 군과 길거리에서 의문사로 보냈다. 그들의 장례식도 가보지 못하고 보냈다. 그들의 장례식은 군과 경찰에서 화장을 한 후 통보하였고, 죽어있는 현장사진을 보면서 오열할 수 밖에 없었다. 그들과의 그 소중한 추억은 그 현장사진 한장에 더이상 만날 수 더이상 술먹을 수도 더이상 내가 이야기를 받아줄수도 내가 하지 못한 말들을 그들에게 전달 할 수 없다는 것에,,,, 난 미치도록 서글프다. 내 마음속 이야기 하나도 그들에게 하지 못했건만 난 그들의 이야기만 받아 담았을 뿐.... 오늘 술한잔 하고 나니 서글프다.... 눈가에 이슬이 맺힌다. 젠장할....

 

후배와 동아리에 관한 추억.... 후배와 난 동아리 하나를 만들었다. 세미나와 학습을 하기 위한 동아리 내가 동아리연합회장이었을때 가동아리로 인준을 받았다. 그리고 2년만에 편법으로 중앙동아리로 인준을 받았다. 후배들에게 운동은 삶이라는 것을 보여주기 위해 만들었던 동아리 그리고 조직활동을 위한 안정적 공간확보를 위해 동아리를 만들었다. 무수히 후배와 난 이리저리 뛰어다녔다. 그리고 부족한 부분은 다른 이들에게 부탁하면서 채워나갔다. 중앙동아리로 인준 받고 그와 난 동아리방에 찾았다. 감격이 었다. 우린 둘이 얼싸않고 엉엉 울었다. 우리가 해냈어 하면서.... 참 포부도 있었도 운동이 꼬이지만 원칙만 건실하면 잘 될것이라는 믿음으로 같이 만들었던 동아리.... 난 집에서 붙여주는 돈을 모아 헌책방에서 책을 구입하고 후배는 자신의 집에서 필요한 물건을 몰래 훔쳐가지고 와서 동아리방에 하나둘 기물을 만들었다. 그리고 이 공간에서 우린 종종 함께 술한잔 하면서 밤을 지세웠다. 비록 우리는 소수이지만 나중엔 창대하리라.... 학교를 제대로 바꿔보자고 포부도 열정도 가능성도 우리 앞에는 그 당시 보였다. 지금 생각하면 우습지만.... 그와 이외에도 많은 이야기가 있다.

 

한번은 술을 얼마까지 먹을 수 있을까... 학교앞 당골집 전부다 돌자고 결의하고 한달 생활비를 털어 우린 무작정 술집을 돌았다... 내 생전 이렇게 하루에 술집을 많이 돌아보기는 처음이다. 무려 8차까지 갔다. 그 결과는 참담하였지만... 후배는 병원에 실려가고 난 동아리방에서 1주일을 칩거하여야 했다. 동기와 선배들이 병원에 가라는 것도 마다하고 동아리방에서 쓰린 배를 잡고 1주일간 구토와 설사와의 사투.... 무모하지만 기억이 남는다. 그리고 후배와 몸이 쾌유된 후 만나서 서로가 10차까지 도전하지 못한 아쉬움을 달래며... 다음 행동을 준비하자는 말만 남겼다. 그러나 이 사건 이후 무모한 행동은 더이상 하지 않았다.

 

후배가 단과대 학생회장 당선되었을 때.... 정말 뛸 듯이 좋았다. 우리도 단과대 하나를 잡았다는 기쁨 그리고 무엇보다 우리도 운동을 위한 대중적 발판 마련... 늘 양지를 지향하지만 음지에서 머무를 수 밖에 없었던 이들의 고충이라하면 다들 알 것이다. 우리도 양지바른 곳에 발을 내딛었다. 그리고 후배의 당선 소감을 듣는데... 이놈의 눈에서는 이슬이 처음엔 맺히더니 나중엔 소나기가 되어 퍼붙는 것이다. 주체할 수 없이 기쁜 환희의 소나기.... 감격 그자체였다. 후배가 대견하였다. 처음으로 단과대를 잡았던 그 희열 아직도 생생하다.

 

그리고 한총련 사태로 전국대학이 온통 한총련 탈퇴를 감행할 때 후배는 조용히 동아리로 찾아와 나에게 물었다. 형 우리 한총련을 지켜야 하는 것 아니냐고, 나는 왜 그러나고 물었다. 형 한총련의 노선을 비판받아 마땅하나 한총련 자체는 우리의 역사적 성과물 아니냐고, 한총련 자체는 학생운동이 이루어놓은 결정물이 아니냐고, 우리가 우리 스스로 외면하고 이에 대한 한총련 개혁, 한총련 강화에서 우린 무엇을 하였냐고,,,, 한총련이 이렇게 무기력하게 무너지면 다음차례는 우리가 아니겠냐고.... 학원민주화 투쟁은 더이상 공염불이 되지 않겠냐고 말하며 자신은 한총련 대의원 자격을 스스로 포기하지 않겠다는 결의한 자신의 결의와 다짐을 나에게 협박 비스무리하게 주장하였다.

 

후배와 짧지만 소중한 6개월의 동아리 동거생활.... 동아리는 내가 먹고자고 살아가는 생활공간겸 우리 진영 회의장소 였다. 후배는 수배가 떨어진 후 나와 함께 이공간에서 같이 살아갔다. 군대 끌려가기 전까지.... 후배와 애틀란타 올림픽도 같이 보았고, 그래서 술먹고 종종 둘이 레슬링 흉내고 냈다.... 후배의 별명을 타이거 마스크 대 난 그대로 간장 오타맨... 타이틀 매치도 하고, 비오는 날 팬티만 입고 술이 턱이되 학교 정문에서 동아리방까지 뜀박질도 해보고 갖은 꼴통 짖은 죄다 해보았다. 그 당시는 모르겠지만 지금은 이 생각만 하면 피식 웃음이 나온다. 후배와 나는 참 인연이 질겼다. 6개월 동안 참 좋은 시간이 었다.

 

후배는 나에게 한가질 부탁하였다, 형.... 난 사람을 만날때 자신의 마음을 조금은 빛춰줘여 한다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선배는 그렇지 못했습니다. 동지라는게 별건가요 서로 전부는 아니지만 조금은 알고 있어야 하는 것 아니냐고,,,, 앞으로 살아가면서 누굴 만나든지 남을 알려고 하기전에 자신을 먼저 보여주라고... 꼭 꼭 당부하였다. 난 후배와의 약속을 지키려고 하지만 말처럼 쉽게 되질 않았다. 그래서 최소한 노력하고자 한다. 동지라 신심을 같이하는 이들에겐....

 

 더 많은 이야기가 있다. 하지만 이도 그가 없기에 더 말하기 신명나질 않는다.

난 다이어리 분실.... 나의 추억도 송두리채 앗아간것 같다. 꼭 찾아야겠다. 나의 추억이 고스란히 뭇히고 내 후배의 손때가 묻힌 그 다이어리를....

 

주룩주룩 비가 내린다. 후배가 슬퍼스 우지짖나.... 나 그대 안 잊었다. 그대 잊는날 그날은 내가 그대곁에 다가가는 날이리라.... 미안타 니 소중한 다이어리 지키지 못해서...

 

술한잔 하니 참 이상타.... 술이나 더 먹고 그냥 오늘 자야 겠다... 내일 회의 늦지않게 조금만 먹어야지.... 지금 한 두병을 먹었으니 한 두명 더 먹고 푹 자야 겠다. 아무생각없이...

 

간장 오타맨이....

 

비야 제발 서글프게 우짖지 말라..... 내 후배 눈물 같아 보기 힘들다... 


진보블로그 공감 버튼트위터로 리트윗하기페이스북에 공유하기딜리셔스에 북마크

비가옵니다.

  • 등록일
    2004/08/16 17:07
  • 수정일
    2004/08/16 17:07

오늘  같이 우울한날 비가 주룩주룩 내립니다. 나의 마음처럼.... 우씨 다이러리 내돈... 피같은 돈인데.... 그 돈이며 어디 여행이라도 다녀오는데...

 

하늘은 내 마음을 알아주는지 비를 내려주고 있습니다. 참 고마운 하늘....

하느님/부처님/예수임/마호메트님 혹시 있으시면 내 부탁하나 들어주세요... 제발 돈과 다이어리를 찾게 해주세요. 저 같은 불쌍한 인간 구제한다는 마음으로 제발... 제가 아끼는 물건좀 찾게 해주셔요. 부탁이에요... 흐흐 ㅠ.ㅠ

 

그래도 비가 오니 참 좋군요.

저번주 까지는 헉 소리나게 힘들게 더위와의 사투를 벌어가며 하루하루를 보냈는데... 오늘은 선선한바람도 불고 그 얄밉운 태양도 보이지 않으니 참 선선해서 좋았습니다.

 

다른 분들은 삼성본관앞에서 1인 시위를 햇볕이 쨍쨍한 날 했는데... 저희는 햇볕이 비치치 않고 바람이 선선한날 해서 별로 힘들지 않았답니다.

 

비도 내리고 날씨도 시원하니  오늘 다이어리 돈 잊어먹은 기념차 술이나 한잔 땡겨야 겠습니다.

 

고통은 고통으로 이겨내라는 옛성인들의 말씀처럼 오늘 일을 잊기위해 술을 왕창먹고 몽롱한 정신으로 오늘 일을 잊어버려야 겠습니다.

 

간장 오타맨이.... 

진보블로그 공감 버튼트위터로 리트윗하기페이스북에 공유하기딜리셔스에 북마크

다이어리를 잃어버렸다.

  • 등록일
    2004/08/16 15:16
  • 수정일
    2004/08/16 15:16

흐흐 몇년 동안 사용한 다이어리를 잃어버렸다.

오늘 삼성노동자감시공대위 1인 시위가 있어서 시청에 갔다. 1인 시위를 진행할 노동넷 운영위원장님에게 연락을 하고자 다이어리를 꺼냈는데.... 다이어리를 미처 챙기지 못했나 보다.

정신을 챙기지 못해서 빚어진 불상사... 1인 시위 좀 늦게 시작하면 되는데.... 뭐 그리 분주했는지 흐흐....

 

다이어리에 돈 6만원과 할인카드 몇장이 들어있었다. 이런 낭패가....

1인 시위에 온 신경이 집중되어 다이어리 챙기는 것을 잊어버리다니.... 사무실에 있을 줄 알았는데... 정신을 챙기고 보니 운영위원장님에게 전화한 기억이 난다.

 

돈 6만원은 전기세 수돗세 오물세 그리고 통신비를 내기 위해 다이어리에 넣어둔 돈인데... 1인 시위 장소를 찾느랴 시간에 맞춰 운영위원장님이 오시기를 바라는 마음에 그만 챙기지 않고 그자리에 놓고 왔나 보다.

 

1인 시위를 하기 위해 액땜하였다 생각 안할려고 해도 자꾸만 아까운 돈생각이 난다. 이번달 또 어떻게 살아갈런지.... 큰아버님 암 투병으로 빚진 병원비 대출금 내고(4000만원중 500만원 갚았으니 3500만원 남아있음. 달달이 70만원 내는 것도 버겁다. 그나마 용접과 과외 알바로 70만원 정도 벌으니 생계에는 지장이 없다.), 카드 비용 매꾸고 나니 이번달 돈 3만원 남았는데 어떻게 이번달 살아갈지 막막하다.... 카드로 연명해야 하나... 웬만하면 카드 빛 탕감한 후 잘 사용하지 않으려 하는데... 어쩔 수 없이 다음달 상근비 받을때 까지 카드로 연명해야 겠다.

 

우씨 아까운 내돈과 다이어리....

소중한 연락처가 담겨있는 다이어리만이라도 누군가 보내주었으면.....

 

좋은 일 하는데 왜 나에게 이런 시련이 다가오는지.... 흐흐 ㅠ.ㅠ

 

간장 오타맨이...

진보블로그 공감 버튼트위터로 리트윗하기페이스북에 공유하기딜리셔스에 북마크

타자에 대해서....

  • 등록일
    2004/08/16 02:02
  • 수정일
    2004/08/16 02:02

운동이라는 것을 지향하게 되면서 초기부터 들었던 생각이다.

타자와의 관계에 대한 진정성 과연 가능한 것일까?라는 의문은 늘 내 초미의 관심사였다.

타자와의 관계형성에서 조직화의 관계로 발전하기위해서는 각고의 노력이 필요하다. 그러나 타자 즉, 내가아닌 남을 조직한다는 것은 결코 쉬운일이 아니었다.

 

내가 처음 설레이는 마음을 갖고 간 인천이라는 동네는 타자와의 관계에 대해 무척이나 각박한 동네였다. 여러가지 이유가 있겠으나 특히 크게 문제로 작용하였던 것은 기존 현장활동에 진출한 학출들의 활동이 그들에게 있어 불신으로 각인되어 있기에 접근하기가 어려웠다.

불신이라 함은 다름아닌 그들의 활동에 있어 언행일치가 되지 않고, 오래 현장에 머물지 못하고 활동을 정리하고 운동을 접은 이들에 대한 불신임이라 하겠다. 그렇지 않고 지역에서 자신의 위치를 굳건히하는 이도 많지만 그들은 그중에서 몇 남지않은 활동가들이다.



더욱 크게 작용하였던 것은 87년 민중의 당 그리고 91년 민중당의 활동에서 인텔리켄챠들이 보여준 무책임성이다. 그들은 실패의 요인을 면밀히 분석하기 보다는 그 당시 좌파내 분파들의 종파투젱으로 말미암아 사분오열되고 만다.

 

과연 이러한 과정에서 타자 즉 내가 아닌 다른계급에 대한 조직화 그리고 계급적 단결이 가능한가? 결코 가능하지 않겠지... 담배를 피고 있는 지금... 과연 난 인천 있을 당시 타자와의 관계에서 충실하였는가 반문해 본다.

 

노동자계급에 대한 신심과 민중에 대한 무한성을 갖고 운동을 지향해야 겠다던 포부는 지금 버거움으로 인해 중압감으로 작용하고 있다. 더욱이 지금 보여지고 있는 현실 태에서 과연 노동자계급성이라는 것은 어떠한 과정에서 태동하는가에 대한 막연함과 조급함이 죄여오고 있다.

 

거대담론이라 할 수 있는 사회구성체 논쟁은 빛바랜 앨범이 되어 책장에 쳐박혀져 있고, 좌파라고 자임하는 이들은 언어적 좌익성만이 강조되었지 실천적 행동에 대해서는 새 가슴이 되어 숨죽이고 있다. 그 똑똑하고 잘난 인간들은 어디에 꼭꼭 숨어있는지... 나 같이 무식한 놈도 운동이라는 것을 실천하지는 못하지만 운동이라는 지향성의 끝을 부여잡고 줄다리기 하고 있는데... 나보다 못난 놈들.... 앞에서 선동하고 실천하라는 그 당당한 말들은 거짓부렁이었단 말인가... 진정으로.... 갑갑하다.

 

수 많은 담론 속에서 편가르기에서 난 선택을 강요받았다. 아니 선택의 여지는 나에게 없었다 다만 조직이라는 그늘에서 운동이라는 것에 철저히 훈육되었다. 똑똑하다는 이는 늘 전술을 이야기하며 우리에게 무엇무엇을 하라는 지령만 내렸다. 나같이 몸밖에 없는 놈은 충실히 이를 이행하였다. 그리고 이것을 실천이라고 믿어왔다. 철저히... 젠장할.....

 

그렇게 나를 지도하던 놈들은 다 어디갔냐.... 살아있으면 대답해 다오..... 다들 친목모임에서 연봉자랑이나 하지 말고.... 그대들이 떠들었던 자리에 나와 당당히 왜쳐라.... 세상이 엿같다고... 노동자계급은 아직도 억압받고 있다고..... 나 같은 새가슴도 외치는데 그 당당하게 마이크 잡고 떠들던 니그들은 왜 잘난 주둥아리 조아리지 못하냐 쓰방새들아.... 그리고 제발 나에게 전화하면서 모임에 나오라고 종용하지 마라.... 나 그자리 가면 구토할 것같다. 그 수많은 무용담에 난 기절초풍할 것 같다. 뭐 이리도 할 말이 많은지.... 정작 세상이 바뀐것에 대해 아무런 말 없이 함구하면서 과거에 대해서는 그토록 말이 많은지... 제발 앵무새처럼 살지는 말아라.... 그래서 현재와 미래가 중요하지 않을까....

 

난 낀 학번이라 선배들에게 쥐어터져 후배들에게 압박받아... 학교다니면서 뭐이리도 지킬게 많은지.... 욕먹어가며 지켰건만.... 후배라는 자식들 배신탱겨... 아유 열받아.... 그래도 느그들 처럼 뒷걸음 치진 않았다. 내가 정파는 선택하여 운동을 할 수 없었지만, 그래도 그 정파가 야그하던 것에 대해서는 충실하고자 하였다. 그게 나에겐 실천의 태였고, 남들이 말하는 혁명이라는 것에 대한 순수성이였다. 남들은 스탈린 관료주의 실패가 소련의 붕괴를 낳았다고 한다. 그러나 한번보자.... 그들이 낳은 실패의 요인이 단지 스탈린주의의 오류만이 문제였나... 그리고 맑스-레닌주의가 낡은 구도인가? 난 아직도 폐기하지 않았다. 시인 백무산은 강령이라는 시에서 강령의 원칙성에서 강령은 변함없음을 말하다, 나도 마찬가지이다. 구좌파라고 욕먹어도 좋다. 제발 혁명 비스무리한것이라도 해봤으면 한다. 노동자들이 죽어가고 비정규직노동자들이 양산되고, 명동이주노동자 농성이 300일을 넘어서고, 각종 현장에서 노동귀족들이 판친다는 언론보도에서 노동자들은 죽음을 강요받고 있다. 이들에게 희망이라는 것이라도 주었으면 좋겠다. 제발 어려운 학자 이름과 이론을 천명하기전에.... 그들의 실천에 다가가 손이라고 내밀어 다오....

 

타자에 대한 조직화를 이행하기전 자신이 타자가 되어봐라.....

 

이전에 비하여 많은 부문영역이 확장되었다. 이는 시민사회의 확장이라는 수식어를 달며... 사회내적으로 확대되어져 갔다. 그런데 과연 확대되었냐.... 시민사회의 동력이 무엇인가 면밀히 보자.... 전문성과 왕성한 활동성... 그런데 여기서 제일 중요한 요소가 빠진다. 대중 즉 노동자 민중들이 이 활동 속에서 포함되고 있지 못하다. 그리고 그들과 공유할 간결한 슬로건을 찾기란 용이하지 않다. 아 원효처럼 당나라 유학길 무덤가에서 해골에 고인 물이라도 먹어야 진리를 발견할 수 있다면 나도 유학길에 올라 고행을 통해 진리를 찾건만.... 용이하지 않다. 원효의 짧막한 나무아미타불은 민중누구나 그 어려운 염불을 배울 필요없이 개인 해탈의 경지를 도달하게 하였건만... 우리에겐 이러한 구호나 슬로건은 용이하지 않다. 또한 단체간의 연계성은 찾아보기 어렵다. 사안별 공동체는 존재하나 단체간 일상적 활동공조는 용이하지 않다. 철저히 단체간에 있어서 배타적인 문화가 확대재생산되고 있다는 판단이 든다. 우려점이다.

 

쉬운 진리... 나를 내세우기전 왜 타자에 대한 배려는 없는가? 단체간 연대가 무엇보다 중요하다. 사안별 연대가 아닌 운동 담론 형성을 위한 활동가 중심의 상설연대(영역이 아닌 전반적 운동을 필두로한...)가 필요하다. 그리고 전국민중연대라는

쉬우면서도 어려운 일이다. 개인보다는 집단이 중시하는 사회에서 개인과 타자의 배려는 기대하기 어렵다. 개인주의의 잘못된 호도도 한 몫하고 있다.

 

나는 과연 노동자계급 처럼 절박한가?

활동하는 이들 대부분 노동자계급(지금의 기준은 모호하지만 아마도 경제적 삶이 주는 중압감은 노동자계급의 상태와는 다를 것이다.)이 처한 조건과는 다르다. 비록 적은 상근활동비에 활동을 지향해야하는 어려움이 있다. 그러나 우린 그들보다 돈을 쉽게 벌수 있지 않은가? 내가 알고 있는 사람(정치조직에서 일하는 이들은... 그렇지 않은지도 있지만)들 대부분이 논술강의를 통해 일년 활동비를 충당한다. 꽤 잘나가는 강사의 경우 비용이 짭짭하다. 이렇듯 자신의 육체노동을 통해 임금으로 교환되어 자본주의 사회를 살아가고 있지 않는 한 노동에서 자유로울 수 있다. 활동이 각박하다고 하지만.... 내가 활동을 잘 못해서 그런지 나에게 이렇게 블로그라는 것에서 글을 쓸 시간적 여유가 많다. 그리고 출근시간에 대한 강박관념도 없다. 현장에 있을 땐 매일 술을 떡이되도록 먹었던 야근 철야를 하였것 임금삭감되지 않기위해 아침 6시 기상하여 7시까지 출근을 하였다. 그들에게 임금이란 그런 것이다, 비가오나 태풍이 부나 어김없이 현장에 출근해야하는 것... 어떠한 변명도 없다. 작업량이 많았다는 논리는 자본 앞에서 통하지 않는다. 그들도 말하지 않는다. 그들은 다만 지각3번 하루 임금 삭감으로 대처하고 지각이 빈번하면 시말서 제출 그리고 개선되지 않으면 퇴사이다. 이러한 굴레에도 이들은 현장활동(현장조직의 범람이 문제로 작용하고 있다. 그러나 이 문제는 현장활동가들이 풀어내야 할 문제이다. 정파운동이 분파로 나가지 못하고 종파주의로 치닫았던 문제점이 현장조직의 대립으로 그대로 이어졌다.... 쓰발)이라는 것을 실천하고 있다. 

자본은 철저히 돈과 규정으로 노동자들을 통제하고 있다. 그러나 이러한 통제에 노동자들은 순응하면서도 자신들의 목소리를 낸다. 불법이라고 호도되어도 실천한다. 노랫말 처럼 노동자가 한다면 한다라는 말은 여기서 도래하지 않았을까....

 

오늘 하루 난 타자를 바라보면서 과연 향후 운동은 어떻게 지향해야 할까라는 고민을 해보았다. 그런데 나도 모르겠다. 다만 내가 초기에 운동을 입문하였을때 비록 사회적 의제와 범위는 제한적이었으나 운동하나는 명확했다는 것은 각인한다.

 

그러나 지금은 그 명확성이 무엇인지 잘 모르겠다. 아는 이 있으면 누가좀 가르쳐 주소....

 

그냥 밤에 잠이 오지 않고 쓰던 글 날라가서 그냥 잡생각을 끌적여 봄....

 

간장 오타맨이...


진보블로그 공감 버튼트위터로 리트윗하기페이스북에 공유하기딜리셔스에 북마크